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 가인과 악인의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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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저널=정이신목사] 17. 가인과 악인의 길 »
가인과 악인의 길은 심판이 기다리고 있는 ‘종의 길’과 같다
악인과 가인의 길에 대응하는 길이 ‘생명의 길’입니다. 저는 생명의 길을 ‘다윗의 길’이라고 합니다. 이는 성경에 나온 표현이 아니라, 제가 만들어 본 것입니다. 인간이 자신의 힘으로 가는 게 아니라, 예수님의 의가 전가돼야 갈 수 있는 길이기에 ‘다윗의 길’이라고 이름 지어 봤습니다.
<1:17>에 새에 관한 비유가 나옵니다. 제가 어릴 적의 일입니다. 아버지가 신경통으로 고생했는데, 참새가 약이 된다고 어디서 듣고 왔습니다. 평상시에 집 마당에 참새가 많이 날아왔기에, 덫을 만들어 참새를 잡으려고 모이를 놔뒀습니다. 그러나 덫을 놓은 그 날은 참새가 아예 집 주변에서만 맴돌고 집 마당으로 들어오지 않았습니다.
새가 아무리 어리석어도 그물이 보이면 거기에 가지 않습니다. 맹수가 웅크려서 사냥을 준비하고 있으면 초식동물이 그곳으로 가지 않습니다. 새나 초식동물이 이 정도라면 하나님은 어떨까요?
<잠언> 기자는 아이들을 꾀는 악인의 길이 바로 이와 같다고 했습니다. 불 보듯 결과가 뻔한 일인데도, 악인은 아니라고 우기면서 아이들을 유혹하니 그 길로 가지 말라고 했습니다. 이는 그 길을 하나님이 허사로 만드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1:19>은 악인이 꾀하는 길의 결론입니다. 재물로 인해 목숨을 빼앗기게 되는 게 악인이 제시한 길입니다.
예수님은 인간이 목숨을 걸고 얻어야 할 건 그분의 제자가 되는 것이라고 했습니다(누가복음 14:26). 예수님의 제자가 돼야지 하나님이 주시는 영원한 생명을 얻을 수 있기에, 이것 외에 다른 것에는 목숨을 걸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요한계시록 6:9>을 보면 예수님의 말씀에 따라 복음을 증언하기 위해 목숨을 걸었던 사람들의 영혼이 하나님이 계시는 제단 바로 아래에 있습니다. 제단 바로 아래에 있을 만큼 순교자들이 대단한 일을 했기에 이들이 거기에 있습니다.
악인이 제시한 길로 가다가 목숨을 잃는 일은 전혀 이런 가치가 없습니다. 그래서 <잠언> 기자는 악인이 꾀하는 길의 결론으로 재물 때문에 목숨을 잃게 되는 일이 발생한다고 했습니다. 바울은 “돈을 사랑하는 게 모든 악의 뿌리”라고 했는데(디모데전서 6:10), 악인을 따르면 그런 일이 벌어집니다.
<잠언>에서 말한 악인의 길을 신약성경은 “가인의 길”이라고 합니다(유다서 1:11). <유다서>에서는 가인의 길을 우상 숭배자를 따르는 길이라고 했는데, <유다서>와 전ㆍ후편을 이루는 <베드로후서 2:12>은 가인의 길이 “지각이 없는 짐승”과 같다고 했습니다.
이 말씀을 종합해 보면 가인과 악인의 길은 심판이 기다리고 있는 ‘종의 길’과 같습니다. 성령님이 인도하셔서 회복이 약속된, 예수님의 은혜 안에 있는 ‘아들의 길’에서는 신앙이 자라는 게 가능하지만(에베소서 4:16, 베드로후서 3:18), 심판이 주도되는 ‘종의 길’에서는 이게 불가능합니다.
아들은 부족할 경우 성장해 아버지의 소유를 물려받는 게 허용되지만, 종은 이게 허용되지 않습니다. 종은 주어진 일을 잘 처리하는 사람이 돼서 주인의 심판을 벗어나는 게 중요합니다(로마서 11:22, 디모데후서 1:7).
악인과 가인의 길에 대응하는 길이 ‘생명의 길’입니다. 저는 생명의 길을 ‘다윗의 길’이라고 합니다. 이는 성경에 나온 표현이 아니라, 제가 만들어 본 것입니다. 인간이 자신의 힘으로 가는 게 아니라, 예수님의 의가 전가돼야 갈 수 있는 길이기에 ‘다윗의 길’이라고 이름 지어 봤습니다.
하나님의 심판에 대한 두려움에서 예수님의 은혜로 안심하는 쪽으로 처지가 바뀌는 게 구원의 서정입니다. 이때 사탄은 하나님을 두려움으로 대하게 하고, 예수님은 인자한 아버지로 대할 수 있게 그분의 의를 전가해 주십니다. 예수님이 보장해 주셔서 하나님을 인자한 아버지로 부를 수 있는 길이 ‘다윗의 길’입니다.
우리가 악인의 길을 따르지 않아야 삯을 받는 종의 신앙에서 유산을 물려받는 아들의 신앙으로 바뀝니다. <창세기 4:14>을 보면 가인은 두려운 하나님을 만났습니다. 가인이 아벨을 죽인 후 하나님을 만났지만, 두려워서 더는 주님을 뵙지 못하겠다고 했습니다.
예수님은 마음으로 사람을 미워한 사람도 심판받는다고 하셨습니다(마태복음 5:22). 그렇다면 실제로는 우리도 모두 가인처럼 살인자입니다. 여기서 성경은 두려운 하나님과 아빠 하나님을 모두 언급하는데, 우리가 만나야 하는 분은 ‘아빠 하나님’입니다. 죄인이지만 우리는 예수님의 도움으로 아빠 하나님을 만나야 합니다(마가복음 14:36, 로마서 8:15).
악인이 제시하는 길로 가지 않고, 악인의 꾐에 속지 않으려면 하나님의 사랑을 체험하는 수밖에 없습니다. 그 길이 아무리 나쁜 길이라고 해도 더 나은 길이 없으면 그 길로 빠져들어 가는 게 인간입니다. 중독성이 있는 나쁜 것인 줄 모르고 마약에 빠져드는 사람은 없습니다. 알면서도 더 나은 길이 보이지 않기에 마약의 유혹에 빠져듭니다.
우리도 예수님이 만난 아빠 하나님을 만나야지 구원을 얻을 수 있습니다. 굳이 가인이 만났던 두려운 하나님을 만날 필요가 없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신앙생활을 하기 위해 악인의 권모술수에 속으면 안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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