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직 독서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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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학(博學)보다 습득(習得)의 태도로 책을 대하라
한겨울 군불도 때지 않은 방에 누워 벌벌 떨며 잠을 이루지 못하는데, 이웃집에서 잔치하며 웃고 떠드는 소리에 미쳐 발광할 것만 같았다. 못 견디고 벌떡 일어나 큰 소리로 《논어(論語)》를 몇 장 읽자, 문득 미친 기운이 사라지고 이 정도의 시련쯤은 견뎌낼 수 있겠다는 강개(慷慨)한 기운이 솟구쳤다. 그에게 《논어》는 그런 책이었다. 성현의 말씀에는 바른 기운이 깃들어서, 흩어진 마음을 되돌려 세우고, 가눌 길 없는 기분을 다잡아 가라앉혀 준다. 경전의 힘이 여기에 있다. 언어에도 힘이 있다. 기운이 있다. 그런 책을 읽어야 사람이 변한다 – [책 내용 중에서]
[북스저널=정이신 목사] 오직 독서뿐 » 정민 지음, 출판사: 김영사 »허균(許筠)ㆍ이익(李瀷)ㆍ양응수(楊應秀)ㆍ안정복(安鼎福)ㆍ홍대용(洪大容)ㆍ박지원(朴趾源)ㆍ이덕무(李德懋)ㆍ홍석주(洪奭周)ㆍ홍길주(洪吉周) 9명이 쓴 책 읽는 방법과 이유를 다뤘습니다. 뒷부분에 나온 홍석주ㆍ길주는 형제지간입니다. 저자가 친절한 번역과 해석을 곁들여 놨기에 한자를 몰라도 무리 없이 읽을 수 있습니다. 저자는 9명이 남긴 글에서 찾아낸 문장으로 책을 엮었지만, 옛사람들이 왜 늙어 죽을 때까지 책을 읽으라고 했는지, 왜 옛사람들도 책을 읽었는지 짚어볼 수 있는 좋은 자료입니다.
옛사람들이 제시한 방법처럼 책을 읽는 것에도 일정한 목적이 있어야 하고, 또 읽고 습득한 걸 자신이 누리고 있는 삶에서 활용할 줄 알아야 합니다. 이덕무는 자신이 책을 읽는 이유로 이신(怡神)을 들었습니다.
풀이하자면 책에 정신을 기쁘게 만드는 성분과 작용이 있는데, 그는 이걸 최우선으로 삼고 책을 읽는다고 했습니다. 순자(荀子)가 말한 수기지학(修己之學)이 생각나는 말인데, 그처럼 한겨울 냉방에서 《논어》를 읽고 강개한 기운이 솟구치는 경험을 한 사람은 정말로 행복한 사람입니다. 의외로 이런 책을 한 권도 읽지 못하거나, 마음에 갖지 못하고 해 아래 세상에서 사라지는 사람이 꽤 많습니다.
옛사람들의 다독(多讀)은 여러 책을 많이 읽는 게 아니라 한두 권의 책을 되풀이해서 읽는 것입니다. 이들은 박학(博學)보다 습득(習得)의 태도로 책을 대했습니다. 그래서 이들은 책의 내용이 입에 붙어서 줄줄 외울 수 있을 때까지 읽고 또 읽었고, 책 전체 내용을 아예 통째로 외워 그 글의 진수를 자기 것으로 만들었습니다.
저도 책을 읽고 마음에 들어 외워둔 문장이 있습니다. 책에서 좋은 문장을 만나 외워두면 그 문장의 기세가 제게 스며들어, 글을 쓸 때 저도 모르는 사이에 그 글의 기세가 제가 쓰는 글 속에 배어듭니다. 우리가 삶의 지침이 될만한 경전의 말씀을 외워둬야 하는 게 이 때문인데, 이렇게 외워둔 말씀은 삶의 든든한 동반자가 됩니다.
책 읽는 행위는 그 자체가 합리적인 목적을 가집니다. 행위 자체가 목적이 되는 일이기에 굳이 여기에 다른 욕심을 집어넣지 말아야 합니다. 좋은 책을 끊임없이 계속 읽다 보면, 어느 날 갑자기 책이 전해 준 깨달음이 친구가 되자고, 책을 읽고 있는 사람에게 싱긋 웃으며 다가옵니다. 그를 벗으로 삼아 길을 걸으면 가슴이 탁 트이고 머리가 개운해집니다. 책을 읽으면서 이런 걸 경험하고 나면, 그 후부터는 책 읽기가 한결 가뿐해지고 더 즐거워집니다.
아무리 머리맡이나 책상 위에 책을 두고 읽어도, 다른 꿍꿍이가 먼저 마음에 들어가 있으면, 처음에 즐겁게 시작한 책 읽기일지라도 끝은 고역이 됩니다. 음식을 먹고 체한 것처럼 속이 더부룩해지고, 골치가 지끈지끈 아프기 시작합니다. 그런 책 읽기를 계속하다 보면, 책의 앞부분은 손때가 묻고 닿아 반질반질하지만, 뒷부분은 신간으로 나온 책처럼 깨끗한 모양새를 가진 책이 주변에 쌓입니다. 그때부터 책은 장식용 물건일 뿐 삶의 양식이 되지 않습니다.
급하게 몇 권의 책을 읽는다고 해서 근거 없이 들뜬 생각이 하루아침에 정리되지 않습니다. 또 가짜 뉴스가 난무하는 현대사회에서 무슨 책을 읽어야 할지 고민이 되기도 합니다. 이런 때 지침이 되는 게 ‘고전(古典)’입니다. 책이 나온 지 100년이 지났어도 여전히 사람들에게 읽히고, 나아가 사랑받는 책이 있으면 읽어둘 만합니다.
책이 나온 지 500년이 넘었는데 여전히 사람들이 칭송하는 책이라면 반드시 읽어야 합니다. 그리고 책이 나온 지 1,000년이 넘었는데도 사람들에게 회자(膾炙) 되는 책이라면, 그 책에서 좋은 문장을 몇 개쯤은 골라내 외워둬야 합니다. 덧붙이자면 저자가 책에 소개한 옛사람들이 즐겨 읽었고, 책이 지닌 강개한 기운에 찬사를 보낸 게 모두 고전입니다. ◙
글 정이신 목사/ 본지 칼럼니스트/ 아나돗공동체 위임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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