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으로 둘러싸인 양면의 도시 암피뽈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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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션저널=김수길 선교사] 강으로 둘러싸인 양면의 도시 암피뽈리 » 그리스 이야기(24) »
암피뽈리(Αμφίπολη), 바울의 기록 발굴되었으면 상상을…
나는 실없는 이야기인줄 알지만 발굴 중 바울 사도의 기록이 나왔으면 하는 상상을 해본다. 바울 사도는 이 지역을 그냥 쉬고만 가실 분이 아니기에 숨겨진 기록을 기대하는 것이다. 한 순간도 가만히 계시지 않았을 사도 바울이기에 양면의 도시 암피뽈리에서, 지금은 허름한 유적지이지만 한 때는 역동적이었던 이곳에서 알려지지 않은 바울의 이야기를 기대하는 것…
강으로 둘러싸인 양면의 도시 암피뽈리, 이 도시는 옛 명성에 비해 오늘날 잘 알려지지 않은 지역이다. 사도 바울은 빌립보에서 테살로니키로 다니실 때에 당연히 에그나티아 가도(Εγνατία Οδός)를 이용했다. 자연스레 에그나티아의 중심도시인 암피뽈리를 지나서 가야만했다. 로마시대에는 이 지역의 수도로서 명성이 자자한 도시였다. 필자가 사는 집을 출발하면 약 1시간 거리에 스트라몬( Στράμον)강을 중심으로 한 암피뽈리 유적지가 나온다. 마음만 먹으면 하루에 몇 번이라도 다녀 올 수 있는 곳이다.
고대 암피뽈리 유적지 입구에는 뜬금없다는 표현이 어울릴 것 같은 기원전 4세기 경에 만들어진 사자 동상 하나만이 스뜨리몬 강가에 덩그렇게 남아있다.
로마인들이 마케도니아 왕국을 점령한 후 왕국을 4개로 분할했다. 트라키아 지역은 첫 번째 분할 지였고, 중심도시인 암피뽈리는 이웃 빌립보를 대신하여 분활지 수도(τεταρτημμένο Κεφάλαιο)로 삼는다. 로마 총독이 다스리면서 전차 경주장과 공회당 건물이 있었던 대도시였다. 에그나띠아 가도의 허브도시로서 이곳은 경제적, 문화적으로 크게 발전했다.
제2차 그리스 페르시아 전쟁 때 페르시아의 황제 크세르크세스는 이곳에서 9명의 소년들과 9명의 소녀들을 강의 신에게 제물로 생매장 시킨다. 그 이후로 원주민인 에도니족들은 이곳을 ‘엔네아 오디’ (εννέα οδόι) 아홉의 길’이라고 불렸다.
아테네 사람들은 팡게온(Παγγαίον) 산에 있는 금광을 개발하기 위해서 기원전 465년 첫 번째 점령시도를 했지만. 에도니(Εδωνή)족들에게 패하고 만다. 기원전 430년 페르시아와 전쟁 이후 아테네를 재건한 페리클레스(Περικλής)가 이 지역을 점령하면서 도시 이름을 지형적인 특징으로 한 암피뽈리라고 불렀다. 암피폴리는 도시 서쪽에서 내려오는 스트리몬 강이 암삐뽈리 전체를 둘러싸고 흐르다가 동쪽 에게해로 흘러간다. 마치 우리나라의 예천 회룡포 마을과 같은 곳이다.
아테네 사람들이 암피뽈리를 건설하고 그곳의 금광을 통해서 많은 부를 축적하고 아테네를 빠르게 재건한다는 소식은 아테네와 견원지간이었던 스파르타에도 전해진다.
기원전 424년 브라시다스(βρασίδες) 장군이 이끄는 스파르타인들이 암피폴리스를 아테네로부터 빼앗는다. 이때 역사가이며 아테네 장군인 투키디데스(Θουκυδίδης)는 스트리몬 강의 하구에서 아테네 함대를 구했지만, 암피뽈리스를 빼앗겼기 때문에 그는 20년 동안 고국 아테네에서 추방된다.
기원전 421년에 아테네인들은 도시를 탈환하려고 했지만 실패한다. 이 전투에서 아테네 측의 장군 클레온(Κλέων)과 스파르타의 점령자인 브라시다스가 모두 전사한다.
니케아 평화 조약으로 스파르타는 암피뽈리를 아테네로 반환할 것을 약속했지만, 이행하지 않았다. 새로운 문제가 제기되었고 펠로폰네소스 전쟁이 다시 시작되는 마찰중의 하나가 되었다. 아테네가 펠로폰네소스 30년 전쟁에서는 패하지만 이곳은 기원전 358년 마케도니아의 필리포스 2세(Φίλιππος Β’)가 점령하기 전까지 아테네는 이 도시의 주인이었다.
필리포스 2세는 이 도시의 방어와 안정된 체제를 위해서 마케도니아의 여러 도시들에서 이곳으로 많은 수의 사람들을 옮겼다.
알렉산더 대왕은 이곳을 마케도니아 왕국의 에게 해의 해군기지 및 관문으로 사용한다. 알렉산더 대왕 시절 중요한 해군 제독인 니어코스(Νεάρκος), 하드로스테네스(Hδροσθένης), 라오데몬트(Laodemont)가 이곳 출신이었다. 알렉산더 대왕이 다리오스 3세를 정벌하기 위해 출정한 아시아 함대도 이곳에서 출발한다.
이후 암피뽈리는 파괴와 약탈을 겪었지만 로마 황제, 특히 옥타비아누스와 하드리아누스의 지원으로 9세기까지 마케도니아의 중요한 도시로 남아있었다.
강으로 둘러싸인 양면의 도시 암피뽈리 현재의 암피뽈리는 유적지에서 약간 벗어난 서북쪽에 작은 마을이 있다. 이 마을의 도로를 통해서 정상으로 올라가면 십자군 시대의 도시 유적이 남아있다. 단 아쉬운 것은 순례객을 태운 버스가 이곳까지 갈 수가 없는 것이다. 발굴은 1956년에 그리스 고고학 발굴단에 의해 처음으로 진행되어. 지금까지 발굴하고 있다.
13년 전 그리스 방송국에서 난리가 난 사건이 하나있었다. 암피뽈리에서 무덤하나가 발굴되었는데 알렉산더 시대의 왕족의 무덤이라는 것이다. 혹자는 알렉산더 대왕의 무덤이 아닌가 하는 이야기도 했다. 하지만 방송에서는 남자가 아닌 여성의 묘라는 것으로 결론이 났다. 조만간 일반에게 공개 될 예정이라고 했지만 오랜 시간이 지났지만 아무런 소식이 없다. 가끔 고고학자들이 암피뽈리의 아크로폴리스에서 초대교회들이 유적을 발굴하다가 기원전 로마시대 유물들을 발굴했다는 소식만 신문에 실린다.
나는 실없는 이야기인줄 알지만 발굴 중 바울 사도의 기록이 나왔으면 하는 상상을 해본다. 바울 사도는 이 지역을 그냥 쉬고만 가실 분이 아니기에 숨겨진 기록을 기대하는 것이다. 한 순간도 가만히 계시지 않았을 사도 바울이기에 강으로 둘러싸인 양면의 도시 암피뽈리, 지금은 허름한 유적지이지만 한 때는 역동적이었던 이곳에서 알려지지 않은 바울의 이야기를 기대하는 것이 엉뚱한 것이 아니라는 것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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