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체신학 이슈와 초림 예수 즉위 연구-마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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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Study of the Issue of Replacement Theology & the Enthronement of the First Coming Jesus
목 차
- 들어가는 말: 대체신학 이슈
- 유다왕국에 대한 예언과 그 성취
- 초림 예수의 세 번에 걸친 즉위식
- 나가는 말: 회복되는 이스라엘의 대표들
IV. 회복되는 이스라엘의 대표들
우리는 앞에서 예수께서 시몬에게 주셨던 두 개의 약속에 대해 논의하였다. 첫째는 “네가 요한의 아들 시몬이니 장차 게바라 하리라”(요 1:42)이다. 게바는 헬라어로 베드로이며(요 1:43), 우리 말로 반석이라는 뜻이다. 둘째는 “너는 베드로라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우리니….”(마 16:18-19)이다. 첫째 약속을 “열두 사도의 회복과 이스라엘의 회복”이라는 제목과 더불어, 둘째 약속을 “사도 베드로와 세 개의 교회 공동체들”이라는 제목과 더불어 각각 논의한 후, 예루살렘 교회의 스데반과 사울, 다메섹 도상의 사울과 하나님의 형상 회복, 그리고 예루살렘 교회의 공회에 대해 각각 논의하고자 한다.
1. 열 두 사도의 회복과 이스라엘의 회복
감람산에서 예수께서 하늘에 오르시고, 그의 제자들은 가까운 예루살렘의 다락방으로 갔다(행 1:12). 그들은 곧 사도들과 여자들68과 예수의 어머니 마리아와 예수의 아우들로 대표되며, 그 총수는 120명쯤 되었다(행 1:14-15a). 열한 사도의 명단은 다음과 같다. ① 베드로, ② 요한, ③ 야고보, ④ 안드레, ⑤ 빌립, ⑥ 도마, ⑦ 바돌로매(나다나엘), ⑧ 마태, ⑨ 알패오의 아들 야고보, ⑩ 셀롯인 시몬, ⑪ 야고보의 아들 유다(행 1:13). 그들은 마음을 같이하여 오로지 기도에 전념하였다(행:14). 사도 베드로가 유다와 관련된 주제로 설교하기 시작하였다. 그는 “형제들아, 성령이 다윗의 입을 통하여 예수 잡는 자들의 길잡이가 된 유다를 가리켜 미리 말씀하신 성경이 응하였으니 마땅하도다”라고 했다(행 1:16). 그는 “이 사람은 본래 우리 수 가운데 참여하여 이 직무의 한 부분을 맡았던 자라”(행 1:17)라고 했다. 그리고 그는 “시편에 기록하였으되 ‘그의 거처를 황폐하게 하시며 거기 거하는 자가 없게 하소서” 하였고 또 일렀으되, ‘그의 직분을 타인이 취하게 하소서’(행 1:20)”라고 선포하였다. 이는 그가 예수께서 그의 교회 공동체를 열두 사도로 이루어진 새로운 반석 위에 세우실 것에 대해 깨닫기 시작하였다는 뜻이다. 예수께서는 요단강 건너편 베다니 마을로 요나(또는 요한)의 아들 시몬이 그의 아우 안드레와 친구 요한과 더불어 그를 처음 찾아왔을 때, 그에게 장차 반석의 뜻을 지닌 게바 또는 베드로가 되도록 하시겠다는 첫 약속을 하셨다. 이제 그는 예수께서 그를 처음 만나 “장차 반석이라는 뜻의 게바가 되도록 하겠다고 한 약속을 회상하며, 그 약속이 그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 그로 대표되는 열두 사도를 위함이었다는 사실을 깨달았을 것으로 추정된다. 그의 설교는 이렇게 마무리가 되었다.
이러하므로 요한의 세례로부터 우리 가운데서 올려져 가신 날까지 주 예수께서 우리 가운데 출입하실 때에 항상 우리와 함께 다니던 사람 중에 하나를 세워 우리와 더불어 예수께서 부활하심을 증언할 사람이 되게 하여야 하리라(행 1:21-22).
