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난민들의 눈물 닦아주는 루마니아 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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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 사랑이면 충분하단 사실 확인하다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어려운 시기에 더욱 느끼는 것은 하나님의 사랑이면 충분하다는 사실이다. 우리는 우크라이나를 위해 기도하고, 우리가 함께 도왔던 수십 명의 사람들이 우리 모두에게 감사하는 마음을 갖고 있다. 그러나 아직 구원 받아야 할 사람들이 많다! 그들 모두 하나님 보시기에 소중한 사람들이 아닌가?
[루마니아=시레트] 피난민들의 눈물을 닦아주는 루마니아 교회 »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은 2022년 2월 24일 발발해서 아직도 학살의 만행을 계속하고 있다. 넓은 평야의 비옥한 옥토를 가꾸며 평화롭게 살고 있던 우크라이나인들은 사랑하는 가족 간의 생 이별을 하는 가슴 아픈 시간들을 보내고 있다. 정든 고향의 집들은 파괴되고 기르던 가축들은 돌보는 이 없이 방치되고 부녀자들과 노약자들과 어린이들은 춥고 배고픈 긴 피난 길을 올라야 했다. 18-60세까지 싸울 수 있는 남자들은 모두 전쟁터로 자원해 간 후 피난 길에 오른 이들은 기차와 버스 자가용을 통해 폴란드로, 헝가리와, 루마니아로 피난의 길을 재촉했다.
중간에 자동차 주유를 못해 차를 버리기도 했으며 국경에 도착 해서는 긴 행렬에 2-3일씩 추위와 배고픔을 견디며 기다려야 했다. 대부분이 노약자와 부녀자, 어린이들이 심지어 임산부들도 갈 바를 알지 못한 채 목적 없는 피난 길의 슬픔을 감수해야 했다. 모든 것을 잃은 채 대강 챙겨온 옷 가방을 끌고 국경을 넘는 이들은 절망과 슬픔에 쌓인 아픈 상처의 무거운 발걸음으로 생면 부지의 이웃 나라이지만, 루마니아에 넘어온 이들에게 정말 상상할 수 없는 따뜻한 사랑의 손길들이 기다리고 있었다. 이들은 다름 아닌 루마니아 개신교회와 선교회들이다.
이웃나라에서 온 NGO와 국가교회와도 같은 정교회 그리고 정부의 구호 활동 틈 바구니에서 진심으로 우크라이나 피난민들의 필요를 채우고 아픔을 달래며 희망을 나누는 루마니아 개신교인들의 헌신적인 봉사와 돌봄은 예수님의 가르침의 그대로 실천하려는 사랑의 손길이 아니고 무엇인가?
루마니아 국경으로 들어오는 피난민들
우크라이나 선교사인 김태한 선교사는 저희가 협력하는 엠마우스에서 우크라이나인들의 아픔을 직접 경험하고 다음과 같이 회상하였다.
[우크라이나 난민 속에서 3]
루마니아 국경에 갔다. 추운 날씨에 국경을 넘어 우크라이나인들이 걸어온다. 어린 아이 손을 잡고 다른 손에는 가방을 끄는 엄마들, 거동이 힘든 노인, 유모차를 끌고 오는 사람들, 한결 같이 지친 모습이다. 약속이라도 한 듯 그들의 첫 마디는 “따뜻한 차(음식)를 마시고 싶어요”이다.
루마니아 교회들, 적십자, 구호단체들이 텐트를 설치하고 따끈한 차와 음식을 준비하여 난민들의 차가운 몸을 녹여준다. 꼭 필요한 또 하나는 심 카드이다. 국경을 넘었기에 우크라이나에서 사용하던 전화 카드를 바꿔야 한다. 이것도 봉사자들이 무료로 나눠준다. 루마니아 형제, 자매들 참 따뜻하고 친철하다.
