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도에 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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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성칼럼=Dr. Elijah Kim] 기도에 관하여 »
‘테필라(תְּפִלָּה)’와 ‘시두루(סִדּוּר)’
저녁과 아침과 정오에 내가 근심하여 탄식하리니 여호와께서 내 소리를 들으시리로다 (시편 55편 17절)
첫째는 기도라고 하는 본질적인 의미에서 ‘테필라(תְּפִלָּה)’와
두번째는 하루에 세 번씩 드려지는 기도를 위해 사용되는 기도의 책 즉 ‘시두루(סִדּוּר)’가 있다는 사실입니다.
저의 서재에는 유독 기도에 관한 책이 많습니다. 경건서적으로서의 기도에 관한 책보다는 학문으로서의 기도에 관한 책들이 많습니다. 목회할 때, 필리핀 선교사일 때의 기도에 관한 책은 거의 경건 서적이었습니다. ‘죠지 뮬러의 기도’, 그리고 ‘무디의 기도’처럼 이와 같은 경건서적이 대부분이었습니다.
기도에 대해서 잘 알고 있다고 자만하던 제가 전혀 기도의 본질적 의미를 모르고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은 영국에서 기도에 대한 연구를 접하고 또한 유대 공동체에 흐르는 수천년의 기도를 마주하게 되면서부터 입니다. 사실 그때 까지만 해도 유럽에서 수백 년 동안 이토록 깊고 넓게 기도에 관한 연구가 있었다는 사실조차 인지하지 못했습니다. 아마도 이 분야를 연구한 분들은 쉽게 이해할 것입니다. 더불어 저는 신약 성경의 가장 중요한 기도에 대하여 그때까지 면면히 흐르는 회당기도와 성전기도를 전혀 짐작도 하지 못했습니다. 회당 방문과 학문 연구가 없었다면 어쩌면 저는 여전히, 응답 받는 기도, 강청하는 기도, 기도의 능력, 듣는 기도, 기도의 사람 등과 같은 부분에만 착념하여 그 너머 교회의 본질이라고도 할 수 있는 ‘만민이 기도하는 집’과 같은 ‘기도의 집’에 대한 가장 중요한 부분을 놓칠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저의 서재에는 지구상에 희귀본이라고도 할 수 있는 Mahzor Abodat Israel 전집이 있습니다. 이 희귀본은 1930년에 출간된 것입니다. 물론 저의 서재에는 200년이 더 되는 책도 있지만 유대인의 기도집으로는 꽤 오래된 책입니다. 이 책들은 홀로코스트가 일어나기 전 발간되었기에 저에게는 매우 소중한 책입니다. 유대인 공동체의 기도서라고 할 수 있는 총 10권에 달하는 “The My People’s Prayer Book”도 있습니다. 필요할 때마다 바로 찾아 볼 수 있어서 참 좋습니다. Jewish Prayer부터 매우 깊은 연구 서적에 이르기까지 제가 아끼고 사랑하는 보배로운 책들이 많습니다. 읽고 또 읽어도 새로운 분야가 덩굴처럼 나옵니다.
앞에서 언급한 것처럼 ‘기도’라고 하면 우리는 경건 서적으로 묵상하기 좋고 우리로 하여금 기도하게 하는 신앙서적으로서의 기도가 많이 떠오를 것입니다. 그러나 기도만큼 모르는 영역도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우리는 기도를 모르고 기도할 때가 많습니다. 굳이 비유가 될 지 모르지만 우리가 늘 마시는 물이 없으면 살 수 없듯이 물의 중요성과 기능 그리고 효능에 대하여 잘 모르고 마시는 경우와 마찬가지라고 생각됩니다. 공기처럼, 숨쉬는 호흡처럼, 생명을 유지하는 물처럼 가장 소중하지만 가장 흔한 것 바로 기도이며 정작 매우 중요한 사항인 기도에 대하여 우리가 모를 때가 많습니다. 사용은 하고 있지만 그 너머 심원의 바다를 연구해 보거나 알아보고자 노력조차 하지 않을 때가 많습니다.