그렇다면, 사도 베드로와 그를 비롯한 그의 동료 사도들이 요단강 건너편 베다니 마을에서 진행된 예수의 세례 현장의 목격자들이었다는 뜻인가? 그 점에 대해서 에크하드 쉬나벨(Eckhard J. Schnabel)은 “이는 예수님이 요단강에서 세례를 받으시는 구체적인 사건(참고, 눅 3:21)이 아니라 세례 요한의 사역 전체를 가리키는 것으로 보인다.”라고 해석한다.69 약 백이십 명 중에 약 절반이 남자라고 한다면 기존의 열한 명의 사도를 제외한 약 오십 명 정도의 남자들이 있었다고 추정된다. 그런데, 그들 중에서 단 두 명만이 세례 요한의 사역에 동참하였던 자들이었다고 볼 수가 있겠다. 그 둘 중에서 맛디아가 제비뽑기로 세워졌으며, 그 결과가 하나님의 뜻을 표현한 것이라고 받아들여졌다. 이 점에 대해서 쉬나벨은 이렇게 말한다.
맛디아가 열한 사도의 수에 더해졌으므로 이제 열두 사도가 회복되었다. 이제 사도들은 이스라엘을 회복시키겠다고 하신 예수의 주장과 약속을 다시 한번 상징적으로 보여주게 되었다. 이는 예수님의 삶, 죽음, 부활 그리고 영광의 승천을 증언하는 예수님의 증인으로서의 사명이 사도들에게 주어진 사건이며 과정이었다는 것이다.70
사도 베드로의 지도력으로 열두 사도가 회복됨에 따라, 오순절 날에 예수께서 말씀하셨던 대로 그의 제자들이 모두 다 성령으로 세례를 받게 됨으로 이스라엘이 회복되기 시작했다(행 2:1-4). 성령의 충만을 받은 사도 베드로의 탁월한 설교로 삼천 명이 회개하고 세례를 받는 가운데 예루살렘에 유대인 교회 공동체가 세워졌다. 그 공동체가 바로 회복되는 이스라엘이다. 따라서, 그의 열두 제자는 회복되는 이스라엘의 대표들이다. 여기서 누가복음과 사도행전의 저자인 누가의 이스라엘 회복론에 대해 데이빗 세컴(David Seccombe)이 다음과 같이 주장하는 바에 대해 귀를 기울여 보자.
사도들에 대해 열두 보좌에 앉아 이스라엘의 열두 지파를 다스릴 것이라는 (눅 22:30) 예수의 약속과 예수께서 승천하시기 직전 이스라엘의 회복에 관한 질문 내용(행 1:6-8)을 통해 볼 때, 누가가 독자들에게 이것을 이스라엘의 회복이나 공동체의 12 기초석(계 21:14)과 연계시키려는 의도가 없었다고 상상하기는 어렵다.71
2. 사도 베드로와 세 개의 교회 공동체
예수께서 시몬에게 주셨던 첫째 약속은 그를 반석이라는 뜻을 지닌 게바 또는 베드로라고 하시겠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둘째 약속은 “너는 베드로라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우리니,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리라…”(마 16:18-19)였다. 사도행전의 저자는 둘째 약속이 성취된 결과로 세워진 세 개의 교회를 구별하여 소개한다.
(1) 예루살렘의 유대인 교회 공동체
오순절 날 성령께서 강림하시자, 사도 베드로는 예루살렘에 유대인 교회가 세워지는데 설교자로서 역할을 하였다(행 2:14-36). 그의 설교를 듣고 마음에 찔린 자들이 아주 많았다. 그들이 베드로와 다른 사도들의 지도를 받아 세례를 받은 자들의 수가 삼천 명이었다(행 2:37-41). 그들이 사도의 가르침을 받아 서로 교제하고 떡을 떼며 오로지 기도하기를 힘쓰며 복된 교회 생활을 하였다(행 2:42-47). 예루살렘에 유대인 교회 공동체가 세워졌던 사건은 예수께서 시몬에게 주셨던 둘째 약속(요 1:41-42, 마 16:18-19)의 성취적 사건이었다. 그리고 그와 같은 성취는 예수께서 하늘 보좌에 앉아 그의 제자들에게 성령을 보내주심으로 이루어졌다. 또한 그 성취의 결과인 예루살렘에 세워진 유대인 교회 공동체가 곧 메시아 왕국이다.
