종교가 사악해질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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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스저널=정이신목사] 종교가 사악해질 때 » 찰스 킴볼(Charles Kimball) 지음, 김승욱 옮김/ 출판사: 현암사 »
기독교인에게 부끄러워해야 할 일이 훨씬 많다는 이유…
진정한 종교는 존재의 수수께끼와 불완전한 세상에서의 삶이라는 과제를 가지고 씨름하는 사람들의 지적인 면을 끌어당긴다. 그러나 맹목적인 복종은 종교가 타락했다는 확실한 징후다. 추종자들의 지적인 자유와 원래의 개성을 제한하려는 모든 종교를 경계해야 한다. 신도들이 개인적인 책임을 버리고 카리스마 있는 교주의 권위에 굴복하거나 특정한 사상 혹은 가르침의 노예가 되면, 종교는 쉽사리 폭력과 파괴의 온상이 된다. – [책의 에필로그에서]
종교가 사악해질 때 – 이책의 제목과 달리 내용은 신앙인으로서 저자의 희망을 이야기 한 것입니다. 저자는 순진할 정도로 낙관적이지 않지만, 인류가 더 나은 미래를 향하는 길을 찾아서 나아갈 것이란 희망으로 이 글을 썼습니다. 그래서 저자는 책에서 종교가 사악해지는 것을 막기 위해 모두 스스로 생각하고, 자신의 행동에 책임을 져야 한다고 했습니다. 얼핏 보기에는 아주 쉬워 보이는 이야기지만, 자신의 선택과 그로 인한 행동에 책임을 지지 않는 사람이 많습니다. 그런데 종교가 그런 일을 자행할 경우 종교는 사이비 집단으로 전락하고, 아주 사악해집니다.
저자가 말한 사례 중에 일본에서 발생한 옴 진리교의 예를 들어 보겠습니다. 교주인 아사하라 쇼코(麻原彰晃)의 가르침은 이상주의에 빠진 젊은 추종자들의 가슴과 정신에 깊은 감명을 줬습니다. 그러나 채 10년도 되지 않아 아사하라는 자신의 파괴적이고 묵시록적인 비전에 무조건 헌신할 것을 강요하는 폭군이 됐습니다. 교주의 말을 따르기 위해 추종자들은 사회생활을 포기했고, 옴 진리교가 만든 공동체에서 생활하던 사람들은 ‘스스로 생각하지 않도록 자신을 훈련’했습니다. 아사하라 교주의 정신만 중요했기에, 그들은 스스로 생각하는 것을 기꺼이 포기했습니다. 그리고 그 결과가 도쿄 중심부 지하철역 16곳에 치명적인 신경가스인 사린을 동시에 살포하는 일로 나타났습니다.
그런데 경찰은 옴 진리교를 수사하면서 무척 놀랐습니다. 당시까지 비교적 무명의 종교 집단이었던 옴 진리교의 추종자가 일본에만 25개의 센터에 1만여 명이 있었고, 러시아에는 약 3만 명이 있었습니다. 그렇다면 일본과 러시아에 있는 약 4만 명의 사람이, 스스로 생각한 후 그것에 대해 책임지는 일을 등한시하는 방향으로 삶의 행로를 정한 이유는 뭘까요? 이에 대한 답은 인민사원의 교주 짐 존스가 그의 말에 따라 가이아나로 이주했던 사람들에게, 억지로 독극물을 먹여 죽일 수 있었던 것처럼 ‘사회와 멀어지기’였습니다.
기독교인이 구원을 받는다고 해서 즉시 하늘나라로 올라가는 것은 아닙니다. 불교도 역시 깨달음을 얻더라도, 이 세상에 남아서 주어진 생을 채워야 합니다. 의인이면서 죄인이라는 교회의 정체성에 관한 언급이나, 진흙으로 더러워진 연못에서 아름다운 연꽃이 물 위로 그 자태를 드러낸 모습은 기독교와 불교에서 이 세상을 어떻게 인식하고 있는지 알려줍니다. 그러나 옴 진리교와 인민사원은 이를 거부했습니다. 그들은 사회에 대해 적의를 갖고 사회를 깊이 거부했으며, 수상쩍을 뿐 아니라 범죄라고 부를 수 있는 존스와 아사하라의 행동은 그들의 사고에 아무런 영향을 미치지 못했습니다.
