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교와 재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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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교와 재정-투명성과 효율성 꼭 필요
1996년 파송 되어 지금까지 꾸준히 후원 및 협력교회는 필자가 활동했던 대학생선교회(CCC)의 순원과 순장들, 신대원 동기 교회, 가족인 동서교회 등으로 전체 선교비의 20%정도이다. 이들은 후원 뿐만 아니라 여러 모양으로 선교의 물품도 후원하며 어렵고 힘들 때 가족처럼 대해주었다. 그러므로 중요 후원자는 선교사의 주변 가까운 곳에 있다.
[미션저널=최하영 선교사] 선교와 재정 » 연재물 3회 » 선교는 보통 언어와 문화가 다른 지역 중 복음화율이 열악한 곳 혹은 미전도종족에게로 가서 복음을 전하며 교회를 세워 주님께서 다시 오실 때까지 그 분의 대위임령 (The Great Commission, 마28:18~20)에 순종하고 충성하는 것이다. 이 곳으로 파송 되어가는 자를 선교사라 한다. 이 선교 과업에는 보통 선교사와 교회와 선교단체가 함께 주님의 대위임령에 순종 및 충성하는 것이다. 그 선교를 위해 반드시 선교사와 교회, 선교단체는 기도자와 후원자를 동원하여 어느 정도 선교 재정을 확보해야 한다.
운영규칙 5장(이하 필자의 선교단체 규정)에 ‘선교비 모금은 선교사의 소명을 교회를 통해 확인하는 방편이며, 또한 선교사는 교회의 보내심을 받아 사명을 수행하는 것임을 공인하는 절차이다’라고 한다. 결국 선교의 후원은 소명 받은 선교사가 주체가 되어 주후원교회와 협력교회, 개인후원자를 찾아내야 하는 쉽지 않는 절차를 통해 소명을 확인하는 것이다.
필자가 처음 선교훈련 받을 때에 후원 약정에 대해 배웠다. 그리고 그때부터 후원교회와 후원자 약정서를 적어오도록 하였다. 이렇게 1996년 파송 되어 지금까지 꾸준히 후원 및 협력교회는 필자가 활동했던 대학생선교회(CCC)의 순원과 순장들, 신대원 동기 교회, 가족인 동서교회 등으로 전체 선교비의 20%정도이다. 이들은 후원 뿐만 아니라 여러 모양으로 선교의 물품도 후원하며 어렵고 힘들 때 가족처럼 대해주었다. 그러므로 중요 후원자는 선교사의 주변 가까운 곳에 있다.
행정세칙 56조 선교비 기준표에 의하면 4인 가족인 경우 매월 모금해야 할 선교비는 2,987,400원(약 $2,400)이다. 그 중 본부에서는 선교사 복지를 위해 상호복지기금과 실버적립금, 안식년여행적립금, 선교사회비 총액 605,400원을 제외한 기본선교비(기본 생활비와 기초 사역비) 2,382,000원만 선교현장에 보낸다. 그 모금액 중 주후원교회는 기본선교비의 60%인 1,429,200원 이상을 해야 한다. 한국선교동향 2019 보고서(문상철)에 의하면 선교사들 약 80%가 모금이 어렵다고 하였다. 그런데 선교비 기준표를 보면 1996년부터 25년간 한 번도 변경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래서 2020년 현재 한국 선교사 헌신이 많이 줄지 않았나 생각해 본다.
필자의 첫 번째 주후원교회는 매월 기본 선교비의 67%인 1,600,000원을 후원해 주었다. 감사하게도 당시 우즈베키스탄 사마르칸트 아파트를 400만원에 구입할 수 있어(지금은 10배인 4,000만원) 주택비를 절감할 수 있었다. 그리고 사역을 하면서 세계기도선교회의 후원으로 병원을 운영했는데, 필자에게도 별도로 활동비 10만원을 주어 선교하는데 큰 도움이 되었다. 사역이 많아지면서 몇 개의 프로젝트비와 자동차 2대를 주후원교회가 후원해 주었다. 이렇게 10년 만에 추방되면서 우즈베키스탄 사마르칸트의 교회와 병원을 고스란히 이양하고 처음에 들어갈 때 가져갔던 여행가방만 가지고 나왔다. 이렇게 쉽게 정리할 수 있었던 것은 생활비와 사역비를 철저하게 구분하였기 때문이다.
선교지 교회가 자립이 되지 않아 2대 현지 담임목사와 가정교회 전도사들의 사례비로 매월 80만원을 주후원교회가 후원하도록 하였다. 지금은 3대 담임목사 그 후원금을 물려받아 비밀히 지하신학교까지 운영하고 있다. 이는 사역에 후원의 의존보다 효율성 있게 사용되고 있는 것 같다. 그리고 병원도 여전히 세계기도선교회가 돕고 있다. 그리고 필자는 그 주후원교회에서 협력교회로 변경되었고 얼마의 거금의 퇴직금도 받았다. 그리고 1년 반 동안 한국기아대책기구(KFHI) 대외협력위원 겸 사무총장으로 국내사역을 하였다. 2008년 다시 우즈베키스탄 수도 타슈켄트에서 학원을 하면서 복음을 전하였다.
두 번째 주후원교회는 매월 기본 선교비 42%인 100만원을 해 주었다. 추방에 대한 조심 때문에 사마르칸트에서의 사역만큼 그렇게 활발하게 사역을 할 수 없었다. 그런 중에 2010년 다시 두 번째 추방이 되었다. 한국에 와서 보니 두 번째 주후원교회 자체가 어려운 환경이 되어 있었다. 이에 세 번째 주후원교회를 찾아 2011년 우크라이나로 재배치되었다.