사도 베드로는 오순절에 행한 그의 설교에서 하나님께서 예수를 죽은 자 가운데 부활시켜 하늘 보좌에 앉게 하여 “주”와 “그리스도”가 되게 하신 것은 다윗에 의하여 기록된 시편의 말씀들의 성취적 사건임을 밝혔다(2:23-35)72. 그리고 베드로는 그 왕국의 백성들을 이스라엘의 혈통적 후손들로 제한시키지 않고, “모든 먼 데 사람들 곧 주 우리 하나님이 얼마든지 부르시는 자들”(3:39)이라고 보편화시켰다(3:39)73.
그리고 베드로는 메시아의 복이 먼저 유대인들에게 선포된 것은 세상의 모든 족속에게도 선포되기를 바라시는 하나님의 의도였음을 선언한다(행 3:25).
(2) 사마리아의 사마리아인 교회 공동체
한편, 사마리아에 사마리아인 교회가 세워지는 과정에서 첫 설교자로서 역할을 하였던 자는 빌립이었다. 사마리아 사람들이 그의 탁월한 복음 선포를 통해 나타나는 표적을 보고 한 마음으로 그가 하는 말을 따르고, 많은 사람에게 붙었던 더러운 귀신들이 크게 소리를 지르며 나가고 또 많은 중풍 병자와 못 걷는 사람이 나으니 그 성에 기쁨이 생겼다(행 8:5-8). 예루살렘에 있는 사도들이 사마리아도 빌립의 사역을 통해 “하나님의 말씀을 받았다”라는 소식을 듣고 베드로와 요한을 보냈다(행 8:14). 이는 곧 그들의 회심이 참되다는 사실을 입증한다(참고. 2:41; 11:1)74. 사도 베드로와 사도 요한은 빌립의 사역을 통해 맺혀진 열매로 모인 사마리아인들을 위하여 성령 받기를 기도하였다. 이는 그들 가운데 아직 한 사람에게도 성령 내리신 일이 없고 오직 주 예수의 이름으로 세례만 받았을 뿐이었다(행 8:16). 그리하여, 두 사도가 그들을 위해 기도하고 안수하자 그들이 성령을 받았다(행 8:15-16). 그리하여, 주님께서 베드로와 맺으신 두 번째 약속의 말씀-“너는 베드로라.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우리니….”(마 16:18-19)-의 성취가 예루살렘의 유대인들 가운데서와 마찬가지로 사마리아의 사마리아인들 가운데서 공식적으로 세워졌다는 사실이 입증되었다.75 그렇게 각각 세워진 사마리아의 사마리아인 교회 공동체와 예루살렘의 유대인 교회 공동체가 하나이다.
(3) 가이사랴의 이방인 교회 공동체
하나님께서 가이사랴에 소재한 이달리야 부대 백부장 고넬료의 집에서 이방인 교회 공동체가 세워지도록 사도 베드로를 기적적으로 인도하셨다. 고넬료가 그의 친척과 가까운 친구와 함께 베드로를 맞이하여, “이제 우리는 주께서 당신에게 명하신 모든 것을 듣고자 하여 다 하나님 앞에 있나이다”(행 10:33)라고 하였다. 베드로가 “하나님은 사람의 외모를 보지 아니하시고 각 나라 중…”라고 설교하였다(행 10:34-43). 그때 성령이 말씀을 듣는 모든 사람에게 내려오신 것을 베드로와 그의 동행자들이 확인하였다(행 10:44-46). 그리하여, 베드로는 “이 사람들이 우리와 같이 성령을 받았으니 누가 능히 물로 세례 베풂을 금하리요”라고 고백하고, 그들에게 세례를 베풀었다(행 10:47-48). 그리하여, 가이사랴에 이방인 교회 공동체도 예루살렘의 유대인 교회 공동체와 사마리아의 사마리아인 교회 공동체처럼 사도 베드로의 독특한 사역을 통해 세워졌다. 마침내, 예수께서 시몬에게, “너는 베드로라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우리니….”(마 16:18-19)라고 약속하신 말씀이 세 개의 교회가 세워짐에 따라 온전히 성취되었다. 그리하여, 그는 예루살렘에 돌아와 그의 동료 사도들과 형제들에게 그때의 사건의 경위와 감동을 나누었다(행 11:1-18). S. J. 키스트마커(Kistmarker)는 “하나님께서 사도 베드로가 사마리아에서와 가이사랴의 고넬료의 집에서 설교할 때 그의 성령을 보내셔서 교회 성장에 새로운 시대가 전개되도록 하였다”라고 한다.76 따라서 로마천주교회가 주장하는 교황권은 성경적으로 근거가 전혀 없다.
