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혜 위에 은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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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묵상=한은선 목사] 은혜 위에 은혜! » 요한복음1:14-18 »
Gnade um Gnade!
오늘 본문에는 ‘은혜 위에 은혜’라는 말씀이 나옵니다. 원어에는 ‘은혜와 다른 은혜’입니다. 먼저 받은 은혜가 소진되면 다음의 은혜가 이어간다는 뜻도 있지만, 앞의 ‘은혜’는 율법이라면 뒤의 ‘은혜’는 예수 그리스도로 완성되고 베풀어진 은혜를 의미합니다. 율법이 있어 은혜의 필요를 알았고 은혜를 깨닫고 나니 율법의 고마움을 깨닫게 되었다는 것…
에디슨이 어릴 때의 일입니다. 실험 정신이 강했던 그는 닭이 알을 품고 있다가 병아리가 나오는 것을 본 에디슨은 자기도 알을 품고 하루 종일 있었습니다. 그러나 병아리는 나오지를 않았습니다. 사람이 아무리 오래 동안 닭의 알을 품는다 할지라도 병아리가 나오지는 않는 법입니다.
그러나 닭이 알을 품으면 얼마 되지 않아서 병아리가 되어 나오게 됩니다. 얼마나 알을 품었느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누가 알을 품었느냐가 중요한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인간이 품어야 할 것이 있고 하나님께서 품어야 할 것이 있습니다.
믿음의 사람들은 주님 품안에 안길 때 비로소 사망권세를 깨고 영생을 맛볼 수 있는 것입니다. 주님께서 나를 품어 주시는 것, 그것을 가리켜 은혜라고 합니다. 인간의 그 어떤 죄의 문제나 고통도 주님께서 은혜로 품어 주시기만 하면, 용서와 해결의 축복을 누리게 됩니다..
그러나 사람은 누구나 자기의 의를 자랑하려고 합니다. 그것이 바로 율법주의며 행복은 없습니다. 그러나 모든 것을 은혜로 받아들이는 사람은 자랑 할 것이 없으나 행복합니다.
바울 서신 곳곳에는 항상 따라 붙는 단어가 ‘은혜’라는 단어입니다. 은혜란 율법과 대칭 되는 단어이지만 서로 필연적인 관계입니다. 율법이 내게 오면 죄는 살아나고 나는 죽습니다. 그러나 은혜가 내게 오면 죄는 죽고 나는 살아납니다. 그래서 바울은 은혜로 거듭났고 은혜로 살았으며 은혜를 전하는 사도가 되었습니다.
오늘 본문에는 ‘은혜 위에 은혜’라는 말씀이 나옵니다. 원어에는 ‘은혜와 다른 은혜’입니다. 먼저 받은 은혜가 소진되면 다음의 은혜가 이어간다는 뜻도 있지만, 앞의 ‘은혜’는 율법이라면 뒤의 ‘은혜’는 예수 그리스도로 완성되고 베풀어진 은혜를 의미합니다. 율법이 있어 은혜의 필요를 알았고 은혜를 깨닫고 나니 율법의 고마움을 깨닫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마틴 루터는 “율법은 하나님의 왼손이요 은혜는 하나님의 오른손이다’라고 했습니다. 자녀를 키울 때도 이 두 요소를 잘 조화해야 합니다. 율법을 너무 강조하면 기가 죽고, 은혜를 너무 강조하면 버릇없는 안하무인이 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신앙 세계도 마찬가지입니다. 너무 법법 하면 딱딱해지기 쉽고 너무 은혜 은혜 하면 방종하기 쉽습니다. 두 신앙적 요소가 적절한 긴장이 필요합니다. 그래서 바울을 그 둘을 조화한 신앙생활을 이렇게 표현했습니다. “종이 된 자유인!”
에스겔서에 보면 은혜의 척도를 가늠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성전에서 흘러나오는 물을 재어보라는 주의 사자의 명령에 재어보니, 개펄, 발목, 무릎, 허리, (가슴), 깊은 물 순서로 점점 깊어지는 것이었습니다.
마찬가지로 현대 그리스도인들도 아무 짝에도 쓸 수 없는 개펄 같은 신앙이 있는가 하면 겨우 발길을 돌려 교회에 나올 수 있는 발목신앙이 있고, 바짓가랑이를 걷어 부처 봉사하고픈 무릎신앙도 있고, 이제 중심이 잡힌 허리 신앙, 가슴에 감동과 열정을 가진 가슴신앙, 더 나아가서는 헤엄을 칠 정도의 은혜의 바다에서 사는 성도가 있습니다.
은혜 위에 은혜란 임마누엘의 은혜를 의미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섬길 때 그가 우리에게 어떤 축복을 주셨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진정한 신앙인은 하나님이 주신 그 어떤 것들이 아니라 하나님 자체를 감사합니다.
부모님이 옷 사주고 밥 먹여 주고 키워주셔서 감사한 것이 아닙니다. 그냥 그 분이 존재하는 그 자체로 감사한 것입니다. 그가 있어 내가 있음을 깨닫고 감사하는 것입니다. 이 땅에 절대자 하나님이 실존한다는 자체가 얼마나 감사한 은혜인줄을 알아야 합니다. 우리는 자꾸 무엇인가 더 소유해야 행복한 줄 압니다만 때론 잃거나 가진 것을 버려야 행복하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바울 사도는 몸에 지병이 있어 선교에 차질이 생기자 특별 작심기도를 세 번이나 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응답은 전혀 다른 것이었습니다. “내 은혜가 네게 족하다!” 병들고 약한 상태가 하나님의 은혜가 넘치는 때라고 답하십니다.
그때 바울은 위대한 선언을 합니다. “내가 약할 그때가 가장 강하다!” 은혜와 진리는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은 것입니다. 문제는 그분을 내 속에 모실만한 공간이 너무 좁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비워야 합니다. 내 속에 가득 찬 세상의 욕심과 생각들을 퍼낸 것만큼 가난해질 수가 있고 가난만큼 겸손해질 수 있고 주의 은혜는 바로 이 겸손만큼 채워지는 것입니다.
이 세상에서 가장 값나가는 진리는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임을 깨닫는 일이며, 가장 행복한 사람도 모든 것을 하나님의 은혜로 이해하는 사람입니다. 성탄의 계절에 은혜를 깨닫는 것은 또 하나의 은혜입니다. 주님의 은혜는 심판을 이기는 유일한 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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