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7. 나눈 후에 그 일을 기억하지 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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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저널=정이신 목사] 47. 나눈 후에 그 일을 기억하지 마라 »
하나님의 지혜는 남을 지배하는 것보다 섬기는 것으로 나타나…
<3:28>은 <레위기 19:13>을 인용했습니다. <레위기>는 품꾼을 쓴 후 그 사람의 품삯을 다음 날 아침 무렵에 주지 말고, 그날 안에 주라고 했습니다. 이스라엘의 날짜 계산법에 따르면 해가 지면 다음 날이 됩니다. 따라서 <레위기>는 품꾼의 품삯을 해가 지기 전에 주라고 한 것입니다…
가난한 사람에게 일을 잔뜩 시켜 놓고 품삯을 인색하게 정산해 주거나 떼어먹는 악덕 기업주는 결코 복을 받지 못합니다. 자기 손에 선을 행할 힘이 있는 데도 도움을 요청하는 사람에게 선을 베풀지 않고 주저하거나(3:27), 줄 수 있는 돈이 있는데도 가난한 사람에게 품삯을 받으러 내일 오라고 되돌려 보내는 일은 성경에서 금하는 일입니다.
예를 들어 영세업자가 도매상에게 물건을 대주고 난 후 대금을 받으러 가면 일부러 내일, 모레 오라고 질질 끌면서 영세업자를 골탕 먹이는 사람이 있습니다. 이런 사람에게는 하나님의 복이 안 갑니다.
그런데 장사하는 사람뿐만 아니라 사이비ㆍ이단 교주들도 이런 일을 합니다. 사이비ㆍ이단 교주들이 자기를 추종하는 사람들에게 주는 월급을 보면 기가 막힌 경우가 너무 많습니다. 사이비ㆍ이단 교주들이 누리는 호화로운 생활과 달리 저들의 추종자들에게 주는 월급은 아주 터무니없이 적게 책정돼 있습니다.
어떤 사이비는 그곳에서 메시아라고 불리는 사람을 위해 평생 수고했던 사람을 몇 푼 안 되는 돈 때문에 사기죄로 몰아 교도소에 보내기도 했습니다. 새로운 시대를 만났으니 알아서 자신에게 충성하라고 해놓고, 월급은 쥐꼬리만큼 주면서, 추종자들의 궁핍한 생활과 달리 호화로운 생활을 누리고 있는 사이비ㆍ이단 교주들은 <3:28>에서 말한 악덕 고용주와 비슷합니다.
이웃과 무엇을 나누며 살 때는 절대 자신의 것을 나눴다고 그 일을 기억하면 안 됩니다. 내 것을 나눠준 게 아니고 하나님이 내게 맡긴 그의 몫을 다시 그에게 되돌려준 것이니, 나눈 후에 곧바로 내가 나눴다는 사실을 잊어버려야 합니다.
내가 나눈 것을 기억하고 있다가, 하나님 앞에 가서 ‘제가 이렇게 나누며 살았습니다’라고 말하는 것보다, 나는 전혀 기억하지 못하는데 하나님이 ‘너는 이렇게 나누며 살았구나’라고 말씀해 주시는 게 훨씬 더 낫습니다. 선은 내가 기억하는 게 아니고 하나님이 기억하십니다. 내가 남에게 선을 베풀었다고 기억하는 순간부터 그건 나에게 덫이 되거나(3:26) 올무가 됩니다. 그러니 다른 사람에게 베푼 선한 행동은 될 수 있는 한 빨리 잊으십시오.
하나님의 능력은 주님의 말씀에 따라 살았을 때 나타납니다. 하나님의 말씀과 연계하지 않으면 우리 삶에 주님의 능력이 나타나지 않습니다. 성경은 인간이 하나님의 형상과 모양을 지닌 고귀한 존재라고 했는데(창세기 1:27), 내가 보일 수 있는 능력이 주님과 전혀 연관 없는 것이면 안 됩니다.
우리가 선한 행동을 해야 하는 이유는 하나님이 선하신 분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선하신 분이기에 우리가 다른 사람에게 하는 선한 행동을 통해, 우리는 주님의 능력이 드러나는 통로가 됩니다. 또 <3:27>에서 “선”으로 번역한 히브리어는 ‘토브’입니다. 이 단어가 형용사로 쓰일 때는 ‘좋은, 선한, 즐거운, 유쾌한’이란 뜻이고, 명사로 쓰일 때는 ‘좋은 것, 선, 이익, 번영, 복지’란 뜻입니다. 이 말씀에 따라 남과 서로 나눌 때는 좋은 것으로 나눠야지 나쁜 것으로 나누면 안 됩니다.
하나님의 지혜는 남을 지배하는 것보다 섬기는 것으로 나타납니다. 나만 하나님의 피조물이 아니라 저 사람도 주님의 피조물이기에, 내게 행복이 중요한 만큼 저 사람에게도 중요합니다. 그러므로 저 사람을 내 방식으로 만들어 사랑하려고 하지 말고, 저 사람이 지닌 방식을 존중하며 섬기는 방식으로 사랑하십시오.
이는 부모와 자식 사이에도 적용됩니다. 바울은 자식이 부모에게 해야 할 행동과 부모가 자식에게 해야 할 행동을 같이 말했습니다(에베소서 6:1∼4). 이는 구약성경에서 주로 자식이 부모에게 해야 할 행동만 언급했던 것과 다릅니다. 만약 자식이 하나님을 거역하고 사이비ㆍ이단을 추종하는 비성경적인 길로 들어선 게 아니라면, 그 아이에게 나타난 주님의 은혜를 기억하며 서로 존중하는 게 좋습니다.
신약성경은 선으로 악을 이기며 세상을 섬겼던 모델로 예수님을 제시합니다. “인자(人子ㆍthe Son of Man)는 섬김을 받으러 온 게 아니라 섬기러 왔으며, 많은 사람을 구원하기 위해 치를 몸값으로 자신의 목숨을 내주러 왔다.”라고 예수님이 직접 말씀했습니다(마가복음 10:45).
이 말씀은 복음서에서 가장 핵심이 되는 내용으로, 예수님의 십자가를 부정하는 사이비ㆍ이단들의 주장이 잘못된 것이라고 그분이 직접 알려주신 말씀입니다. 이 말씀대로 예수님은 낮아져서 다른 사람을 섬기는 본을 제자들에게 직접 보여주셨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이지만 그분의 영광은 다른 사람을 섬기기 위해, 궁극적으로 자기 목숨을 인류가 지은 죄의 대가로 내주실 종의 형태로 드러내셨습니다. 그래서 바울도 “하나님의 모습을 지니셨으나, 하나님과 동등함을 당연하게 생각하지 않으시고, 오히려 자기를 비워서 종의 모습을 취하시고, 사람과 같이 되셨다.”라고 예수님에 대해 증언했습니다(빌립보서 2:5∼8). 이런 면에서 예수님은 <잠언>에서 말한 하나님의 지혜를 이 땅에 완벽하게 구현하신 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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