3. 예루살렘 교회의 스데반과 사울
예루살렘 교회 공동체에 귀히 활약하던 헬라파 유대인 스데반이 있었다(행 6:1-7). 그는 은혜와 권능이 충만하여 큰 기사와 표적을 사람들 가운데 행하였다(행 6:8). 그때, 구레네, 알렉산드리아, 길리기아와 아시아 등에서 온 유대 사람들로 구성된 이른바 “자유인의 회당”에 속하는 사람들 가운데 그와 더불어 논쟁을 벌이기 시작했다(행 6:9). 그렇지만, 그들은 그의 지혜와 능력으로 말하는 것을 모두 당해 낼 수가 없었다(행 6:10). 그리하여, 그들은 백성들과 장로들과 율법 학자들을 선동해 그를 공회 앞에 끌고 갔다(행 6:11). 거짓 증인들이 그에 대해 고소했다(행 6:13-14). 공회의 대제사장이 고소 내용이 사실인지를 물었고(행 7:1), 그는 그에 대하여 차분히 답하였지만(행 7:2-53), 그들은 그에 대해 분노했다(행 7:54). 한편, 스데반은 성령으로 충만해진 가운데, “보라 하늘이 열리고 인자가 하나님 우편에 서신 것을 보노라”(행 7:56)라고 외쳤다. 그러나 사람들이 그를 성 밖으로 끌어내고 돌로 쳐 죽였다. 그들이 벗어 놓은 옷을 지키고 있던 자가 바로 훗날 사도 바울로 널리 알려진 사울이었다. 여기서 우리는 그가 바로 스데반과 변론하였던 “길리기아”에서 온 유대인 중의 한 명이었다는 사실(행 7:9)을 추정할 수가 있겠다. 예루살렘 교회에 큰 핍박이 일어났다(행 8:1-2).
4. 다메섹 도상의 사울과 하나님의 형상 회복
사울은 다메섹에 사는 예수의 제자들을 결박하여 예루살렘으로 데려오기 위하여 대제사장이 발행한 공문을 받아 다메섹을 향하고 있었다(행 9:1-2). 그런데, 하나님 우편에 서서 스데반을 맞이하여 주셨던 예수께서 다메섹 도상의 사울에게 직접 찾아오셨다. 그를 특별히 이방인의 사도가 되도록 소명을 주셨다(행 9:1-19; 22:6-16; 26:12-18). 그리하여, 그는 스데반을 통해 간접적으로 들었던 예수께서 하늘 보좌의 주인공이라는 사실, 즉 메시아 왕국의 왕으로 이미 등극하셨던 분임을 확인하였다. 우리는 그가 “초림 예수의 등극과 이스라엘 회복론”을 다메섹 도상에서 곧바로 정립하기 시작했다고 추정할 수가 있겠다. 이는 그가 다메섹 도상에서 만났던 예수를 “하나님의 형상”이라 소개한다는 사실을(고후 4:4; 골 1:15등) 통해 확증된다. 인류의 조상 아담이 죄를 범함으로 에덴 땅을 상실한 것도 문제가 되지만, “하나님의 형상”을 상실하였다는 것이 근본적인 문제가 되었다. 마침내, 사울/바울은 예수를 첫째 아담이 상실한 하나님의 형상을 회복하는 둘째/마지막 아담으로 이해하였다. 김세윤은 그의 책 『바울 복음의 기원』에서 다메섹 도상의 바울에게 “하나님의 형상 기독론”과 “아담 기독론”, 그리고 그의 “변화 구원론”의 씨앗이 각각 발아되기 시작했다고 주장한다. 변화 구원론이라는 곧 첫째 아담의 후손들이 둘째/마지막 아담으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그의 형상을 본받는 것(롬 8:29), 즉 “하나님의 형상을 회복”하는 것이다.77
5. 예루살렘 교회의 공회
