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대 전후 景敎의 선교 활약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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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저널=김규동 박사] 당대 전후 景敎의 선교 활약상 – <1회> »
1. 당의 정치와 景敎 (Politics and Jing-Jiao in Tang Dynasty)
일찍이 페르시아는 중국과 유럽과의 교류에 산파 역할을 하였다. 두 나라는 현실적으로도 당조와 페르시아 간의 이해관계가 성립되어 정치적으로도 친선관계를 맺었다.
때마침 이슬람 세력의 굴기와 침략으로 수많은 페르시아인이 당으로 피난해 왔다. 당연히 당은 달갑지 않는 이슬람의 팽창 소식을 전해 듣고 이에 대한 대책 마련에 고심했다.
당시 신강지역은 황금알을 낳는 닭으로써 유목민들과 무역상들의 낙원이었다. 실크로드의 온갖 문명이 문턱이 낮은 이곳으로 모여들어 자유롭게 무역을 행하고 있었다. 비록 과거에는 훈, 토번, 위구르, 서하, 투르크가 지배했던 파란만장한 역사를 가진 곳이기도 했지만 어떠한 정치적인 압력이나 국가 간의 충돌도 없던 곳이었다. 그러나 간간히 들려오는 토번(吐蕃)의 이슬람과의 작당 소식은 당에게는 큰 위협으로 다가왔다.
그래서였을까! 당 초기부터 조정의 통 큰 대외개방정책으로 인해, 실크로드의 인재들은 장안 곳곳에 등용되었다. 무엇보다도 시급한 사안은 병사 모집이었는데 체격과 무예로도 출중한 페르시아인들이 유리했다. 실크로드에서 이주해온 젊은이들에게는 더없이 좋은 기회이기도 했다. 그들은 이미 중국어와 당의 문화 그리고 중앙아시아의 언어마저도 뛰어났었다. 이리하여 머지않아 그들은 당군의 요직에까지 올랐다. 오늘날로 말하자면 당의 국방외교정책은 이들에게 용병제 도입을 통해 방어적인 입장이 아닌 오히려 중앙아시아까지 넘볼 수 있는 기회를 만든 것이다.
景敎는 당 조정에서의 안정과 소통을 통한 내부 연합을 이루는 숨은 공로자들이다. 특히 당의 여러 황제들의 개인적인 문제와 그들의 정치에 빼놓을 수 없는 조력자였다. 이렇듯 당의 태평성세의 배후에는 뜻밖의 景敎徒들의 역할을 빼놓을 수 없다. 그러기에 그들은 변화무상한 당의 정치적 혼란 속에서 함께 웃고 울었던 진정한 복음의 사도들이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혼란기에 조정은 끝내 그들을 지켜주질 못했다.
2. 당의 경제와 景敎 (Economy and Jing-Jiao in Tang Dynasty)
한대(A.D. 206), 중국과 페르시아 간에는 이미 교통로(실크로드)가 열려있었고, 이 길은 외교사신과 상인들, 종교인들이 서로 왕래한 곳이기도 하다. 이 길을 열게 된 주된 이유는 동·서 간의 통상을 위한 것임에 전혀 의심할 바 없다. 당시 중앙아시아의 진귀한 물품과 유럽과 헬라, 인도의 신기한 물품들이 실크로드라는 대동맥을 타고 장안으로 밀려들었다. 중국 대외국제무역의 가장 대표적 상품으로는 단연 비단이 압도적이었다.
후한의 기록에 의하면, 페르시아가 중국과의 무역을 독점하기 위해 후한과 동로마(大秦)와의 무역을 가로막았다고 한다.
동서 간의 무역로에는 다수의 景敎徒들이 유입되었는데, 그곳에는 반드시 景敎의 수장인 주교나 주교장이 관리하고 있었다. 이렇듯 중국과 페르시아 간에는 한 장의 교통 네트워크가 밀접하게 그려져 당시 서로 간의 무역시장에서 중요한 관계를 맺고 있었다. 이것은 정치경제를 중심으로 발전한 네트워크이다.
당왕조의 유화정책은 타민족의 정체성을 무시하지도 않았고 오히려 기회를 균등하게 줌으로써, 서로의 경쟁을 통해 강력하고 우월한 왕조를 세우기 위함이었다. 이러한 희소식은 중앙아시아의 가난한 유목민족들에게 그것은 전쟁과 가난의 한계를 벗어날 절호의 기회였다. 당시 장안, 낙양 등지에는 서역에서 온 사람들로 늘 북적거렸는데. 당의 대외개방정책은 단점보다는 이로운 점들이 한 두가지가 아니었다. 당에 필요한 전투적인 인력과 더욱 다양한 물품들, 그리고 세상의 정보들이 자발적으로 실크로드를 통해 전달되었다.
그뿐만 아니라 서역의 신비로운 종교 메신저들의 등장으로 새로운 사상과 철학, 그리고 심오한 종교의 세계로 안내하였다. 이러다보니, 방문의 기간은 결국 길어질 수밖에 없었기에 실크로드의 대로에는 늘 이러한 여행객을 위한 여관업도 더불어 크게 발달하였다. 이러한 기회를 문명의 발전으로 만들어 낸 이들이 바로 중앙아시아의 소그드인(Sogdian, 粟特)들이었다. 이들의 타고난 비즈니스는 당 전역에서 뛰어났으며. 그들 중에는 유독 景敎를 신봉한 자들이 많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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