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남의 신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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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묵상=한은선 목사] 만남의 신비! » 마태복음 25:40 »
Geheimnis um Treffen!
‘어리석은 사람은 필연을 만나도 몰라보고 보통사람은 필연인줄 알면서도 놓치고 현명한 사람은 옷깃만 스쳐도 필연을 살려 낸다‘는 말이 있습니다. 새로운 사람을 만나는 일보다 큰 기적은 없습니다. 더 좋은 만남은 이미 만난 사람과의 만남입니다. 최고의 만남은 예수 그리스도를 뵙는 일입니다.
어느 날 진젠돌프 백작이 성화 전시장에서 한 그림을 만나게 됩니다. 그 그림은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의 초상이었습니다. 그는 그 그림을 통하여 주님을 만나게 되었고 그의 생애를 송두리째 바꾸어 놓습니다. 나는 널 위해 피 흘려 내 몸을 주건만 넌 날 위해 무엇을 주느냐?라는 주님의 음성을 들었던 그는 심한 충격을 받고 곧 자신의 모든 재산을 처분하여 모라비안 공동체를 만들게 됩니다.
그는 당시에 종교개혁을 하고도 시들어 가던 중세의 교회를 다시 한 번 깨우고 개신교 최초의 선교사를 파송하는 선구자가 됩니다. 한 사람이 한 장의 그림과의 한 번의 만남으로 인해 중세 교회를 살린 것입니다. 인간의 만남은 필연만 있습니다. 우연처럼 보일 뿐입니다. 그런 점에서 만남은 하나의 신비입니다.
루터가 죤 스타우피치를 만났기에 성경에 대한 올바른 눈을 떴고, 그가 윌리암 옥캄을 만나지 못했더라면 믿음의 도를 알지 못했을 것입니다. 그가 엑할터, 죤 타울러, 위셀 등을 만났기에 체험적인 신앙을 소유할 수 있었고 비로소 중세의 암흑기에 개혁의 횃불을 밝힐 수가 있었습니다.
세상에는 만남이 잘못되어서 일생을 그토록 곤혹을 치르며 살아가는 사람도 많습니다. 악처가 소크라테스를 만들었다고 말하지만 좋은 아내였더라면 그가 더 훌륭한 교훈과 사상을 남겼을지도 모를 일입니다.
세상에는 친구를 잘못 만나 삶을 실패하거나 아예 파산 해 버리는 사람, 부모를 잘못 만나 생을 시작도 못 해 보고 죽어 가는 아이들, 동업자를 잘 못 만나 사업을 망친 기업가들, 배우자를 잘못 만나 일생을 고통스럽게 지내는 사람들은 또 얼마나 많습니까?
에서는 동생을 잘못 만나 장자이면서도 장자를 위치를 빼앗기는 수모를 겪었고, 유다의 가야바와 빌라도와의 만남은, 스승을 배신하고, 무죄한 예수를 가장 큰 죄인으로 몰아 십자가 형틀에 매달고야 마는, 용서받지 못할 죄인의 자리에 떨어지게 했습니다.
그렇다고 만남을 두려워할 필요는 없습니다. 만남이 있어서 역사를 움직이고 세상을 바꾸어 놓으며 좋은 것을 더욱 아름답게 만드는 일들이 세상에는 또 얼마든지 있습니다.
모세와 여호수아의 만남은 바람직한 지도자의 관계성을 정립해 주었습니다. 다윗과 요나단의 만남에서 우정, 진실, 겸손에 대한 소양을 두고두고 우리로 하여금 배우게 합니다. 다니엘과 세 친구와의 만남은 신앙인의 의리와 절개가 어떠해야 하는지를 보여준 본보기가 되었습니다.
고기 잡던 베드로가 주님을 만나 사람 취하는 대사도가 되었고, 자칭 큰 자였으나 사람이나 잡아죽이는 도살자가 될 뻔했던 사울이 그리스도를 만나 바울이 되었고, 성경 기록사와 이방 선교사에 추종을 불허하는 인물이 되었습니다. 주님을 만나는 사람들의 형편은 다양했으나 주님을 만나고 난 사람들은 한결 같이 거듭난 영적 삶으로 변화했습니다.
만남! 그것은 하나의 사건입니다. 만남을 통해서 인간역사는 이루어져 왔고, 또다시 이어져가게 될 것입니다. 우리가 예수를 만난다는 의미는 이전의 모든 만남과 삶의 의미와 생명을 거듭나게 하는 신비가 있습니다. 그리하여 우리의 모든 만남 속에 그리스도의 영이 스며들어 우리의 모든 만남을 거룩하게 만들어 줍니다.
그는 우리의 만남 속에서 보증이 되어주시고 진실을 유지하게 하시며 사랑과 애정이 넘치는 축복된 만남으로 이끌어 주십니다. 이제 우리에게는 그 수많은 만남들 이후에, 또 하나의 마지막 만남이 남아 있습니다.
이 만남은 무엇을 만들어 가는 만남이 아니라, 이미 만남으로 남겨진 결과를 묻는 만남입니다. 만남에서 저질러진 모든 죄를 심판하거나 아름다운 만남으로 해서 남긴 선행을 칭찬하고 면류관 씌워주는 인간 역사의 종지부를 찍는 최후의 만남입니다.
그것은 곧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 때의 만남입니다. 이때는 드러나지 않을 것이 없으며 선악간의 행한 일이 백일하에 드러나는 만남입니다. 당신은 오늘 누구를 만나러 집을 나서십니까? 그리고 그 만남은 어떤 만남이십니까? 우리는 마지막 날 주의 재림으로 만나게 될 날을 위해서 지금의 만남을 보다 진지하고 진실하고 소중하게 만들어 가야 합니다.
주님은 양과 염소의 비유에서 마지막 심판 날 상 받을 자와 심판 받을 자의 기준을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임금이 대답하여 가라사대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여기 내 형제 중에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한 것이 곧 내게 한 것이니라 하시고..” 마 25:40
“소자에게 한 것이 곧 내게 한 것이라”라는 주님의 말씀은 우리의 만남이 얼마나 중요한 의미를 가지고 있는지를 알게 합니다. 순간의 작은 만남이 영원을 결정합니다. 오늘 친구와의 만남은 어제 만남의 결과이며 미래의 만남은 오늘 결정되는 것이기에 지금의 만남을 가장 소중히 해야 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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