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교지 언어 잘하면 할 일 너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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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교지 언어를 포기하지 않으면 발전이 있다
본지의 ‘실크로드&복음루트 ’의 기고자 최하영 선교사가 이번 호부터 선교지에서 실제적인 현장사역의 경험을 토대로 다큐멘터리로 집필해 독자들과 공감을 나누고자 한다. 이글을 통해 로컬에서 사역하는 선교사들과 또 선교를 준비하거나 관심있는 독자들에게 도움이 되리라 생각된다. <편집자주>
[미션저널=최하영 선교사] 선교지 언어 잘하면 할 일 너무 많다 » 연재물 1회 » 선교하면, 언어(language)와 문화(culture), 인종(ethnicity)이 다른 곳에 가서 복음을 전하는 것으로 생각한다. 그래서 필자도 대학을 졸업하고 직장을 다니던 중에 선교사로 나가고자 알아보다가 신학대학원을 다니게 되었다. 신학을 하면서 아직 어디로 가야 할지 정하지 않았기 때문에, 단순하게 많은 언어를 배워가겠다 생각했었다. 그래서 라틴어(Latin)와 화란어(Dutch), 불어(French)를 배웠다. 물론 성경 히브리어(Hebrew)와 헬라어(Greek)도 배웠다. 그런데, 필자가 1996년에 선교지로 간 곳은 중앙아시아 우즈베키스탄(Uzbekistan)으로 선교지 언어로 러시아어(Russian)를 배웠다. 이곳은 70년 가까이 러시아어를 공용어로 썼던 소련(Russian Soviet Federative Socialist Republic)의 지배를 받다가 1991년에 독립을 해서 일상언어와 학문, 대중매체언어로 여전히 러시아어를 썼고, 특히 1937년 극동에서 강제 이주되어 온 우리의 동포 고려인(Koryo Saram)들이 러시아어를 써서 선교지 언어로 러시아어를 선택하였다. 그 후 선교지 온지 10여년만에 지역연구를 위해 ‘실크로드 따라 유목민에게 나타난 천년의 교회역사(The Millennium Church History Appeared to Nomads along the Silk Road)’를 연구할 때 여러 언어들이 유익 했었다.
필자는 우즈베키스탄으로 가기 6개월 전에 한국의 한 대학교에서 러시아어에서 온 고려인 교수로부터 아내와 함께 러시아어 기초를 어느 정도하고 갔었다. 그런데, 막상 가보니 고려인들 중에 북한 계통의 말을 하는 분들이 꽤 많았다. 당시 그들 대부분은 60세 이상으로 35세된 젊은 한국 목사에게 많은 호기심과 설레움으로 다가왔었다. 그들은 독립된 우즈베키스탄의 공용어인 우즈벡어(Uzbek)보다 러시아어로 말하였다. 필자는 그들 중에 통역 겸 후계자를 세워 바로 교회개척사역을 시작할 수 있었다. 그리고 고려인 할머니와 할아버지들은 한국의 성도들처럼 여러 모양으로 잘 섬겨서 마치 한국 교회 목회 사역하는 것과 같았다. 그러다가 4년이 지나 안식년을 맞이하여 ‘셀그룹 교회 역사(Cell Group Church History)’를 연구하면서 그 동안 많은 우즈벡 어린이들이 잘 적응하지 못하는 것이 언어에 있음을 깨닫고 러시아언어권 그룹과 우즈벡 언어권 그룹으로 나눠서 예배를 드렸더니 함께 부흥하게 되었다.
이는 맥가브란(Donald A. McGavran, 1897-1990) 박사가 인도에서 선교하면서 95%사람은 동질집단(Homogeneous Units)으로 모인다는 것이다. 특히 언어에 문화도 담겨있기에 어느 언어로 예배를 드리냐에 따라 그 양식이나 행위도 조금 다른 것 같았다.
러시아언어권 그룹 예배는 러시아 정교회(Russian Orthodox Church) 영향을 받아 좀 더 정적이고 형식적인데, 우즈벡 언어권은 이슬람(Islam)의 영향을 받아 신비적이고 역동적임을 볼 수 있었다. 몇몇 성도들 가운데 우즈벡 따따르인(Tatars)이 있었는데, 자기들끼리 성경공부 할 때는 따따르어를 하는 것을 봤다. 그 만큼 같은 언어에 공감소통과 주의 은혜가 더 넘치는 것 같다. 그러므로 다민족 다언어권에 있는 지역에서는 각 민족마다 고유언어로 예배 드리는 것을 추천하고 싶다.
우즈베키스탄은 1998년부터 근본주의 이슬람을 배격하기 위해 종교법을 강화하여 외국인들이 선교하는 것을 제한하기 시작하였다. 결국 필자도 2007년에 추방을 맞이하였고 지금까지 사역하였던 교회와 병원, 사택, 자동차 등을 고스란히 두고 한국으로 철수하였다. 처음 우즈베키스탄 사마르칸트(Samarkand)에 갈 때 큰 가방 두개만 가져갔었는데, 10여년만에 많은 선교자산과 제자들, 성도들이 있게 되었다. 당시 두 아이는 15, 17세로 사춘기를 맞이하였고 현지 학교를 다녔었다. 갑작스러운 추방으로 아이들의 교육에도 많은 문제가 생겼다. 감사한 것은 아이들이 어렸을 때부터 가정 안에서 꾸준히 한글을 배웠고 또 한글 선교사 덕분으로 한글 책들을 읽을 수 있어 한국에서 잠깐 학교를 다닐 수 있었다. 그리고 아이들이 러시아학교를 다녀 러시아어를 할 줄 알고 우즈벡 친구들도 있게 되었다.
