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흩어진 나그네’ 단상斷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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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흩어진 나그네’ 란? 디아스포라 신학을 다시 돌아본다
이 땅에 거대한 성채도, 어마어마한 빌딩도 결국엔 머리 둘 곳은 아니다. 고인이 되어서 먼저 가신 조용기 목사님의 일대기를 돌아보면서, 반면교사로 삼아야 할 교훈은, 우리는 이 땅에 나그네 된 신분이라는 것이다. 그러니 이 기회에 흩어진 나그네, 디아스포라의 신학을 재조명해보는 것은 어떨지 가늠해 본다.
[에디토리얼=이창배 목사] ‘흩어진 나그네’ 단상斷想 » 고 영산 조용기 목사님의 소천을 애도하면서 » 고 영산 조용기 목사님의 조문을 빈소가 마련된 여의도순복음교회 베나니 성전으로 지난 9월 15일 오후에 다녀왔다. 아직도 낮 기온이 여름 못지않은 뜨거운 열기로 가득했다. 그나마 간간이 불어오는 시원한 바람에 땀을 식히며 지하철을 두 번 갈아타고, 버스로 바꿔 타면서 여의도순복음교회 정류장에 도착했다.
36년 전 쯤 여의도순복음교회를 처음 찾았던 생각이 주마등처럼 스친다. 그때나 지금이나 교회의 모습은 변함이 없다. 초원아파트 앞을 지나며 선교센타 사이로 영산빌딩이 들어선 것도 오래전의 일이 되고 보면 새롭다 할 것 없는 예전 모습 그대로이니 문득 감회가 어렸다.
그땐 나름 중소기업체의 대표이었고, 큰딸이 아주 어렸을 때이다. 아내와 함께 첫 예배에 참석해 처음 나온 성도라 자리를 배려 받아 강단 중앙에서 비교적 가까운 우측 좌석에 앉게 됐다. 당시로 높은 천장에서 반짝반짝 빛나는 전등 빛이 마치 우주를 보는 것 같다는 느낌이 들 정도로 대성전의 규모는 매우 크고 높았다. 그 수많은 자리를 빼꼭히 채워 앉고도 성전에 들어오진 못한 사람들이 복도에 줄을 설 정도로 엄청난 인파에 놀라움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첫 설교의 내용을 기억할 순 없지만, 예배의 분위기는 정말 뜨거웠다. 조 목사님의 설교에는 큰 은혜가 있었다. 나도 모르게 눈물이 흘렀고, 설교 후 조용기 목사님의 신유기도가 시작됐다. 아픈 사람은 아픈 부위에 손을 얹으라는 소리에 나도 모르게 손이 어깨로 올라갔다.
기적이었다. 어릴 때 일인데 중학교 시절 야구를 한답시고 어깨 뼈를 다쳤고, 그 후로 링 체조를 하면서 뒤로 넘기를 하다가 떨어져 일시 허리가 마비될 정도의 충격을 받게 됐었다. 그 뒤로 오른쪽 손을 번쩍 치켜들 수 없을 만큼 통증이 생겨서 어깨 위 이상으로 팔을 뻗는다는 것이 불가능하다고 생각하면서 살던 차라 스스로 손을 뻗어 올리는 나 자신에 놀라움이 컸다.
참 지금 생각해보아도 그 놀라움은 대단했다. 어떻게 손을 올릴 수 있었는지, 그게 순간적으로 고쳐질 수 있는지 이해는 다 안 되었어도 그것이 나에겐 신유기도의 능력이라고 인식됐다. 참 놀라운 경험이었다. 그 후로 나는 여의도순복음교회의 열심 신자가 됐다. 물론 아내도 마찬가지이다. 지금 돌아볼 때, 그때가 내 인생의 터닝포인트였다. 또한, 조용기 목사님은 내 삶에서 결코 지울 수 없는 존경하는 나의 영적 아버지요, 스승으로 자리매김이 됐다.
빈소에서 조문을 마칠 때까지 그저 머리가 텅 빈 것 같았다. 멍한 기분으로 빈소 밖으로 나와서 길을 건너가 다시금 교회 쪽을 바라보니 그 큰 교회 한쪽 면을 두르듯 서 있는 조화가 눈에 들어왔다. 검정 옷을 입은 수많은 사람의 행렬과 자동차가 끊이질 않는다. 건물은 예전 그대로인데, 왠지 낯설게 느껴진다.
오래전 조 목사님과 만남 이후로 변화된 내 삶에서, 기독교대한하나님의성회 총회 교단신문 편집국장으로, 유럽 파송 독일 선교사로 22년 사역을 마치고, 지난해 연말 고국으로 귀국한 지금까지의 오랜 시간에 걸친 인연의 끈이 여기에서 끊어진 것 같단 생각이 든다. 그래서인지 자못 한편으론 속이 서글프고 또한 개운하단 느낌도 교차 된다.
하지만 여전히 내 안에서 맴도는 아쉬움 그것은 첫 교회요, 첫 스승이요, 따라야 할 모델로 삼았던 그 분이 안 계신단 생각이다. 인간적인 생각에 불과할 터이지만, 그래도 기둥이 무너진 것 같단 허전함이 온 몸과 마음에 감도는 것은 어쩔 수 없어 허둥지둥 빈소 밖으로 나왔다.
9월의 파란 하늘이 유난히 맑다. 햇살이 투명한 하늘에 하얀 구름이 두둥실 떠간다. 독일에서 살아온 22년, 광야에서 살듯 디아스포라의 삶을 몸으로 겪으며 살아온 나에게 마음 둘 곳이란 오로지 주님 계신 그곳 하늘나라 뿐인 것을 왜 모르겠는가! 세상이 아무리 각박해도 결코, 실망하지 않을 사실은 나의 나그네 된 삶을 마치는 그날에 주님이 두 손을 들어 반겨줄 것이란 믿음 만큼은 확고하다. 이 믿음이 내겐 산소망이고, 험한 세월 디아스포라의 삶을 견디게 해준 동력이었음을 다시금 마음에 새기며 그 자리를 떠나왔다.
이 땅에 거대한 성채도, 어마어마한 빌딩도 결국엔 머리 둘 곳은 아니다. 고인이 되어서 먼저 가신 조용기 목사님의 일대기를 돌아보면서, 반면교사로 삼아야 할 교훈은, 우리는 이 땅에 나그네 된 신분이라는 것이다. 그러니 이 기회에 흩어진 나그네, 디아스포라의 신학을 재조명해보는 것은 어떨지 가늠해 본다. ◙
글: 이창배 목사/ 본지 발행-편집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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