훗날, 예루살렘 교회의 지도자 야고보는 사도 바울과 바나바에 의하여 이방인들이 주님께로 돌아오는 사건에 대하여 “다윗의 무너진 장막의 회복”, 즉 메시아 왕국이 유대인들뿐만 아니라 이방인들 가운데서 세워지게 된 사건으로 이해하고 아모스 9:11,12의 말씀을 인용한다(행 15:16,17). 그런데, “에돔의 남은 자”(암 9:12)가 “그 남은 사람들”(행 15:16)로 바뀌었다. 그 이유는 야고보가 히브리어 마소라 사본이 아니라 헬라어로 번역된 칠십인경을 사용하였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것은 야고보 또는 사도행전의 저자 누가의 무지 때문이 아니라, 칠십인 경의 본문이 원문의 뜻을 명확하게 잘 드러내고 있음을 깊이 인식하고 이를 의도적으로 인용한 결과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78 사실, 야곱은 하나님의 선택받은 자의 대표이고, 그의 쌍둥이 형인 에돔은 이방인의 대표이다. 데이빗 홀베르다(David E. Holwerda)는 야고보의 선언에 대한 의의를 이렇게 진술한다.
야고보는 이방인들의 돌아옴은 곧 다윗 집과 그 나라의 회복이라고 선언한다. 그 회복에 있어서, 다윗의 왕국은 마치 아모스가 예언했던 것처럼 온 나라들을 포괄할 것이다. 놀랍게도 다윗의 자손을 위하여 하나님이 약속하셨던 것처럼 그 집과 그 나라는 다윗의 아들이 하나님을 위하여 지은 그 집과 동일한 것으로 드러났다(삼상 7:11-14). 다윗의 회복된 나라는 예수 그리스도의 사역을 통하여 땅 위에 세워진 하나님의 나라이다. 이것이야말로 특수주의로부터 보편주의로 펼쳐 나아가는 하나님의 약속들의 전개이며, 이렇게 펼쳐지는 움직임은 이스라엘 나라의 회복에 대해 제자들이 물었을 때, 그들 마음속에 본래적으로 자리 잡고 있었던 특수주의적인 경계선들을 부수고 깨트리는 것이다.79
아모스 9:11, 12과 같은 문맥 안의 구절인 15절에는 흩어졌던 이스라엘 백성들이 “본토”로 돌아오게 되고, 이사야 11장에서는 “고토”로 돌아오게 된다는 내용이 각각 나온다. 야고보는 사도 바울과 바나바의 이방인 가운데 교회 공동체를 세운 사건을 이스라엘 백성들이 “본토”나 “고토”로 돌아오리라는 예언의 성취적 사건으로 이해하고 선언한 셈이다.80 그 예언의 성취는 이스라엘 민족이 팔레스타인 땅에 돌아옴으로 이루어지는 문자적이고 특수적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메시아 예수의 초림으로 시작된 그의 왕국, 즉 그의 교회 공동체에 그의 보혈로 구속받은 자들이 들어오게 됨으로 이루어진다.81
V. 결론
예언의 성취는 이스라엘 민족이 팔레스타인 땅에 돌아옴으로 이루어지는 문자적우리는 “재림 예수의 등극과 이스라엘 회복론”이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과 그의 교회 공동체를 혈과 육의 차원으로 하락시키는 이론이 될 수밖에 없고, 중동과 세계 평화를 진작시키기보다, 오히려 분쟁을 심화시킨다는 것을 확인하였다. 한편, “초림 예수의 등극과 이스라엘의 회복론”은 초림 예수의 등극으로 그 왕국이 출범됨에 따라 이스라엘의 회복이 이미 시작되었으며, 그 국경은 땅끝이 되고, 그 백성은 그의 보혈로 구속받은 교회 공동체가 되어 모든 인류를 함께 차별 없이 품는다는 것을 확인하였다.
