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방기독교의 십자가 연구-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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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저널=김규동 박사] 동방기독교의 십자가 연구-2 »
A Study on the Cross of Eastern Christianity
청동십자가에 자주 등장하는 “卍✥✣✜✚∇□○❮❯∧∨⊢⊣⊤⊥”이 자주 등장하는데, 이것은 고대 어느 특정 종교의 심벌이 아닌 문화, 예술, 종교 등 석기시대부터 이미 자주 사용되어온 “빛”과 “동서남북”을 가르키는 상징적인 표현…
내몽골 지역에서 출토된 景敎 십자가 분류
헬라식 십자가
헬라식 십자가 또는 정방형 십자가라고도 부르며 초대 기독교 공동체에서 자주 사용된 십자가 형태이다. 이 십자가는 상하좌우 길이가 동일하여, 기독교의 세계선교에 대한 관심을 상징했다. 내몽골 지역에서 출토된 헬라식 십자가는 다양했으며, 주로 외관은 넓고 내부는 좁고 축소된 상태의 것 등이 많았다.
(비고) 내몽골에서 출토된 헬라 십자가 중, 어떤 것은 상하의 길이가 좀 더 길고 네 부분의 교착점에 원형이 들어가 있는 것도 있었다.
몰타식 십자가
특징은 상하좌우 길이가 거의 동일하고, 끝이 제비꼬리를 닮아서, 제비꼬리 십자가라고도 불렸다. 이 십자가는 정방형 십자가에서 변형된 것으로, 최초 은화에서 나타났다. 후일 1050년 창설된 십자군 의료기사단이 처음 십자군 전쟁시 사용했고, 이어서 몰타 기사단이 사용하였다. 이 십자가는 모두 여덟 개의 꼭지점이 있는데, 기사의 성실과 용감, 경건과 두려움 없음과 충성, 존경과 영광 그리고 구제, 여덟가지 덕으로 팔복을 상징했다. 내몽골 達爾罕茂明聯合安聯合旗의 木胡爾索卜爾嘎 고성 밖에 있는 묘지에서 이런 십자가들이 많이 발견되었다, 내몽골 지역에서 발견된 이런 특징의 십자가 외에 네 부분의 공간에 원형을 넣었는데, 이는 보석에서 변형되어 온 것이다.
(비고) 내몽골 지역에 있는 몰타 십자가는 밑 부분이 좀 더 길고 네 부분의 교차점에 원형을 주로 새겨 넣었다.
성도마식 십자가
인도에서 자주 목격되는 십자가다. 좌우가 비교적 짧고 상하가 좀 더 길며 특히 아래가 위보다 긴 것으로, 전형적인 헬라식 십자가에서 변형되어 온 것으로 각 부분에 꽃망울 같은 세 갈퀴가 있어서 꽃봉오리 십자가라고 불렀다. <大秦景敎流行中國碑> 중에 언급된 십자가는 이와 상당히 비슷하지만, 내몽골의 십자가 형태가 좀 더 꽃봉오리 같은 모양으로 싹이 변형 돌출된 것처럼 보인다.
(비고) 내몽골 지역에 있는 성 도마 십자가는 비록 많이 발견되지 못했지만, 그 특징으로는 상하의 길이가 좀 더 길고 네 부분의 교차점에 원형이 새겨져있다.
“卍”- 문화, 예술, 종교 등 석기시대부터 이미 자주 사용되어온 “빛”과 “동서남북”을 가르키는 상징적인 표현
70년대 말, 굽이굽이한 황하유역에서 삼백여개 이상의 청동십자가가 발견되었다. 그 중 다수 청동십자가 정면에는 불교를 상징한 “卍”자가 새겨져 있었다. 이에 권위있는 경교 역사연구가 사에끼(佐伯好郎)교수는 이에 대해, “경교도들이 휴대하고 다니는 부적”에 가깝다며, 불교의 영향을 받은 게 틀림없다고 말했다. 또 다른 견해는 칭기즈칸의 몽골군이 유럽원정을 다녀오면서 가져온 게 아닌가하는 추측도 있었다.
그동안 景敎 청동십자가 관련 부정확한 편견들에 대해 필자는 고고학적 입장에서 좀 더 쉽게 이해를 돕고자 한다. 景敎碑 원문 서두 부분에 ‘判十字以定四方’을 직역하면 ‘동서남북 사방을 나누어 정했고’, 즉, 엘로힘(אלהים) 하나님의 천지창조에 이어, 지면을 동서남북으로 정했다는 창세기에 근거한 내용인 것이라고 말했다. 景敎의 “景”은 “비추다”라는 뜻으로 “널리 두루 비추는 종교” 즉, 동서남북 창조주의 섭리를 두루 선포하고 전파하는 동방교회의 사명을 그대로 반영한 명칭이다.
특히 그들이 소유하고 다녔던 신앙의 표식인 청동십자가에 자주 등장하는 “卍✥✣✜✚∇□○❮❯∧∨⊢⊣⊤⊥”이 자주 등장하는데, 이것은 고대 어느 특정 종교의 심벌이 아닌 문화, 예술, 종교 등 석기시대부터 이미 자주 사용되어온 “빛”과 “동서남북”을 가르키는 상징적인 표현이다. 또한, 고대 유럽과 인도에서도 사용했다고 전해진다. 이렇듯 자칫 지금의 안목으로 고대사를 평가한다는 건 참으로 위험스런 일이다.
당태종이 페르시아로부터 전래해 들어온 동방교회에게 “경교”란 칭호를 하사한 것은 동방교회가 그동안 실크로드 상에서 얼마나 헌신적인 사역을 해왔는가에 대해 여실히 보여주는 대목이다. 그들은 “복음과 의술”을 민간에 베풀어 주변국에서 명성이 자자했던 것으로 파악된다. 즉 빛과 소금의 사명을 감당했던 소문이 당나라 수도 장안성의 태종의 귀에까지 들려 온 것이다.
다시 말하자면, 고대 동방기독교는 안디옥교회의 전통과 사명을 이어받아 복음전파를 최우선 사명으로 받아 고대부터 자연스럽게 이 로고를 사용했으며, 7세기 이후, 이슬람교도와 이단&사이비 사이에서 자신들의 신앙의 정체성을 수호하기 위한 증표로 사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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