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 살리시든지 데려가든지 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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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이제 살아도 감사, 죽어도 감사입니다!”
37년간 아프리카 8개국에 700여 교회와 병원, 대학을 짓고 구휼 ‧ 교육선교를 펼쳐온 김종양 ‧ 박상원 선교사의 순종과 인내의 이야기로 다니엘기도회 조회수 77만, 수많은 사람을 웃고 울게 한 은혜의 간증을 책으로 내다.
[추천도서] 부제: 원주민보다 더 가난하던 선교사 부부의 아프리카 선교 이야기|저자 박상원|출판사 규장 » 여러 번 여행하면서 강의 위험과 강도의 위험과 동족의 위험과 이방인의 위험과 시내의 위험과 광야의 위험과 바다의 위험과 거짓 형제 중의 위험을 당하고 또 수고하며 애쓰고 여러 번 자지 못하고 주리며 목마르고 여러 번 굶고 춥고 헐벗었노라 이 외의 일은 고사하고 아직도 날마다 내 속에 눌리는 일이 있으니 곧 모든 교회를 위하여 염려하는 것이라 누가 약하면 내가 약하지 아니하며 누가 실족하게 되면 내가 애타지 아니하더냐 내가 부득불 자랑할진대 내가 약한 것을 자랑하리라 (고후 11:26-30)
출판사 서평/
박상원 선교사의 ‘거듭남’ 그 이후,
연약한 노부부 선교사를 통해 하나님이 아프리카에서 펼쳐가시는 놀라운 선교 이야기
2019다니엘기도회 두 번째 날, 고향집 외할머니 같은 수더분한 박상원 사모의 진솔하고 담담한 간증에 많은 이들이 웃고 울었다. 남편에게 속아(?) 아프리카 선교사의 고된 삶에 내던져진 그녀의 분노에 백번 공감하며 남편 선교사가 함께 원망스러워질 때, 그녀를 찾아오신 하나님의 반전과 반전에 장내는 숙연해졌다. 정말 나는 거듭났을까, 당황스러운 질문을 직면하는 침묵이었다.
간증 2년여 만에 출간된 박상원 선교사의 이 책은 ‘거듭남’의 간증 이후의 이야기이자 진짜 아프리카 선교 이야기이다. 이 책의 1장은 아내 박상원 사모의 간증이지만 그 이후는 남편 김종양 선교사와 한 팀으로서 함께한 사역 보고와 간증이다. 저자 박상원 사모는 자신을 ‘가방을 드는 자’로 표현한다. 요나단이 나아가면 무기를 든 자가 따라가며 마무리하듯, 김종양 선교사가 앞서서 힘있게 사역해나가면 그녀는 곁에서 중보하며 ‘무기’ 대신 ‘가방’을 들고서 사람들에게 전달하고 후원을 이끌었다.
이 노부부 선교사는 중남부 아프리카 8개국에 700여 교회를 개척하고, 고아원부터 초•중고등학교, 신학교, 대학교를 지었으며 의대까지 설립했다. 그 일들을 이루어 오기까지 37년간 이들이 겪은 고난과 위험은 고린도후서 11장에 언급된 바울의 고백과도 동일하다. 연약한 두 사람과 수많은 중보자, 후원자들을 통해 아프리카에서 하나님이 펼쳐가시는 귀한 선교의 이야기가 컬러사진 및 지도와 함께 아름답게 펼쳐진다.
• 책 속으로
‘아, 이런 집에 살면서 아프리카의 알프스라고 우리를 부르다니….’
나는 너무나 가슴이 미어지는 것 같아 할 말을 잃었고, 충격으로 실어증에 걸려 얼마간 말을 하지 못했다. p.22
나를 사랑해서, 그리고 내가 그렇게 사랑하며 키운 이 아들을 사랑해서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리셨다…! 지금까지 교회에서 설교는 많이 들었지만, 그 사실이 처음으로 내 가슴에 깊이 들어와 믿어졌다. p.37
99일째가 되는 날까지도 사서함은 텅 비어 있었다. 100일째 아침, 남편은 말라위를 떠나야겠다며 짐을 싸놓고, 마지막으로 사서함을 한번 열어보자는 생각으로 우체국에 갔다. 그런데 놀랍게도 독일 병원선교회에서 보내온 500달러짜리 수표 한 장이 들어있었다. p.48
배고픔만큼이나 큰 위기가 왔다. 말라위에서 제발로 나가지 않으면 쫓겨날 입장이 된 것이다. … 이민국장을 만나 투서 내용은 모두 사실과 전혀 다르며 오직 모함일 뿐이라고 해명하면서 비자의 연장을 요구했으나 그는 너무도 냉정했다. p.59
우리는 처음 사역을 시작할 때부터 목사님의 이런 권면을 받아들여 사역을 철저히 문서화하여 선교회의 재산을 법적으로 지킬 수 있었고, 사역을 시작할 때부터 지금까지 중간 위치의 직분으로 사역한 덕분에 우리를 쓰러뜨리려던 여러 공격을 피할 수 있었다. p.84
정말이지 믿기 어려운 말이고 너무나 기가 막힌 노릇이었다.