텐트를 들여다보니 가족 단위로 앉아있다. 급히 국경을 넘었지만 이제 무엇을 하고 어디로 가야 하는지. 다시 어려운 결정을 해야 하는 그들의 얼굴은 황망하기만 하다.
[우크라이나 난민 속에서 4]
수체아바에 도착한 지 열흘이 지났다. 매일 차를 타고 센터에 도착하는 우크라이나인의 불안감은 생각보다 심하다. 집을 떠나기까지 포탄이나 총격을 피해 지하실이나 방공호에서 두려운 날을 보냈다. 국경까지 여정도 공포의 시간이다. 러시아군이 주둔한 지역을 피해 우회하고 숲 길을 통과하거나 때로는 주변에 떨어지는 포탄을 보며 국경을 향해 온다.
기차로 온 사람들은 피난민으로 가득 찬 공간에 갇혀 온다. 국경에 도달하면 2km를 걸어야 루마니아에 들어올 수 있다. 봄이 멀지 않지만 거리의 바람은 여전히 매서운 영하의 날씨이다.
국경을 넘어서 안도의 숨을 쉬지만 마음은 편치 않다. 말이 통하지 않는다. 우크라이나에서는 외국어로 영어보다 독일어를 선호했다 (지금은 영어를 많이 배움). 우크라이나어(러시아어)와 루마니아어는 전혀 다른 언어이다. 루마니아 자원봉사자도 영어 소통이 되지 않아 힘들어한다. 이들 옆에서 소통을 돕는다.
루마니아 사람들 참으로 선하고 친절하다. 자원봉사자들이 난민을 사랑으로 대하고 안내하는 모습은 천사와 같다. 숙소를 배정받고 식당, 욕실(화장실), 모임 공간 등 시설을 안내 받은 후 식사를 한다. 식사 시간이 정해져 있지만 도착하는 가족은 언제든 음식을 먹을 수 있도록 이른 아침부터 늦은 저녁까지 개방하고 따뜻한 음식을 준비해 둔다. 정갈하고 맛있다. 식단도 우크라이나식 요리(보르쉬, 갈룹찌 등)를 준비하는 배려가 눈에 보인다. 따뜻한 음식을 먹으며 함께 온 가족, 친척들은 잠시 무거운 마음을 내려 놓는다.
루마니아에서 30년 이상 사역한 정OO 선교사님을 통해 수체아바에서 출판을 해온 현지 형제를 만났다. 새로운 한 줄의 역사가 기록되는 지점에 서서 주님의 일하심을 보며 고백한다. “오직 주님께서 모든 것을 이루십니다!”
국경에서 피난민들을 돕고 있는 루마니아 교회
3월 5일 나는 전쟁 발발 이후 우크라이나 피난민들을 루마니아 교회가 어떻게 돕고 있는 지를 보기 위해 침례교 신학대학을 방문 하였다. 하지만 이미 그 대학은 모든 기숙사와 강의실을 우크라라이나 피난민들에게 제공하고 있었으며 그들이 필요한 식사와 잠시 머무는데 필요한 생활용품 특별히 다른 유럽 국가로 이동하는데 필요한 교통편과 의약품 등을 제공 하고 있었다.
이미 침례교 교단 전체가 우크라이나 피난민들을 위한 편의를 제공 하는 프로그램을 시행 하고 있었다. 나는 특별히 여기서 임신을 한 부인을 만났는데 그녀는 ”나의 생애 첫 아이를 어디서 낳아야 할지 모르겠어요“ 하면서 삶의 현실을 걱정하는 것을 보았다.
3월 8일 나는 지난 15년 동안 “미션 루마니아와 북한 선교 준비를 위해” 함께 동 역해온 수체아바 지역의 교회와 선교회 등을 방문 하기 위해 500킬로미터의 먼 길을 가야만 했다. 하지만 교통편이 없었다.
