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국의 품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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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섬나라 영국은 어떻게 세계를 지배했는가
영국의 역사를 공부하면서 참으로 배울 점이 많은 나라임을 실감했다. 물론 단점도 적잖이 발견된다. 그러나 그것은 인간의 삶에 주어진 운명이다. 어떤 역사적 인물도, 어떤 역사적 사건도 공과 과가 복잡하게 얽혀 있고 섞여 있기 마련이다. 이 책은 굳이 영국의 단점을 들추려 하지 않는다. 될 수 있으면 그들의 장점에 주목하려 한다. 그리하여 영국이 어떻게 남들보다 ‘성공한’ 나라가 되었는지에서 교훈을 얻고자 한다. 이 태도는 요즘 내게 생긴 새로운 습관이다. 사람이든, 사건이든, 부정적인 면보다는 우선 긍정적인 면을 보고 싶다. 정년 후 한동안은 쉬고 싶다. 그러고 나서 다시 책을 쓰고 싶어지면, 그땐 영국에 대한 부정적인 책을 한번 써볼까? – [‘저자 서문’에서]
[북스저널=정이신 목사] 제국의 품격 » 박지향 지음, 출판사: 21세기북스 » 서문에 책의 성격이 그대로 나오는데, 그래서 마음이 더 쏠립니다. 아프리카에 식민지를 만들면서 영국과 프랑스가 벌인 폭력을 모르는 게 아닙니다. 그러나 제국을 알지 못하면서 제국을 비판하는 건 이상이지 현실이 아닙니다. 이상은 높고 큰 게 좋습니다. 그러나 그 이상이 현실이라는 뿌리를 잊어버리고, 무지개만 찾아다니면서 뿌리를 돌보지 않으면, 뿌리가 썩고 마침내는 햇볕에 말라 죽습니다. 이상은 항상 현실이란 뿌리를 돌보며 살아야 합니다. 이런 면에서 이 책이 주는 울림이 꽤 큽니다.
영국이 스페인의 무적함대 물리치고, 나폴레옹이 주도하던 프랑스와의 경쟁에서도 이겼을 때를 복기해 보면, 이 두 사건은 ‘누가 더 막강한 무력을 가졌느냐?’의 문제가 아니었습니다. 이 두 사건을 통해 영국은 가장 큰 함대, 더 많은 해군 기지와 지휘관보다 비전ㆍ총명함ㆍ이기려는 의지가 더 중요한 걸 알게 됐습니다. 그래서 영국은 이 부문에 과감하게 투자했습니다. 그리고 개인의 자조(自助)ㆍ자립(自立)을 시민 사회의 중요 덕목으로 가르쳤습니다. 만약 영국이 무력에만 의지했다면, 제국으로 성장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그리고 제국의 쇠퇴 이후 거기서 얻은 교훈으로 담금질한 지금의 영국도 없었을 것입니다.
제국을 이뤘던 영국을 이야기하면서 인도를 말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리고 자연스레 인도 이야기에는 간디와 네루가 들어갑니다. 책에 나온 간디와 네루 이야기는 인도인의 시각이 아니라 영국에 푹 빠진 사람의 시각이란 걸 고려하더라도, 역사적 사실에 토대를 둔 것입니다. 스페인과 포르투갈의 식민지였다가 독립했던 남미와 영국의 식민지였다가 독립했던 인도의 차이를 비교하면서 책을 읽는 것도 쏠쏠한 재미입니다.
식민지로 만들었던 국가의 일부 사람에게 줬던 영국 시민권을 새로운 법을 제정해 회수할 만큼, 난민 문제는 영국을 넘어서서 전 유럽이 겪고 있는 심각한 사회문제입니다. 저자의 말처럼 영국이 제국을 해체하면서 다른 나라와 달리 가장 덜 폭력적이었던 게 사실이지만, 제국의 잔재가 여전히 영국에게 빛과 그림자를 던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빛과 그림자는 2020년 EU 탈퇴 후 현대의 영국에서 계속 진행 중입니다.
영국이 제국을 만들어 간 시기에 한반도에는 조선(朝鮮)이 있었습니다. 제가 한반도인이기에 관심은 당연히 조선으로 이어집니다. 서문에서 저자가 밝힌 책의 특성상 ‘영국과 인도’, ‘일본과 조선’이라는 데칼코마니가 주는 교훈을 이 책으로는 다 알기 힘듭니다. 또 오늘날 인도에서 말하는 영국인과 대한민국에서 말하는 일본인이 다릅니다. 그런데 바로 이 지점에서 우리는 제국을 해체하고 노예제도를 폐지하는 과정에서 영국이 보여준 힘을 기억해야 합니다.
해질 날이 없다던 대영제국의 해체 이후, ‘제국이 남겨준 잔해를 제국의 후손들이 어떻게 처리하느냐?’에 따라 영국의 앞날이 결정됐습니다. 거기에서 우리는 평화를 사랑하기에 제국을 만들지 않았다는 자부심보다, 조선이 제국을 만들지 못했던 이유가 뭔지를 마음 깊이 새겨야 할 것 같습니다. 분명한 건 제국이 좋은 게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인류 역사에서 제국이 지닌 순기능도 있습니다. 따라서 제국을 만들어 보지 못한 나라는 제국의 순기능과 교훈을 익혀야 합니다. 그렇게 해야 무형의 제국이 만든 종속이라는 늪에 빠지지 않고, 제국을 넘어선 평화를 맛볼 수 있습니다. ◙
글 정이신 목사/ 본지 칼럼니스트/ 아나돗공동체 위임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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