이 기도에 대하여 깊고도 더 깊게, 넓고도 더 넓게, 그리고 그 놀라운 기도의 비밀을 알아간다면 우리의 삶은 영적으로도 더 풍성해질 것입니다.
기도에 대한 요점을 말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1. 유대인 회당 기도
2. 유럽에 있었던 학문으로서의 깊고도 놀라운 기도에 관한 연구
3. 성경이 말하는 기도에 대한 총합적 연구
4. 실제 삶으로서의 기도의 중요성
위의 사항을 보시면 짐작 하시겠지만 저는 삶으로서의 기도, 그리고 금식을 통해 체험적인 기도는 매우 친숙했지만 기도가 무엇인지에 대한 정확한 정의도 모른 채 깊은 기도를 하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비로서 유대 공동체 특히 유대인 회당이 행하는 기도를 참관하고 신약 성경에 도도히 흐르는 기도의 놀라운 의미와 역사를 보면서 서구 교회에 무언가 빠져 있는 그 어떤 것이 있음을 보게 되었습니다.
이집트 곱틱 교회는 기도의 방식은 유지했지만 기도의 본질이 무엇인지는 잘 몰랐을 수도 있습니다. 기도에 관한 저의 질문은 아르메니아 정교회보다도, 이집트 정교회 보다도 무려 천년을 앞서서 유대교의 기도를 행하고 있는 이디오피아 공동체의 기도를 참가하여 보고 큰 해결의 실마리를 찾을 수 있었습니다. 이집트나 시리아 보다도 천년이 더 된 이디오피아 정교회의 일년 중 한번 있는 축제일의 기도 참여는 저에게 많은 의미를 주었습니다. 기도의 본질이 빠진 상태에서 기도의 형태만 남는다면 생명력을 잃어 버리게 됨을 눈으로 볼 수 있습니다.
기도에 있어서 본질과 형식에서, 본질은 잃어 버리고 형식을 취함으로 많은 정교회들이 생명력을 잃어 버렸고 이와 같은 방식으로 천주교회도 생명력을 잃어 버렸으며 이러한 기도 행태는 따르는 개신교회의 루터교회, 성공회 등도 예외가 아니어서 교회의 생명력을 유지하기가 매우 쉽지 않음을 우리는 교회사를 통해 여실히 보게 됩니다.
제가 유럽 기독교 전체의 몰락에 관한 연구를 거듭하면 할 수록 대부분의 유럽 학자들이 지적하는 것이 바로 ‘기도서(Prayer Book)’의 문제였습니다. 교부 시대부터 중세 시대 그리고 심지어 종교개혁 이후에도 마틴 루터를 비롯해 존 칼빈 그리고 청교도에 이르기까지 가장 중요한 기독교 예식을 담당하는 것이 기도서였으며 이는 기도의 책 즉 Prayer book이었습니다. 이 기도의 책은 모든 개신교 예배에서도 빠질 수 없는 너무나 중요한 부분이었습니다. 마치 지금의 예배에서 찬송가를 빼 놓을 수 없듯이 기도서는 예배에 있어서도 중요했습니다. 19세기 중엽까지 기도서와 찬송가는 대부분의 전통 교회에 비치되어 있을 정도로 개신교 교단에게 있어서 이 부분은 매우 중요하였습니다. 이 기도서는 예전으로서 감당하는 기도입니다.