수체아바는 우크라이나 피난민들이 루마니아로 넘어오는 국경 도시 SIRET 가 있는 도시이다. 이 국경으로 오늘 4월 9일까지 223,677 명이 우크라이나인들이 들어왔다. 교통 편을 구하기가 어려워 난감했다. 공항근처의 교회 목사인 “라두” 에게 전화를 했다. 혹시라도 받지 않으면 어떻하나 하고 전화를 하는데 벨이 울리고 전화를 받았다. 나의 긴박한 상황을 설명하고 교통 편이 필요 하다 했더니 무슨 일이냐 해서 우크라이나 피난민들의 상황을 보기 위해 수체아바에 가야 한다 했다.
5 분 후 아내와 상의를 한 라두는 우크라이나 피난민 관련이라면 자기가 직접 차를 몰고 가겠다는 응답을 하였다. 이때가 오후 4시 수체아바에 도착했을 땐 이미 저녁 11시가 되었다. 나는 다시 500킬로를 운전하여 그 어두운 밤에 돌아가야 하는 그를 걱정 어린 눈으로 볼 수 밖에 없었다. 아침 6시 밤새 운전한 후 먼 길을 가야 했던 라두 목사가 걱정이 되어 메시지를 보내려 하는데 이미 그에게서 메시지와 함께 사진이 올라와 있었다.
우크라이나 피난민들을 돕는 일을 한 시도 소홀히 할 수가 없어 그 늦은 밤에 한 시간 거리의 SIRET 국경에 가서 경찰에게 혹시 이 밤에 부카레스트에 돌아가는 사람이 있다면 자기가 데리고 갈 수 있다는 설명을 한 후 한 가족을 데리고 갈 수 있다 하였다. 너무 큰 감동이었다. 주님을 섬기는 모습이 그에게서 고스란히 베여 나왔다.
수체아바 SIRET 국경에 도착 하니 아직도 매서운 찬 바람과 눈보라가 국경을 넘어오는 피난민들의 마음을 얼게 하였다. 국경 선에는 이미 여러 이웃 NGO들과 루마니아 정교회 등이 켐프를 차려 놓고 추위와 배고품에 지친 채 무거운 가방을 끌고 넘어오는 부녀자들과 이이들에게 따듯한 음료와 필요한 교통을 제공하고 있었다. 12시가 거의 다 된 늦은 밤인데 함께 동행한 다니엘-수체아바 고등법원장 판사 다나의 남편은 한 캠프로 나를 안내 하였다.
마침 11명의 아이를 데리고 넘어온 부인이 이탈리아를 가야 한다 하며 울먹이고 있었다. 켐프의 형제들이 이미 따뜻한 음료와 필요한 모든 것을 제공 하고자 통역을 통해 열심히 설명을 하고 있었다. 물론 나도 이들의 교통 편에 일부를 담당할 수 있었다.
다음 날 방문한 “엠마우스” 캠프는 지난 25년 가까이 나와 정치와 사회, 아카데믹 분야에 함께 협력해 온 크스텔 소프로네 교수의 조카가 운영을 하고 있었다. 전쟁 발발 10일 정도 지났는데 이미 1000명 이상의 난민들의 필요를 채워주고 있었다. 지역의 교회들과 개인들이 각종 음식과 의약품 신앙 서적 등을 보내 왔으며 주일 아침에는 간단한 경건회 모양의 예배까지 드린다 하였다.
나는 3월13일 주일에 이 예배에 참석 하기로 하였으며 아침 예배에 간략한 메시지를 통해 전쟁의 상처를 안고 희망을 잃은 우크라이나 피난민들에게 하나님의 사랑과 섭리 그리고 한국이 그런 전쟁을 경험했으며 어떻게 하나님의 축복을 받았는 가를 알게 하였다.
