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내는 쓰나 그 열매는 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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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디토리얼=이창배 발행-편집인] 인내는 쓰나 그 열매는 달다 »
아직 우리 스스로 자가 격리가 필요하다
이 시대 그리스도인들의 존재 양식은 무엇이고, 행동 양식은 어떻게 되어야 하나? 지금 겪고 있는 이 어렵고 힘든 순간들 가운데 그리스도인의 정체성 고민해야 한다. 결국은 나의 구원에서 시작되고, 더 많은 사람이 주께 돌아오는 역사로 이어져야 한다.
7월은 보라색으로 시작이 됐다. 자연은 신기하게도 변화의 주기를 형성한다. 시 당국에서 라운드의 한복판에 라벤더 꽃밭을 조성했다. 투명하고도 따가운 여름의 햇살에 라벤더의 보라색 꽃과 향기가 지나는 사람들의 기분을 편안하게 만들어 주었다.
지난 넉 달 동안 코로나로 인해 공기도 한결 정화된 모양이다. 자연 공간이 예년에는 결코 볼 수 없었던 모양으로 회복이 된 느낌이다. 수목은 더욱 짙푸르고, 새소리는 여기저기 들려지고, 꽃과 꽃 사이를 오가는 나비와 벌의 개체도 많아진 것이 여실하다. 이전에는 제대로 볼 수 없었던 이름 모를 야생의 꽃들과 함께 어우러져 자연을 그대로 연출해내는 이 모습, 이 풍경 그 자체로도 마음에 웃음이 자아 난다. 콧노래가 절로 나올 것 같다. 아~ 좋다.
일상의 회복인가? 그야말로 답답한 자가 격리의 시간, 3개월여를 보내는 동안 얼마나 무료하고, 힘이 들었는지 사람들이 더는 코로나에 아랑곳하지 않고 거리로 뛰쳐 나온다. 예전만큼 붐비는 사람들의 인파가 쇼핑가를 따라 움직인다.
동네 공원 놀이터는 어린아이들을 동반한 가족들로 빼곡하고, 노천카페에도 빈자리가 없을 정도로 사람들로 북적거린다. 다만 상점 출입 인원수를 제한하는 것과 상점 카운트에 유리 방어벽을 설치했거나, 출입하는 고객들에게 마스크 착용을 의무화한 것이 변화이다. 예전엔 마스크 착용에 심한 거부감을 느끼던 사람들이, 이제는 피치 못해서 일지라도 스스로 마스크 착용을 습관화하고 있다는 느낌이 든다. 평소 개인적 자유를 최대한 누리던 서구사람들의 습관적인 행동 양식은 어쩔 수 없는지 아직도 조심성이 없어 보인다. 그래서 걱정이다.
이런 분위기 때문에 여전히 대인관계의 두려움은 벗어날 수 없다. 문제는 누가 바이러스를 가지고 있을지 알 수 없다는 것이다. 하지만 아직 이렇다 할 뚜렷한 방법이 없다. 원론적이지만 스스로 철저하게 위생관습을 지키는 것 빼고는 달리 방법이 없다. 그래서 아직도 우리는 스스로 자가 격리가 필요하다. 누가 뭐래도 사회적 거리 두기를 지켜야 한다. 심지어 아파트의 출입문으로 시작해 여러 사람이 공동으로 사용하는 엘리베이터의 버튼을 누르는 것조차 조심스럽다.
김연택 박사는 “Coronavirus, History and God’s Mission in the World” 라는 논문을 인용해, AD165-180년경, 로마제국에서 전염병으로 2,500만 명이 감소 되었는데, 오히려 성도는 50만 명이 더 늘고, 교회들은 곳곳에서 부흥했다고 전했다. 그 근거로 역사가 유세비오가 주후 253년에 기록한 내용을 인용했다. 그 내용에 따르면 “전염병으로 수많은 사람이 죽어가고 있을 때, 성도들과 교회가 나서서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세상 사람들을 섬겼다. 그로 인해 하나님의 나라가 오히려 확장하게 되었다”는 내용이다.
아모스 3:6절, “성읍에서 나팔이 울리는데 백성이 어찌 두려워하지 아니하겠으며 여호와의 행하심이 없는데 재앙(전염병)이 어찌 성읍에 임하겠느냐” 는 말씀을 살펴보자면, 재난과 재앙, 전쟁, 전염병 등 모두 하나님이 이스라엘에 보내셨다는 뜻으로 해석된다.
현재로 일어나고 있는 이 기막힌 모든 상황 역시도 하나님의 뜻 없이 된 일이 아니라는 데 주목해야 한다. 바울은 로마서 8:28절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그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이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룬다”고 했다.
우한에서 시작되어, 전 세계의 일상을 일시적이며, 또한 일거에 바꾸어 놓은 결과를 보자. 인류가 발전시켜 온 최첨단의 과학문명과 의료기술이 무색해졌다. 인간의 모든 교만과 자랑을 일거에 추락시켜 버렸다. 그 어떤 일이 전 세계를 동시다발적으로 뒤흔들고, 일상의 변화가 되지 않으면 안 될 만큼 강력한 에너지로 충격을 주었는가? 마치 약속이라도 한 것처럼 일거에 언컨택트 (uncontact), 뉴노멀(new nomal)이 자리매김했다.
그렇다면, 이 시대 그리스도인들의 존재 양식은 무엇이고, 행동 양식은 어떻게 되어야 하나? 지금 겪고 있는 이 어렵고 힘든 순간들 가운데 그리스도인의 정체성 고민해야 한다. 결국은 나의 구원에서 시작되고, 더 많은 사람이 주께 돌아오는 역사로 이어져야 한다. 나로 인해 하나님의 영광이 나타나고, 하나님의 나라가 나의 이웃과 주위로 확산될 때, 결국은 이 세상, 믿는 자들이 발을 딛고 서 있는 모든 땅에서 마지막 날의 그 찬란한 역사를 맞이하게 되리라 확신한다.
글 이창배 목사/ 본지 발행-편집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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