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흑학(厚黑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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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스저널=정이신목사] 후흑학(厚黑學) » 이종오 지음, 신동준 편역/ 출판사: 인간사랑 »
후흑술의 궁극적인 목적은 ‘후흑구국(厚黑救國)’…
하늘이 사람을 낼 때 낯가죽 속에 뻔뻔함을 감출 수 있게 해주었고, 또한 마음속에 음흉함을 감출 수 있게 해주었다. 겉만 보면 낯가죽은 불과 몇 치의 넓이에 불과하고 속마음은 한 줌도 안 되는 것이어서 별로 기이할 것도 없다. 그러나 그 속을 자세히 살펴보면 낯가죽이 끝도 없이 두껍고 속마음 또한 비할 데 없이 깊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 세상의 온갖 부귀공명과 궁실, 처첩, 의복, 거마 등이 이 보잘것없는 곳으로부터 나오지 않은 것이 없다. 이처럼 조물주가 사람을 만든 기묘함은 실로 불가사의하기 그지없다. – [책의 에필로그에서]

중국의 춘추전국시대 이후로 나온 문헌 중 당나라 중엽에 조유(趙蕤)가 쓴《장단경(長短經)》, 명나라 말기에 이탁오(李卓吾)가 쓴《장서(藏書): 읽고 헛간에 넣어둬라》와《분서(焚書): 읽고 불에 던져버려라》, 청나라 말기에 이종오(李宗吾)가 쓴《후흑학(厚黑學)》을 기서(寄書)로 분류합니다. 이 기서들은 모두 전래의 기본 통치이념인 왕도 대신 패도의 관점에서 지난 역사를 재단하고, 그 역사 속의 인물을 재평가했습니다.
유교를 국가 통치의 기본이념으로 정한 조선이나 성리학적 가치관을 지향하는 사람들은 위 세 사람을 사문난적이라며 배척했습니다. 그래서 이 기서들은 유교에서 이단 서적으로 분류돼 불태워졌으며, 저자들 역시 세간의 온갖 비난에 시달려 은둔생활을 했습니다. 게다가 셋 중 이탁오는 자진(自盡)했습니다. 그런데 이탁오를 존경해서 자신의 이름을 ‘종오(宗吾: 나를 따르라)’로 바꾼 책의 저자와 이탁오는 한 시대를 풍미했던 제국이 망해가던 ‘말기’에 이런 저작을 남겼다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저자는 ‘동양의 마키아벨리’로 불리는 사람으로, 동양의 역사 문화와 사상 등에 강한 자부심을 표방했습니다. 그리고 이와 더불어 평생 타고난 박람강기를 토대로 군서박람(群書博覽)을 했습니다. 그래서 고금의 경사서(經史書)를 넘나드는 풍부한 사례를 책에 대거 인용했고, 그 내용 또한 정심(精深)합니다. 책을 ‘번역’한 것이 아니라 ‘편역’한 이유도 바로 이 때문입니다. 책에 등장하는 역사적 배경이나 관련 이야기를 편역자가 각주를 달아서 책의 내용을 쉽게 이해하도록 했습니다.
저자는 인간의 성(性)에 선악이 혼재돼 있다고 본 가선가악설(可善可惡說)을 지지했고, 면후(面厚)와 심흑(心黑)을 구분했습니다. 동양학은 성을 심(心)과 생(生)으로 이뤄졌다고 봤고, 성이란 글자에 관한 탐구를 통해 인간의 본성에 관한 숙고를 전개했습니다. 이에 따르면 인간의 성에는 마음(心ㆍ심)의 영역뿐 아니라, 생(生)의 영역이 있습니다. 그래서 성은 그 사람이 가진 천성적인 능력이나 기질을 통해 드러납니다.
그런데 맹자(孟子)처럼 유선무악설(唯善無惡說: 성선설)을 지지할 경우 저자가 말한 후흑학은 존재할 필요가 없습니다. 저자가 말한 면후는 ‘뻔뻔함’으로, 심흑은 ‘음흉함’으로 이해될 뿐입니다. 그래서 저자는 맹자뿐 아니라 ‘성리학자들이 말한 공자(孔子)’까지 모두 비판했습니다. 그런데 이때 저자는 공자의 모든 것을 비판한 비공(批孔)의 태도를 보이지 않고, ‘성리학자들이 말한 공자’만 비판했습니다. 우리가 사는 21세기를 성선설만으로 헤쳐나갈 수 없다고 봤기에 이런 자세를 취했습니다.
저자가 말한 후흑술의 궁극적인 목적은 ‘후흑구국(厚黑救國)’입니다. 그래서 마키아벨리가 조국인 피렌체 공화국을 교황 및 외국의 부당한 간섭으로부터 독립시킨 후, 이탈리아반도를 통일하는 주인공으로 만들기 위해《군주론》을 쓴 것과 저자가 이 책을 쓴 취지가 같습니다. 저자는 후흑학을 통해 제왕학이나 처세학이 아닌 ‘난세의 통치술’을 제시했습니다. 그리고 중국의 지식인들이 서양의 사회 진화론과 제국주의 이론에 압도돼 동양학을 천시하던 시대에, 저자는 중국 전래의 사상에 대한 강한 자부심을 토대로 서양에서 출발한 제반 사상을 비판했습니다.
