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 카카오톡 방에서 일어난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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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성칼럼=Dr. Elijah Kim] 가족 카카오톡 방에서 일어난 일 »
가족 구성원의 소통에 있어서 없어서는 안될 귀중한 도구…
신기한 것은 한국 시각으로 밤 12시 일 때, 필리핀은 밤 11시, 그리고 영국은 오전 5시 그리고 보스톤은 낮 11시이어서 소통을 하는 시간대가 다 달라서 반응하는 시간대로 다르다는 점입니다. 지구촌의 세개의 시간대에 있는 마닐라, 런던 그리고 보스톤을 따라 소통하는 시간이 다름에도 불구하고 이 카카오톡 방이 없었으면 어떠했을까?할 정도로 가족 구성원의 소통에 있어서 없어서는 안될 귀중한 것이 되었다…
언제부터 카카오톡이 시작되었는지 몰라서, 검색해 보니 2010년에 서비스를 시작했다고 합니다. 이곳 저곳에서 카카오톡이 시작되면서 얼떨결에 저도 카카오톡 계정을 열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필리핀을 방문하던 중 카카오톡이 무엇인지 잘 모르는 아내에게 카카오톡을 소개하니 기겁을 하며 그런 것은 안 한다고 하더군요.
얼마나 시간이 지났는지 모르지만 아내도 카카오톡으로 열심히 소통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자연스럽게 저희 가족도 카카오톡 가족방이 만들어져서 카카오톡은 가족의 소통의 장이 되었습니다. 딸이 영국과 유럽 교수들의 컨퍼런스, 논문 발표회, 국제 학술대회에서 6차례의 큰 상을 받았을 때에도, 딸의 학술회의 동영상을 업로드 할 때에도, 필리핀에 있는 아내와 사무엘의 학교와 사역들을 나눌 때에도, 저의 보스톤 사역과 일상을 나눌 때에도 카카오톡 가족 방은 늘 뜨거웠습니다. 신기한 것은 한국 시각으로 밤 12시 일 때, 필리핀은 밤 11시, 그리고 영국은 오전 5시 그리고 보스톤은 낮 11시이어서 소통을 하는 시간대가 다 달라서 반응하는 시간대로 다르다는 점입니다.
지구촌의 세개의 시간대에 있는 마닐라, 런던 그리고 보스톤을 따라 소통하는 시간이 다름에도 불구하고 이 카카오톡 방이 없었으면 어떠했을까?할 정도로 가족 구성원의 소통에 있어서 없어서는 안될 귀중한 것이 되었습니다.
카카오톡 가족방에서는 딸이 결혼할 때에도, 결혼 사진과 협의사항을 카톡 방에서 논의할 수 있어서 좋았습니다. 딸이 영국 유학을 갈 때에도, 캠브리지 대학병원에서 손자를 낳을 때에도 가족 방에는 어김없이 손자의 사진이 올라왔습니다. 조금씩 자라는 손자의 사진이나 동영상이 올라오면 가족들의 반응은 뜨거웠습니다. 저는 손자의 사진이나 동영상은 늘 다운로드 받아서 시간이 날 때마다 보곤 했습니다. 손자의 자라는 모습을 보면 모든 시름이 사라지고 행복감이 충만해 짐을 느낍니다.
그런데 최근 저희 가족 방은 조금 분위기가 무거웠습니다. 올해도 끊임없이 금식했던 아내, 이제 의학박사 마무리에 있는 딸의 이야기도 아니었습니다. 아들 사무엘이 21일 금식을 하겠다는 것이었습니다. 이제 15세 밖에 안된 아들이 금식을 그것도 21일을 하겠다는 것입니다.