다시 2008년에 우즈베키스탄에 들어와 타슈켄트(Tashkent)에서 학원을 하면서 비밀히 제자들을 양육했지만, 2010년에 다시 추방이 되었다. 이렇게 두 번에 걸쳐 추방이 되면서 필자에게 많은 선교적 성숙함이 생겼다. 2011년에 같은 소련권이었던 우크라이나(Ukraine)로 재배치되었는데, 키예프(Kyiv)에서는 고려인이 많지 않아 적당한 통역자가 없었다. 그래서 그제서야 정신을 차리고 아내와 함께 대학에서 러시아어 예비학부를 다녔다. 그리고 1년 더 비즈니스 그룹에서 러시아어를 배웠다. 그 덕분으로 어느 정도 러시아어로 강의도 하고 설교도 하면서 순회사역을 할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2019년 4월부터는 체르니히우 교회(Chernihiv Church)를 맡아서 사역하고 있다. 그런데, 우크라이나에서는 공식적인 교육과 예배언어가 우크라이나어(Ukrainian)이다. 그래서 찬양은 우크라이나어로 설교는 러시아어로 하고 있다. 그러나 부끄럽게도 필자는 아직도 러시아어에 자신이 없다. 강의하고 설교할 때 순전히 성령께서 돕는다는 것을 절실히 느낀다. 같이 동역하는 나의 아내는 선교지 도착할 때부터 제대로 언어를 배우기를 원했다. 이제 늦었지만 60세 넘어 키예프 외대 통번역학과 졸업반이 되었다. 이전 25년 함께 하셨던 주님께서 이후 25년도 더 크게 아름답게 쓰실 줄 믿는다.
한국인은 언어 습득이 다문화권에 있는 국가와 민족보다 쉽지는 않는 것 같다. 지금은 한국 내에 250만명의 다문화 다민족이 있지만, 그래도 아직도 한국인 대부분은 단일민족(Nation state)과 단일언어(Monoculture)에 익숙해져 있다. 또한 한국인은 감정과 행동이 앞서다 보니 언어습득에 익숙하지 않는 것 같다. 더구나 북방 유목민 기질을 갖고 있는 한국인은 글을 쓰거나 읽는데 익숙하지 않는 것 같다.
필자는 공대를 졸업할 정도로 수학은 뛰어나는데, 언어능력이 좀 떨어지는 것 같다. 읽고 독해하는 것은 쉬운데, 말하고 듣는 것이 좀 어렵다. 감사한 것은 둘째 아이가 영어 시험을 보면 거의 만점에 가깝게 맞는 것 보면 러시아어와 우즈벡어를 접해서 그런 것이 아닌가 생각해 본다. 그리고 첫째 아이는 30세인 지금까지 러시아언어권을 벗어나지 않았다. 현재 모스크바에서 교수와 비즈니스를 하고 있다. 이런 선교사 2세들이 선교자원이 되면 좋겠는데, 아직 필자의 자녀들은 직접적인 선교보다 간접적으로 선교를 돕고 있다.
한편, 필자는 선교 초창기부터 우즈베키스탄 정부로부터 외국인 선교사가 직접선교 하는 것을 감시했기 때문에 이른 시기에 교회와 병원을 이양하고 비밀히 제자훈련과 현지연구 사역을 했었다. 그것이 오히려 현지 지도자들이 독립하는데 더 빨랐던 것 같았다. 또한 필자가 잘 못하는 현지언어로 설교하는 것에 벗어날 수 있어 좋았다. 그때는 통역을 세워 설교와 강의를 하였다. 지금도 몇몇 선교사는 통역을 세워서도 사역을 잘 하는 것을 볼 수 있다. 그러므로 선교지 언어를 해야만 선교하는 것은 아니다. 요즘은 제4차 산업혁명(Fourth Industrial Revolution) 시대에 걸맞게 언어혁명(Language Revolution)도 일어나고 있다. 이미 동시통역 앱(Google Translate, Flitto, Genie Talk, PAPAGO 등)을 통해 의사소통(communication)하는데 그리 어렵지 않는 시대를 맞고 있다. 그러나 아무리 인공지능(Artificial Intelligence, AI)이 발달하고 그로 통해서 소통이 된다 해도 영적인 사역을 하는 선교사는 성령의 인도하심 따라 택한 백성들을 인도해야 하는 독특한 감성이 있어야 하기 때문에 동시통역 앱을 도구로 삼는다 할지라도 선교지 언어를 배워야 하는 특별한 신분을 가졌다. 그 이유는 선교지 언어의 문법과 어휘 등을 알아야 진정으로 현지인들과 소통하며 전도 및 상담을 할 수 있다.
선교지 언어를 포기하지 않으면 발전이 있고 중단하지 않으면 분명히 나아진다.
아직 선교지 언어가 힘든 분들이 있다면 늦었다고 생각할 때가 가장 빠른 때이다. 특히 늦게 혹은 은퇴해서 선교지에 온 선교사들도 나이와 상관이 없이 반드시 해야 한다. 어쩌면, 내일 선교지를 떠나든지 죽는다 해도 오늘은 선교지 언어를 배우는 자세로 임해야 한다. 그러므로 젊든지 연세 있든지 처음 선교지에 도착한 선교사는 적어도 2년은 선교지 언어에만 집중해야 한다. 언어 속에 생활과 문화가 있다. 선교지 언어를 할 줄 알면 할 일은 너무 너무 많다.
필자: 최하영 목사/ hydavidchoi@gmail.com
필자가 선교지 온지 10여년만에 지역연구를 위해 ‘실크로드 따라 유목민에게 나타난 천년의 교회역사(The Millennium Church History Appeared to Nomads along the Silk Road)’를 연구할 때 오래전부터 어렵사리 배워온 여러 언어들이 유익 했었다. ◙ Now&Here©유크digitalNEW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