세 번째 주후원교회는 신학대학원 동기 목사가 담임으로 매월 기본선교비 55%인 130만원을 해 주었다. 즉 교회가 100만원에 동기 목사가 30만원을 해 주었다. 이렇게 또 한 텀(One Term)인 7년이 끝나고 2018년 1월 세 번째 주후원교회는 협력으로 변경하여 계속 기도와 후원을 해 주고 있다. 이제 나이도 들고 새후원교회 찾기가 쉽지가 않았다. 그래서 1992년 서울 목동 오거리에서 함께 개척했던 담임목사께 부탁하였다. 우크라이나에서 전화를 했더니 서류를 내보라고 하였다. 그런데 문제가 한 두 가지 아니다. 그 교회는 초교파 독립교단 소속이라 필자의 교단 선교단체에서는 안된다고 하였다. 단, 담임목사가 교단에 가입하면 된다고 하였다. 감사하게도 담임목사는 그 수모를 감내하고도 본 교단의 노회 회원이 되셨다. 그런데 막상 주후원교회로 기본선교비 60%로 책정하자니 생각보다 많았던 모양이다. 그 교회는 그 동안 여러 선교사를 파송하였지만 매월 40만원이 최고였던 것이다. 그 기준은 어떤 선교단체에서 그렇게 하고 있다. 그 이유는 주후원교회가 중단하면 그 충격을 완화하기 위함이라고 하였다.
결국은 기본 선교비의 61%인 1,450,000원을 후원하면서 교회설립 50년 만에 제1호 선교사로 그 의미를 부여하고 대대적으로 파송식을 해주었다. 이렇게 25년 간의 네 번의 걸쳐 주후원교회가 바뀌었다. 사실 처음 파송되기 전에 주후원 하기로 했던 교회가 있었다. 그 교회는 교단신문에 광고를 냈었고 그에 따라 많은 분들이 지원했지만 필자가 그 교회 선교목사로 부임하게 되었다. 그 교회는 선교훈련 받도록 모든 선교훈련비와 사례비, 자녀교육비, 교통비 등을 2년 동안 해 주었다. 그런데, 막상 파송할 때 가까이 와서 그만 안 하겠다고 하였다. 그래서 그 교회 장로들의 네트워크에 의해 첫 번째 주후원교회와 연결되었던 것이다. 그 장로들의 네트워크 그룹이 세계기도선교회로 선교전초기지로 사마르칸트에 병원을 세웠다.
이렇게 파송 전부터 파송 후 25년까지 다섯번에 걸쳐 주후원교회가 변경되었지만, 모든 것을 주님의 섭리와 인도하심으로 여기고 순종해 왔다. 감사하게도 한번 거쳐갔던 교회들이 계속 협력 및 기도해 준다는 것이다. 어떤 때에는 자존심이 많이 상하지만, 선교사는 그런 것에 초월해야 한다 생각한다.
필자로 인해 선교지에서 한 영혼이 주님께 돌아오고 그 중에 영적 지도자로 양육될 때 그런 자존심은 충분히 감내할 수 있었다. 그리고 한번 주후원교회가 되었던 성도들은 협력교회로 바뀌어도 나의 선교 동역자요 기도자이다. 그 교회들이 부흥이 되는 것을 보면 그저 감사할 뿐이다.
필자는 한 번도 분기별 선교편지와 회계보고를 지나친 적이 없다. 어떤 때에는 선교편지 쓸 내용이 없는 것 같으나 막상 쓰기 시작하면 부족하지만 작은 발걸음도 헛되지 않음을 발견하게 된다. 그리고 회계보고를 하면 재정의 투명성과 효율성을 점검해 볼 수 있다. 이렇게 회계 보고 할 때 필자의 선교단체 후원계좌가 아닌 개인계좌 혹은 인편 등으로 들어 온 것도 수입으로 잡아 보고한다. 이렇게 부족한 선교 재정이 채워지는 것을 보면 선교는 하나님께서 하심을 다시 한번 고백하게 된다. 사실, 선교비는 쓰기 나름인 것 같다. 그래서 재정은 ‘뱀 같이 지혜롭고 비둘기 같이 순결’(마 10:16)하게 쓰도록 해야 한다.
이처럼 여러 우여곡절이 있었지만 오늘까지 선교지에 남아 있게 하신 분은 하나님 아버지이시다. 오늘도 예수 그리스도의 대위임령에 기쁨으로 순종하며 충성할 뿐이다. 이전 25년간 놀라운 선교의 은혜를 주었듯이 이후 25년 간도 동일하게 역사 하실 것을 믿고 85세까지 선교지에서 사역 할 수 있도록 소망해 본다. 그리고 더 나아가 이 선교지에 묻혀 주님의 품에 안기고 싶다.
이제 10년 후면 70세로 은퇴해야 한다. 그러나 70세 이후에도 계속 사역 할 수 있도록 국민연금(부부 매월 60만원 기대)과 보험(80세까지 보장) 등을 들어 놓았다. 그리고 규정에 따라 선교 15년인 2011년에 퇴직금을 중간 정산하고 또 얼마의 대출을 받아 선교지에 아파트를 구입하였다. 그 나머지 부족분은 하나님의 섭리와 은혜에 기대어 본다. ◙ Now&Here©유크digitalNEWS
필자: 최하영 목사/ hydavidchoi@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