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전한 사랑 만이 이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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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디토리얼=이창배 발행-편집인] 온전한 사랑 만이 이긴다 »
온전한 사랑 만이 이긴다-언택트UNTACT 시대를 극복할 키워드이다. 앞으로도 얼마 동안 지속될 지 모르는 이 암담한 현실에서 문득 밧모섬의 어둡고 떨리는 공포의 한 가운데에서 빛이 되시는 주님을 만난 사도 요한이 떠오름은 참으로 벅찬 감동이다…
어제의 밝고 투명한 햇살이 오늘도 이어져 서쪽 하늘 멀리로 내려앉고 있다. 연한 진주색으로 시작된 저녁노을이 조금 시간이 지나며 붉게 하늘을 물들인다. 먼 발치 산등성이 너머로 해가 떨어져 내리며 조금씩 어둠이 내려 앉고 있다. 하루 이틀 슬금슬금 지나가는 날들이 계속되며 8월의 무더운 시간도 그렇게 흘러갈 것이다.
지난 주말에는 일이 있어서 오래간만에 프랑크푸르트 국제공항엘 다녀오게 됐다. 지난 2월 공항을 다녀간 후로는 근 6개월이 된 것 같다. 코로나-19 펜데믹 사태로 뉴스를 통해 공항의 사정을 듣고 보기는 했지만 막상 직접 방문해 본 일은 처음이다. 때마침 여름 휴가철이라서 그런지 생각보다는 공항에 사람이 제법 많아 보여서 놀랐다.
물론 예전의 공항 풍경은 오가는 사람들로 성황을 이뤘다. 그때에 비하자면 많은 차이가 남에도 불구하고 내심 반가운 생각도 들었다. 제법 사람들이 일상을 되찾고 있는 것처럼 느껴졌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거기까지다. 곳곳에 문을 내린 매장이 눈에 띠고, 오가는 사람들이 누구라 할 것 없이 마스크 착용을 하고 있다는 것을 보면서 새삼 엄연한 현실이 실감이 된다.
그런데 확연하게 달라진 것을 곧 느끼게 됐는데 그것은 타인에 대한 경계심이 예민해지는 것이었다. 누가 뭐라 하는 것도 아닐텐데 사람들은 자기 스스로 알아서 주위 사람을 경계하는 것이다. 우정 사람이 여럿 있는 곳은 피해가고, 앉을 자리도 여간 신경을 쓰지 않으면 안된다. 심지어 패스트푸드 매장은 이용하기가 껄끄럽고, 웬만하면 지나쳐 가게 된다. 그렇다.
여행에 대한 기대감으로 들뜬 사람이 거의 없는 이상스런 공항의 모습, 떠나보내는 사람이나, 맞이하는 사람이나, 조심스러움과 걱정이 교차하는 진풍경을 살피면서 어쩔 수 없는 언택트UNTACT 시대라고 하는 무거운 현실을 받아들이지 않을 수 없었다. 이와 함께 부정할 수 없는 대인 관계의 기피 현상이 깊숙하게 내 마음 한구석에 자리하게 됐다는 것을 서로가 서로에게서 느끼게 된다. 그러니 공항에서의 일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와서도 한 동안 마음이 침울해지지 않을 수 없었다. 언제까지 이렇게 살아야 할까?
언택트UNTACT 시대의 해석
낮선 타자에 대한 경계심, 점점 더 더불어 살아가는 삶에 대한 그리움이 커져만 간다. 사람이 사람답게 산다는 것이 얼마나 좋은가. 타자의 상태를 알지 못한 채 ‘혹시’ 라는 두려움이 앞서기는 너와 나 다름이 없으니, 이 모든 게 두려움이 아니겠는가?
최근 ‘코로나19 발생 이전의 세상은 이제 다시 오지 않는다.’ 라는 말이 나돈다. 코로나19로 전 세계가 변화의 급물살을 타면서. 그 누구도 예상하지 못한, 혹은 예상은 했으나 지금 시대에는 일어나지 않을 것 같은 일들이 현실로 성큼 다가섰는데, 그 중 하나가 언택트UNTACT 시대의 도래이다. 어느 정도 예견된 5G, 인공지능, 사물인터넷, 증강현실, 가상현실, 플랫폼 비즈니스라는 초연결 사회가 언택트를 타고 지금 우리 앞에 정말 눈깜빡할 사이에 등장한 것이다.