“초림 예수의 등극과 이스라엘 회복론”이 옳다는 우리의 논증은 “아브라함의 손자인 야곱의 유다왕국에 대한 예언이 어떻게 성취되어 에덴을 회복할 수 있겠는가?”라는 질문 제기로 시작되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 아담의 후손가운데 아브라함을 택하여 그에게 큰 나라(민족)를 이루도록 하시겠다고 약속하셨기 때문이다. 유다 지파의 후손인 다윗이 세 번에 걸쳐 등극(즉위/대관)식을 거행하는 가운데 유다왕국 설립에 대한 예언의 성취가 이루어지기 시작되었음을 논의하였다. 또한, 우리는 다윗이 여호와 하나님의 성전을 짓고자 하던 가운데 선지자 나단을 통해 다윗 왕조에 대한 약속의 말씀을 받아 그의 후손들이 유다왕국의 왕으로 등극할 때 선포될 여러 등극 시(예, 시편 2, 89, 132)를 지었다는 점을 각각 논의하였다. 예컨대, “너는 내 아들이라 오늘 내가 너를 낳았도다”(시 2:7)라는 구절은 등극 시의 하이라이트이다. 다윗의 후손이 유다왕국의 왕으로 등극하는 순간 하나님의 아들이 되어, 하나님을 대리하는 통치자가 된다. 또한, 그 국경선은 땅끝으로 선포되었다(시 2:8). 또한, 우리는 유다왕국의 멸망과 더불어 종말의 메시아에대한 대망, 그리고 바벨론 제국의 포로가 된 다니엘이 환상 가운데 본 “인자 같은 이의 등극식”을 논의하였다.
우리는 다윗과 그의 등극식들은 초림 예수께서 하늘로부터 세 번에 걸쳐 소리가 각각 울리는 가운데 거행된 그의 등극식들을 위한 그림자가 되고 예표가 되었음과 다니엘이 환상 가운데 본 “인자 같은 이”의 등극식은 예언적 말씀으로서 예수께서 세 번에 걸쳐 등극하심으로 모두 다 성취되었음을 논증했다. 우리는 나다나엘을 비롯한 그의 동료 제자들이 참 이스라엘의 대표들이라는 점을 먼저 확인하였다. 또한, 우리는 사도 베드로를 비롯한 열두 사도로 대표 되는 예수 그리스도의 교회 공동체가 곧 회복되는 이스라엘이며 새 이스라엘이며, 예루살렘에 세워진 유대인 교회 공동체, 사마리아에 세워진 사마리아인 교회 공동체, 그리고 가이사랴에 세워진 이방인 교회 공동체가 각각 회복되는 이스라엘의 대표라는 사실도 확인하였다. 또한, 우리는 예수의 재림 목적은 등극식을 거행하기 위함이 아니라 죽은 자와 산 자를 심판하므로 완성되는 그의 왕국을 하나님께 바치기 위함이라는 점도 밝혔다.
이 시대 널리 알려지는 가운데 논란의 소지가 되기도 하는 “이스라엘 회복” 또는 “예루살렘 회복”이라는 구호는 “재림 예수의 왕위 등극과 이스라엘 회복론”에 기초한다.82 그런데, 그 회복론은 옳지 않으며, “초림 예수의 왕위 등극과 이스라엘 회복론”이 옳다고 입증되었다. 이 회복론에 기초하여, “에덴의 회복”, 예수의 형상 본받기로서 “예수 닮기”, 또는 “하나님의 형상 회복”이라는 구호 등이 활용되기를 제안함으로 이 글을 마무리한다. ◙ Now&Here©유크digitalNEWS
각주
68. 이 여자들은 갈릴리로부터 예수를 따라온 자들이었을 것이다(녹 23:49). 누가복음에는 예수를 따라다닌 여인에 대한 기록이 있다(녹 8:1-3). Richard Bauckham은 이 여인들이 안디옥에서 누가를 만나 예수와 초대 교회에 관한 여러 자료를 전해주었을 것으로 추정한다(Gospel Women: Studies of the Named Women in the Gospels (Grand Rapidis: Eerdmans, 186-94, 2002). 한규삼, 『사도행전』, 35. 재인용.