우리가 그토록 잘 알고 있는 예배의 초청 기도(convocation), 예배 시작 기도(invocation), 참회의 기도, 용서를 구하는 기도, 송영(doxology) 그리고 축복의 기도(benediction)에 이르기까지 이러한 기도들은 매우 중요했습니다. 그런데 이 기도들이 모두 기도의 책에 기록되어 있었고 목회자들은 이 기도문들을 읽었으며 회중과의 관계에서 낭송, 응답송, 회답송 등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기도로 시작하여 기도로 마치는데 이것이 바로 ‘oratio’로 불러지는 노래 형식의 기도입니다. 천주교회에서는 ‘oratio’와 더불어 젤라시오 성사집인 기도 즉 ‘collecta’가 있습니다. 기도라는 두개의 기둥으로 이루어진 천주교회의 미사는 아나클레시스 (anaclasis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며 드리는 초청의 기도), 아남네시스 (anamnesis: 기념하는 기도), 에피클레시스 (epiclesis: 청원하는 기도), 영광송 (doxology)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또한 우리에게 매우 중요한 부분이 바로 개인이 드리는 기도, 그리고 예배에서 드리는 기도가 있다는 부분입니다. 더 나아가서 기도는 기도의 정의, 기도의 종류 그리고 기도의 의미로 나누어서 알아 볼 수 있습니다. 여기에서 우리가 간과하지 않아야 할 것은 수천년을 이스라엘을 기도하는 민족으로 훈련시켰고 그것은 메시야의 대망(messianic expectation)을 위한 것이었습니다. 지금도 우리에게 알려져 있는 ‘시두루(סִדּוּר)’의 ‘왕의 기도’가 그 한 예입니다. 메시아로 오신 예수님께서는 기도를 집대성하셨으며 우리가 예수 이름으로 기도하게 된 이 놀라운 사건은 단순한 사건이 아니라 기도의 코페르니쿠스적 전환에 해당할 정도로 매우 중요하다는 점입니다.
어떤 분야를 연구하다 보면 그 깊이와 넓이에 따라 학문의 무게와 역할도 달라집니다. 하지만 기도는 바다보다도 깊고 어떤 신학의 영역보다도 광대하여서 그 누구도 단순히 기도의 영역을 말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기도는 우리에게 호흡과 같아서 늘 하나님께 기도하고 있다고 우리는 생각합니다. 하지만 알면 알수록 모르고 있는 것들이 많은 것이 바로 기도입니다. 우리가 숨 쉬고 있지만 정작 생명을 보존하는 신체 전반의 원리를 설명하라면 쉽게 설명하지 못하는 이치와 같다 하겠습니다.
인류 역사 전체를 본다면 창세로부터 이스라엘 민족의 태동까지 그리고 그로부터 예수 그리스도에게 이르기까지 하나님께서는 우리로 하여금 그 분께 기도함으로 우주를 창조하신 이후 손 놓고 계신 하나님이 아니라 그분의 자녀들과 함께 놀라운 역사를 이룸에 있어서 우리에게 기도라는 놀라운 통로를 허락해 주셨습니다. 이스라엘 민족을 선택하여 기도하는 민족으로 만드는 장대한 역사를 통해 우리에게 깊고도 깊은 기도의 역사를 구약 성경은 보여 주고 있습니다. 우리에게 구세주로 그리고 하나님의 아들이자 사람이신 예수님은 중보자이시기도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이전의 모든 기도를 완성하시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하게 하셨습니다. 구약 기도의 집대성은 주기도문입니다. 놀라운 것은 유대인의 ‘시두루(סִדּוּר)’가 모두 주기도문의 내용과 문체 그리고 구조까지를 다 포함한 집대성이라는 점입니다.
여기에서 우리가 간과하지 않아야 할 부분이 성막, 성전, 회당으로 이어지는 긴 역사 가운데 형성된 유대인들이 오랫동안 하루에 세 번씩 드려지는 기도가 있었다는 사실입니다. 초대교회 이후 이집트 콥틱교회, 아르메니아 정교회, 시리아 정교회 그리고 인도의 도마 시리아 정교회는 하루에 일곱 번씩 기도를 했습니다. 이들의 성경적 근거는 다윗이 하루에 일곱 번씩 기도하는 것에 유래하고 있습니다.
“주의 의로운 규례들로 말미암아 내가 하루 일곱번씩 주를 찬양하나이다.” (시편 119:164)
여기에 쓰인 ‘찬양하나이다’의 ‘찬양’은 할렐루야에 나오는 ‘할랄’이 어원입니다. 그러나 찬양이 아닌 기도는 하루에 세 번씩 드려지고 있었습니다. 신약성경에 나오는 기도는 바벨론 포로기에 형성된 하루에 세 번씩 하는 기도입니다. 다니엘이 하루에 세 번씩 기도하는 것에서 볼 수 있습니다. (단 6:10)
시편 55편 17절은 보다 더 구체적입니다.