‘교회에서 성찬식을 한 적도 없는데 어린아이를 죽여서 그 피를 마시게 하는 살인자로 몰리다니, 도대체 이럴 수가 있단 말인가?’ p.95
‘네가 너무 똑똑해서 네 계획을 너무 철저하게 짜놔서 네 마음에는 내가 들어갈 자리가 없구나. 네 계획대로 해라.’
‘하나님, 제가 잘못했어요. 그런데 이대로는 못 가요. 돈 주세요.’ p.106
강도들은 돈을 찾으려고 온 집안을 샅샅이 뒤진 후에 떠나갔다. 그들이 가고 나자 다리에 힘이 풀려 털썩 주저앉았다. 그때 얼굴이 미지근한 게 흘러내렸다. 내가 남편을 보며 말했다.
“여보, 나 피 나?” p.131
수술을 마치고 중환자실로 옮겨진 남편을 면회하러 들어갔다. 워낙 큰 수술을 하고 나서인지 몸의 모든 구멍에 다 관이 끼워져 있었다. 너무나 처참한 모습이었다. 그런 남편을 보고 있으려니 ‘둘이 같이 아프리카에 돌아갈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마음을 가다듬고 그를 위로했다. p.154
모잠비크에 간 남편도 힘들었지만 집에 남은 식구들도 편히 지낼 수 없었다. 남편이 선교를 위하여 모잠비크로 떠났을 때 나는 하루도 침대에 누워서 잠을 잔 적이 없다. 어린 자녀들을 돌보면서, 밤에는 가메제 목사님과 밤새 찬송을 부르고, 큰 목소리로 성경을 읽고, 하나님께서 주의 종을 살려서 돌려보내 달라고 매일 꼬박꼬박 밤을 새우며 부르짖어 기도했다. p.178
그날은 손을 대고 싶은 마음이 들지 않아 하늘을 향해서 손을 들고 영어로 선포했다.
“예수 이름으로 명하노니 더러운 귀신아 나가라!”
그랬더니 두 사람이 몸을 뒤틀며 고꾸라졌다.
‘아, 하나님이 나와 함께하시는구나! 내 편이시구나.’ p.184
우리는 건축한 교회와 학교에 후원한 교회의 이름을 붙여 이름을 짓고, 후원자의 이름은 명패에 새겨서 건물 안쪽 벽이나 교실과 강의실 문 옆에 부착하여 귀한 섬김의 흔적을 주님 오시는 날까지 영구적으로 보존하려 하고 있다. 그래서 우리는 떠나더라도, 이곳에 오는 모든 이들이 하나님께서 우리와 이들 교회를 사용하셨다는 것과 많은 사람이 합력하여 이 일들을 이루었다는 것을 보게 될 것이다. p.197
내가 혼수상태로 가장 위험했던 날 밤 10시경에 우리를 위해 계속 기도해주신 어떤 목사님이 남편에게 전화하여 하나님이 보여주신 것을 전해주셨다고 한다.
“지금 마귀가 사모님을 데려가려 해서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지나가는데 하나님이 그곳을 함께 지나가시니 염려하지 마세요.” p.204-205
• 저자 소개
박상원 / 김종양 선교사
산업연수생으로 독일에 간 남편이 편지로 복음을 전하더니 떠난 지 10년 만에 선교사가 되어 아프리카로 가족을 불렀다. 알프스 같다던 선교지는 벌레와 도마뱀이 득실대는 빈민촌이고, 배고파하는 아들에게 빵 한 쪽 마음껏 먹일 수 없는 선교사 아내는 자꾸만 교인들을 불러다 먹이는 남편에게 화가 났다. 기도처 대신 전쟁터가 되어버린 선교사 가정에 하나님이 찾아오셨고, 비로소 거듭난 아내 박상원 사모는 남편 김종양 선교사의 돕는 배필이자 든든한 기도 동역자가 되어 아프리카 선교에 함께하고 있다. 2019년 다니엘기도회에서 소탈하고 진솔한 간증으로 수많은 사람들의 심금을 울렸다.
김종양 선교사는 독일 베뢰아(Berea)신학교와 영국 웨일스(Wales)신학대학을 졸업하고 1985년 기독교대한하나님의성회 세계선교회와 한국병원선교회 독일지부의 파송선교사로 말라위에서 사역을 시작했다. 이듬해 아프리카대륙선교회(Africa Continent Mission)를 설립하고, 이후 37년간 숱한 고난과 생명의 위험 속에서도 영적 황무지 같은 아프리카대륙 8개국(콩고, 잠비아, 말라위, 모잠비크, 남아공화국, 레소토, 보츠와나, 에스와티니)에 교회, 고아원, 병원, 신학교, 기도원, 선교농장, 유치원, 초·중고등학교, 기독의대를 세우고 복음을 전하며 구휼·교육선교를 펼치고 있다. 1987년에 미국 남침례교단에서 목사 안수를 받았으며 2009년 제9회 언더우드상을 수상했다. ◙
저자 이메일 acmpsw@daum.net
아프리카대륙비전 www.africavision.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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