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교는 밥이다. 주님의 사랑을 담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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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션저널=조용선 목사] 선교는 밥이다. 주님의 사랑을 담은 »
“선교지에서 어려운 것은 다 참겠는데 당신이 제일 힘들어!”
1장 L 형제와 G 자매
지난 주일날 중국의 L 형제로부터 온 소식은 이혼을 생각해야 할 만큼 힘든 상태라고 했다. 그는 밤중에 꼬치구이 장사를 하며 몇 년간 돈을 모아 음식점을 내고 집도 장만하면서 살았는데 코로나 바이러스로 인해 수년간 사람들의 활동이 통제가 되자 그만 그동안 벌어두었던 돈도 다 까먹게 되고 경제적으로 너무나 어려운 상태가 되었다. 또한 대개 집을 살 때 은행 대출을 끼고 사기 때문에 음식점이 잘 될 때는 원금과 이자를 갚는 것이 문제가 되지 않았지만 원금상환과 이자까지 문제가 되어 무엇인가 결단을 해야 했다. 그래서 L형제는 대련으로 가서 원양어선을 타기로 하고 필요한 기술을 익혀 11월에 배를 탄다고 한다.
문제는 그의 아내인 G 자매가 두 자녀와 함께 살아갈 일이었다. 남편이 한 번 배를 타고 나가면 최소 6개월에서 1년은 떨어져 있어야 한다. 그런 상황에서 G 자매는 상심이 컸었던 것으로 보인다. 두 사람의 관계는 매우 힘들어졌다. 내가 알고 있는 G 자매는 남편이 많이 배려해주어야 하는 유형이다. 반면에 L 형제는 살아갈 것을 미리 준비하며 열심히 살아가지만 아내가 원하는 만큼 자상한 배려를 하지는 못한다. 서양의 유명한 작가는 결혼생활이라고 하는 것이 남자와 여자가 각각 화성과 금성으로부터 지구에 와서 사는 것이라고 한다. 그만큼 어렵다는 것인데 그러므로 서로 참고 이해하며 용납하지 않는다면 결혼 생활은 균열이 가고 불행해질 수도 있다.
나는 두 사람의 상황을 파악하고 기도한 후에 방향을 제시해주었다. 그것은 그들이 당한 현실이 첫째, 코로나 때문이며 둘째, 미국과 중국의 경제 전쟁 때문이며, 셋째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의 전쟁으로 인하여 세계 경제가 폭락했기 때문이라고 말해주었다. 그리고 특히 미국과 중국의 경제 전쟁은 다른 요인들이 다 해결된다고 할지라도 쉽게 해결되지 않고 장기간 계속될 것으로 예측했다. 그러므로 앞으로도 상당한 기간 중국 내부의 경제 사정 또한 쉽게 좋아지지 않을 것이기 때문에 L 형제가 중국 내부에서 해결책을 찾지 않고 원양어선을 타서 소득을 더 많이 그리고 안정적으로 만드는 것은 매우 잘 생각한 것임을 말해주었다. 그러므로 아내인 G 자매에게는 이런 전체 상황을 이해하고 매우 힘들겠지만 살아가기 위해 마음의 결심을 단단히 할 것을 조언했다.
다행히 두 사람은 신앙이 깊다. 뚜렷한 성격차이가 있지만 나는 하나님께서 사람을 짝 지워 주실 때에 사로 상보(相補)적으로 맺어준다고 생각한다. 그러므로 서로의 차이를 이해할 수만 있다면 갈등의 요인은 오히려 행복의 조건이 될 수 있을 것이다. 그들은 이제 십여 년 정도의 결혼 생활을 했는데 앞으로 십여 년 정도를 더하게 되면 서로를 이해하며 행복의 비결을 알게 될 것이다. 물론 그 전에 서로 슬기롭게 행복의 조건을 찾을 수 있다면 그것보다 더 좋은 것은 없을 것이다.
내가 이 말을 하는 것은 선교사로서 이미 수년 전에 중국 안전부에 의하여 추방되었지만 중국에 두고 온 신자들에게 나는 여전히 목사라는 것이다. 저들은 어려운 상황이 있을 때에 나와 아내에게 상담을 한다. 그러면 나와 아내는 그들을 향하여 마음이 아프고 기도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러다가 일이 잘 해결되면 마음이 참으로 기쁘고 감사하게 된다.
2장 당신이 제일 힘들어!
나의 선교는 2000년부터 이어지고 있다. 1998년 여름부터 99년까지는 선교 훈련을 받았다. 내가 훈련을 받는 과정에서 감동 있게 본 것은 허드슨 테일러의 내지 선교(Inland Mission)였다. 그러므로 그의 선교 전략을 따라 완전히 같을 수는 없겠지만 가능한 한 중국인이 먹고 사는 것처럼 사는 것이었다. 내가 처음 공항에 내렸을 때에 선배 선교사가 나를 보고 한 말은 ‘잘 깎아 놓은 밤톨 같은 목사’였다는 것이다.
그러나 선교지에서 6개월이 지난 어느 날 택시를 타고 목적지를 갈 때에 운전기사에게 내가 외국인이고 지리를 잘 모르니 잘 찾아가달라고 부탁을 했다. 그러자 택시 기사는 운전을 하면서 자꾸만 나를 쳐다보았다. 왜 자꾸 쳐다보냐고 물으니까 그는 나보고 정말 외국인이냐? 고 물었다. 내가 외국인처럼 안 보이냐?고 되 물으니까 택시기사는 내가 장난을 치거나 거짓말을 한다고 생각했단다. 그 때 알았다. 나의 외모는 6개월 만에 현지 적응이 아주 잘 되었던 것이다.
