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동주의 부끄러운 자화상, 참회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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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저널=안준배 박사] 윤동주의 부끄러운 자화상, 참회록 » 윤동주 시 평론 시리즈 <5회> »
윤동주의 <자화상>은 나의 부끄러운 자화상이기도 하다…
윤동주는 1942년 1월 30일경에 쓴 시 <참회록>에서 ‘거울’이라는 시적 소재를 통해서 자신의 삶을 성찰한다. 인간의 마음속에는 저마다 의 거울이 하나씩 숨겨져 있다. 시인은 양심, 자아, 내면이라는 거울로 자신을 닦아 보자는 것이다.
윤동주는 1939년 9월에 우물에 비친 자신의 내면을 묘사한 <자화상>이란 시를 지어서 1941년 연희전문의 <문우>에 발표하였다.
산모퉁이를 돌아 논 가 외딴 우물을 홀로 찾아가선
가만히 들여다 봅니다.
우물 속에는 달이 밝고 구름이 흐르고 하늘이
펼치고 파아란 바람이 불고 가을이 있습니다.
그리고 한 사나이가 있습니다.
어쩐지 그 사나이가 미워져 돌아갑니다.
돌아가다 생각하니 그 사나이가 가엾어집니다.
도로 가 들여다보니 사나이는 그대로 있습니다.
다시 그 사나이가 미워져 돌아갑니다.
돌아가다 생각하니 그 사나이가 그리워집니다.
우물 속에는 달이 밝고 구름이 흐르고 하늘이
펼치고 파아란 바람이 불고 가을이 있고
추억처럼 사나이가 있습니다.
윤동주는 우물을 통해서 자신의 모습을 들여다본다. <자화상>은 일제강점기를 살아가는 시인이 직접 저항하지 못하는 자아에 대한 부끄러움이 드러난다. 우물에 비친 못난 자아가 미워져 돌아가지만 생각하니 가엾어져서 다시 돌아가 우물을 본다. 여전히 가엾은 자아는 다시 그 자리에 있어서 돌아가지만, 그 사내가 그리워진다는 부끄러운 내민을 다시 확인한다. 윤동주의 <자화상>은 나의 부끄러운 자화상이기도 하다.
윤동주는 1942년 1월 30일경에 쓴 시 <참회록>에서 ‘거울’이라는 시적 소재를 통해서 자신의 삶을 성찰한다. 인간의 마음속에는 저마다 의 거울이 하나씩 숨겨져 있다. 시인은 양심, 자아, 내면이라는 거울로 자신을 닦아 보자는 것이다.
파란 녹이 낀 구리 거울 속에
내 얼굴이 남아 있는 것은
어느 왕조의 유물이기에
이다지도 욕될까
나는 나의 참회의 글을 한 줄에 줄이자
-만 이십사 년 일 개월을
무슨 기쁨을 바라 살아왔던가
내일이나 모레나 그 어느 즐거운 날에
나는 또 한 줄의 참회록을 써야 한다.
-그때 그 젊은 나이에
왜 그런 부끄런 고백을 했던가
밤이면 밤마다 나의 거울을
손바닥으로 발바닥으로 닦아보자
그러면 어느 운석 밑으로 홀로 걸어가는
슬픈 사람의 뒷모양이
거울 속에 나타나 온다.
윤동주는 ‘파란 녹이 낀 구리 거울 속에 보이는 자아를 성찰했다. 스스로를 욕된 자아로 인식하였다. 시인은 자기 성찰의 끝에서 떨어지는 운석을 보고 자신이 그 별 밑을 홀로 걸어가는 슬픈 사람이라고 인식하였다. 윤동주는 만 24년 1개월의 짧은 시간을 그렇게 통렬히 참회했으나, 나의 오랜 일기는 손바닥으로 발바닥으로 밤마다 닦은들 깨끗해질 것인가.
비록 지금은 구리 거울로 희미하게 모습을 비춰 보지만 그날이 오면 얼굴과 얼굴을 맞대고 분명히 볼 것이다. 내 비록 지금은 알고 있는 것이 모두 다 몽롱하고 흐리나 주 앞에 서게 되면 하나님께서 내 마음을 꿰뚫어 보시듯 나도 모든 것을 분명히 알 수 있을 것이다.
나의 지난날은 말하는 것이나 생각하는 것이나 판단하는 것이 모두 다 어렸으니 예수님을 마주하게 되면 어렸을 적 말이나 생각이나 판단을 모두 다 내버리게 될 것이다.
스물일곱 살의 짧은 생애를 살았던 윤동주는 희미하게 보이는 우리의 구리 거울이다. 윤동주라는 변함없는 시대의 거울은 우리가 행한 부끄러움을 깨우쳐 주고 있다. 윤동주가 이 땅에 온 지 10년. 그리고 그가 민족의 제단에 순혈로 바쳐진 지 77년이 흘렀다. 우리는 윤동주가 걸어간 스물일곱 성상에 쓴 그의 시에서 우리 각자에게 주어진 길을 찾아가야 할 것이다. 윤동주가 회의와 주저함을 넘어서 희생양 예수처럼 시대의 소명을 따른 것 같이 우리도 우리의 소명의 길을 따를 수 있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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