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울이 뵈레아에서 배 타고 떠난 항구 ‘디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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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션저널=김수길 선교사] 바울이 뵈레아에서 배 타고 떠난 항구 ‘디온’ » 그리스 이야기(9) »
성경에 기록되지 않아 알려지지 않은 도시 디온 (Διον)
데살로니가의 유대인들은 뵈레아로 피신한 바울 일행이 그곳에서도 많은 영향력을 끼친다는 소식을 접하고 바울을 쫒아왔다. 데살로니가에서 행한 것처럼 불량배를 불러서 뵈레아를 혼란스럽게 하자, 뵈레아의 유대인들은 실라와 디모데는 남겨놓은 체 바울을 바다까지 인도했다. 그럼 바울이 아테네를 가기 위해서 배를 탄 항구는 어느 곳인가? 뵈레아는 바다에서 40킬로 떨어진 내륙의 도시이다. 뵈레아에는 산에서 흘러내리는 뜨리뽀따모스(τριπόταμος)라는 작은 강이 지금도 흐르고 있다. 그러나 성경은 “ 바다까지 가게 하되”라고 기록하고 있다…
성경에 기록되지 않아 알려지지 않은 도시 디온
바울 사도 당시의 디온은 빌립보에 조금도 뒤쳐지지 않는 로마의 직할 도시이다. 성경에 기록하지 않았기에 나도 자신 있게 말을 하지 못한다. 그러나 디온이 가진 지역적인 위치와 그리고 당시의 모든 정황은 분명히 바울은 디온 에서 배를 타고 아테네로 갔다고 말을 할 수 있다.
당시 에그나티아 도로는 일루리곤에서 콘스탄티노플 까지 이어지는 도로이다. 비아 에그나티아가 뵈레아시내를 가로질러 북쪽으로 휘어져 올라간다. 비아 에그나티아와 가까운 도시들은 지선으로 연결시켰다. 그 중 하나가 디온 에서 비아 에그나티아까지 이어지는 도로이다.
디온에서 동서 화합을 추구했던 헬레니즘 양식의 마케도니아 왕국의 생활을 찾을 수 있다. 많은 학자들은 알렉산더를 헬레니즘의 시조라고 생각한다. 알렉산더에게 이러한 영향을 미친 것은 그의 부모이다. 알렉산더 대왕의 아버지 필립
2세는 빌립보를 건설하고 이집트 암몬 신을 위한 신전으로 만들었다. 왜 마케도니아가 이집트의 주신인 암몬 신전을 만들었는지 모르겠다.
그를 야민인 이라고 무시하던 다른 도시국가들을 무시하기 위한 의도일까? 이 신전은 바실리카 A라는 불리는 교회가 되었다. 그리고 알렉산더의 어머니 올림피아 왕후는 神氣가 많은 여인이었다. 그녀가 섬긴 신은 제우스 암몬신이다.
제우스는 그리스의 주신이고 암몬은 이집트이 주신이다. 올림피아는 어린 아들인 알렉산더에게 자신의 생각을 주입시킨다. 올림피아 왕비는 제우스의 주 무기인 벼락이 자기 뱃속에 들어오는 꿈을 꾸고 아들을 낳았다. 그래서 자신의 아들은 남편의 아들이 아닌 제우스의 아들이라고 확신하였다. 제우스에 관한 이야기를 어린 아들에게 자주 말하는 것이 빌립2세는 못마땅했다. 아이가 친구들과 어울릴 나이에 또래아이들을 모아서 뵈레아에서 멀지 않은 미아자에 학교를 세우고 이 또래 아이들을 교육시키게 된다. 알렉산더와 프톨레마이오스 , 헤파이스티온 , 카산드로스 등 헬레니즘 제국을 세운 사람들이다. 아이들이 13세가 될 때에 아테네에서 도편 추방을 당한 아리스토텔레스를 이학교의 선생으로 부르면서 학교의 이름은 아리스토텔레스 아카데미아로 알려지게 된다.
올림퍼스 산 아래 첫 번째 도시가 디온 이다. 디온 이라는 의미는 제우스 의 집 이라는 뜻이다. 올림퍼스 신족의 신들의 왕 데오스(영어로는 제우스)의 보좌가 있다고 신화는 말한다. 마케도니아왕국은 수도 펠라를 중심으로 뵈레아, 베르기나, 디온 으로 이어지는 도로는 비아 에그나티아 이전부터 도로를 사용했다.
기원전 5세기 말 마케도니아인 들의 눈에는 올림퍼스 산은 그리스신화의 고향답게 신기가 서려있다. 누구나 한번 보면 시퍼런 산의 정기가 신들의 이야기가 떠오르는 지역이다. 이곳에 신들의 왕인 제우스의 신전이 자리 잡은 것은 이러한 이유 일 것이다. 매년 9월에 제우스의 제사를 드렸다. 알렉산더 대왕도 제사를 드렸다. 그리고 봄에는 마케도니아 군대의 승리를 위한 9일간 제전이 벌여졌다.
특히 기원전 334년 알렉산더는 다리우스3세의 페르시아와 전쟁을 시작하기 전 제우스 신전에서 장엄한 제사를 드리고 출사표를 던진다. 많은 학자들은 알렉산더의 이러한 행동들은 어려서부터 주입된 어머니 올림피아의 영향이라고 이야기 한다.
기원전 169년 로마에게 함락되었고 옥타비안이 빌립보와 동시대에 꼴로나스 줄리아 아구스타 디엔시스(Colonas Julia Augusta Diensis)라는 긴 이름인 로마의 해외 거주지를 만든다.
바울 당시에는 이 지역에서 가장 활동적이고 경제적인 도시로 발전한다. 최전성기는 알렉산더를 롤 모델로 생각했던 로마의 황제들 시대이다. 트라얀 ,히드리안,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등이다. 그 뒤 지진과 바다와 강이 많은 지역의 특성상 홍수가 범람하여 역사 속으로 숨었다가, 1806년 고고학의 성과로 오늘의 디온이 다시 등장하게된 것이다.
도시의 중심에는 로마인의 도시답게 직가 (κεντρικό δρόμο, main road)가 있고 좌우로 목욕장 음악당 극장 교회, 그리고 화려한 모자이크의 대저택들의 유적이 있다. 결론적으로 디온은 제우스의 집이라는 이름에 걸맞게 신화와 역사를 가지고 있다. 그러나 바울에 대한 기록은 없다. 충분히 상상할 수 있는 것은 로마시민권자인 바울은 그가 보호를 받을 수 있는 로마군대와 물류의 이동지인 로마의 직할도시를, 분명히 사용했을 것이다.
사역을 가면서(우리 교회에서 멀지않은 곳) 디온을 보기만 해도, 다른 것보다도 사도바울이 떠오른다, 질투와 증오에 찬 동족의 박해 속에서도 언제나 복음을 전하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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