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소원은 전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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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과 이념은 처음에는 사람을 취하게 하지만 오래가지는 못한다…
술과 이념은 처음에는 사람을 취하게 하지만 오래가지는 못한다. 베를린장벽이 무너질 때 서독의 전문가들은 동독의 엘리트층과 슈타지 같은 정보기관이 강하게 저항하지 않을까 우려했다. 그런데 그런 일은 없었다. 그들은 너무 무기력하게 무너졌다. 소련이 무너질 때 미국의 전문가들은 붉은 군대의 강경파가 미국을 향해 핵 공격을 감행할 가능성을 우려했다. 그런데 그런 일은 없었다. 그들은 소련 영토 안에서 쿠데타를 일으켰다가 무기력하게 진압되었다. 북한도 조용히 무너졌다. – [책의 프롤로그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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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스저널=정이신목사] 우리의 소원은 전쟁 » 장강명 지음, 출판사: 예담 » 고인(故人)이 된 황장엽을 만나서 그의 이야기를 들은 지도 꽤 오랜 시간이 지났습니다. 가슴팍에 권총을 숨긴 경호원이 옆에 있었지만, 제가 NGO에서 모셨던 분이 워낙 유명한 사람이었는지라 별다르게 신경을 쓰지 않았고, 모셨던 분이 그와 나눈 이야기를 옆에서 주워들었습니다. 그리고 그가 모임에 참석한 사람들에게 강연한 걸 들었습니다. 잊고 지냈던 그때의 기억을 다시 소환한 게 이 소설입니다. 그리고 책의 프롤로그가 저를 사로잡았습니다.
대안학교에서 북향민을 가르친 지 10여 년이 지났습니다. 그동안 꽤 여러 명의 북향민을 만났고, 대안학교에서 배우지 않았더라도 이들과 동향(同鄕)인 사람들을 만났습니다. 그러면서 북한에 관해서는 매스미디어에 나온 이야기를 귀담아듣지 않는 사람이 됐습니다. 그런데 이 소설은 제가 직접 들은 이야기와 비슷한 궤적을 갖고 있습니다. 그래서 팩트 체크(fact check)를 해도 크게 무리가 되지 않을 이야기를 소설로 풀어낸 저자의 내공이 감탄스러웠습니다.
제가 북한에 대한 철부지 환상을 접게 된 북향민과의 만남을, 저자는 ‘치안이 제대로 유지되지 않는 나라’, ‘엄청난 양의 마약을 만들어 수출하는 나라’, ‘사람들이 끊임없이 국경을 넘어 이웃 나라로 불법 이민을 시도하는 나라’, ‘선진국 옆에 붙어 있는 최빈국’이란 표현으로 매듭지었습니다. 저자의 이런 표현이 꽤 불쾌한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북한은 동포(同胞)’란 시각을 해체하면, 저자의 이런 표현이 전혀 거짓말은 아닙니다. 그리고 이게 제가 만난 북한의 민낯이기도 합니다.
소설을 쓰기 위해 저자가 취재한 내용에는, 북한의 장마당 경제와 마약 중독 실태, 늘어나는 폭력조직에 관한 게 있습니다. 그리고 제가 가르쳤던 북향민 제자 중에도 북한의 폭력조직에 속해 있다가 탈북한 이가 있었습니다. 처음 그에게 북한에도 폭력조직이 있고, 이게 보위부와 밀고 당기는 그러저러한 관계라는 걸 들었을 때는 긴가민가했었습니다. 게다가 북한에 있는 샤먼(박수ㆍ무당)에 관한 이야기와 이들이 소위 북한에서 잘 나간다는 고위층을 상대로 점사(占辭)를 말해주며 공생하는 관계란 걸 전해 들었을 땐, ‘이데올로기가 이렇게 허망한 것이구나’라는 생각도 했습니다.
소설은 북한의 붕괴 후 이렇게 될 것이란 저자의 시나리오를 토대로 추측해서 쓴 허구(fiction)입니다. 그래서 어떤 사람은 이 소설에 대해 화를 낼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소설은 어디까지나 픽션이고, 소설이 우리에게 던져준 생각을 받아들여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대비해야 하는 게 독자의 몫입니다. 그래서 조금 불편할 수도 있는 소설의 한 대목을 소개합니다.
[정말 어이가 없었던 건, 집단농장 간부는 이름을 바꾼 국가 소유의 농장 간부가 됐고, 국가안전보위부의 지도원들 역시 이름을 바꾼 새 공안조직의 직원으로 계속 일한다는 현실이었다. ‘김씨 왕조에 조금이라도 충성했던 사람을 다 잘라낸다면 새 정부에서 일할 사람이 누구겠냐, 그 포악했던 시절에 김씨 왕조에 저항했던 사람들은 다 수용소로 끌려가 죽지 않았냐’라고 사람들은 말했다. ‘70년이 넘는 기간 동안 억울한 일이 한두 가지였나, 집마다 원통한 사연 하나쯤은 있지 않은가, 그걸 다 들춰내면 새 출발은 어떻게 한단 말인가’라고도 말했다.]
대안학교에서 가르쳤던 제자 중에 북한의 고위층 자제와 장마당을 떠돌던 꽃제비 출신이 있었습니다. 그때 둘 사이에 다툼이 생겼는데, 격앙된 목소리로 꽃제비 출신의 제자가 제게 했던 말이 있습니다. 소설에서 이 대목을 읽는데, 그때 그 제자가 했던 말이 다시 제 가슴을 파고들었습니다. 안타까운 건 고위층 자제는 이곳에서도 나름대로 승승장구하고 있는데, 꽃제비 출신 제자는 기초 학력이 부족해서 대학교 수업을 제대로 따라가지 못했고, 저와 연락이 끊어졌다는 것입니다.
책을 덮으면서 생각이 꽤 깊어졌습니다. 북한이 무너지고 남북한에 평화로운 교류가 일어나기를 소망하며, 평화로운 한반도를 우리의 아이들에게 물려주고 싶어서 재능기부로 운영하는 대안학교에서 대표간사로 일하고 있지만, 사회적 혁명이 개인적인 혁명으로 승화되지 않으면 어떤 일이 벌어질지 소설에 나오기 때문입니다.
※ 추신
소설에 나온 내용이 불편하더라도 이게 제 생각은 아닙니다. 저는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방지하는 활동을 여태껏 하고 있습니다. 이 소설이 우리에게 현실로 나타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책을 소개합니다. ◙
글 정이신 목사/ 본지 칼럼니스트/ 아나돗공동체교회 위임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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