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 과학문명의 문제와 인간의 해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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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칼럼=Dr. 김태연 교수] 현대 과학문명의 문제와 인간의 해답 »
미래 우주과학경영학의 길을 열며…
문화(culture)는 누군가를 모방하는 밈(meme), 즉 생각의 바이러스에서 시작한다. 누군가 한 명으로부터 새로운 문화는 시작되었다. 기독교 문화는 그리스도 예수 한분에서 비롯된 것이다. 이것이 타인에게 전달이 되는 것이 문화 교류(interculture)이다. 나부터 문화 교류가 시작한다 는 정신이 나도 선교사(every missionary)이다…
현대 문명의 핵심적인 문제는 인공지능의 도전과 같은 기술적인 문제나 기후변화, 정치경제 체제 위기와 같은 외부적 요인들이 아니라 현대인의 사고와 가치, 태도 등 인간 내부의 문제임을 확인하였다. 더 나아아서 세계관의 문제이다.
현대 문명 모순의 근본 원인은 인간성을 협애하게 규정하여, 감정을 억압한 이성주의에 있음을 밝혔다. 이성주의는 자기 의지(self-righteousness)를 앞세워서 손익계산을 기준으로 한 합리주의(rationalism)와 최소 비용으로 최대 이익을 추구하는 경제적 인간형(호모에코노미쿠스)을 앞세워 공동체를 개인주의(individualism)로 분할하고, 전쟁을 합리화하고, 자연생태계를 상품화하는 착출경제를 자본활동으로 정당화하였다. 이성주의는 인간과 인간, 인간과 자연환경의 공통분모이자 연결고리인 감성과 영성을 소외시켜 개인과 공동체의 삶을 이기적이고, 현세적이고, 물질적으로 만들었다. 이런 상황에서 기술 발전은 인류 행복에 기여하기보다 분열, 불평등, 갈등을 더 심화시킬 것이다. 그리스도 안에서 그리스도의 마음을 품고 하나님의 뜻을 준행하는 삶은 자유 의지(free will)를 내 것으로 소화시킨 거듭남(born again)을 통한 자원하는 자유의지 개념의 자원하는 종의 의지(bond-servant will)가 필요하다.
대안은 이성 중심의 합리성(Rationality)을 넘어 감정을 포괄하는 합정리성(合情理性, Reasonableness)을 넘어선 하나님깨달음(allSelves’)이다. 감정은 머리로 계산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 몸으로 느끼는 직관으로 좋음을 추구한다. 나만의 이익을 추구하면 오래갈 수 없고 불안하기 때문에 ‘다 좋음’을 추구할 수밖에 없다. 감정을 복원하면 이웃이 보이고, 자연이 보이고, 나아가 온 우주와 한 몸으로 느껴지는 영성으로 이어진다. 이는 나는 죽고 그리스도만의 삶으로 날마다 나는 죽노라의 삶을 실현하는 것이다. 나는 홀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주위 모든 것과 상호의존하는 관계적 존재임을 깨닫는 것이 참된 우주적 지상적 지성이다. 감정은 밖에서 이해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자기이해를 해야 하는 것이기 때문에 남에 의존하지 않고 스스로 배우고, 남의 욕망을 추구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내면에 깃든 고유한 욕망을 추구하게 한다. 그래서 인간다움은 곧 자기다움,자기발견이고, 자기혁명을 통해 온 우주와 하나 되는 신성에 도달할 수 있다.
몸에 기반한 느낌, 감정, 감수성은 기계와 다른 인간다움이기도 하다. 인공지능을 올바로 활용하기 위해서는 인공지능 운영체계보다 자기 운영체계를 더 잘 알아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는 중심을 잃고 기술 적응에 급급하다 마침내 인공지능에 이용당하게 될 것이다. 세상이 아무리 변해도 달라질 수 없는 사람의 값이 기초가 되어야지, 사람값이 무너지면 과학도, 사회도, 국가도, 세계도, 우주도, 나도 없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한다.
이는 우주의 세계와 인간의 세계가 인내천으로 사인여천으로 대화되어진 것을 실제로 입증하는 연구에서 그 답을 찾을 수 있다. 필자가 이 일을 한 것이다.