“저녁과 아침과 정오에 내가 근심하여 탄식하리니 여호와께서 내 소리를 들으시리로다”
그런데 우리가 성경을 읽다 보면 4복음서에서 가르치신 예수님의 기도 뿐 아니라, 예수님께서 습관을 좆아(눅 22:39) 기도하셨을 봅니다. 더불어 예수님께서는 이른 새벽 미명에 기도하시고, 홀로 기도하시고, 밤이 맞도록 기도하셨습니다. 우리는 예수님의 기도를 통해 놀랍고도 놀라운 역사들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오순절 날 성령이 임하고 베드로는 제 삼시 기도(지금 시각으로는 오전 9시)를 말합니다.(행 2:15) 베드로와 요한은 구시 기도 시간에 성전을 올라갔습니다.(행 10:9) 그리고 사도 바울도 9시 기도를 비롯해 기도 시간에 기도하였다고 성경은 말합니다. 여기에서 우리는 매우 중요한 사실을 발견하게 됩니다.
첫째는 기도라고 하는 본질적인 의미에서 ‘테필라(תְּפִלָּה)’와
두번째는 하루에 세 번씩 드려지는 기도를 위해 사용되는 기도의 책 즉 ‘시두루(סִדּוּר)’가 있다는 사실입니다.
1. 기도의 정의
우리말로 ‘기도(祈禱)’라는 단어를 모르는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기도’는 중국어로도 그리고 일본어로도 한자는 같은 단어를 쓰고 있습니다. ‘기도(祈禱)’는 빌 ‘기(祈)’자에 빌 ‘도(禱)’자로 말그대로 ‘빈다’는 것입니다. 우리말에 원래 “기도’라는 단어가 있었 다기 보다는 우리가 ‘빈다’ 또는 ‘비나이다’라는 의미를 지닌 한자 ‘기도(祈禱)’를 차용한 것이 보다 합리적이라고 봅니다.
영어로 기도는 ‘prayer’ 인데 이는 프랑스어인 ‘priere’ 또는 ‘proiere’에서 온 것으로 ‘요청하다’는 의미를 지닙니다. 프랑스어 ‘priere’ 또는 ‘proiere’는 라틴어 ‘precaria’에서 왔는데 이는 ‘청원(petition)’ 또는 ‘기도’라는 뜻을 지닙니다. 그런데 신약 성경에 있는 헬라어로는 ‘proseuche’로 모두 127회 나옵니다.
기도라는 단어가 한국어이든, 영어이든 또는 헬라어이든 그리고 라틴어이든 어떤 것을 빌고 요청하는 것은 공통점이 있습니다. 하지만 히브리어는 조금 다릅니다.
2. 테필라(תְּפִלָּה)란?
히브리어로 기도라는 단어는 ‘테필라(תְּפִלָּה)’입니다. 어근 팔랄(פלל)은 ‘판단하다”라는 뜻을 지닙니다. 이는 ‘자신을 판단한다’는 ‘히트팔렐(התפלל)’에서 온 것이며 놀랍게도 형용사형 ‘플릴리(פלילי)’는 ‘범죄의(criminal)’라는 뜻을 지닙니다. 그러면 헬라어, 라틴어, 영어 그리고 한국어에 상통하는 ‘기도’라는 뜻이 이 모든 것의 근원이라 할 수 있는 히브리어인 ‘테필라’는 다소 의아하게 생각할 수 밖에 없는 근원적 이유가 있을까요?
유대인에게 있어서 기도는 단순한 기도 뿐 아니라 내용에 따라 청원의 기도, 감사의 기도, 하나님을 찬양하는 기도, 고백의 기도 등이 있습니다. 유대인의 기도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은 기도의 내용에 따라 제공되는 성찰 또는 판단이 매우 중요합니다. 유대인에게 있어서 기도는 우리 자신을 들여다보고 이 땅에서 우리의 역할을 보는 것 입니다. 그리고 우리와 하나님의 관계를 판단해 보는 것입니다.
