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s://ucdigin.net/wp-content/plugins/trx_addons/components/lazy-load/images/placeholder.png)
세계사를 뒤흔든 19가지 비행 이야기
Share This Article
[북스저널=정이신목사] 세계사를 뒤흔든 19가지 비행 이야기 » 김동현 지음/ 출판사: EDEN HOUSE »
비행기 조종사 이야기 통해 들여다본 인간 세태 관한 미시사(微視史)…
나는 이 책에서 역사적 사건의 나열이나 일방적 해석 대신 그 시대를 온몸으로 살아낸 사람들을 가까이서 들여다보고자 했다. 내 분야가 비행과 운항 시스템인 만큼, 이 책에 소개된 내용 역시 20세기를 관통한 하늘의 역사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다. [중략] 각자의 인생은 개인의 선택이며 그 누구도 결코 시대를 벗어날 수 없다. 나는 이 책에 등장하는 서른세 명의 선택을 비판하지 않는다. 하늘에 올라가면 대륙과 바다의 배치가 한눈에 보이는 것처럼, 우리가 사는 이 시대 역시 한걸음 떨어져서 볼 때 비로소 그 모습이 보인다…[내용 중에서]
![](https://ucdigin.net/wp-content/plugins/trx_addons/components/lazy-load/images/placeholder.png)
비행기 조종사의 이야기를 통해 들여다본 인간 세태에 관한 미시사(微視史)가 주류를 차지하면서도, 거시사(巨視史)를 양념으로 곁들인 책입니다. 비행기가 발전한 역사에 관한 기록, 미국과 구소련에 얽힌 정치적인 이야기, 안창남처럼 비행을 통해서 독립군으로 활동하거나, 박경원처럼 자신의 꿈인 비행을 계속하기 위해서 일제를 선택한 이야기 등이 실려 있습니다. 그런데 비행술과 비행기를 통해 숨겨진 인간 세태의 속살을 보는 게 꽤 재미있습니다.
그동안 “독서, 커피, 설탕, 약재, 향신료” 등의 역사를 다룬, 미시사로 저술한 몇 권의 책을 봤습니다. 그러면서 제 주변에 있지만 제대로 몰랐던 기호품의 속살을 읽었습니다. 그러나 비행술과 비행기에 이런 이야기가 담겨 있는 건 이 책을 통해 발견한 새로운 소득이자 기쁨입니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거시사의 오류를 바로잡고, 거시사 연구에서 주목받지 못했던 일반 대중에 관한 연구를 중심으로 역사를 파악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미시사가 등장했습니다. 미시사에서도 거시사에서와 마찬가지로 실재했던 역사적 사실을 규명하고자 했습니다. 그렇지만 거시사적 연구를 통한 사회ㆍ경제적 분석으로는 인간 개개인의 삶을 충분히 설명할 수 없다는 것에 미시사의 중요성을 주장한 측에서 문제를 제기했습니다. 그들은 개인의 구체적인 삶 또는 개별 사건을 근거로 당시 사회의 특징을 설명해야 한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미시사는 역사가의 주관적인 시각으로 개인의 행적ㆍ심리ㆍ특성ㆍ인물과 인물의 관계 등을 분석하고, 이를 근거로 당시의 사회적 분위기나 생활 모습을 해석합니다.
그런데 “첫째, 조종사를 쏘지 말고 비행기를 쏴라. 둘째, 탈출하는 조종사를 쏘지 마라. 셋째, 살인자가 되지 마라, 자신이 파멸할 것이다.”란 세 가지 원칙을 강조했던 독일군의 조종사 교육은 미시사ㆍ거시사 중 어느 쪽인지 헷갈립니다. 또 이 원칙에 따라 독일 본토를 공습한 뒤, 찢기고 터진 몸으로 집으로 돌아가기 위해 애쓰며 간신히 날아가고 있던 B-17 미군 폭격기(조종사: 찰스 브라운)와 거기에 탄 부상병을, 영국까지 호위해서 돌려보낸 나치 독일 치하의 독일 비행사 프란츠 슈티글러의 이야기를 읽으면서, 어떤 전쟁도 막을 수 없는 인간의 품격을 봅니다.
텔레비전으로 중계되는 현대전에 이런 품격이 서린 이야기들이 없는 걸 보면, 인류의 문명은 발전했지만, 인간 자체는 발전하지 않은 것 같습니다. 그런데 이런 걸 알려주는 게 미시사의 매력이기도 합니다. 미시사는 사료ㆍ문헌이 가지고 있는 가능성을 찾아 과거를 추론해 가고, 추론적 패러다임에 근거해 인류가 지향해야 할 가능성의 역사를 펼쳐 보입니다.
미시사의 시각으로 보면 역사는 주어지는 게 아니라 구성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미시사는 거대 역사에 파묻힌 개인의 삶에 무수한 의미가 숨겨져 있다는 걸 알려줍니다. 그리고 이를 통해 ‘역사의 교훈에는 경계가 없다’라고 합니다. 국가와 국민을 보호하겠다고 맹세한 군인이 적과 총구를 마주 겨눈 상황에서도 인간에 대한 연민을 잃지 않을 수 있다는 사실을 통해, 거대한 힘이 서로의 이익을 위해 싸우는 국제 전쟁이 인간의 품위마저 훼손할 수 없다는 희망을 우리에게 전해줍니다.
지금도 일본에 있는, 박경원이 탄 비행기가 추락한 장소에 있는 기념비처럼 시대에서 자유로운 인간은 없습니다. 박경원은 하늘과 비행 그 자체가 꿈이었기에 청연(靑燕: 파란 제비)이라 이름 붙인 비행기처럼 그녀의 꿈을 좇아 살다가 그렇게 갔습니다. 그렇지만 박경원과 달리 조국의 독립을 이루려는 염원으로 조종사의 꿈을 키운 권기옥도 있습니다. 또 전쟁이 끝난 후 비행기가 비상 착륙한 후 동토(凍土)에서 만나 서로 생존을 도모했던, 독일(쇼피스)과 영국(파트리지)의 조종사도 있습니다. 이들은 전쟁이 끝난 1977년에야 서로의 생사를 확인했고, 그 후 뮌헨과 런던에 있는 서로의 집을 오가며 친형제처럼 살다가 갔습니다.
이처럼 인간적인 품격을 방해하는 거대한 힘의 억압을 거부하는 사람은 늘 우리 주변에 있습니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한 사람의 인격과 가치는 직업이나 그의 선택으로 모두 대변되지 않는다’라는 교훈을 미시사 연구가 우리에게 알려줍니다. 아무리 전쟁이 일어나도 군인의 임무와 자연인으로서의 인격을 혼동하면 안 된다고 미시사는 오늘도 우리에게 조곤조곤 말합니다. 미시사가 들려주는 이 교훈을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상대로 자행하고 있는 전쟁터에 들려주고 싶습니다.
◙ Now&Here©ucdigiN(유크digitalNEWS)의 모든 콘텐트(기사)는 저작권법으로 보호를 받고 있습니다. 무단 전재,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