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스저널=중세를 오해하는 현대인에게 » 남종국 지음, 왕은철 옮김/ 출판사: 서해문집 »
사람이 사는 백주(白晝)의 시간, 아름답고 의미 있는 시간이 중세에도 있었다…
인간은 자신이 사는 시대의 수인(囚人)이라는 말이 있다. 이 말은 보통 사람들은 시대라는 감옥에 갇혀 있음을 의미한다. 중세 사람들은 조야한 물질문명, 생물학적 한계, 하나의 종교가 지배하는 사회라는 구조 속에서 살았다. 그들이 그러한 한계 내에서 치열하고 고된 삶을 이겨냈다는 점을 고려해야 한다. 그래야 우리 시대의 한계를 냉철하게 바라볼 수 있다. – [책 내용 중에서]

여전히 중세를 서양사의 일부로만 여기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렇지만 중세의 가치관이 파급한 대항해시대가 만든 지형도가 현대입니다. 대항해시대 이후 서양의 생각을 보편적인 것으로, 동양의 생각을 특수한 것으로 몰아간 ‘제국의 야만’이 생겨났습니다. 이 제국의 야만을 넘어서 보고자 애를 쓰는 사람들이 꽤 있습니다만, 여전히 탄탄한 제국의 야만은 무너지는 걸 거부한 채 위풍당당하게 그의 생각을 세계의 표준으로 받아들이라고 강요합니다. 그래서 중세에 대해 우리가 추상적으로만 알았던 걸 구체적으로 자세히 알아보는 게 필요합니다.
중세라는 삶의 현장과 이게 남긴 역사의 교훈에서 우리는 비합리적으로 보이는 인간의 상상력이 역사를 움직였다는 사실을 인정하게 됩니다. 아시아 동쪽 끝에 지상낙원이 있다는 믿음은 콜럼버스를 에스파냐 왕실의 지원을 받고 인도 항로를 개척하는 길로 가게 했습니다. 콜럼버스가 주도한 이 여행을 통해 유럽인이 가지고 있던 파라다이스에 대한 꿈은 사라졌지만, 그들은 거기서 일확천금의 기회를 찾아냈습니다. 허무맹랑하게 보였던 이 믿음이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방대한 역사적 전환을 이뤄냈습니다. 그리고 그 전환에는 라틴 아메리카에 대한 유럽의 수탈사가 병행합니다.
여전히 적지 않은 유럽의 기독교인들은 이슬람을 유럽 문화와 완전히 다른 동양적 종교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중세기에 둘은 겉으로는 배타적이라고 하면서도 많은 걸 공유했습니다. 중세 때 유럽에서는 글을 읽고 쓸 줄 아는 이들이 주로 수도원에 몰려 있었는데, 그들은 라틴어로 쓴 책을 주로 읽었습니다. 그랬던 유럽인들에게 아리스토텔레스를 비롯한 고대 그리스의 서적 내용을 알려준 건 이슬람입니다. 이런 면에서 유럽의 르네상스는 이슬람의 번역문화에 빚을 졌습니다.
이슬람 문명은 800년부터 1,300년까지 세계 제일의 과학 지식을 보유했었는데, 이런 명성의 근간을 활발한 번역 활동을 통해 만들었습니다. 832년 아바스왕조의 칼리프 알마문은 제국의 수도 바그다드에 아랍어로 바이트 알히크마, ‘지혜의 집’이라 불리는 도서관을 설립해 번역과 학문 연구를 진흥시켰습니다. 이때 칼리프의 재정 지원을 받은 학자들은 인도와 페르시아 서적 외에도 그리스의 과학ㆍ철학 서적들을 아랍어로 번역했습니다.
이후 서유럽이 번역의 중요성을 인지하고 아랍어로 된 저작들을 라틴어로 번역하기 시작한 게 11세기 말입니다. 초기에 서유럽의 기독교 성직자들은 이교인 이슬람 서적을 그들이 관장하고 있던 서유럽의 기독교 세계에 번역ㆍ소개하는 걸 종교적 이유로 반대했습니다. 그러나 그들이 관장하던 중세의 교회도 새로운 변화의 물결을 막지 못했고 이를 수용하게 됐습니다.
이슬람 세계로부터 지적 영향을 받은 덕분에 서유럽 기독교 세계는 ‘12세기 르네상스’라 불리는 문예 부흥을 이룰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이 문예 부흥이 15∼16세기의 기독교 개혁으로 이어집니다. 역사가 주는 교훈으로 보면 이슬람과 기독교는 서로에게 상생의 실마리를 제공한 채 길항작용(拮抗作用)을 했던 두 축입니다.
저자는 책에서 폭군으로 알려진 네로에 대해 다른 평가도 있다고, 이 둘을 같이 들여다보라고 권유합니다. 저자는 로마 제국의 번영을 만들어 냈던 오현제, 다섯 명의 현명한 황제 중 한 명인 트라야누스가 ‘네로가 다스린 5년만큼 태평성대도 없었다’라고 말한 부분을 소개했고, 섹스투스 아우렐리우스 빅토르가《황제전》에서 트라야누스의 이런 평가가 옳다고 했으며, 한동안 로마의 평민들이 네로가 죽은 후 그의 무덤에 꽃을 바쳤다는 사실을 소개합니다.
그런데 이는 조선 시대의 폭군으로 알려진 연산군의 재위 전반기 10년 동안의 업적이 괜찮으니, 그를 폭군으로 보지 말아야 한다는 말과 비슷합니다. 네로는 황제로 재위한 기간이 약 14년인데, 전반기 5년만을 예로 들어 그에 대한 다른 평가에 귀를 기울이기보다는 전반기 5년을 뒤집어엎는 광기로 치장한 그의 후반기가 왜 발생했는지를 알아보는 게 더 나을 것 같습니다.
현대의 우리는 역사를 객관적으로 서술할 수 없습니다. 인간은 ‘관찰자이면서 관찰대상자’기에 객관적인 존재가 아닙니다. 또 객관을 확보하기 위해 과거의 모든 일을 다뤄야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못합니다. 역사의 교훈은 철저하게 과거의 어떤 사건과 인물을 선택한 후 그들의 삶을 통해 서술됩니다. 따라서 어떤 사람들과 사건들을 통해 역사를 배우고 기억하느냐가 그 나라의 역사의식과 삶의 품격, 그 나라가 표방하는 시대 정신을 나타냅니다.
이런 면을 고려했을 때 ‘중세에도 사람이 살고 있었다! 컴컴한 어둠의 시간이 아닌 사람이 사는 백주(白晝)의 시간, 아름답고 의미 있는 시간이 중세에도 있었다.’ 이게 저자가 책을 통해 말하고자 하는 바라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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