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음을 연단시키는 지혜
Share This Article
[교육저널=정이신 목사] 믿음을 연단시키는 지혜 » 96회
지혜가 다양한 모습으로 우리에게 다가올 때는 주의를 기울여야 …
지혜가 인간에게 주어질 때도 이런 면이 있습니다. <8:12>에서 지혜는 명철을 주소로 삼고 있다고 했는데, 이번에는 훈계(무사르)를 통해 지혜를 얻으라고 합니다(8:33). 이처럼 지혜가 다양한 모습으로 우리에게 다가올 때는 주의를 기울여야 합니다. 분명히 하나님의 말씀인데 너무나도 평범한 언어로 지혜가 나타납니다. 또 많은 경우에 지혜에는 욕심과 죄, 교만을 책망하는 말씀이 포함돼 있습니다. 그래서 지혜인데 이것에 상처를 입거나 흥미를 잃어서, 나중에 하나님의 나라까지 멀리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춘향전》에서 이몽룡은 과거 급제 후 성춘향에게 폐포파립(敝袍破笠)한 모습으로 나타납니다. 과거에 장원 급제해서 어사또가 돼 남원으로 내려왔지만, 일부러 사람들을 속이기 위해 거지꼴로 춘향 앞에 나타나 거지처럼 행동합니다.
이를 오늘날의 시각으로 이해하면 걸림돌이 됩니다. 다른 사람도 아니고 성춘향은 이몽룡과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변학도에게 고통을 당했고, 옥에까지 갇힌 연인입니다. 그렇다면 자신의 연인에게 잠깐 자기 정체를 귀띔해 줄 수도 있는데, 이몽룡은 철저하게 이를 숨깁니다. 심지어 나중에 춘향을 심문까지 했습니다. 그리고 많은 사람이 알다시피 성춘향은 자신의 어머니 월매와 달리 어사또가 돼 내려온 이몽룡의 시험을 이겨내고, 그와 기쁨에 찬 재회를 합니다.
지혜가 인간에게 주어질 때도 이런 면이 있습니다. <8:12>에서 지혜는 명철을 주소로 삼고 있다고 했는데, 이번에는 훈계(무사르)를 통해 지혜를 얻으라고 합니다(8:33). 이처럼 지혜가 다양한 모습으로 우리에게 다가올 때는 주의를 기울여야 합니다. 분명히 하나님의 말씀인데 너무나도 평범한 언어로 지혜가 나타납니다. 또 많은 경우에 지혜에는 욕심과 죄, 교만을 책망하는 말씀이 포함돼 있습니다. 그래서 지혜인데 이것에 상처를 입거나 흥미를 잃어서, 나중에 하나님의 나라까지 멀리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다시《춘향전》으로 가 보겠습니다. 처음 남원의 광한루에서 이몽룡을 만났을 때와 달리 거지처럼 꾸미고 나타난 이몽룡을 본 순간 성춘향의 마음은 어땠을까요? 처음에는 이몽룡이 자신에게 기쁨을 주는 연인이었지만, 이제는 절박한 대상이 됐습니다. 그런데 지혜에도 이런 면이 있습니다.
처음 접할 때는 듣기 좋은 말씀입니다. 그러나 인간이 밑바닥으로 내려가 지혜를 접하게 되면 기쁜 소식이 아니라, 말 그대로 자신에게 절박한 말씀이 됩니다. 이런 절박한 상황에서 인간은 하나님의 말씀이 그대로 이뤄진 것을 목격하고, 자신의 참 목자가 누구인지 알게 됩니다.
그래서 <잠언>은 훈계를 통해 지혜를 얻으라고 하면서, 훈계는 지혜가 아니라고 무시하는 태도를 보이지 말라고 합니다. 이는 <1:7>에서 ‘아버지의 훈계와 어머니의 가르침(토라)을 저버리지 말라’고 하면서 이 둘을 ‘머리에 쓰는 아름다운 관으로, 목에 거는 목걸이처럼 취급하라’라고 하신 말씀과 맥이 같습니다. 인간에게 지혜가 다양한 모습으로 자신을 드러내기에 그 경로를 무시하면 안 됩니다.
맛집으로 유명한 가게에 가서 음식을 먹기 위해 줄을 서 있거나, 자기가 좋아하는 것을 수집하기 위해 그걸 파는 곳으로 달려가 밤새 줄을 서서 그 물건을 사는 것보다 더 좋은 게 있습니다. 바로 하나님 나라의 문밖에 서서 문이 열리기만을 기다리고 있다가, 가장 먼저 들어가 주님의 말씀을 듣는 것입니다(8:34).
이를 현대의 분위기로 바꿔보면 예배당에 오려고 새벽부터 일어나 준비하고 있다가, 제시간이 되기 전에 와서 기다렸다가, 예배하는 사람이 복 있는 사람입니다. 지혜는 이런 사람이 하나님이 주시는 영원한 생명을 얻게 될 것이라고 합니다(8:35).
우리가 살아 있다고 하지만, 하나님이 주시는 영원한 생명이 없으면 살아도 산 게 아닙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생명과 은총은 동시에 나타나는데, 이 둘을 인간에게 값없이 주신 사건이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예수님을 통해 하나님이 생명과 은총을 충만하게 주셨다는 것을 깨닫고, 유대교에서 나와 새롭게 발걸음을 시작한 게 기독교입니다.
기독교의 뿌리가 이러하기에 하나님의 말씀을 사랑하지 않는 사람은 결국 자신의 영혼을 지키며 치유할 수 있는 지혜를 거부한 사람입니다. 이런 사람에게는 진정한 생명이 없기에, <잠언>은 이런 사람을 죽음을 사랑하는 사람이라고 합니다(8:36).
죽음을 사랑하는 사람! 사이비ㆍ이단 교주들의 비리를 알면서도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저들을 추종하는 사람들이 바로 이런 사람입니다. 저들은 그런 추종이 잘못됐다고 우리가 성경을 통해 밝히면, 회개하는 게 아니라 오히려 화를 내면서 우리를 겁박합니다. 자신들에 대해 악평했다고 거짓 논리를 만들어 사람들을 협박합니다. 이는 우리가 결코 가야 할 길도 아니고 이렇게 돼서도 안 됩니다. 세상에 사랑할 게 없어서 죽음을 사랑합니까?
◙ Now&Here©ucdigiN(유크digitalNEWS)의 모든 콘텐트(기사)는 저작권법으로 보호를 받고 있습니다. 무단 전재,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