“언택트UNTACT란 접촉을 뜻하는 콘택트CONTACT에 부정과 반대를 뜻하는 언UN을 붙인 신조어로, 소비자와 직원이 만날 필요가 없는 소비 패턴을 말한다”는 정의가 주류를 이루는 가운데 행동심리와 리더십, 협상 분야에 독보적인 콘텐츠 크리에이터이자 GGL리더십그룹대표인 정인호씨는 청출판에서 <코로나에 숨은 행동 심리, 언택트심리학>이란 책을 펴냈다. 이 책에서 저자는 ‘번아웃증후군BURNOUT SYNDROME’이란, 의욕적으로 일에 몰두하던 사람이 극도의 신체적, 정신적 피로감을 호소하며 무기력해지는 현상이다. 그런데, 코로나19 펜데믹과 함께 ‘결정피로DECISION FATIGUE’ 라는 심리적 스트레스의 누적 현상이 더해져 특유의 번아웃증후군이 됐다고 주장한다.
예를 들자면, ‘결정피로DECISION FATIGUE’ 는 이웃에게 식료품을 나누어주어야 할지말지, 옆집 친구아이와 놀게해야 할지말지, 배달 주문을 해야 할지말지 등등이다. 이런 대부분의 일들로 결국 심리적 스트레스가 쌓여가는데, 그 저변에 깔려있는 심리는 나 자신과 가족, 혹은 이웃과 교회 또는 직장 공동체를 위해 안전한 결정을 해야 한다는 압박감과 결합되면서 결국 번아웃증후군을 초래하는데 더욱 안타까운 것은 이러한 번아웃증후군과 결정피로를 해소할 마땅한 방법이 없기에 언택트UNTACT 시대는 더 곤혹스럽기 짝이 없다는 것이다.
뉴노멀NEW NOMAL, 두려움을 넘어서
하루의 일과를 마치고 집에 돌아와 저녁 하늘의 붉은 노을을 바라보면서 따끈한 차 한잔과 음악, 아니면 어떤 취미 생활이라도 피곤을 삭힐만한 여유로운 삶을 살아갈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런데 코로나19 펜데믹은 이러한 일상의 소소한 행복마져 빼앗아 갔는지 모른다. 어떤 이들에게는 안식처가 될 집이 사무실이자, 학교이고, 흡사 감옥처럼 좁은 공간에 갇혀서 우두커니 창문 밖 세상을 내다보면서 갑갑하게 살아가야만 할 뉴노멀NEW NOMAL이 무슨 즐거움이 있겠는가? 행여 바깥을 다니고, 수퍼마켓을 다녀올지라도 이 더운 여름철에 갑갑하게 마스크를 착용하고, 사회적 거리두기를 염두에 두면서 타자가 근처에 오는 것을 경계하는 삶의 형태가 마치 창살 없는 감옥의 생활과 뭐 그리 다를 것도 없는 게 아닐까 싶다.
언제부터 인지 모르게 우리는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두려움에 사로잡혀 살아가고 있다. 막연한 공포에 떨고 있는 것은 아닌가? 무의식의 저 만큼 깊은 곳에서 생성된 원초적 본능이 의식 세계로 표출된 것일까? 아무리 생각해 보아도 이러한 현상들은 모두 영적이 아닐 수 없다. 하지만 우리가 간과할 수 없는 영적 진리가 있다.
“사랑 안에 두려움이 없고 온전한 사랑이 두려움을 내어 쫓나니 두려움에는 형벌이 있음이라 두려워하는 자는 사랑 안에서 온전히 이루지 못하였느니라” (요한일서 4:18).
사도 요한이 그 생애 말년에 터득한 금언과도 같은 고백이다. 죽음은 일순간이지만, 죽음에 이르는 긴 시간 동안 겪게 되는 고통을 참아내며, 또 감당해야 했던 사도 요한의 절절한 외침의 소리를 3권의 서신서에 그렇게 남겼을 것이다. 여기에서 등장되는 사랑은 곧, 예수 그리스도이고, 하나님이시다. 이 말씀은 만고의 진리이다.
그렇다. 이 언택트UNTACT 시대를 극복할 키워드는 바로 온전한 사랑이다. 앞으로도 얼마 동안 지속될 지 모르는 이 암담한 현실에서 문득 밧모섬의 어둡고 떨리는 공포의 한 가운데에서 빛이 되시는 주님을 만난 사도 요한이 떠오름은 참으로 벅찬 감동이로다.
이달의 말씀 ㅣ요한일서 4:18
“사랑 안에 두려움이 없고 온전한 사랑이 두려움을 내어 쫓나니 두려움에는 형벌이 있음이라 두려워하는 자는 사랑 안에서 온전히 이루지 못하였느니라” (요한일서 4:18). ◙ Now&Here©유크digitalNEWS
글 이창배 목사/ 본지 발행-편집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