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한 나라의 불행한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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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스저널=정이신목사] 행복한 나라의 불행한 사람들 » 박지우 지음/ 출판사: 추수밭 »
스웨덴 모델은 장점도 많지만 동시에 단점도 명확하다…
북유럽 국가들의 세금 정책은 서민들에게 가혹하다. 대신 부자에게는 관대하다. 근로소득세율은 세계 최고 수준이지만, 부자들의 자본소득세율은 매우 낮고 상속세와 증여세는 2000년대 중반 일찌감치 폐지됐다. 그 결과 스웨덴은 소득으로는 전 세계에서 가장 평등한 나라이지만, 동시에 자산으로는 가장 불평등한 나라가 되었다. 스웨덴 모델은 장점도 많지만 동시에 단점도 명확하다. 그러나 그간 우리나라에서 출간된 스웨덴 관련 서적들은 주로 장점에만 초점이 맞춰져 있었다. 이처럼 제한적인 시각에서 조명하면 또 다른 편견을 강화 시킬 수 있다. – [책 내용 중에서]
중학생 때 과학 선생님에게 들었던 ‘어떤 나라’가 나우루(Nauru) 공화국입니다. 그런데 중학생 때는 그 나라의 이름을 알지 못했습니다. 그저 과학 선생님이 그런 나라가 있다고 했던 이야기를 기억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다가 우연히 후루타 야스시(古田靖)가 쓴《앨버트로스의 똥으로 만든 나라》를 읽었습니다. 그 책에는 호주와 뉴질랜드에 기대어 근근이 살아가고 있는 나우루의 현재가 나오는데, 기억을 복기해 보니 중학생 때 과학 선생님이 말했던 나라가 그 나라였습니다.
나우루의 현실이 궁금해서 이것저것 자료를 찾아보니, 제가 중학생 때 과학 선생님에게 선망의 대상으로 들었던 이야기와 달리, 그 나라의 현재는 완전히 대책 없는 ‘폭망 상태’입니다. 국민은 햄버거 등의 정크푸드(junk food)를 즐겼다가 비만이 일상이 됐고, 농사는 물론이고 물고기 잡는 법까지 잊어버려서 물고기마저도 잡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영해(領海)의 어업권을 팔아서 근근이 살고 있습니다.
국가의 부를 어떻게 활용할 것인지, 그 풍요를 통해 후세에게 무엇을 남겨놓을 것인지 국민적 합의도 이루지 못한 채, 갑작스럽게 주어진 풍요를 나우루는 흥청망청 써댔습니다. 게다가 돈에 눈이 멀어서 하지 않아야 할 검은돈의 세탁 사업까지 했습니다. 그게 나우루를 지금의 나락으로 몰아갔습니다. 나우루를 보면서 ‘부를 활용할 준비가 안 된 상태에서 주어진 풍요는 재앙’이란 걸 알게 됐습니다.
이 책은 스웨덴에 관한 이야기인데, 저자가 쓴 서문이 눈에 들어왔고, 이게 이 책을 소개하는 계기가 됐습니다. 제가 속한 세대는 복지국가, 대한민국이 추구해야 할 이상적인 사회 시스템이 갖춰진 나라 등으로 스웨덴을 이해했습니다. 그런데 그 당시 우리는 이런 지식을 책을 통해서만 읽었습니다. 저자가 말한 것처럼 스웨덴에서 직접 몇 년을 살면서 보고 배운 게 아니라, 책을 통해 다른 사람이 말한 시각으로만 스웨덴을 배웠습니다.
저자는 스웨덴에서 몇 년을 살면서 체험한 내용을 썼다고 했습니다. 그렇지만 저자가 말한 스웨덴의 국가ㆍ사회 시스템에 대한 비판에 제가 모두 동의하는 건 아닙니다. 저자가 말한 스웨덴의 그림자가 그 나라만의 모습도 아니고, 북유럽의 복지국가에서 나타나는 일반적인 모습이기 때문입니다. 다만 제가 책을 읽으면서 되뇌었던 건, 저자의 시각과 다른 것에서 얻게 된 뿌듯함입니다. ‘저자가 이렇게 말할 정도로 우리나라에 합당한 국가발전 모델을 이제는 우리가 만들어야 할 때가 됐구나’라는 생각이 책을 읽는 내내 저를 휘감았습니다.
가난한 나라가 늘 틀리고 서구 선진국은 항상 옳다는 통념에 저자는 반기를 듭니다. 그리고 모든 나라에는 그 나라만의 발전 방식이 있다고 합니다. 그래서 저자는 다른 나라의 경제 모델을 추종하기보다, 시행착오를 통해서라도 우리만의 새로운 사회 발전 모델을 만들어야 한다고 말합니다.
저자의 지적처럼 우리나라는 그동안 선진국을 빠르게 모방하는 패스트 팔로워(fast follower) 전략을 취해 왔습니다. 그래서 우리나라에는 반도체 등 몇 가지를 제외하고는 산업적 원천 기술이 많이 없습니다. 반도체 산업도 일본에서 제공하는 기초 소재의 조달이 어렵게 되자, 재벌 총수가 서둘러 일본을 찾아갈 정도였습니다.
그런데 사회ㆍ정치 시스템에 관한 원천 기술은 산업에서 사용하는 것보다 상황이 더 심각합니다. 사회ㆍ정치 시스템의 시행착오로 인해 나타난 교훈을 국민적 협상 능력으로 풀어낸 경험이 우리는 아주 적습니다. 우리의 사회ㆍ정치사를 보면, 시행착오의 교훈을 배양해 새로운 계기를 만드는 협상보다는 사회ㆍ정치적 심판으로 이걸 대체한 때가 많습니다. 그래서 전임자가 했던 실수를 사회ㆍ정치적으로 심판하는 능력은 뛰어나지만, 전임자가 내어준 어깨 위에 서서 걸림돌을 디딤돌로 바꾼 경우는 많지 않습니다. 이는 나우루가 몰락하는 과정에서 보인 사회ㆍ정치적 혼탁과 비슷합니다.
이런 면에서 스웨덴을 벗어나 새로운 모델을 만들어야 한다는 저자의 목소리가 지닌 한계가 금방 드러납니다. 주변을 아무리 둘러봐도 스웨덴을 능가한 모델을 우리가 만들어 낸 것 같지 않습니다. 여전히 만들고는 있는데, 그 시스템이 언제 완성될지 아직은 안갯속입니다. 게다가 조그마한 시행착오가 나타나도 자기 이익이 손해를 봤다고 이곳저곳에서 시끄럽습니다.
나우루와 스웨덴을 비교했을 때, 우리나라도 나우루처럼 눈앞의 이익만 보지 말고, 스웨덴처럼 시행착오를 통해 배우는 과정을 묵묵히 감내할 줄 알아야 합니다. 그리고 이를 통해 새로운 시스템을 만들 줄 아는 국민의 격(格)을 갖춰야 합니다. 그래야 저자가 바라는 게 이뤄질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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