이런 의미에서 히브리어 ‘테필라(תְּפִלָּה)’는 중보(intercession), 간구(supplication)라는 의미를 지니고 있습니다. 테필라가 가지는 복잡한 관계는 오직 하나님과의 관계를 통해서만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러기에 히브리어 테필라에는 창조주이신 하나님과의 관계가 매우 중요합니다. 우리와 창조주와의 관계의 핵심 요소는 “온 마음을 다해 그분을 섬기라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전심으로 하나님을 섬기기 위해 어떤 일을 할 수 있습니까? 고전적인 유대교의 대답은 하나님을 섬기는 행위가 바로 ‘테필라’입니다. 신성하신 하나님과의 친밀한 연합 상태가 달성될 때까지 마음 속에 숨겨진 사랑을 깨우는 노동 또는 섬김이 바로 테필라입니다. 여기에 노동 또는 섬긴다는 뜻은 히브리어로 아보다(avodah)인데 노동하는 감각 또는 직접적인 노동을 의미합니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을 섬기는 마음이 노동과 같은 것이며 바로 테필라입니다. 하나님과의 친밀한 연합을 이룰 수 있는 상태에 이루기까지 전심 즉 온 마음 속에 있는 숨은 사랑을 일깨우는 노동이 바로 테필라입니다.
이점에 있어서 우리는 히브리어 ‘테필라(תְּפִלָּה)’를 단순히 기도라고만 번역할 수 없는 한계가 있습니다.
우리가 드리는 기도는 사람에게 드리는 것이 아니라 절대자이신 하나님께 드린 것이기에 “요청한다(request)’는 뜻을 지닌 ‘바카샤( bakashah, בקשה)가 있습니다. 기도와 동의어로 쓰이는 ‘쉐바흐(shevach, שבח)’라는 단어가 있습니다. ‘쉐바흐’는 ‘찬양하다’ 영화롭게 하다’ 조용하게 하다’라는 뜻을 지니고 있고 예배와 동일시해서 사용합니다. 바카샤와 쉐바흐의 두 가지 요소를 다 포함하는 단어가 테필라입니다. 우리의 마음과 영이 하나가 되어 하나님과의 연합을 이루는 섬김이 바로 테필라입니다.
3. 기도의 종류
우리가 기도라고 하는 것을 어떻게 정의하고 분류하느냐에 따라 기도의 종류는 매우 다양합니다. 쉽게 말하면 개인적으로 드려지는 기도가 있는가 하면, 기도의 형식에 따라 드려지는 기도가 있으며 또한 예배와 제사 가운데 드려지는 기도의 종류가 다르며 또한 기도의 내용과 형태에 따라 달라지는 기도의 종류가 있습니다.
여기에서 어떤 방식으로 기도를 구분하든지 자신을 위한 기도인 간청(petition)과 다른 사람을 위한 중보(intercession for others)로 대분해 보아야 합니다. 우리는 보통 기도를 ACTS라는 영어 단어를 사용하기도 합니다. 언뜻 보면 사도행전을 말하는 Book of Acts를 떠올릴 것입니다. 맞습니다! 기도의 가장 기본 형식은 경배(adoration), 참회(contrition), 감사(thanksgiving)와 간구(supplication)입니다. 위의 앞 글자를 따오면 A.C.T.S.가 됩니다. 본데 골츠(E. F. von der Goltz)라는 학자는 기도의 형태(type)에 따라 기도를 다음과 같이 구분했습니다.
1. 송영(doxology)
2. 찬양(praise)
3. 축복(blessing)
4. 예배(worship): 예배에는 찬송(hymns), 공동체 노래(community singing), 시편(psalms) 등이 있습니다.
5. 감사(thanksgiving)
6. 하나님 앞에서 또는 그리스도 안에 자랑하는 것(boasting in Christ or before God)
7. 자신을 위한 탄원 (petition for self)
8. 중보 기도(intercessory prayer for others)
9. 일반 기도(general prayer)
헌터(W. B. Hunter)라는 학자는 기도를 7개의 그룹으로 나누었는데 그 일곱 가지 종류에 각 그룹에 해당하는 기도들이 있습니다.
