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3. 하나님을 좋아하는 게 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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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저널=정이신 목사] 53. 하나님을 좋아하는 게 복이다 »
가진 모든 것을 다 바쳐서라도 명철을 얻으라…
지혜를 가슴에 품고 있으면(4:8) 머리로만 알던 좋은 지식이 머리에서 가슴으로 내려오고 이어서 손발로까지 내려갑니다. 그러면 부흥이 일어납니다. 부흥은 인간이 하나님 앞에서 가야 할 길을 가는 것입니다. 크리스천이 가야 할 길을 가고 있으면 그에게 하나님의 능력이 나타납니다. 그래서 교회에는 부흥이 중요합니다…
하나님도 좋아해야 믿을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역사를 즐거워하지 않으면 믿기 힘듭니다. 성령님의 인도하심을 반가워하지 않으면서 하는 순종은 자발적인 게 아니기에 오래가지 못합니다.
그런데 인간이 하나님을 좋아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게다가 하나님을 어느 정도 알아야 좋아할 수 있는데, 도무지 주님의 깊은 속사정을 알 수 없습니다. 이때 우리에게 하나님의 속사정을 알려주시는 분이 성령님입니다(로마서 8:26∼27). 성령님은 하나님의 뜻이 뭔지 인간에게 알려주시고, 그 뜻에 따라 기도하게 하십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영감으로 된 성경이 있습니다(디모데후서 3:16). 성령님과 성경은 오늘도 우리에게 하나님이 어떤 분인지 알려줍니다. 기독교가 삼위일체신론이란, 수학적으로 잘 들어맞지 않는 신론을 여전히 외치고 있는 이유가 우리 삶에 나타난 이런 신앙의 신비 때문입니다. 인간이 하나님을 좋아하게 되는 것은 성령님의 개입 없이 인간의 힘만으로는 불가능합니다. 그래서 기독교는 많은 사람의 오해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삼위일체신론을 주장합니다.
인간이 가진 모든 것을 다 바쳐서라도 명철을 얻으라고 했습니다(4:7). 이는 하나님의 복이나 응답을 가져오는 기술을 포함하는 것이기에 굉장히 중요합니다. 그래서 지혜(호크마)를 얻고, 네가 가진 것을 다 바쳐서라도 명철(비나)을 얻으라고 했습니다.
이 말씀은 예수님이 천국을 비유로 설명하신 ‘밭에 숨겨놓은 보물’이나 ‘좋은 진주를 구한 상인 이야기’를 암시합니다(마태복음 13:44∼46). 이 비유는 <마태복음 13장>에만 나왔는데, 천국이 마치 이와 같은 곳이라고 예수님이 비유로 말씀했습니다. 천국은 지구에 있는 언어로 제대로 표현할 수 없고, 오직 천국의 언어로만 완벽하게 표현할 수 있는 곳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비유를 통해 천국이 이와 같다고 설명했습니다.
고대 중동에는 현대사회처럼 은행제도가 건실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땅에 보물을 숨겨놓는 게 일반적이었습니다. 도둑이 들거나 다른 나라의 침략에 대비해 사람들이 집안의 깊숙한 곳이나 뒷마당에 땅을 파고 보물을 숨겨 놨었습니다.
예수님이 말씀하신 비유에서는, 어떤 소작농이 밭을 갈다가 보물이 담긴 상자를 발견하고 몰래 숨겨 놨습니다. 그리고 그 밭을 자신의 모든 소유를 팔아서 산 후 밭에 숨겨져 있었던 보물까지 자기 것으로 만들었습니다. 오늘날은 이런 거래를 시도하면 범죄가 됩니다. 그러나 <마태복음 13장>에서 밭의 주인이 소작농에게 밭을 판 것은, 보물의 주인이 자신이 아니라는 뜻입니다. 만약 자신의 밭에 보물을 숨겨뒀다면 소작농에게 그 밭을 팔 리가 없습니다.
예수님은 이 비유를 통해 천국은 이처럼 예기치 못하게 귀한 것을 발견한 후, 모든 희생을 치르고서라도 그걸 얻는 것과 같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잠언>은 지혜와 명철을 얻는 일이 이와 같다고 합니다.
지혜를 가슴에 품고 있으면(4:8) 머리로만 알던 좋은 지식이 머리에서 가슴으로 내려오고 이어서 손발로까지 내려갑니다. 그러면 부흥이 일어납니다. 부흥은 인간이 하나님 앞에서 가야 할 길을 가는 것입니다. 크리스천이 가야 할 길을 가고 있으면 그에게 하나님의 능력이 나타납니다. 그래서 교회에는 부흥이 중요합니다.
그런데 부흥은 절대 교인의 숫자와 비례하지 않습니다. 우리가 사이비ㆍ이단들의 모임을 보고 사람이 많아졌다고 하지 부흥했다고 하지 않습니다. 어떤 교회가 가야 할 성경적 길을 가는 게 부흥이고, 단순히 모이는 사람의 숫자가 많아지는 것은 성장입니다. 부흥에는 성도가 거듭나는 성령님의 역사가 나타나지만, 성장에는 이게 나타나지 않고 성장을 이끌기 위한 온갖 권모술수가 나타납니다.
바울은 예수님을 아는 지식이 가장 고귀하기에 그 밖의 모든 것을 해로 여긴다고 했습니다(빌립보서 3:8). 이 말씀에서 바울이 ‘해로 여겼다는 모든 것’이 대체 뭔지 많은 사람이 연구했습니다. <빌립보서>가 바울이 감옥에서 쓴 편지이기에 처음에는 이 일이 감옥에서 벌어진, 그를 배신한 사람에 관한 일이라고 여겼습니다.
그러다가 신학자 브루스(F.F. Bruce)가 바울의 일생을 통해 보건대 이것은 바울이 파혼당한 것이라고 주장했습니다. 브루스는 바울의 나이와 출신 지파들을 고려했을 때, 그가 예수님의 제자가 된 후로 여자 집안으로부터 이단의 괴수라고 파혼당했을 가능성이 크다고 했습니다.
이 해석이 우리나라에는 널리 알려지지 않았지만, 외국의 신학계에서는 나름대로 근거가 있다고 널리 알려졌습니다. 그러나 진실은 아무도 모르고 우리가 예수님 앞에 갔을 때 알 수 있습니다. 다만 브루스의 해석이 맞는 것이라면, 바울은 지혜의 대명사인 예수 그리스도를 얻기 위해 엄청난 고난을 감내한 사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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