제가 잠시 필리핀을 방문했을 때 사무엘이 21일 금식을 하겠다는 애기를 들었습니다. 저는 21일은 너무 기니 14일 즉 2주만 했으면 좋겠다고 했습니다. 하지만 사무엘은 엄마가 늘 재정의 문제로 금식할 때마다 너무 마음이 아팠다고 합니다. 따라서 재정의 해결을 위한 기도 뿐 아니라, 자신이 하나님의 거룩한 사람으로 쓰임 받기 위해, 그리고 동성애나 LGBTQ를 지지하는 공립학교에서 자신의 믿음을 지키기 위해 꼭 금식을 하겠다는 것입니다. 사실은 사무엘은 얼마 전에도 7일 금식을 했습니다. 다니엘이 믿음의 절개를 굽히지 않고, 금신상에도 절하지 않았던 것도 소년의 때입니다. 요셉이 노예로 팔려간 것도 소년의 때이며, 골리앗을 무너뜨린 다윗도 소년의 때입니다. 이미 어릴 적부터 믿음 안에서 거룩한 주님의 부르심을 따라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사람으로 살아가는 것도 소년의 때입니다.
15세 밖에 안된 사무엘이 모든 생각이 하나님 중심, 교회 중심 그리고 성경 중심입니다. 이미 올해에도 성경을 정독 한 것이 벌써 여러 번 되었습니다. 그 어린 것이 주일학교 교사로 섬기고, 수십회에 달하는 여름성경학교에도 가장 앞장 서서 교사로 섬기고 있습니다. 노방 전도를 나가서 함께 전도하면 너무나 자연스럽게 전도하고, 마이크를 잡으면 얼마나 담대히 복음을 전하는지 모릅니다. 각 지역을 돌며 여름성경학교를 농구장에서, 장터에서, 마을 빈 공터에서 진행할 때에는 무거운 스피커, 앰프, 그리고 쌀 봉지와 간식이 담긴 무거운 짐을 지고 가야 합니다. 어디를 가든 가장 무거운 것은 언제나 사무엘이 지고 갑니다. 본인의 짐이 조금이라도 가벼운 것인 것 같으면 금방 바꾸어서 제일 무거운 짐을 자신이 지고 다른 이에게는 가벼운 짐을 맡깁니다. 이러한 모습을 한 두 번 본 것이 아닙니다.
이러한 삶은 가르쳐 주어도 따라 하기 힘들고, 억지로 하라 하면 도망가기 십상이고, 잠시 할 수 있으나 지속적으로는 불가능합니다. 보스톤에 있을 때 저도 나이가 있어서 수십개의 벽돌을 주차 공간에 놔두었는데, 사무엘이 소리도 없이 그 모든 벽돌을 제가 원하는 장소에 날라 다 두었습니다. 너무 고맙다고 하니 필리핀에 비하면 이것은 아무것도 아니라고 합니다.
인류 역사상 최악으로 꼽히는 2013년 태풍 하이엔(Haiyan, 필리핀에서는 욜란다, Yolanda)으로 수백만의 이재민과 사상자를 냈던 비사야 그 중에서도 사말 지역에 무너지고 파괴된 수십교회를 재건한 일이 있습니다. 저의 아내 김은주 선교사는 시체가 썩어가고 공항의 지붕이 날라가 버린 그 참혹한 지역에 수십개의 교회를 재건해서 세우게 되었습니다. 사무엘은 4세의 나이로 따라가서 벽돌을 나르고, 삽질을 하고, 노동을 함께 했습니다. 이미 3세, 4세, 5세 …. 15세가 되기까지 교회의 공사 현장에서, 거리 전도에서, 여름성경학교에서, 주일학교 영어 교사로, 매일 저녁 기도회에서 드럼 연주자로, 그 어린 것이 이미 사역자로서의 삶을 살아가고 있음을 볼 수 있었습니다.
