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의보다 중요한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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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묵상=한은선 목사] 공의보다 중요한 것 » 요나서 4:5-11 »
Wichtiger als Gerechtigkeit!
참새 한 마리가 한 앗사리온에 팔리우는 것도 하나님의 허락 없이 이루어지지 않는다. 하나님의 용서의 사랑과 요나의 공의의 충돌은 결국 하나님의 사랑의 승리로 끝나고 있다. 그 승리가 세상의 죄인들을 구원하시고요~ 나도 살려주신 것임을 잊지 말라…
어떤 학생이 지하철에서 요나서에 관한 책을 읽고 있었다. 그때 옆자리에 앉은 한 신사가 비웃듯이 물었다. ‘학생은 요나가 물고기 뱃속에 들어가 삼일 후에 다시 살아나왔다는 사실을 믿는가?’ ‘그럼요.’ ‘어떻게 그 터무니없는 얘기를 믿을 수 있단 말인가?’ ‘그건 천국에 가서 요나에게 물어보세요.’
그러자 더욱 비웃듯이 다시 묻는다. ‘요나가 지옥에 갔다면 어떻게 할 건가?’ 그러자 학생이 대답하기기를, ‘그럼, 아저씨가 물어보시면 되겠네요.’ 생각의 방향은 매우 중요한 결과를 가져온다는 꽁트다.
▮당시 이스라엘과 앗수르와의 상황
당시 니느웨는 앗수르의 수도였다. 메소포타미아 지역의 패권국가인 앗수르 왕 디글랏 빌레셀 3세는 주전 740년부터 북시리아 북 이스라엘 왕 베가 때 갈릴리 지역을 포함해서 북 이스라엘을 대부분 점령했다. 니느웨라는 도성은 제국주의 팽창정책의 중심지였다. 앗수르는 제국주의 패권을 지키기 위해 매우 포학하고 잔혹한 정책을 사용했다.
한 나라를 정복한 다음, 거역하는 자들을 강제로 혀를 뽑거나, 귀나 코를 자르고, 높은 성벽에서 산채로 내던져 죽이거나 심지어 산 채로 살을 벗겨 극도의 고통을 겪게 하는 매우 잔인하고 난폭한 자들이었다. 더구나 앗수르는 주전 721년 호세아 왕 때 이스라엘을 멸망시킨 후 포로로 잡아간 나라다.
▮하나님의 명령과 요나의 반발
앗수르의 악독이 하늘에 상달될 정도로 심각했다. 욘1:2절, ‘너는 일어나 저 큰 성읍 니느웨로 가서 그것을 향하여 외치라 그 악독이 내 앞에 상달 되었음니니라 하시니라’ 악이 하늘에 상달되었다는 의미는 심판 때가 되었다는 것이다. 요나에게는 반가운 소식이 아닐 수 없다.
그런데 이런 나라에 하나님의 메시지를 전하라는 명령은 요나에겐 죽기보다 싫은 일이었기에 다시스로 도망치기 위해 배에 올랐다가 풍랑을 만나게 되었고, 물에 던져져 큰 물고기 뱃속에서 삼일 만에 하나님의 은혜로 살아나와 결국은 니느웨 성에 말씀을 전하게 된다.
▮ 더 큰 악이 되어버린 요나의 불순종
악이 하늘에까지 도달한 원수의 나라요. 잔악한 민족이 회개의 복음 한마디로 용서가 된다면 ‘하나님의 공의는 어디 있느냐?’라며 요나는 ‘매우 싫어하는’ ‘라아 그돌라’로 ‘큰 악,Grosse Buese’에 빠졌다고 성경원어는 말씀하고 있다.
왜냐하면, 그런 나라도 회개한다면 구원 하시겠다고 독생자 예수님을 보내셔서 그 죗값을 대신
치루게 하신 것이 하나님의 사랑이기 때문이다. 즉 요나는 하나님의 공의를 앞세워 하나님의 사랑을 거역하겠다는 것이다.
기억하라, 내가 아무리 싫고 미워할 수밖에 없는 죄인일지라도 그가 하나님께 벌 받던가 용서 받던가 그건 그 사람과 하나님과 해결할 문제지 내가 미워하고 판단하고 정죄하고 망하기를 바
라는 것은, 하나님 앞에 더 큰 악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을…
▮요나에게 질문으로 끝나는 하나님의 말씀
– 너의 성냄이 어찌 합당하냐?
– 박넝쿨로 인하여 성냄이 어찌 합당하냐?
– 내가 아끼는 것이 어찌 합당치 아니하냐?
요나서는 하나님의 답도 결론도 없이 끝난다. 당연히 ‘요나가 듣고 크게 깨달았더라, 회개하였더라, 돌이켜 하나님의 뜻에 복종 하였더라’는 말로 끝맺어야 하는데, 그냥 질문으로 끝을 맺고 있다.
요나는 하나님의 이 질문 앞에 입을 열어 대답해야 했다. 그러나 그는 입을 다물어버린다. 무슨 뜻인가? 독자인 우리에게 답을 요구하시는 것이다. 우리도 요나와 별반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당신은 무엇이라 답을 하실 것인가?’
▮ 예비하시는 하나님
요나서에는 특이하게 ‘예비하시는 하나님’라는 내용이 반복해서 나오고 있다.
– 다시스로 가는 배를 예비하시고
– 이미 큰 물고기를 예비하시고
– 요나를 깨우치기 위해 폭풍을 예비하신다.
본문에서는, 6절엔, ‘박넝쿨을 예비하시고’, 7절엔, ‘벌레를 예비하시고’, 8절엔, ‘뜨거운 동풍을 예비하신다.’
요나에게는 우연처럼 보였겠지만 사실은 치밀한 하나님의 준비에서 비롯되고 있다.
– 노아를 위해서는 방주를 예비하셨다.
– 이브라함을 위해서는 이삭을 예비하셨다.
– 이삭을 위해서는 숫양을 예비하셨다.
참새 한 마리가 한 앗사리온에 팔리우는 것도 하나님의 허락 없이 이루어지지 않는다. 하나님의 용서의 사랑과 요나의 공의의 충돌은 결국 하나님의 사랑의 승리로 끝나고 있다. 그 승리가 세상의 죄인들을 구원하시고요~ 나도 살려주신 것임을 잊지 말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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