1. 찬양(praise), 감사(thanksgiving), 예배(worship), 경배(adoration)
2. 명상(contemplation), 묵상(meditation)
3. 고백(confession), 애통(lamentation), 참회의 기도(penitential prayer)
4. 애원(entreaty), 탄원(petition), 간청(supplication), 중보(intercession)
5. 선포(declaration), 맹세의 긍정(affirmation vow), 서원(oath)
6. 기원(invocation), 송영(doxology), 축도(benediction)
7. 불평(complaint), 복수와 저주를 위한 기도(imprecation, prayer asking for vengeance, curse)
기도를 말할 때 유대인이 사용한 기도문은 쉐마와 시편이었기에 기도 연구 교본은 시편이라 할 수 있습니다. 시편은 더불어 찬양으로 곡조에 맡게 부를 수 있습니다. 이스라엘의 예루살렘 템플 연구소에서는 수천년 전에 사용하던 시편의 곡조를 복원하는 작업을 오랜 기간동안 진행하고 있습니다. 기도는 기도 하나만 놓고도 놀라운 영역과 관련 사항들이 있지만 이 부분이 예배와 제사 그리고 찬양과 하나되어 나타날 때에는 성경 전체의 역사와 미쉬나를 비롯한 이스라엘 민족 전 역사에 얼마나 중요한지 말로 다할 수 없습니다. 그러기에 사도 바울은 “시와 찬미와 신령한 노래들로 서로 화답하며 너희의 마음으로 주께 노래하며 찬송하며 범사에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항상 아버지 하나님께 감사하며” (에베소서 5:19-20)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4. ‘시두루(סִדּוּר)’란?
‘테필라(תְּפִלָּה)’와는 전혀 다른 단어이지만 사실은 하나의 본질을 다루고 있는 것이 ‘시두루(סִדּוּר)’입니다.전기한 바와 같이 테필라(Heb. תפילה)는 히브리어로 기도를 말합니다. 출애굽기 21:22절에 ‘심판을 집행’하는 것을 말합니다. 창세기 48:11에는 ‘생각하는 것’을 말합니다. 신명기 11:13에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고 전심으로 그를 섬기라”라고 말합니다. 어떻게 섬길 수 있을까요? 앞서 말한 것처럼 바로 기도를 통해 우리는 하나님을 온 마음과 뜻을 다해 섬김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 기도를 할 때에 사용되는 것이 시두루입니다.
‘시두루(סִדּוּר)’는 일주일에 매일 드려지는 유대인 기도서를 말합니다. 안식일에는 안식일의 기도를 드리고 나머지 일월화수목금요일에는 하루에 세 번씩 드려지는 기도를 위한 기도의 책이라 할 수 있습니다. ‘시두루(סִדּוּר)’에는 기도라는 뜻은 없지만 유대교에서 가장 중요한 예전에 사용되는 것이 바로 siddur(질서를 의미하는 히브리어 어근 sdr에서 유래)입니다. 여기에는 종종 주석과 지침이 수반되는 시간 기반이 되는 일일 기도 순서와 일년 내내 안식일 예전에 쓰여지는 기도문이 있는데 이것이 바로 시두루입니다. 유대인 공동체에 따라서 그리고 그 지역에 따라서 매우 다양한 시두루가 있습니다. 예를 들면 매일 드려지는 기도와 안식일에 드려지는 기도만 포함하는 시두루가 있습니다. 더불어 결혼식, 할례, 절기, 그리고 그 나라의 주권자를 위한 기도가 더해진다면 시두루의 부피는 점점 더 커집니다. 매우 단순한 아주 얇은 시두루부터 전집이 8권에 달하는 시두루에 이르기까지 그 분량이 매우 다릅니다.
예수님 당시에 ‘시두루(סִדּוּר)’ 또는 시두림(סודורים 복수일 경우)이 있었느냐?하는 질문은 매우 중요합니다. 왜냐하면 유대교 최초로 문헌으로 쓰여진 시두루는 바빌론의 수라(Sura)에 있는 탈무드 학교(Talmudic Academy)의 지도자인 랍비 암란 벤 쉬쉬나 하가온(Rabbi Amram ben Sheshna haGaon)이 주후 875년경에 최초의 시두루(Siddur)를 기록한 것으로 되어 있습니다. 이 ‘시두루(Siddur)는 특히 많은 유대인 학자들을 위해 작성되었습니다. 그의 후계자 중 한 명인 유명한 사아디아 가온(Saadia Gaon)은 주후 882-942에 일반적으로 사용하기 위해 시두르를 편찬했습니다.