인류 진보는 기술 진보에 따라오는 것이 아니라, 인간 각자가 지성 · 감성 · 영성이 조화로운 ‘완전한 인간’으로 성숙하고, 공동체가 서로 사랑하고 평화로운 ‘정다운 성숙한 사회’를 이루어가는 데 있다. 정다운 성숙한 사회는 하나님의 십자가의 수직적인 사랑에 기초한 거듭난 자가 자기 사랑으로부터 수평적인 이웃 사랑으로 확대해가는 자연스러운 과정을 거치되, 자기의 의에 기초한 자기 좋음을 강요하는 ‘사랑의 갑질’을 하지 않고 창조성, 효율성, 효과성, 융통성에 기초한 전문성(professionality) 즉, 개성을 존중하는 화이부동(和而不同)과 갈등의 쟁점을 ‘조건인과적’으로 보고 더 좋은 조건인과를 선택하는 과정에서 창조적 중용으로 풀어가는 화쟁(和諍), 그리고 권리와 의무의 계약관계나 이성적 계산에서 나오는 ‘합리’와 ‘정의’를 넘어 더 큰 화합을 추구하는 변혁된 삶의 생명과 성령의 법이 지배하는 화리(和理)의 모습이다.
이를 위해 미래의 과학기술 정치는 개인의 영혼을 돌보는 동시에 이를 가능케 하는 사회 전체와 온 인류의 구조를 전지하신 하나님(omniscience of God)–과학(science)-선한 양심(good conscience)으로 생성하고 관리하는 ‘영혼을 돌보는 과학기술 정치’가 되기를 소망한다. ‘영혼을 돌보는 과학기술 정치’는 플라톤과 공자의 오래된 이상이지만, 다행스럽게도 이에 근접하는 성육신적인 그리고 비판적 상황화된 정치의 사례들을, 국민총생산(GNP) 대신 국민행복지수(GNH)를 채택하거나, 북유럽 국가들의 아브라함 카이퍼등 하나님 주권사상 정책과 그들의 삶에서 찾아볼 수 있었다.
인류의 창조 발전은 생물학적, 기술적 능력이 아니라 사회문화적 능력, 즉 허구적 실체(가치)를 상상하고 사회적으로 구성하는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ex nihilo) 능력에 있었음을 상기하면, 다음 단계로의 성숙 역시 새로운 가치를 상상하고 개인적으로 헌신된 전문인들의 집단적으로 공유하는 능력에 달려있다. 다음 단계 시대가치로서 관계적 존재론에 근거한 지성 · 감성 · 영성이 조화로운 인간, 정다운 성숙한 공동체, 화쟁, 화리, 영혼을 돌보는 과학기술 정치도 우리가 공동으로 믿고 실행하면 하나님의 나라가 온 세상에 이루어지는 하나님의 주권이 지배되는 실재가 될 수 있다. 동서 사상을 회통하는 지혜이자 우리 천손민족의 고유 사상 속에 농축되어 온 이러한 가치와 논리를 오늘에 자발적인 의지에 의해서 스스로가 미래의 삶을 갸척하는 전문인으로서 언어의 전문성, 지역의 전문성, 직업의 전문성, 사역의 전문성, 그리고 성령의 기름부으심으로 하나님 중심의 전문인 세계관으로 되살린다면 축복의 통로로 인류를 선도하는 선진국(先進國)이자 인류를 널리 이롭게 하는(弘益人間) 문화의 통로이며 문화교류의 통로로 선진국(善進國)이 될 것이다
드론을 날리는 인간이 새를 만들지 못한다. 드론은 밧데리가 나가면 멈추어 떨어진다, 역으로 만든 피조물인 인간에게 해를 끼치게 되면 자폭하는 프로그램을 만들어 놓아야 한다. 새는 그 안에 피가 흐르고 있다. 새는 자신을 짓누르는 중력을 이겨내고 치열한 날갯짓으로 창공에 치솟는다. 우리가 물질적 이익의 시장법칙과 중력을 떨치고 사회가 더 큰 미래와 고귀한 이상으로 날도록 우주적인 날갯짓을 해야 한다. 날갯짓은 한자로 습(習)으로, 날갯짓을 반복한다는 뜻이다. 날갯짓을 100번 반복하여 더 나은 단계로 올라가야 한다.
문화(culture)는 누군가를 모방하는 밈(meme), 즉 생각의 바이러스에서 시작한다. 누군가 한 명으로부터 새로운 문화는 시작되었다. 기독교 문화는 그리스도 예수 한분에서 비롯된 것이다. 이것이 타인에게 전달이 되는 것이 문화 교류(interculture)이다. 나부터 문화 교류가 시작한다 는 정신이 나도 선교사(every missionary)이다.
필자소개: Dr. 김태연 교수 (현. HK 경영위원회 부의장, 전. 과학정책기술협회 대표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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