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두부 백반
Share This Article
[말씀송에세이=이요한 감독] 순두부 백반 » 긴 겨울 뜨거운 바람 시리즈 2회 »
아무에게도 악을 악으로 갚지 말고…
아무에게도 악을 악으로 갚지 말고
모든 사람 앞에서 선 한 일을 도모하라
할 수 있었거든 너희로서는
모든 사람과 더불어 화목하라. (로마서 12:17-18)
순두부백반을 시켰다. 자그마한 뚝배기에서 보글보글 끓고 있는 찌개는 갓 깨어 얹은 달걀노른자를 부지런히 익히고 있었다.
나는 숟가락을 들어 이리저리 저어보았다. 맛을 보기 전 습관처럼 찾아보는 그것! 하나둘 셋! ‘어라! 세 개가 들어있네’ 독백처럼 한 말이었다.
“뭐….가?” 함께 간 지인이 물었다.
‘그때도 항상 세 개가 들어있었고 이렇게 고추기름이 떠있고, 파가 송송 얹혀 있었어요.’
나는 순두부 찌개에서 바지락 세 개를 건져냈다.
“…….”
‘조선 영조 때 간택령에 뽑혀온 규수들에게 세상에서 제일 높은 고개가 무엇이냐고 묻자
한 규수가 보릿고개가 가장 높은 고개라고 대답하여 왕후로 간택되었다죠
저에게도 보릿고개 시절이 있었거든요.
“순두부찌개와 보릿고개?”
지인은 이 둘의 인과를 엮어보려 애쓰며 어서 그 사연을 들려 달라고 보채는 눈빛을 보냈다.
컬컬하고 매콤한 순두부찌개의 맛은 어느새 그때의 보릿고개로 나를 견인하고 있었다.
80년대 초 서대문 로터리에 야간 대학인 K대학교가 있었다. 갓 고등학교에 입학한 나는 방과 후 도서관 사서 보조로 일을 했다.
지금의 아르바이트 개념이 아닌 상근 직원처럼 3개월에 한 번씩 보너스도 받고, 각종 혜택을 받는 꽤 좋은 일자리였다. 나의 업무는 책을 대출해주고 반납받는 일이었다. 시험 기간에는 눈코 뜰 새 없이 책을 찾는 학생들과 산더미처럼 들어오는 반납된 책들을 정리하느라 넓은 도서관 서고를 종횡무진 뛰어다녔다. 사다리를 타고 올라가 높은 곳의 책을 꺼내기도 하고, 낡은 고서의 냄새를 맡으며 그 책들 속에 거대한 역사와 인물들이 들어있음을 알게 되었다.
대학의 야간 수업이 시작되면 그때부터는 저녁을 해결하는 시간이 주어진다.
나는 가끔 구내매점(식당)에서 순두부백반을 시켜 먹곤 했다. 그때의 가격이 대충 800원쯤 했던 것으로 기억이 나는데 그것도 아끼려 라면으로 한 끼를 때우곤 했다.
보글보글 끓는 찌개 속에는 항상 바지락 세 개가 들어있었다. 3이란 숫자는 삼위(三位)의 하나님, 세 개의 못, 장사 된 지 사흘 등 나의 믿음의 근간이 되는 상징적인 의미였다.
그것을 찾아낸 소년은 식사시간이 주님과 데이트를 하는 카이로스의 시간이었으리라.
드디어 월급날이 되었다. 누런 봉투 겉면에 각종 세금을 공제하고 지급되는 실 급여의 목록이 쓰여 있었다.
지금 기억으로는 월 4만6천 원쯤 받았던 것 같은데, 막상 전달된 봉투 속에는 만 원이 조금 넘든지 2만 원이 조금 넘든지… 그 정도밖에 없었다. 공제 명세를 살펴보면 매점 식대(순두부 백반)가 왕창 지급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사촌 형이 자주 찾아왔다! 가끔 힘들 때 와서 식사하고 가시라고 했는데, 손님들까지 모시고 와서 동생 앞으로 달아놓고 가다니 오죽 힘들었으면 그랬을까 하다가도 울화통이 치밀어 오를 때가 한두 번이 아니었다.
은평구 수색동 산 30번지에 잠시 살았었다. 아침마다 공동 화장실에 줄을 서야 하고 커다란 물탱크가 며칠에 한 번씩 와서 물을 공급해 주는 시절이었다. 다행히 우리 집은 수도가 있었고, 파란 철 대문에 마당도 있었기에 친구들이 늘 부러워했다. 어느 날 빨간 딱지가 집안 곳곳에 붙더니 길거리로 내몰렸다.
사촌 형이 여의도 증권 회사에 집을 담보로 사업 자금을 빌려 간 것이다. 원금이 300만 원이었다. 처음 얼마간은 이자를 잘 내는가 싶더니 부도를 낸 사촌 형은 이내 자취를 감췄다.
500만 원이면 집을 한 채 살 돈이었으니 그 이자는 얼마나 벅찬 금액이었겠는가!
그때부터 우리 8남매는 스스로 돈을 벌어 학비를 조달해야 했다.
그래서 나는 그 야간 대학교 도서관에 취업한 것이다. 그런데 그 형이 그곳으로 나를 찾아온 것이다.
세월이 흘렀다. 자그마치 40년이나 지나갔다.
우리는 모두 장성(長成)하여 믿음의 가정을 이루며, 건강하신 어머니를 모시고 웃고, 나누며 남부럽지 않게 살게 되었다. 어느 날 식사하는 자리에서 어머니는 그 형의 이야기를 꺼내셨다. “그래도 걔가 양심은 있는지 300만 원을 가지고 왔더라.”
‘네? 300만 원요?’ 외마디 비명이 터진 것은 나뿐만이 아니었다. 우리 형제들은 한동안 말을 잇지 못했다.
지금 그 자리에 대림 아파트가 들어서서 시가가 얼만데, 40년 전 300만 원 원금을 가지고 왔단 말인가? 이것은 내 속에서 되뇌는 말이다.
어머니는 침묵을 깨고 말씀하셨다.
“우리가 고생한 것을 무엇으로 보상을 받겠니? 그 대신 우리는 더 탄탄한 믿음을 선물로 받았어. 이것으로 걔를 원망했던 그 세월마저도 용서하라는 주님의 뜻으로 알자…….”
“아멘~” 우리는 박수밖에 달리 표현할 길을 찾지 못했다.
순두부찌개가 식어가고 있었다. 그래도 맛있다. 누구에게나 꼭 한 번쯤은 넘어야 할 보릿고개가 있다. 아브라함도, 야곱도, 사도바울도 보릿고개를 넘었다. 누구보다 험난한 고개를 넘어야 했던 사도바울은 로마서 12장에서 이렇게 말했다.
“아무에게도 악을 악으로 갚지 말고 모든 사람 앞에서 선 한 일을 도모하라
할 수 있었거든 너희로서는 모든 사람과 더불어 화목하라.”
만약 사도바울이 살아계셨다면 이 말씀에 이 곡이 잘 붙여졌는지 여쭤보면서 순두부 백반을 대접했으리라. ♧ 다음 호에 계속
<다음 호에 계속>
글 이요한 (작, 연출가)
연세대 언론홍보 대학원 졸업. 한기문예총 예술 총감독 역임. 100여 편의 말씀송을 작곡하여 금주의 말씀 송(유튜브 검색)으로 발표. 연극 야곱, 뮤지컬 갈릴리로 가요 등
◙ Now&Here©ucdigiN(유크digitalNEWS)의 모든 콘텐트(기사)는 저작권법으로 보호를 받고 있습니다. 무단 전재,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