‘시두루(סִדּוּר)’는 기본적으로 18개의 축복의 기도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이를 샤모네 에쉬레(Shemoneh Esreh )또는 아미다(Amidah, 히브리어, “서서 하는 기도)라고 하는 18개(현재 19개)의 축복의 기도는 전통적으로 구약의 서기관 에스라 시대에 에스라가 읽었던 기도문이 기원이 됩니다. 에스라가 예루살렘으로 귀한하였을 때 포로시기에 관습적으로 행하던 시두루는 완성이 된 것으로 보는 것이 타당합니다. 다니엘의 하루 세번 기도, 이미 바벨론, 메대, 바사에서 유대인 회당에서 매일 하루에 세 번씩 드려지는 기도가 있었고 이때 사용되어진 기도의 책인 시두루입니다. 물론 문헌으로 우리에게 전해진 것은 훨씬 후대의 일이지만 시두루의 내용이 모세오경의 쉐마와 시편의 기도를 뽑아서 드린 것이기에 편찬본으로서의 시두루는 큰 의미가 없습니다. 다시 말하면 예수님 당시에 예수님과 제자들 그리고 사도행전에서 이미 그들은 하루에 세 번씩 드려지는 기도 가운데 쉐마와 시편 기도를 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시두루(סִדּוּר)’와 더불어 쓰이는 마크졸(Machzor)이 있습니다. 히브리어 마크졸(מחזור)은 어근 ‘ח־ז־ר’에서 왔는 이는 ‘돌아가다’는 뜻이며 여기에서 순환이라는 의미를 지닙니다. 일년 내내 드려지는 순환의 기도서가 바로 마크졸입니다. 마크졸(maczor)은 원래 평일과 안식일 뿐만 아니라 절기를 포함하여 일년 내내 기도를 담은 책을 가리켰습니다. 나중에(아쉬케나지 공동체에서 처음으로) 주중 기도와 안식일 기도를 포함하는 시두르와 절기 기도를 포함하는 마조르로 나누었기에 후대에 이러한 구별이 생겼습니다. 그러나 두개의 단어인 시두루와 마크졸은 교차해서 지금도 사용하고 있습니다.
‘시두루(סִדּוּר)’는 1년 내내 기도할 수 있는 것으로 바벨론 시대에 완성된 것이라면 성전 기도는 제사장적 기도입니다. 아이러니하게도 성전기도는 솔로몬대에 완성되었습니다. 시두루가 1년 내내 하루 세 번씩 쉐마와 시편을 번갈아 읽거나 낭송하거나 송영 또는 노래식으로 하는 기도라면 성전 기도는 일반인들은 드릴 수 없고 오직 제사장만이 백성의 죄와 하나님께 대한 속죄 그리고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축복을 내리는 것으로 되어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성전 기도와 성막 기도가 중복되는 부분이 있습니다. 그것은 이방인의 뜰의 기도, 성전 뜰의 기도, 5대 제사의 기도, 분향단, 진설병, 금촛대가 지니는 의미의 기도 지성소로 들어가는 기도가 있습니다. 성막이 그리스도의 몸을 의미하는 것이 더 초점이라면 성전은 하나님의 임재가 더 초점입니다. 성막 기도는 성막의 의미가 하나 하나가 그리스도 몸의 의미를 나타내는 데 있다면 성전 기도는 그리스도의 몸을 완성한 것에 더 의미를 두고 있습니다.
