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사장 국가 그리고 분단 70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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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성칼럼=Dr. Elijah Kim] 제사장 국가 그리고 분단 70년 »
하나님의 뜻과 경륜 안에서 복음통일의 역사 이루는 것 필요
2023년 5월 21일부터 5월 31일까지 워싱턴 DC 및 뉴욕에서 진행된 북한기독교총연합회(북기총)의 탈북민 목회자들의 미국 방문과 미주 한인교회 20교회 자매 결연은 단순한 행사 차원이 아닌 70년 분단의 자물쇠를 풀고 열쇠를 여는 길임을 봅니다…
글을 시작하면서
1953년 7월 27일 북한군과 유엔군 당사자간에 체결된 정전 협정이 지난 지 70년이 되었습니다. 북한의 핵무장은 날이 갈수록 더하고 있고, 끊임없는 도발은 그칠 줄 모릅니다. UN을 비롯한 국제사회에서 가하는 국제제재는 갈수록 북한을 고립화 시키고 있습니다. 현존하는 아우슈비츠라 일컫는 북한의 정치범 수용소에는 2021년 7월 기준으로 23만 2400명에 달하고 있습니다. 북한에 사는 것만으로도 대단한 인권유린과 혹독한 삶인데 정치범 수용소에서 자행되는 반인권적이며 무자비한 폭행과 살상은 지금 이 시대를 살고 있는 우리에게는 가장 큰 고통과 고문입니다. 속히 하나님의 뜻과 경륜이 북한의 혹독한 분단의 문을 열고 복음 통일을 이루는 민족으로 그리고 한민족을 제사장 국가로 사용해 주시기를 기도합니다.
성경적 한민족 통일방안
2023년 5월 21일부터 5월 31일까지 워싱턴 DC 및 뉴욕에서 진행된 북한기독교총연합회(북기총)의 탈북민 목회자들의 미국 방문과 미주 한인교회 20교회 자매 결연은 단순한 행사 차원이 아닌 70년 분단의 자물쇠를 풀고 열쇠를 여는 길임을 봅니다. 무엇보다도 이는 인간의 지혜나 정치적 역학 관계나 또는 지식으로 되는 것이 아니고 다니엘처럼 기도함으로 분단과 통일의 길목에서 하나님의 뜻과 경륜을 깨닫고 하나님의 뜻과 경륜 안에서 복음통일의 역사를 이루는 것이 필요합니다.
지금 우리 민족에게 필요한 것은 수백, 수천 그리고 수만가지의 통일이론이 아닙니다. 우리민족의 통일은 수많은 경우의 수가운데 가장 가능성이 높은 통일 이론대로 되는 것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께서 예정하신 뜻과 섭리 만이 역사하실 때 이루어질 것입니다.
그러기에 학자들이 내 놓은 통일방안도, 위정자들이 발의한 통일방안도, 심지어 통일부의 통일방안도 인간이 만든 계획일 뿐입니다. 지금 한반도의 상황은 동서독 통일과는 방향이 다르게 가고 있습니다. 공산권이 무너질 때에도, 중국과 인도차이나 공산권의 개혁 개방 시기에도, 북한 만은 역사를 거스르는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습니다. 그것은 공산주의 사회 실현을 위해 나아가다가, 공산주의를 중도 폐기하고, 북한식 사회주의 구현을 넘어서 김일성 수령 영도주의로 이행하면서 이제는 사회주의의 이름을 쓴 우상숭배 왕조국가가 되었기 때문입니다. 지구상에 존재하는 사회주의 국가나 공산주의 국가가 행하고 있는 것과 다른 역사적 흐름을 역행하고 있는 나라가 바로 북한입니다. 동아시아의 역학 관계 가운데 만약 민족 공동체론이나 한민족 네트워크론이 어렵다면 동아시아 경제 공동체로서 담론을 펼칠 수는 있겠지만 이 역시 이론과 정책이 빚은 실현 불가능한 인간 이론일 뿐입니다.