69. 에크하르트 J. 슈나벨, 『강해로 푸는 사도행전』, (서울: 디모데, 2018), 107.
70. 위의 책, 110.
71. I. Howard Marshall, 『사도행전 신학』, 류근상 역 (서울: 크리스챤출판사, 2004), 433.
72. 위의 책. 167.
73. David E. Holwerda, 『예수와 이스라엘』, 류호영 역 (서울: CLC, 1993), 249
74. 에크하르트 J. 슈나벨, 『강해로 푸는 사도행전』, 432.
75. 사마리아에서 빌립의 사역을 통해 사마리아인들에게 성령의 역사가 분명히 일어났다. 그런데, 왜 사도 베드로와 요한의 방문 사역이 펼쳐지기 전까지 그들에게 성령이 임하지 않았다고 하는가? 이는 구별된 두 종류의 세례가 있음을 역사적으로 제시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사마리아에 최초의 교회가 설립되는데 사도 베드로의 독특한 역할이 필요한 상황이었기 때문이었다.
76. Simon J. Kistmarker, ACTS, (Grand Rapids, Michigan, Baker Book House, 1995), 300.
77. 자세한 내용은 정형남의 “아담에 대한 성경과 코란의 비교 연구”(아세아연합신학대학교 『중동연구』 제3권 2019)에서 188-192를 참조하라.
78. Jeffery Niehaus, “Amos”, in The Minor Prophets: Vol. 1: Hosea, Joel, Amos, ed. T. E. McComiskey, An Exegetical & Expository Commentary (Grand Rapids: Baker, 1992), 491. 유상섭, 『분석 사도행전 II』, (서울: 생명의 말씀사, 2010). 43. 재인용.
79. 위의 책, 249.
80. 최종태, 『예언자에게 물어라』 (서울: CLC, 1999), 399.
81. 위의 책, 400.
82. “Back to the Jerusalem”, “복음의 서진”, “땅끝 예루살렘”, “무너져라 예루살렘 성전 터의 두 이슬람 건물”, “제3의 성전 재건 임박”, “마귀의 계략-예루살렘 분할” 등의 구호들도 마찬가지로 “재림 예수의 등극과 이스라엘 회복론”에 기초한다. 스데반 사이저는 이 회복론에 기초한 분들을 『시온의 크리스천 군사들?』이라고 명명하고 그의 책 제목으로 활용하였다. 필자는 위의 구호들과 관련하여, 그 책의 서문에서 자세히 언급하였다. Stephen Sizer, 김정한 역, (서울: CLC, 2013), 6.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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______. 『요한복음 강해』. 서울: 두란노, 2001.
신현우, “예수의 열두 제자 임명과 새 이스라엘마가복음 3:13-19 주해” 『신약논단』. 제28권 제1호, 2021년 봄.
유상섭, 『분석 사도행전 II』, 서울: 생명의 말씀사, 2010.
정형남, 이슬람과 메시아 왕국 이슈. 서울: CLC, 2009.
_____. “예루살렘 중심적 종교들과 새 예루살렘 중심적 기독교”
ACTS 중동연구 제2권. 2018.
_____. “예루살렘성전에 대한 트럼프 지지자들의 주장과 아라비아 최초 선교사 바울의 메시지” ACTS 중동연구 제2권. 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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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정형남 교수/ 아시아연합신학대학교(ACTS) 선교대학원 교수 및 GMS 아랍권 선교사(천안장로교회 파송. since 1989). 그의 책으로 『이슬람과 메시아 왕국』CLC, 2009)과 아랍권 및 이슬람권 선교와 관련된 여러 <논문>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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