어제의 적이 오늘의 형제가 되고, 강대국의 국익에 따라 선악이 결정되는 국제외교 현실은 면후와 심흑이 무한 경쟁을 벌이는 곳입니다. 그러므로 내가 후흑으로 상대를 압도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나를 향해 후흑으로 무장한 채 덤벼드는 상대를 정당하게 막기 위해, 내게 주어진 생의 길을 아름답게 가꾸기 위해 상대의 후흑에 관해 알아둬야 합니다. 해 아래 세상의 모든 일이 인의예지(仁義禮智)로 설명되지 않기에, 저자의 조언을 참고해서 조명해야 하는 영역이 내게 갑자기 나타났을 때, 그것에 대비할 수 있어야 합니다.
빈농 집안에서 태어난 저자는 그의 조국이 처한 참담한 현실을 보고 후흑학을 제창했습니다. 이 과정에서 저자는 노장학과 공맹학, 불교학 등에 관한 비교 검토를 토대로 중국 학문과 서양 학문의 통합 가능성도 진지하게 검토했습니다. 그리고 유구한 학문적 전통을 가진 중국 학문을 토대로 서양 학문의 병폐를 치유해야 한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그의 후흑학이 사람들에게 조명을 받지 못하는 현실에 대해서는, 후흑학이 서양 학문과 같은 길을 걷기 때문이라고 조금 다른 소리를 했습니다.
이런 저자의 답변은 그가 인성론(人性論)과 민성론(民性論)을 구별했기에 나온 것입니다. 춘추전국시대에 제자백가들이 설파한 인성론은 동서를 막론하고 국가 통치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습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개개인의 성선ㆍ성악에 대한 시비가 아니라, 인성론을 국가 통치에 얼마나 활용할 수 있는가에 관한 것이었습니다. 성선설의 도그마에 함몰된 사람들은 군주와 신민의 도덕심 함양에 매진했습니다. 그러나 서양은 그들과 달리 마키아벨리의《군주론》이 나온 이후 민성론에 근거해 도덕과 절연된 정치의 고유 영역을 인정했고, 이런 자세를 견지한 채 부국강병을 추진했습니다.
이민족의 침략을 받고 남쪽으로 쫓겨간 상황에서도 당쟁을 일삼았던 송대(宋代)와 명대(明代)의 유학자들처럼 후흑술을 사리(事理)를 도모하는 차원에서 활용하지 말아 달라는 것이 저자의 고언입니다. 이렇게 하면 후흑술을 사용해도 공허하기 짝이 없는 논쟁으로 말을 세우는 비루한 인물이 될 뿐이니, 후흑술을 구국 차원에서 활용해 위대한 인물을 계속 양산해 달라고 했습니다. 이게 저자가 제창한 후흑학에 관해 후손들의 연구가 더 진행되기를 바랐던 이유입니다.
이런 책을 쓴 사람들이 가진 시각에 대해서는 지금도 다양한 평가가 있습니다. 그런데 이런 이견들이 하나 가득 모여 있는 해 아래 세상에서 우리가 살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21세기 들어와 중국은 후흑의 핵심전략인 도광양회(韜光養晦)를 더욱 정밀하게 구사하고 있습니다. 중국의 목표는 앞으로 G2를 넘어선 G1의 신중화 질서를 구축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중국과 같이 상대방이 후흑을 무기로 가지고 나올 때는 우리도 후흑으로 맞설 수밖에 없습니다. 후흑으로 무장한 중국의 전략에 대비한 우리의 후흑은 무엇인지, 우리나라 사람들이 궁구(窮究)해야 할 외교적 후흑에 대해 이제는 모두가 깊이 생각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지금보다 나은 대한민국을 후손들에게 물려주기 힘듭니다.
끝으로 저자는 그가 후흑학을 창시하고도 매번 실패하는 이유가 뭐냐는 질문에 다음과 같이 답했습니다. “무릇 창시자는 대개 최고의 수준에 머무를 수 없는 법이다. 그러나 유교는 공자가 만들고 그 자신이 정상에 올랐고, 도교의 노자와 불교의 석가처럼 동양의 학문은 모두 이와 같은 길을 걸었다. 이는 교주의 재능이 지나치게 뛰어났기 때문이다. 서양의 과학은 그렇지 않다. 발명 당시에는 아주 조잡하고 허술하지만, 연구가 진행될수록 더욱 깊이가 깊어진다. 서양의 과학을 보면 후대 사람이 앞사람을 추월하고 제자가 스승을 앞지르는 일이 태반이다. 나의 후흑학도 서양의 과학과 마찬가지다. 그러니 이에 관해 후세 사람들이 더 많이 연구해주기 바란다. 이런 뜻에서 내 재능이 제자들에게 못 미치는 것은 당연한 일이고, 내가 손해를 본다거나 패배를 당하는 것도 당연지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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