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9. 의인의 집에 내리는 복
Share This Article
[교육저널=정이신 목사] 49. 의인의 집에 내리는 복 »
하나님이 가지 말라고 하신 길로 가는 게 역겨운 것…
“역겨운 일”이란(3:32) 히브리어로 ‘루즈’인데, ‘비뚤어지다, 올바른 길에서 빗나가다’란 뜻입니다. 길을 잘못 들어 하나님이 가지 말라고 하신 길로 가는 게 역겨운 것입니다. <유다서 1:11>은 이를 “가인의 길”이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이 저런 일을 하는 사람을 미워하신다고 했는데, 이는 그 사람을 좋아하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하나님이 좋아하지 않으시니 그 사람의 앞날은 불 보듯 뻔합니다. 이와 달리 바른길을 걷는 사람과는 하나님이 늘 의사소통을 하십니다.
내가 모르는 게 있더라도 하나님과 의사소통을 하고 있으면 성령님께 물어보면 됩니다. 또 이런 사람에게 부족한 게 생기면 성령님이 채워주십니다. 그래서 하나님과 늘 의사소통을 하는 사람을 사탄이 함부로 대할 수 없습니다.
우리나라가 다른 나라와 외교 관계가 어그러지면 비공식적인 루트를 통해 그 나라와 물밑접촉을 합니다. 이때 중요한 게 물밑접촉을 하는 사람들의 의사소통 신뢰도입니다. 물밑접촉을 거짓으로 하면 외교 관계가 완전히 뭉개집니다.
이를 하나님과 크리스천의 관계에 적용해 보겠습니다. 하나님은 바른길을 가는 사람에게 주님과 늘 사귀도록 하는 복을 주십니다. 또 하나님과 소통하고 있는 사람에게는 세상 사람이 모르는 보호막을 둘러 주십니다. 이 보호막은 사탄도 함부로 뚫을 수 없습니다. 그래서 요한은 사탄을 상징하는 짐승들이 성도와 싸워서 이길 것을 허락받았다고 했습니다(요한계시록 13:7). 또 욥을 시험하는 사탄들에게 하나님은 그의 생명은 절대 손대지 말라고 하셨습니다(욥기 2:6). 이게 하나님과 소통하며 사는 사람이 받는 복입니다.
<3:33>에서 악인의 집에 내리는 저주와 의인의 집에 내리는 복을 대비했습니다. 그런데 악인의 집에 있는 저주는 어디서 생긴 것일까요? 이는 하나님이 내리신 것이라기보다는 스스로 만들어 낸 것입니다.
악인의 집에는 미움ㆍ다툼 같은 육체의 열매가 차고 넘치게 되고, 의인의 집에는 성령의 열매가 끊어질 날이 없습니다(갈라디아서 5:19∼23). 그런데 <갈라디아서>에서 육체의 열매는 복수고, 성령의 열매는 단수입니다. 육체의 열매는 복수기에 서로 다르다고, 자신의 영역을 더 크게 갖겠다고 늘 싸웁니다. 그러나 성령의 열매는 단수로 서로 한 몸이기에 싸울 일이 없습니다. 그래서 의인의 집에는 하나님의 복이 차고 넘치게 됩니다.
<3:33>을 성경에서 말한 복의 관점으로 보면 다른 면도 보입니다. 이 말씀에서 “복”은 히브리어로 ‘바라크’입니다. 이는 ‘무릎을 꿇다, 축복하다, 복을 주다, 찬양하다’란 뜻을 지닌 동사입니다. 우리가 진정한 복을 받기 위해서는 복을 주시는 하나님께 무릎 꿇어야 하고 주님을 찬양해야 합니다.
반면 “저주”는 히브리어로 ‘메에라’인데, 이 단어는 ‘장애물로 에워싸는 것, 저항하기에 무력한 것, 풍요를 즐기는 게 금지된 것’이란 뜻이 있습니다. 인간이 한평생 절대 무릎을 꿇지 않고 살 수는 없습니다. 다만 무릎 꿇어야 할 대상에게 무릎을 꿇지 않고 다른 것에 무릎 꿇으면, 메에라란 히브리어가 가지고 있는 의미들이 더 가까이 다가옵니다.
<3:34∼35>을 보면 인간 못지않게 감성이 풍부하신 분이 하나님입니다. 하나님은 교만한 사람을 싫어하시고 저가 가진 교만에 저를 그대로 내버려 두십니다(로마서 1:24ㆍ26ㆍ28). 그러면서 하나님은 교만한 사람이 주장하는 ‘자기의 의(義)’를 비웃으십니다. 교만한 사람은 대단한 것도 아닌데 대단한 일을 벌인 것처럼 자신을 포장합니다.
하나님은 때가 될 때까지 저의 교만함을 그대로 내버려 두셨다가 심판의 때가 되면 과감하게 손대십니다. 이때 교만한 사람이 그동안 자기의 것이라고 말했던 것들이 모두 하나님의 것으로 바뀌는 일이 벌어집니다. 숨어 있던 원주인이 나타나 주인이 바뀝니다. 그래서 이런 일이 일어날 것을 미리 아는 지혜 있는 사람은 하나님의 영광을 물려받지만, 미련한 사람은 수치를 당합니다(3:35).
첨언하면 수치를 누구에게 당하느냐도 중요합니다. 인간에게 당하는 수치는 인간이 최종결정권자이므로 하나님 앞에 가서 다른 것으로 보상받을 수 있습니다만, 주님께 받은 수치는 다른 것으로 바꿀 수 없습니다. 따라서 우리가 하나님께 수치를 당하는 사람이 되면 안 됩니다.
◙ Now&Here©ucdigiN(유크digitalNEWS)의 모든 콘텐트(기사)는 저작권법으로 보호를 받고 있습니다. 무단 전재,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