제가 필리핀에 가면 사무엘에게 용돈을 줍니다. 이 사무엘이 지난번 필리핀에 갔을 때 저를 식사 대접해 주었습니다. 아내 김은주 선교사는 한국 방문 중이었고, 저는 금식을 마친 지 얼마 되지 않은 시기였습니다. 말은 그렇지만 제가 식사비를 내려고 하니 사무엘이 그 식사비를 이미 지불한 상태였습니다. 사무엘은 자신을 위해서는 먹는 것도, 그 어떤 것도 사용하지 않고 있다가 교회가 급하면 사역에 쓰라고 드린다고 합니다. 마치 저희 딸이 어릴 적 꼭 그렇게 했던 것처럼 말입니다.
그런 사무엘이 늘 엄마가 재정으로 인해 고통 당하는 모습에 마음이 너무 아팠다고 합니다. 제가 필리핀을 방문할 때, 아내가 한국을 방문해서 여의도 순복음교회에서 금요 예배에서 설교하게 되었습니다. 저희가 저녁 예배를 드리는 중에 아마도 여의도 순복음 교회 예배가 시작되었나 봅니다. 저희가 필리핀 저녁 기도회를 마치고 방에 들어 오는데 아내 김은주 선교사는 한국 여의도 순복음교회 금요 집회에서 계속 설교를 하고 있었습니다. 제가 사무엘 방문을 여니 사무엘은 흐느끼고 있었습니다. 저는 무슨 일이 있나 깜짝 놀랬습니다. 그러나 저는 무슨 일이 있었느냐?고 물었지만 사무엘은 아무 일도 아니라고 했습니다. 나중에 물어 보니 엄마가 너무 자랑스럽고 그리고 그리워서 자신도 모르게 눈물이 그렇게 흘러 내렸다고 합니다.
가슴으로 낳은 아들 사무엘, 언젠가 저희 부부가 이 아이에게 우리 입으로 이러한 사실을 말해야 하지만 아직은 그렇게 말할 타이밍을 놓치어서인지 말하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사무엘은 이미 아는 듯 합니다. 저는 사무엘을 입양할 때 다짐한 것이 있습니다.
“훗날 입양 사실을 알게 되는 날에도 그것이 아무것도 아닐 정도로 넘치는 사랑을 주자!”였습니다.
그런데 사무엘은 제가 생각한 것 이상으로 하나님의 사람으로 크고, 자라고 있으며, 성숙하고 있습니다. 그 어린 것이 하나님을 경외하고, 영혼을 생각하고, 몸을 사리지 않고 섬기는 모습을 보면 절로 존경의 마음이 듭니다. 사무엘이 금식을 시작할 때에, 저희 카카오톡 가족 방은 조용해졌습니다. 아내도, 딸도 그리고 저도 너무 가슴이 아프고 어찌할 수 없었습니다.
가족 방에서는 사무엘에게 21일 금식은 무리이니 짧게 할 수 없냐고 해도 사무엘은 요지부동이었습니다. 그런 사무엘이 사역에 하나도 빠지지 않고 다 참여했습니다. 금식 12일째가 되었는데 그 무거운 짐들을 다 지고 광장까지 가서 난타를 치는 사무엘의 동영상을 여러 번 보고 또 보았습니다.
“내 아들 사무엘!”
홀로 되새기며 아들을 부를 때 저의 뺨에는 눈물이 주르륵 소리도 없이 흘러 내렸습니다.
하나님을 경외하고, 순종하고, 자신을 내어 주는 헌신은 하루 아침에 일어나지 않습니다.
지난 7월 3일에서 5일 포르투갈에서 열린 국제 신경심리학회(Global Neuropsychology Congress)에서 쟁쟁한 세명의 국제 학자들과 함께 저의 딸이 발제를 했습니다. 이미 6개의 국제 대회 학술상을 수상한 딸이 이곳에서 발제한 주제는 “Multidimensional cognitive profiles of logogenic variant of primary progressive aphasia and Alzheimer’s disease”입니다. 이날 학술대회의 주제는 “Neuroimaging for Neuropsychological Assessment and Rehabilitation” 입니다. 딸이 지금 하는 모든 학문의 과정도 더 많은 영혼을 구원하고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기 위한 과정이라고 하며 언제나 자신을 낮추는 저희 딸을 보면 어디에서 저런 겸손이 나왔을까? 궁금할 정도입니다.