예배 후 한 부인의 간증을 통해 이들이 얼마나 하나님의 사랑을 목 말라 하는 가를 알 수 있었다. “솔직히 말씀 드리면 어제까지는 하나님을 믿지 않고 살았습니다. 그러나 전쟁을 경험하면서 오직 하나님만이 제 기도를 들어주셨음을 확신합니다. 남편과 저는 결혼한 지 17년이 되었지만, 우리는 함께 기도한 적이 없었습니다. 지난 2일 동안 우리는 러시아군의 포격으로부터 피난을 하면서 하나님께 보호해 달라고 기도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기도를 들어주셨습니다.”
또한 우크라이나 여자와 결혼을 한 미국 디아스포라 한인 남성이 “나는 무신론자 입니다. 만일 하나님이 계시다면 나에게 모국어로 말할 수 있는 기회를 주십시오” 라고 기도를 했는데 이틀 후 우리가 그 캠프에 나타났다 하면서 하나님을 살아 계심을 체험하는 작은 간증을 듣기도 하였다.
엠마우스 캠프에서 말씀을 전하는 선교사
오후에 찾은 “카이로스선교사훈련원” 은 “미션 루마니아 2018” 의 파트너로 선교대회 이후 북한 선교 준비의 필요성을 알고 “루마니아를 통해 남과 북이 더 가까이“ 라는 구호와 함께 북한 선교의 필요성을 루마니아 교회들에게 알게 하는 단체이다. 들어서자 마다 발 디딜 틈도 없이 가득한 사람들을 만날 수 있었다.
왜 이리 사람들이 많으냐고 물었다. 우크라이나 피난민들이 주로 다른 유럽의 국가로 이주하기 위해 필요한 서류와 교통 편을 마련해 주기 위해 선교 훈련생들이 모두 행정적인 일에 열중 하고 있으며 교회들이 보내오는 구호 물자를 우크라이나 내로 운반하는데 필요한 차 편과 거기에 필요한 자원 봉사자들을 찾기 위해 많은 일이 필요해 이를 위한 전문 행정팀을 운영하고 있었다.
이미 많은 피난민들을 작은 훈련원에 수용할 수가 없기에 흩어져 있는 성도들의 가정에 보내기 위해 많은 노력을 하고 있었다. 어제는 앞으로 있을 피난민들을 돕고 우크라이나 내부에 있는 많은 사람들의 필요를 공급하기 위한 구호 물자 보내는 일에 좀더 적극적으로 하고자 훈련원과 난민 구호를 분리하여 할 수 있는 새로운 장소를 찾아 이사까지 하였다.
선교는 주님의 사랑을 전하는 것으로 복음이 필요한 사람들에게 긴급하게 전파할 책임이 있다. 해외 선교를 주로 준비하고 있는 카이로는 지금 우크라이나 피난민들에게 하나님 나라의 복음을 전하고자 모든 훈련생들이 전심으로 사역을 하고 있었다.
카이로스 캠프에서 행정 지원을 하는 봉사자들
우리가 협력하는 캠프 4곳 중 한 군데인 “크리스티아 캠프는 “루마니아 국경에서 1시간 반 정도 거리이다. 지금까지 1 천여 명 이상의 피난민들이 거쳐 갔다. 지리적으로 약간 떨어져 있긴 해도 공기가 맑고 넓은 산 속의 캠프장은 추위와 염려 불안으로 지친 채 도착한 우크라이나 피난민들에게 최적의 쉼터 역할을 하고 있다.
이 캠프는 클립파 가족이 운영하는 곳으로 부모는 공산주의 시절 우크라이나, 폴란드 등으로 성경을 몰래 숨겨 전달하는 선교적 삶을 살다 아버지는 비밀경찰에 잡혀 고문과 학대를 견디다 못해 순교한 집안이다. 어머니 홀로 6 남매를 신앙으로 키웠으며 모두가 주님의 일에 헌신적이다. 이 가족의 삼 형제는 한국을 방문하여 아시안 미션을 방문한 바 있으며 지금은 모두가 루마니아를 통한 북한 선교에 함께 하는 중이다. 이 가족이 우크라이나 피난민 돕기에 함께 해 주어서 감사하다.