이런 기저에서, 한민족 공동체 통일론과 한민족 네트워크론 및 동아시아 공동체론에 대한 수많은 논문들이 모두 다 실현 가능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아무리 많은 이론이 있다 해도, 우리 민족의 역사 한 가운데 하나님의 주권과 역사하심이 없다면 이 통일 이론들은 불쏘시개 거리도 안되는 휴지 조각으로 버려지고 말 것입니다. 동서독이 통일 되기 전 외재적 또는 외부자적 접근 (Emic approach) 이라는 통일이론이 있었습니다. 또 반대로 내재적 또는 내부자적 접근(Etic approach)이라는 학문이론도 있었습니다. 남한과 북한의 문화적 이질감은 서로 다른 입장을 어떻게 그리고 어떤 방법으로 접근하느냐의 문제가 매우 중요한데 동서독 사이에서도 학문적 이론과 접근법이 매우 다양하게 시도되었습니다. 동서독 사이에서 상호 이질적 문화를 접근함에 있어서 문화의 보편적 관점을 강조하는 것이 내부자적 접근인 ‘Etic approach’입니다. 이와 반대로 문화적 상대성과 특수성을 강조하는 것이 외부자적 접근인데 이를 ‘Emic approach’ 라고 하며 폐쇄된 북한 사회에서 살면서 생겨난 사회 행동과 문화적 결과들을 이해하고 접근하는데 많은 도움을 주고 있습니다. 이외에도 수많은 이론들이 있습니다. 동서독은 이념 논쟁과 투쟁에 있어서도 결코 남북한 대결에 뒤지지 않을 정도로 맹렬했지만 결국 통일의 도화선은 이러한 통일론에 관한 이론들로부터 일어난 것이 아니었습니다. 바로 라이프치히 성 니콜라스 교회의 월요 기도회가 통일을 여는 도화선이었으며 또한 열쇠였습니다. 이로써 열려진 문은 1989년 11월 9일 동독 기자 회견에서 동독 대변인 샤보브스키의 실수를 통해 결코 다시는 닫을 수 없는 즉 뒤집을 수 없는 1989년 11월 9일의 베를린 장벽의 붕괴를 가져왔습니다.
이처럼 우리에게도 역사의 벽을 허물고 닫힌 문을 여는 모멘툼이 필요합니다.
북한의 많은 사건 가운데 한반도에 물리적 통일이 실제로 가능했던 여러 번 기회가 있었습니다. 내부 반란 또는 내부 봉기에 의한 쿠데타 내지 정권 붕괴가 여러차례 북한에 있었습니다. 저의 이전 논문에 이러한 일련의 사건들을 일목요연해서 정리하여 나눈 바 있습니다. 외부적 요인 또는 물리적 작용에 의한 통일도 있었습니다. 군사적인 개입에 의한 ‘정권교체 (Regime change)‘도, 외부적 물리적 개입의 한 방면일 수 있습니다. 남북 상호 작용에 의한 것도 있습니다. 미국이 오랫동안 그려왔던 리짐 체인지 즉 정권 교체 내지는 인위적 정권 붕괴 시나리오도 있습니다. 고난의 행군과 같은 내부적 기아와 기근 사태로 국가의 존립의 위기까지 간 적이 있습니다. 그러나 결론적으로 말하면 우리는 아직도 북한 정권이 존재하고 있음을 보고 있습니다. 어찌 보면 소련이나 구 동구권 그리고 동독 보다도 더 열악한 상황에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북한이 무너지지 않았던 이유는 매우 다양합니다. 그것은 바로 김일성 김정일 김정은으로 이어지는 김일성 가문을 유지할 수만 있다면 북한 주민이 다 학살된다 해도 개의치 않겠다는 무자비함과 잔혹함이 김정은 체재에 있기 때문입니다.
반드시 열어야 할 복음 통일의 문
지금까지 70년 동안 남북 관계에 있어서 그리고 북한 내부의 붕괴 직전까지 가는 상황에서도 통일이 쉽지 않았음을 우리는 분명히 보았습니다. 저의 의견은 그렇게 억지로, 그리고 물리적 힘을 통해 이루어진 통일은 기존의 분단보다 더 큰 희생과 결과물들을 낳는 다는 점입니다. 물론 통일이 되었을 때 당연히 치루어야 할 대가와 희생은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통일을 이룸에 있어서 어느 한 쪽이라도 그 모든 희생과 대가를 지불할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하는데 남북한 당사자는 어느 쪽도 통일을 위한 충분한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습니다. 특히 남한의 입장은 안고 가야할 부분에 대하여 국민 정서가 통일 비용에 대한 반대 의견이 엄연히 크게 작용하고 있었습니다.
이제 우리가 반통일 또는 통일을 문을 잠그는 일을 하지 않고 도리어 통일의 문을 열려면 그 누구도 막을 수 없는 절대절명의 기도가 필요합니다. 한번 하나님께서 작정하시면 이스라엘 유대 민족을 지구상에서 사라지게 하려던 하만의 궤계도, 에스더의 죽으면 죽으리라는 기도로 무산되었고, 유대인을 통한 메시야의 도래는 조금도 차질이 없이 오심으로 인류 구원을 위한 역사가 성취될 수 있었습니다.
통일은 우리가 원해서 이루려는 소원이 아니라, 하나님의 계획과 뜻을 성취하는 통일이어야 합니다.