이처럼 서로 서로 용기를 주고 늘 사랑의 말이 넘쳐나던 저희 가족 방에 사무엘이 금식을 시작한 이후 조용해지기 시작했습니다. 이따금씩 아내는 사무엘이 물조차 받아 들여지지 않아 물을 잘 마시지 못하니 기도 부탁한다고 할 때에는 가슴이 찢어지듯 아팠습니다. 저는 수차례의 40일 금식 그리고 수십차례의 21일 금식 가운데 물조차 받아 들여지지 않는 금식이 얼마나 힘든 지 잘 알고 있습니다. 저는 21일 동안 물한모금 마시지 않고 금식한 적이 있는데 이때에는 창자가 꼬이고, 목의 기도가 말라서, 나중에 물을 마시려고 해도 한 스푼도 물방울이 넘어가지 않아 사선을 여러 번 넘기도 했습니다. 저는 그토록 많은 금식을 했건만 다시금 금식하라고 하면 오금이 저릴 정도이지만 아직도 저희 가족의 금식 행진은 멈출 줄 모릅니다. 그런데 사무엘이 이토록 금식을 힘들게 하는 소식으로 인해 저희 가족은 각자 숨죽여 울면서도 금식하는 그 모습으로 지켜 볼 수 밖에 없었습니다.
아마 저희 딸이 손자에게 삼촌이 금식한다는 말을 설명했나 봅니다. 그 어린 손자가 큰 소리로 울었다고 하네요. “Uncle Sam”하면서요. 저하고 손자하고 화상 통화할 때에도 Uncle Sam이야기를 하면 제일 좋아합니다. 화상 통화에서 손자가 Baby Shark 노래를 부르는데 아빠 다음에 삼촌을 넣어서 부를 정도로 삼촌을 좋아하더군요.
아무리 제 아내가 금식을 짧게 하라고 해도 사무엘은 뜻을 굽히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교회에서 많은 분들이 14일만 금식하라는 꿈도 꾸었다고 하고, 엄마, 아빠 그리고 누나와 조카까지 애기하니 사무엘이 14일만 금식하기로 동의했습니다. 저희 가족 방은 그제야 활기를 되찾았습니다. 이 소식에 저희 딸은 다음과 축하의 말을 건넸습니다.
“Sam, how did your fast break go?? Huge congrats, praise God for giving you strength and I know He listened and has answered your prayers. I am so proud of you. You’re an inspiration❤️”
그러자 아들 사무엘이 이렇게 답했습니다.
“Thank you, sis, for the support and love you have shown me throughout this past 2 weeks, I really couldn’t do this without God and my loving family.”
우리 딸의 답입니다.
“You are such an incredible man of God! So proud to call you my brother. Love you so much!!”
그리고 제가 글을 올렸습니다.
“Samuel, my beloved son,
My son, whom I always miss even in my dreams,
While you were fasting and praying, I did not feel at ease even for a single moment.
How hard is it for you…
However, I was very moved by how mature you were for your age and how you gave yourself to God.
I believe that you will become a great person whom God is pleased with, that is, a man of God.
I love you son, Sam.
Congratulations on your fasting victory!”
그리고 저희 가족방은 예전처럼 손자 애기, 가족 애기, 그리고 서로 서로 안부를 묻는 애기로 활기를 되찾고 있습니다.
이제 일주일 뒤면 저는 필리핀으로 갑니다. 마닐라 국제 선교대회를 인도하기 위해서 입니다. 가면 아들을 마음껏 안아주고 싶습니다. 이 아들이 있어서 제가 살 수 있었고, 이 아들로 인해 행복합니다. 많은 분들에게 가족을 통한 하나님의 은혜가 가득하시길 기도합니다.
보스톤에서 김종필 목사 올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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