선교지에 적응하는데 있어서 남편과 아내는 좀 더 다르다. 왜냐하면 실제로 살림을 맡아 하기 때문에 아내의 입장에서 볼 때에 중국인처럼 적응한다는 것이 보다 남편들보다 더 어렵다고 판단된다. 그러나 그것은 후에 깨달은 것이고 선교 초기에 나는 나의 아내가 가능한 한 중국인과 같은 경제의 규모로 살기를 원했다. 왜냐하면 당시에 선교 후원도 중단되어 경제적으로도 어려웠기 때문에 나의 생각은 더욱 굳어만 갔다. 그래서 종종 나와 아내 사이에서는 갈등이 일어났다. 그런데 하루는 말다툼을 하는데 아내가 내게 말했다.
“선교지에서 어려운 것은 다 참겠는데 당신이 제일 힘들어!”
나는 이 말을 들으면서 더 이상 말다툼을 할 수 없었다. 그리고 아마 삶을 다할 때까지 아내의 이 말을 생각하며 아내에게 미안할 것이다. 아내는 선교지에서 18년을 살면서 추운 지방의 풍토병인 풍습에 걸렸다. 일종의 류마티스 병인데 뼈가 시리고 아프며 나중에는 손가락의 뼈가 조금씩 변형되었다. 나는 몸에 열이 많아 추위를 어느 정도 참을 수 있다. 그러나 아내는 몸에 열이 적은 사람이라 따뜻하게 지내야 하는데 나는 그것을 모르고 추운 집에서 계속 살게 하였다. 그래서 아내는 암(癌) 병에도 걸렸다. 지금은 다 치료되었지만 추방되어 한국에 와 있으면서도 여전히 추운 곳에서 살고 있다. 암 병에는 스트레스가 치명적이라고 하여 가능한 한 아내에게 스트레스를 주지 않으려고 노력하지만 그것이 마음대로 잘 되지 않아 늘 미안하다.
3장 선교는 밥이다.
중국에서 나의 선교는 중국 교회의 지도자를 양성하는 것이 가장 큰 효과를 내는 것으로 판단했다. 왜냐하면 중국에서는 공산당이 선교를 불법으로 만들었기 때문에 외국 선교사가 건물을 지어 외관상 어떤 조직을 확장시킨다는 것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나는 선교사 자신의 조직을 만들기보다는 중국 교회와 협조하여 지도자를 양성한다는 목표를 갖고 있었다. 이런 나의 마음을 알아서 인지 중국 가정교회에서는 좋은 인재들을 내게 보내주었다. 그 중에는 의학생, 약대생, 공대생 등이 있었다. 이들을 양육하는 것은 내게 큰 즐거움이었다. 왜냐하면 그들은 하나를 가르치면 그 가르침을 따라 스스로 깨닫는 것이 많았었기 때문이다.
하나의 예를 들겠다. 중국은 어린이들을 유물론에 따라 교육하기 때문에 영혼의 존재를 모른다. 십 수 년을 그렇게 알고 있다가 성경을 공부하며 하나님께서 영혼을 창조하셨고 인간이란 영혼과 육체의 결합이란 것을 알게 되었을 때에 그들은 성장하면서 느꼈던 무엇인가 부족하고 결핍되었던 사실과 진리의 어떤 부분이 채워지면서 큰 기쁨을 누렸다. 한국에서는 사람이 영혼과 육체로 창조되었다는 것만을 갖고 기뻐하는 중국 신자의 모습을 잘 이해하지 못할 것이다. 왜냐하면 우리는 영혼을 인정하는 사회와 문화에서 살기 때문이다. 나는 진리를 알아가면서 기뻐하고 변하는 그들의 모습을 보는 것이 정말 좋았다.
그러나 그들이 실제로 더 기뻐한 것은 따로 있었다. 그것은 내 아내가 매주 토요일마다 해주는 저녁 식사였다. 아내는 그 학생들을 위해 종종 고기반찬을 해주었고 한국식으로 여러 가지 음식을 만들어 주었다. 대개의 학생은 가난한 시골에서 자라났고 총명하며 또한 열심히 공부하여 도시의 명문대학에 들어오게 된 사람들이었다. 그러므로 맛있는 음식을 제대로 먹지 못했는데 매주 토요일마다 내 아내가 해주는 음식은 그들에게 있어서 참으로 기쁨이었을 것이다. 그것도 기름기가 많은 중국 음식에 비해 아주 담백하고 영양가 있는 한국 음식을 먹으면서 그 학생들은 행복했던 것이다.
나의 가정이 여러 가지 이유로 잠시 안식년을 갖게 되었을 때에 그 학생들은 자신들의 모임에서 오랜 시간 헌금하여 모아 두었던 돈을 가지고 와 우리에게 전해주면서 안식년을 잘 다녀오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들은 이렇게 말했다.
“조 선생님의 강의도 좋았지만 저희들이 더욱 기뻤던 것은 사모님이 해주신 저녁 밥상이었습니다.”
나는 이 말에 동의한다. 나는 그들에게 성경의 지식을 전하는 것이 주된 것이었지만 나의 아내는 음식을 통해 그들을 향한 주님의 사랑을 전했다. 나의 아내가 보인 사랑이 어떤 것인지를 알기에 그들은 내가 전하는 주님의 말씀을 받아먹었던 것이다. 그래서 나는 그 이후로 선교에 대해 강의할 때에 이 말을 전한다. ‘선교는 밥이다. 주님의 사랑을 담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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