추종자들은 사회가 그 집단에 적대적이란 교주의 말을 그들의 생각과 판단, 그들이 본 현실에 대한 회의(懷疑)보다 더 추종했습니다. 사악한 체제와 그들이 대립하고 있다는, 그래서 그들이 선의(善意)를 펼치지 않으면 인류에 큰 재앙이 따를 수도 있다는 교주의 말을 더 철석같이 믿고 따랐습니다. 그래서 추종자들은 사악한 체제가 오히려 교주의 말을 따르는, 그들을 희생양으로 삼고 있다는 교주의 해괴한 궤변에 더 열광적으로 몰입했습니다. 그런데 이런 사건은 역설적이게도 종교가 사악해지지 않기 위한 타산지석(他山之石)의 교훈입니다. 저자의 말처럼 종교에 속한다고 주장하는 모든 집단은 사회와 어떤 관계를 맺는 것이 적절한지 반드시 고민해야 합니다. 이걸 포기하거나 뒷전으로 밀어두는 순간부터 종교는 사악해지기 시작합니다.
종교의 타락을 경고하는 징후들을 하나하나 살펴보면, 각각의 종교 안에 이를 교정하는 방법들도 항상 같이 있었다는 것을 발견하게 됩니다. 모든 종교의 핵심에는 폭력과 극단주의를 가장 먼저 희석하는 영속적인 진실과 원칙이 존재합니다.
저자는 병든 종교를 연구함으로써 건강한 종교가 무엇인지 분명히 알게 된다고 합니다. 그리고 폭력을 불러일으키는 종교의 타락을 바로잡고, 더 희망적인 미래를 향해 앞장서서 길을 이끄는 데 가장 커다란 역할을 하는 것은, 마음이 넓고 종교적인 믿음을 가진 사람들이라고 합니다.
저자에 따르면 어떤 종교든 그 종교가 지닌 사상과 헌신 덕분에 신자들과 믿음의 공동체들이 편협한 이기주의를 초월해, 더 고귀한 가치와 진실을 추구했던 모습이 인류 역사에 무수하게 등장합니다. 그리고 저자에 따르면 인간이 종교를 없앨 수 없습니다. 종교 무용론이나 종교 폐지론은 더는 실현될 수 없는 협착한 사고입니다. 그러니 종교를 믿는 사람들이 ‘반드시 자기들만이 옳다’라는 협착한 사고를 벗어나, 가장 고귀하고 선하게 그들이 믿는 종교적 이상을 실천하는 방법을 찾아야 합니다.
이를 위해서 먼저 종교 경전을 역사적 사실을 도외시한 채 견강부회(牽强附會)로 해석한 후, 추종자들을 교리적 노예로 삼는 교주들의 맹목적인 복종에 대한 요구를 거부해야 합니다. 그러나 종교 집단의 정체성을 가진 후, 다른 종교에 대해 포용적인 자세를 선택하든, 다원주의를 선택하든 그것은 독자의 몫입니다. 비교종교학자 하비 콕스(Harvey Cox)의 말처럼 ‘하나님이 미래를 우리의 손에’ 쥐여주셨으니, 이제 우리가 미래의 운명을 공존하는 방향으로 개척하기 위해 솔선수범하며 행동에 나서야 합니다.
덧붙이자면, 저자가 책에서 주로 다룬 종교 현상은 기독교와 이슬람교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저자가 이 두 종교만 다룬 게 아닙니다. 유대교, 힌두교, 불교의 사례도 책에 나옵니다. 그러나 저자는 현재까지 세계에서 가장 크고 널리 퍼진 종교를 기독교와 이슬람교로 봤습니다. 세계에서 두 종교를 따르는 신도 수가 많은 것 외에도 두 종교가 모두 선교를 중요시하며, 또 두 종교를 따르는 신도가 절대적인 진리를 알고 있다고 하는 주장에 쏠리는 점에 착안해서, 다른 종교에 관한 언급보다 이 두 종교를 더 자세히 다뤘습니다.
종교가 사악해질 때 – 이책에서는 이런 면이 반면교사로 등장합니다. 그리고 미국 침례회에서 목사 안수를 받은 저자는 다른 종교의 신도보다 기독교인에게 부끄러워해야 할 일이 훨씬 많다고 합니다. 저자가 지적한 두 종교의 공통점이 폭력적이고 파괴적인 행동의 지지대로 쉽게 악용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저자가 책에서 주류로 다루지 않은 종교를 믿고 있다고 해도, 다른 가치가 있으니 아쉬워할 필요는 없는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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