크리스트이아 켐프의 저녁 식사
3월 5일부터 6일까지 EMAUS-IMPACT 센터에 머물렀던 한 부인의 간증은 루마니아 교회를 통해 하나님이 어떻게 일 하시는 가를 실제로 경험하게 하셨다.
“솔직히 말씀 드리자면 어제까지는 하나님을 믿지 않고 살았습니다. 그러나 전쟁을 경험하면서 오직 하나님만이 제 기도를 들어주셨음을 확신합니다. 남편과 저는 결혼한 지 17년이 되었지만, 우리는 함께 기도한 적이 없었습니다. 지난 2일 동안 우리는 러시아군의 포격으로부터 피난을 하면서 하나님께 보호해 달라고 기도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기도를 들어주셨습니다.
우리 부부는 키이우에서 평화롭게 살고 있었습니다. 러시아 군대가 우리 나라의 국경을 넘어 탱크를 몰고 쳐들어왔지만 피난 갈 계획은 없었고 전쟁이 끝나기를 바랐습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상황이 더 나빠졌고 우리는 피난을 가기로 결정했습니다. 피난 길에 우리는 누군가 우리를 돕고 있다는 것을 경험하게 되었습니다. 작은 기적의 연속이었습니다. 키이우역에는 피난민들로 가득 찼습니다. 피난민을 가득 태운 열차는 출발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우리가 타야 할 열차는 이미 사람들로 가득 차 있었습니다. 사람들 틈을 비집고 겨우 열차에 올라갔을 때 낯선 목소리가 나에게 다른 열차로 옮겨 타라고 인도하는 것 같았습니다. 나는 그것이 하나님께서 우리를 인도하시는 것이라는 확신이 들었습니다. 나는 남편의 손을 잡고 다른 열차로 옮겨 탔습니다.
우리가 떠난 지 한 시간 후, 역은 폭격을 당했습니다. 나는 죽음 가까이에 있었습니다. 열차로 나는 서부 우크라이나 어딘 가에 도착했습니다. 나는 전쟁에서 가능한 한 멀리 피난을 가야 했습니다. 그곳에서 우리는 하룻밤 사이에 집을 마련해 준 자원 봉사자를 만났습니다. 그들은 우리를 세관까지 안내해 주었습니다. 남편은 늙고 아프고(78세), 세관의 대기 줄은 지옥 같았습니다. 아이가 있는 여성을 먼저 통과시켰습니다. 그 때 한 사람이 우리 부부가 세관을 통과하고 이 센터에 올 수 있도록 안내를 해 주었습니다. 그리고 그는 떠났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믿지 않고 살았습니다. 전쟁이 일어나 피난 길에 다급해 하나님의 도우심을 구하며 기도했는데 하나님의 선하신 손의 도우심으로 지금 우리는 무사히 국경을 넘어 이곳에 머물고 있습니다. 여기에 와서 우리는 많은 그리스도인 형제들이 우리나라를 위해 기도하고 피난민들을 돕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우리를 보호해 주신 하나님께 어떻게 감사를 드려야 할 지 모르겠습니다. 우리를 돕고 있는 여러분은 하나님께서 보내주신 천사입니다.”
어떤 피난민의 간증
크레도 TV를 통해 전해온 현지 소식은 우크라이나인들의 아픔을 더욱 처절하게 한다.
