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 성경이 제안한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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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의 앞에 놓인 지혜의 길과 악하고 미련한 길 두 개…
<잠언>은 하나님의 백성 앞에 지혜의 길과 악하고 미련한 길 두 개가 있다고 합니다. 우리가 예수님 안에 들어가 있으면 다 끝난 것 같지만, 그분 안에서도 지혜의 길을 따르는 사람이 있고 악하고 미련한 길을 따르는 사람이 있습니다.
[정이신 칼럼] 15. 성경이 제안한 길 » 텔레비전에서 초원이나 정글의 모습을 다룬 <<동물의 왕국>> 같은 프로그램을 보면 초식동물과 육식동물이 어우러져 살아가는 장면이 나옵니다. 제가 어우러져 살아가는 모습이라고 표현했지만, 사실은 이렇게 살아가는 게 아니고 동물들은 치열하게 생존경쟁을 하며 살아갑니다.
텔레비전에 나온 장면에는 육식동물이 한 번에 사냥에 성공해서 초식동물을 잡아먹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 사냥 성공률은 약 20%를 넘지 않습니다. 10번 사냥을 나가면 1∼2번 성공합니다. 그래서 육식동물이 굶고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리고 사냥에 실패했을 경우 육식동물이 오히려 초식동물에게 상처를 입어 죽을 때도 있습니다. 야생은 우리가 집에서 기르는 반려동물처럼 따로 치료제가 있는 게 아니기에, 육식동물이 조그마한 상처를 입어도 이게 죽음에 이르는 병으로 진행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우리가 사는 세상은 초식동물의 성격만 가지고 살 수도 없고, 일부는 육식동물의 성격을 지니고 있어야 합니다…
구약성경에서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에게 ‘부정하니 먹지 말라’고 지정하신 동물은 대개 육식동물이거나 잡식동물입니다. 고기를 좋아하는 사람들의 말에 따르면 이런 동물은 먹이를 사냥하는 탓에 성격 자체가 날카롭고, 고기도 초식동물에 비해 질겨서 맛이 없다고 합니다.
사회생활을 육식동물처럼 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야생이나 정글처럼 약한 사람들을 사냥하는 걸 토대 삼아 성공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런 사람들의 성격은 대개 육식동물과 비슷합니다. 그런데 정글이나 초원처럼 우리가 사는 세상은 시인(詩人)과 군인(軍人)이 공존하는 곳입니다. 그러므로 모든 사람에게 시인처럼 노래하라고 할 수도 없고, 모든 사람이 군인처럼 군사훈련을 받지 않아도 됩니다.
우리가 사는 세상은 초식동물의 성격만 가지고 살 수도 없고, 일부는 육식동물의 성격을 지니고 있어야 합니다. 또 육식동물의 성격이 반드시 나쁜 것도 아닙니다. 사탄과 싸울 때는 육식동물처럼 날카로운 발톱과 이빨을 드러내 으르렁거리면서 싸워야 합니다.
초원과 정글에서 초식동물이 살아남으려면 코끼리처럼 거대한 몸집으로 스스로 강해지든지, 약한 곳에 순응해서 굴을 판 후 육식동물을 피해 다니며 살아야 합니다. 그런데 성경은 이와 전혀 다른 또 하나의 생존 원칙을 제시합니다. 성경은 육식동물도 초식동물도 아닌 식물적인 생존 방식을 제안합니다.
이는 동물적인 속성을 아예 버리는 것입니다. 어차피 초원과 정글에서 동물로 살아가는 한 육식동물의 눈치를 보지 않고 살 수 없습니다. 그래서 성경은 과감하게 이걸 벗어나 식물처럼 살라고 합니다. 식물처럼 사는 건 다른 사람을 잡아먹지 않고 신앙의 열매를 맺으며 살아가는 것입니다. 열매를 맺어 스스로 번성하고, 다른 사람과 이걸 나누면서 사는 것입니다.
이런 생존 방식은 아무나 할 수 없고 꽤 어렵습니다. 우리가 현재 사는 곳이 영원한 하늘나라가 아니고, 치열하게 생존을 위한 싸움을 해야 하는 광야이기에 이런 방식이 때론 약점이 되기도 합니다. 광야에서는 내가 남을 공격하지 않아도 남이 나를 공격합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능력으로 산다고 해도 처음부터 이런 능력이 제대로 발휘되는 게 아니기에, 식물처럼 살아보려고 마음먹다 보면 이것도 저것도 아닌 어중간한 처지에 빠질 때가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폭포수처럼 쏟아져도 자기가 듣기 싫어하고 그 말씀에 순종하지 않으면, 아무 소용이 없어져서 악하고 미련한 길로 가게 됩니다.
그러나 일단 마음을 굳게 정하고 땅에 깊게 뿌리를 내리면 그때부터는 평안함이 나타나기 시작합니다. 육식동물의 공격대상은 초식동물이지 식물이 아니기에 더는 육식동물 같은 사람이 식물이 된 크리스천을 공격하려 들지 않습니다. 초식동물도 식물의 열매나 잎만 먹지 뿌리까지 파먹지 않기에 어느 동물이든 식물은 공격하지 않습니다. 또 육식동물이든 초식동물이든 식물이 제공하는 그늘에 와서 쉬고 갑니다. 그래서 성경은 우리에게 이런 삶의 방식을 제안합니다.
<잠언>은 하나님의 백성 앞에 지혜의 길과 악하고 미련한 길 두 개가 있다고 합니다. 우리가 예수님 안에 들어가 있으면 다 끝난 것 같지만, 그분 안에서도 지혜의 길을 따르는 사람이 있고 악하고 미련한 길을 따르는 사람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폭포수처럼 쏟아져도 자기가 듣기 싫어하고 그 말씀에 순종하지 않으면, 아무 소용이 없어져서 악하고 미련한 길로 가게 됩니다.
이걸 비유로 설명해 보겠습니다. 요즘 컴퓨터나 노트북, 스마트폰을 보면 그 안에 기능이 참 많습니다. 이 다양한 기능을 다 사용하려면 제품 사용 설명서를 꼼꼼히 인내를 가지고 읽으면서, 제대로 알지 못하는 기능을 어떻게 쓸 수 있는지 익혀야 합니다.
그런데 어떤 사람은 설명서를 꼼꼼하게 읽는 걸 귀찮아하고 제대로 읽지 않습니다. 그럼 다양한 기능을 가진 가전제품이라고 할지라도 자기가 보는 것으로만 쓰게 됩니다. 하나님의 말씀도 마찬가지입니다. 꼼꼼하게 익혀서 쓰지 않으면, 아무리 하나님이 어마어마한 말씀을 주셔도 세상 사람과 별다르지 않고 비슷한 방식으로 살아가게 됩니다.
글 정이신 목사/ 본지 칼럼니스트/ 아나돗 공동체 위임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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