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 올바른 사랑과 기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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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저널=정이신목사] 31. 올바른 사랑과 기쁨 »
잠언을 통해 사랑에 대한 가치관을 점검해 보라…
<잠언>을 통해 여러분이 가지고 있는 사랑에 대한 가치관을 점검해 보십시오. 여러분은 하나님 앞에서 상대를 바로 세워주기 위해 사랑하고 있습니까, 아니면 상대를 여러분의 손아귀에 옭아매기 위해 사랑하고 있습니까? 또 상대를 생명의 길로 이끄는 사랑을 하고 있습니까, 죽음의 길로 몰아가는 사랑을 하고 있습니까? 성경에서 말씀한 부정한 사랑은 윤리적 부정만을 말하지 않습니다. 상대를 살리고 생명의 길로 이끌지 못하는 사랑도 성경에서 잘못됐다고 말씀한 것입니다…
구약시대 율법에 따르면 이스라엘에는 창녀ㆍ남창이 있을 수 없습니다(신명기 23:17). 따라서 <2:16>에 나온 음란한 여자는 음탕한 곳에 가서 돈을 주고 성행위를 하는 것만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사람에게 배필과 이성(異性)을 사랑하는 마음을 주셨는데(창세기 2:18), 이것에는 반드시 책임이 따릅니다. 그렇기에 앞으로 일어날 일에 대해 책임지려고 하지 않는 사랑은 거짓입니다. 동물도 짝짓기로 태어난 자기 새끼들을 책임지기 위해 노력합니다.
성경에 따르면 사람이 이성에 대한 사랑을 찾기 전에 먼저 하나님 앞에서 바른 사람이 돼야 합니다. 그렇지 않고 이성적인 사랑만 찾으면 성적 쾌락에 중독됩니다. 자신이 소중한 사람이라면 자신과 관계 맺는 상대도 하나님께 소중한 사람입니다. 이것을 마음에 새기고 있어야 바른 이성 관계를 유지할 수 있습니다.
<2:16>에서는 음란하고 부정한 여자를 언급했는데 이는 시대적 상황을 고려한 표현입니다. 현대에는 소위 제비족이나 가정 파괴범이라 불리는 음란하고 부정한 남자도 많습니다. 따라서 여자 크리스천은 이 말씀을 ‘지혜가 너를 꾀는 음란하고 부정한 남자에게서 건져줄 것이다’로 읽으면 됩니다.
<잠언> 전체적으로는 경계해야 할 여자에 관한 이야기가 약 1/3쯤 나옵니다. 이는 당시에 글을 읽었던 존재가 남자들이었고, 이 말씀을 듣는 사람도 주로 남자였기에 나타난 시대적 산물입니다. 그래서 <잠언>의 이 말씀은 구약시대 율법의 토대가 되는 모세오경과 같이 봐야 합니다.
모세는 창녀ㆍ남창을 같이 금지했는데, 어느 시대든지 음란과 부정함의 대명사로 여자만을 지칭했던 시대치고 온전한 시대는 없었습니다. 일부 학자들이 고려 시대보다 더 늦게 나타난 조선 시대가 인간에 대한 이해는 고려 시대보다 더 뒤처진 가치를 지녔다고 보는 것도 이 때문이고, 이슬람교를 기독교보다 뒤졌다고 보는 견해도 마찬가지입니다. 여자를 생명을 지닌 하나님의 창조물로 보기보다는 남자를 위한 도구로만 보는 시각이 이슬람교에 너무 많습니다.
음란하고 부정한 여자 혹은 남자의 실체가 드러난 곳이 <2:17∼20>입니다. 하나님과 맺은 언약을 버렸으니(2:17), 당연히 죽음의 길로 갈 수밖에 없습니다(2:18). 아담ㆍ하와의 사례에서 볼 수 있지만, 하나님의 뜻을 떠난 인간만의 사랑이 과연 온전할까요? 그 길에 생명이 있을까요? 하나님의 뜻을 떠난 사랑은 서로의 탐욕을 메우기 위해 동물적인 행위로 전락할 뿐입니다.
성경에서 바람직하지 않다고 말한 사랑을 따라가면 하나님 앞에서 당당한 사람이 될 수 없습니다. 진정한 사랑은 서로를 하나님 앞에서 당당한 사람이 되도록 이끌어 줍니다(에베소서 5:21∼28). 서로 죽도록 사랑했는데 결과는 둘 다 하나님 앞에서 부끄러운 존재가 되는 것은 주님이 허락하신 게 아닙니다.
<잠언>을 통해 여러분이 가지고 있는 사랑에 대한 가치관을 점검해 보십시오. 여러분은 하나님 앞에서 상대를 바로 세워주기 위해 사랑하고 있습니까, 아니면 상대를 여러분의 손아귀에 옭아매기 위해 사랑하고 있습니까? 또 상대를 생명의 길로 이끄는 사랑을 하고 있습니까, 죽음의 길로 몰아가는 사랑을 하고 있습니까? 성경에서 말씀한 부정한 사랑은 윤리적 부정만을 말하지 않습니다. 상대를 살리고 생명의 길로 이끌지 못하는 사랑도 성경에서 잘못됐다고 말씀한 것입니다.
죄도 사람에게 사랑을 시연(示演)합니다. <2:19>은 죄가 사랑하는 방식을 표현했는데, 죄가 사랑하는 방식은 낚싯바늘에 미끼를 걸어 둔 것과 같습니다. 너무나 달콤하고 행복해 보여서 덥석 물었는데, 미끼가 자기를 놔주지 않습니다. 그래서 다시는 생명의 길로 돌아오지 못합니다.
물고기를 낚을 때 대부분 커다란 미끼를 쓰지 않습니다. 낚시에 물고기가 좋아하는 아주 탐스러운 미끼를 조그맣게 걸어 놓습니다. 그러면 물고기가 그걸 물고 끌려옵니다.
죄가 사람에게 시연하는 사랑도 이와 비슷합니다. ‘이 정도쯤은 괜찮아!’라고 죄는 사람을 유혹합니다. 따라서 이 세상에 널리 퍼져 있는 죄의 낚싯바늘로부터 나를 지키기 위해서, 우리는 하나님이 드리우신 생명의 말씀 줄을 꽉 붙잡아야 합니다. 그래야 죄가 드리운 미끼를 물지 않고 죄의 유혹에 빠지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선한 길을 가다 보면 주님이 죄의 미끼를 물었을 때 어떻게 되는지를 알려주십니다(2:20). 선하고 의로운 길을 가면 악한 길로 갔을 때 어떻게 되는지 성령님이 보여주십니다. 그러나 악한 길로 가면 선하고 의로운 길을 갔을 때 어떻게 되는지 보지 못합니다. 그러니 하나님이 가라고 하시는 길로 가야 합니다. 그렇게 해야 모든 길의 끝을 알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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