잃어버린 것들에 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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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집인 이효석 생가, 처음 모습은 찾을 수 없어
식사를 마치고 친구 내외와 메밀 밭 가 산책을 나셨다. 문득 시골 장 장돌뱅이들의 두루마기 자락이 잘 어울릴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동안 경제개발이라는 거센 바람을 타고 현대화 물줄기에 떠밀려 잃어버리고 있는 것이 많은 것은 아닌지!…
[목양저널=오대환목사] 잃어버린 것들에 대하여 » 이효석의 ‘메밀 꽃 필 무렵’ 무대인 평창을 다녀오면서이효석의 ‘메밀 꽃필 무렵’ 에 대해서는 듣고 읽고 알고 있었지만 무대가 되는 봉평이나 평창에 대해서 아는 것이 없었다. 마침 고등학교 동기가 얼마 전부터 거기 한번 안 갈래 하고 여러 차례 제의했다.
친구와 내가 군대 생활했던 전방도 가깝고 한 번 가고 싶다는 생각을 하던 차에 잘됐다 싶어서 함께 가기로 했다. 그런데 친구 부인이 동행한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말하기를 “나 안 갈란다. 둘이 히히락락 거리는 모습을 보고 가란 말이냐? 나 안 갈란다” 했다. 사실 친구 부인을 오래토록 보아온 터에 그럴 일도 아니겠지만 그렇게 한 번 튕겨 보았다.
어쨌든 친구가 내가 사는 아파트로 차를 끌고 와 함께 타고 한강 변을 끼고 달리니 얼마 후 영동고속도로에 다 달았다. 그 길로 강원도 평창에 도착했다. 옛날 군대 생활 할 때 비포장 도로 위를 군대 트럭에 몸을 싣고 덜컹거리면서 다녔던 기억이 난다. 잘 닦아 놓은 고속도로를 벤츠 보다 더 비싼 차를 타고 달리는 기분이 산뜻했다
날씨도 기가 막혔다. 9월 초라 아직 단풍이 들지는 않았지만 산 자락에 심어 놓은 옥수수 밭도, 배추 밭도 보기 좋았다. 평창에 다 달아 고속도로를 벗어나자마자 구비구비 시골 길을 돌고 돌아 드디어 이효석의 생가에 도착했다. 주변에는 메밀 밭이 여기저기 있었고, 코스모스가 한들 거린다.
사람이 살지 않고 빈집으로 남아 있는 이효석의 생가는 처음 모습은 볼 수 없었다. 후손들에게 의해서 여러 차례 개조 되었다고 적혀있는 글을 보니 처음 생가 지붕은 초가였다가 후에 함석으로 덮이고, 지금은 기와집이 되어 있다고 한다.
다소 관리가 안되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는데 생가 안내문을 보니 지방 정부의 재정 지원이 없는 상태에서 후손들이 생가를 보존하기 때문에 미흡한 점이 있다고 적혀있었다. 생가 주변에는 이곳을 찾는 사람들이 이용하는 큰 식당도 있었다. 기왕 관광 자원으로 잘 활용하는 방법이라면 위대한 작가의 집을 잘 보존하고, 잘 관리가 됐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생가 주변 식당이 둘 있었는데 주로 메밀을 재료로 만든 음식이다. 메밀국수, 메밀전병, 메밀 막걸리 등이다. 이곳에서 식사를 마치고 나오다 일하는 사람에게 여기서 소비 할만큼 메밀이 주변에서 충분히 공급이 되느냐 물었더니 다른 지역에서 온다고 한다.
생가 주변에 메밀 밭이 있었는데 아직 추수시기가 덜 되었는지 더러 사진에서 본 것처럼 흐드러지게 피어있는 메밀꽃을 연상시키는 밭은 아니었다. 이곳도 역시 코로나 펜데믹의 영향에서 비켜가지 못한 것인지, 비교적 생가에서 멀리 떨어진 음식점들은 장사를 접은 듯 보였다.
식사를 마치고 친구 내외와 메밀 밭 가 산책을 나셨다. 문득 시골장 장돌뱅이의 두루마기 자락이 잘 어울릴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동안 경제개발이라는 거센 바람을 타고 현대화라는 물줄기에 떠밀려 잃어버리고 있는 것이 많은 것은 아닌지!
마침 길가 민박 집 전화번호가 눈에 띄어서 있어서 언제 갈 일도 없겠지만 전화번호를 사진에 박았다. 이 마을 어디선가 두루마기 자락을 걸쳐 입은 작가 이효석을 만나서 막걸리 잔을 기울였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잃어버린 것들에 대해서 실컷 이야기 하면서 말이다. ◙
글 오대환 목사/ 덴마크한인교회 담임, 본지 저널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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