이점에 있어서 헬라어 ‘흐 라테리아(λατρεία)’는 매우 중요한 의미를 지닙니다. 라틴어로는 ‘라트리아(latria)’라고 하는 이 단어는 초대 교회 이후 정교회와 초기 천주교회(후대에는 훨씬 발전하게 됨)에 있어서 성 삼위 하나님께 대한 경배를 말합니다. 이는 앞서 언급한 ‘테필라(תְּפִלָּה)’처럼 하나님께 대한 섬김(service)과 예배(worship)입니다. 레위기 법에 나오는 하나님께 대한 섬김과 예배의 모든 요구사항들이 모두 다 ‘흐 라테리아’입니다. 그래서 이집트 정교회나 아르메니아 정교회 7번 드려지는 찬양을 보면 레위기서를 기초로 쉐마의 기도와 시편 기도를 유대교 형식에서 다시금 신약성경교회 초기의 유대 기독교 공동체의 적용(adoption)을 가미하여 사용하였습니다. 이 부분에서 우리가 눈여겨 보아야 할 부분이 ‘흐 라테리아’를 수도승과 성직자들이 진행하는 구약의 제사제도 새로운 적용입니다. ‘흐 라테리아’는 바로 앞서 언급한 예배에 있어서 섬김 또는 노동을 의미하는 히브리어 ‘아보다(עֲבֹדָה)’입니다. 이처럼 ‘아보다’는 단순히 섬김 뿐 아니라 성전 제사를 진행하는 전체 제사장 무리와 섬기는 모든 사람을 다 지칭하기도 합니다.
히브리어 ‘아보다(עֲבוֹדָה)’ 그리고 헬라어 ‘흐 라테리아’처럼 예배에 쓰이는 성전 기도를 살펴 보면 왜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제사장적 직임이 있는지를 알 수 있습니다.
‘시두루(סִדּוּר)’에는 쉐마와 시편에서 발췌해서 1년을 기도하는 내용이 매년마다 반복됩니다. 18개의 항목(지금은 하나가 더해저셔 19개 항목)인 쉐모네 에쉬레이를 보면 바룩이라는 (히브리어로는 베라하)라는 단어가 모든 문장의 앞 쪽에 있습니다. 다시 말하면 축복받으라! 선포형이지만 하나님께 대하여 동시에 송축하라!는 중의적 용도로 쓰여지고 있습니다. 겉으로 보면 이 기도가 일주일 18개를 여섯 번 나누면 하루에 세개의 기도문이 되고 이 세 개를 아침 점심 저녁으로 하면 이것이 ‘샤하릿(שַחֲרִית),’ 민하(מִנחַה) ‘마아립(מַעֲרִיב)’입니다. 모두 18개에 안식일에 한번 드려지는 안식일 기도가 합쳐져서 19개가 됩니다.
에수님께서 기도를 말씀하시면 주기도문 팔복 그리고 비유등이 성경에 나옵니다. 8복은 전형적인 시두루 문장 그 중에서도 바룩의 기도 형태를 매우 닮았습니다. 주기도문은 시두루 전체를 집대성해서 요약한 요약본이라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주기도문은 특히 시두루의 왕의 기도를 닮았습니다. 그런데 이것이 끝이 아닙니다.
주기도문은 ‘시두루(סִדּוּר)’의 집대성일 뿐 아니라 제사장적 기도의 형태로 되어 있습니다. 이 뜻은 일년에 한번 하는 속죄일의 대제사장의 사죄(죄를 사하는)의 기도문이 주기도문에 나와 있습니다. 우리가 구약을 아무리 연구해도 이 연결점을 모르다가 시두루를 연구해 보면 이제야 왜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이렇게 기도하라!하셨는지 그 비밀을 알게 됩니다 그래서 시두루 기도가 시편과 쉐마를 편집한 것이지만 문장이 시작되고 마치는 구조 그리고 전체의 배열을 예수님께서 가르치신 기도를 보면 시두루 기도의 핵심을 말하고 있음을 보게 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오심은 예배의 완성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기도의 완성이기도 합니다. 이제 오신 메시야이신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문자로 읽혀지는 ‘시두루(סִדּוּר)’가 필요없게 되었음을 봅니다. 우리는 무엇이든지 예수 이름으로 구할 때 우리의 기도가 응답되는 경천동지(驚天動地)의 새로운 장이 열렸습니다.
“너희가 내 이름으로 무엇을 구하든지 내가 시행하리니 이는 아버지로 하여금 아들을 인하여 영광을 얻으시게 하려 함이라 내 이름으로 무엇이든지 내게 구하면 내가 시행하리라” (요한복음 14:13-14)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구할 때마다 이 땅에서 놀라운 기적을 체험하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충심으로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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