우리가 꿈꾸는 소원은 우리 형제 자매가 만날 수 있고 얼싸안고 부둥켜 기뻐하는 모습이기도 합니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통일은 우리의 소원인 통일과는 다를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경륜과 계획 안에서는 인류의 구원과 선교의 완성을 위한 하나님의 크신 도구가 남한과 북한 그리고 디아스포라 코리아가 사용되는 것입니다. 독일처럼 통일은 이루었지만 인류 구원과 선교의 완성에는 어떤 의미를 주지 못한다면 우리 민족의 통일이 반드시 필요한 것인가?라는 반문을 던지지 않을 수 없습니다.
다니엘도, 에스더도, 심지어는 앞서서 예레미야와 이사야도 대부분의 유대인들 가운데 매우 소수의 남은 자를 통해 인류 구원을 위한 역사를 이루시는 주님의 뜻을 깨닫고 제사장 국가가 되는 유대 민족의 길을 걸어왔다는 것입니다.
저는 5월 24일 탈북민 목회자들과 미주 한인교회 자매결연자들과 모인 집회에서 전한 베드로 전서 2장 9절부터 12절의 말씀을 통해 우리 민족이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제사장 국가가 되는 것에 대하여 말씀을 나누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선택하신(Chosen, 조선) 한민족의 운명
왕같은 제사장들: 기도 민족으로 유대인을 훈련하셨듯이 한민족을 세 방향으로 훈련시키심
남한: 열어서 온 세상을 다니면서 선교와 열방 구원을 위한 네트워크를 깔게 하심
북한: 순교자의 신앙으로 이 세상 그 어떤 이보다 고결하게 믿음을 지킨 가장 강력한 기도의 특공대로 훈련시키심
디아스포라 코리아: 세계를 전략적으로 선교하고 복음화 하며, 가이사의 심장에서 세계 복음화를 이루는 다음세대와 연합 연대하는 원대한 하나님의 도구로 훈련시키심
거룩한 나라
남한은 회개함으로 에베소 교회가 잃어버린 첫사랑을 회복하고, 북한은 숨겨진 순교자들의 진가가 드러나고, 고통 받는 형제 자매들이 복음으로 인하여 자유를 만끽하며, 미국을 비롯한 디아스포라 코리아는 전세계를 하나님께로 돌리는 하나님의 도구가 되는 것
소유된 백성
이슬람, 불교, 힌두교 및 공산권 선교는 지구상에서 이것을 돌파할 수 있는 유일한 민족이 한민족이기에 먼저 주님께서 우리 민족을 이방 나라에서 그의 소유된 백성을 만드셨고 이제는 하나님 나라 밖에 있는 이방 나라를 주님께 이끄는 도구로 사용하실 것임
분단 70년이 만든 제사장 국가
이제 통일은 우리 민족의 소원이지만, 열방 구원은 구속사를 이루시는 하나님의 뜻입니다. 이 구속사 가운데 한민족의 통일이 큰 역할을 감당하게 된다면 분명히 통일이 올 것입니다. 열방의 구원과 세계 선교의 완성은 하나님의 소원이며 구원계획임이 성경에 분명히 명시되어 있습니다. 다시 말하면 국소적 차원이 아닌 열방의 구원 차원에서 민족의 통일을 보는 것이 매우 중요합니다. 바리새인이나, 사두개인이나 열심당원은 국소적인 이스라엘의 해방과 광복의 꿈을 꾸었으나 유대인 뿐 아니라 이방 민족도 구원케 하시는 하나님 나라의 놀라운 선포의 말씀을 깨닫지는 못했습니다.
저는 한민족 통일이 남과 북 그리고 우리 민족만의 통일이라면 이토록 큰 열정을 담아 금식하며 기도하지 못했을 수도 있을 것입니다.
우리는 분단 70년이 주는 민족사적 의미도 중요하겠지만 더 중요한 것은 성경이 주는 70년의 의미를 깨닫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봅니다. 예레미야와 다니엘은 70년이 주는 의미에 대하여 성경은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습니다.
땅이 황폐하고 놀라며 기근과 가뭄 그리고 홍수와 척박함에 대한 예언의 말씀이 북한의 강토 가운데 문자적으로 임하였습니다.
“이 온 땅이 황폐하여 놀램이 될 것이며 이 나라들은 칠십년 동안 바벨론 왕을 섬기리라” (예레미야 25:11)
제일 중요한 것은 하나님께서 예레미야 선지자를 통해 약속하신 일이 이루어졌다는 것입니다. 남북한에도 70년의 분단과 땅의 황무함이 끝나고 이제 하나되는 회복의 날을 고대합니다. 하나님께서 이루셔야만 합니다. 그러할 때에 남북이 하나되고 땅의 안식은 끝나고 새로운 역사가 시작될 것입니다.