“우리 가족과 저는 왼쪽 강뚝에 있는 교회에 있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우리는 살아 있습니다. 마치 지구 상에서 도시를 닦아내고 있는 것 같습니다. 완전히 조각조각 부서져 있습니다. 전기가 없습니다. 모든 전선이 바닥에 있고 가스가 없습니다. 가스 파이프가 끊어졌습니다. 사람들은 나무 스토브에 가서 무언가를 요리합니다. 그것은 물이 아닙니다. 연료가 없습니다. 교회에 샘이 있지만 물이 짜요. 우리는 소금에 절인 차를 마시지만 최소한 무언가가 있다는 것에 하나님께 감사합니다. 거리의 사람들은 굶주리고 있습니다. 상점들이 파괴되고 약탈 당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정교한 미사일, 대포, 공중 폭탄을 발사합니다. 폭탄은 불과 몇 미터 떨어진 교회 주변에 떨어집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이 “몇 미터” 경계를 지시하고, 우리는 단지 몇 개의 창을 잃었지만 우리는 살아 있습니다. 발전기가 이제 시작되었으며 잠시 후 처음으로 전화를 충전하고 온라인에 연결할 수 있습니다. 사라지기 전에 빨리 쓰려고 노력합니다. 우리를 위해 기도 해줘! [인도적] 회랑이라 가족들과 함께 가고 싶었지만 바로 차가 고장이 났습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멀리 가지 못하게 했습니다. 나는 주님께서 우리를 위해 무엇인가를 계획하고 계시기를 바랍니다. 모든 것이 끝나도 사람들은 살 곳이 없습니다. 아파트 전체가 불탔습니다. 집에는 구멍이 뚫렸습니다. 모든 것이 파괴 되었습니다. 학교가 파괴됩니다. “두려워 말라. 이것이 끝이 아니다!”라고 쓰여 있습니다. “그때 우리가 알게 된 사실입니다. 시신들은 수습하지 못하기 때문에 거리에 뒹굴고 있습니다. 단순히 시체를 가져갈 수 없습니다.
“너무 어려워요! 도둑이 너무 많아요!” 하나님의 은혜로 우리는 교회에서 하루 두 끼를 받습니다. 어제, 이것이 시작된 이후 처음으로, 우리는 그럭저럭 아이들을 목욕 시킬 수 있었습니다. 우리는 바다에서 물을 가져올 수 있지만 그것을 데울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발전기는 음식 준비에 사용되지만 가능한 한 모든 것을 경제적으로 사용해야 합니다.
우리를 위해 기도 해줘요! 주께서 통치자들에게 지혜를 주어 합의에 이르게 하시기를 빕니다. 우리가 어떻게 계속 살지. 우리는 모릅니다. 주님은 우리와 함께 하며 전능 하십니다! 마라나타~”
65만 명이 넘는 우크라이나 인들이 전쟁을 피해 루마니아로 피난을 왔습니다. 대 부분 노약자들과 부녀자들 그리고 아이들 입니다. 오늘 우리 부부는 피난민들을 돕는 캠프에서 휠체어에 탄 한 분을 만났습니다. 연일 포탄과 총알이 쏟아지는 전쟁터를 피해 1천 킬로를 넘는 먼 길을 앰뷸런스에 의존하여 왔습니다. 영어 통역을 통해 몇 마디 대화를 나누는 중에 전쟁의 상황을 설명할 땐 통곡을 하기까지 하였습니다.
거의 대부분의 피난민들이 정든 고향을 떠나 사랑하는 가족과 헤어지고 낮설은 타국으로 아무런 준비 없이 국경을 넘는 모습을 보면서 한국 전쟁 시 한강 이남으로 향하던 긴 피난 행렬을 떠오르게 했습니다. 전쟁의 아픔을 겪은 한국 그리스도인들이 멀리서 보내주는 따스한 온정이 절망과 탄식으로 흐느끼는 우크라이나 피난민들에게 예수님의 사랑과 함께 천국의 소망을 갖게 해 주고 있습니다. 감사합니다!
“그러므로 무엇이든지 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 대로 너희도 남을 대접하라 이것이 율법이요 선지자니라.” (마7:12) ◙
글/ 사진 정홍기 선교사/ AFC, 글로벌 호프 파트너 사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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