“이에 토지가 황무하여 안식년을 누림 같이 안식하여 칠십년을 지내었으니 여호와께서 예레미야의 입으로 하신 말씀이 응하였더라” (역대하 36:21)
세계 선교의 완성과 열방의 구원의 도구로 사용받는 통일이 되어야 합니다. 다니엘은 유대인 70년 바벨론 유수가 단순한 포로됨이 아니라 메시야의 오심과 종말의 사건과 관계 되어 있음을 깊은 기도 가운데 깨닫게 됩니다. 이슬람, 힌두교, 불교 및 공산권 선교의 놀라운 도구로 사용되는 한민족 통일이 될 때에 마지막 시대의 열방 선교와 복음화 사역을 이룰 수 있을 것입니다.
“곧 그 통치 원년에 나 다니엘이 서책으로 말미암아 여호와의 말씀이 선지자 예레미야에게 임하여 고하신 그 년수를 깨달았나니 곧 예루살렘의 황무함이 칠십년만에 마치리라 하신 것이니라” (다니엘 9:2)
70년의 황무함은 무엇일까요? 첫번째는 문자적으로 70년이라는 실제적 예루살렘의 황무함을 말합니다. 두번째는 다니엘이 받은 70이레와 연결되어진 부분입니다. 문자적 70년 황무함은 국소적인 의미일 수 있다면 70이레와 연결된 부분은 종말론적 메시야 대망이며 인류 구속사와 매우 긴밀한 관계를 갖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유대인을 70년 동안 노예 생활을 하게 된 것이 다중적 관계에 있음을 성경은 말씀해 주고 있습니다.
예루살렘과 유다의 문자적 황무함 70년
유대인의 바벨론 유수와 포로 생활(유수) 70년
70년 노예 생활을 통한 유대인들의 기도 민족되기 훈련
회당의 시작
기도 공동체의 시작 (바벨론 강가에서 시작된 백성의 집 기도 공동체, 시편 137편)
성막(Tabernacle)
다윗의 장막(David’s Tabernacle)
성전(Solomon’s Temple, 솔로몬 성전)
바벨론의 기도의 집 (Minyan in Babylon, 유대인 성인 10명이 모일 때 성립되는 회중)
회당(Synagogue)
후에 연결되는 신약 교회(New Testament Church)
매일 하루 세 번씩 드리는 기도, 예배 그리고 성경 읽기의 시작 (시편 55:16-17)
초대 교회 에클레시아 즉 히브리어 카힐라의 바벨론 준비 (이전 글에서 자세히 설명하였음)
메시아의 대망을 위한 준비
남은자를 통한 하나님의 구원 계획
이방인 선교를 위한 유대인의 구원 통로
글을 맺으며
남북 분단 70년 가운데 부분적 북한의 출애굽이 있었습니다. 1994년부터 시작된 고난의 행군입니다. 북한 전체를 거대한 폐쇄 집단으로 만들었던 김일성 집단은 3백만이 넘는 아사자가 속출할 때에도 정권의 보루라 할 수 있는 평양만은 지키고자 했으며 평양 시민을 위해서 군 비축 식량을 풀었습니다. 1989년 13차 세계평화청년학생축전에 사용되는11만 4천명을 수용하는 능라도 경기장 건설, 미래 과학자 거리 및 여명 거리, 5만호 아파트 건설, 유경 호텔 비용 등에 천문학적 비용을 쏟아 부었습니다. 이태리에서 오는 시골 청년들을 악사로 초청해 그 모든 비용을 다 감당하는 것은 지극히 작은 한 스토리에 불과합니다. 김일성 정권의 홍보와 선전선동을 위해 그 돈을 쏟아 붓고 일어난 것이 고난의 행군입니다.
13차 세계평화청년학생축전에 사용된 돈 일부만 사용해도 북한 전 국민이 결코 아사하는 일은 없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이토록 악랄한 정권이라 할지라도 순교자들의 기도는 결코 북한 땅에서 사라지지 않았으며, 고난의 행군을 통해 남쪽으로는 32,918명의 탈북민들이 들어 왔고, 복음을 받은 많은 사람들이 북한으로 들어가 도리어 복음을 전하고 있습니다. 북한에는 목숨을 걸고 복음을 전하며 기도하는 백성이 있으며, 남쪽에는 세계 선교에 목숨을 걸고 기도하는 주의 백성들이 있습니다. 전세계에는 초대교회처럼 사도 바울이 가는 곳마다 유대인 디아스포라를 통해 복음 전파의 역사가 있는 것처럼 촘촘히 한국인 디아스포라가 흩어져 있습니다. 북한의 기도 특공대, 남한의 선교 특공대, 전세계에 흩어져 있는 복음 전파의 디아스포라 네트워크가 분단 70년 이후 하나되어 세계 선교의 완성과 열방 구원의 역사를 이루기를 기도합니다.
보스톤에서 김종필 목사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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