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 복이 인도하는 길과 처세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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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저널=정이신목사] 25. 복이 인도하는 길과 처세술 »
“아이들아”라는 표현은 스승이 제자들을 부르는 말…
<2:1>에서 “아이들아”라는 표현은 <1:8>에서 말한 것과 같습니다. 이는 스승이 제자들을 부르는 말입니다. 이 호칭을 통해서 보면 말씀을 배우는 사람이 아직 자신을 어느 정도 드러낼 수 있을 정도의 인격이 형성되기 전이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주시는 지혜뿐만 아니라 세상의 처세술을 따라갈 수도 있었던 상태였습니다.
많은 사람을 만나면서 보게 된 게 있습니다. 사람을 만나보면 어떤 사람은 세상에서 망(亡)하는 게 복(福)이고 어떤 사람은 귀하게 되는 게 복입니다. 그러나 정작 당사자는 자신이 세상에서 망해야 복이 되는 걸 받아들이지 못합니다. 한탄만 하면서 살거나, 복이 아닌데도 귀해지기 위해 물질을 붙잡고 사람을 놓칩니다. 물질은 부차적으로 주어지는 것이고 진짜 복은 사람인데, 그들은 무리하게 귀하게 되고자 사람을 놓칩니다.
이는 그들이 육신으로 사는 현생의 삶만 바라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육신으로 사는 동안에만 적용되는 게 아니라, 우리가 육신을 벗어나 부활의 몸을 입게 된 후에도 적용됩니다. 그러나 그들은 자신이 지닌 육신의 가치관으로만 하나님의 나라를 해석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주시는 세상에서 망하게 되는 복을 안 받아들이고, 육신의 삶이 끝날 때까지 탐욕에 집착합니다.
자신의 육신으로만 우주의 모든 현상을 해석하는 그들은 대체로 사람이라는 복을 받기 두려워하며 물질과 쾌락을 더 챙깁니다. 그러나 세상에서 제공하는 일반적인 처세술이 적용되지 않는 생의 경로를 가진 크리스천은 십자가를 지고 가는 것을 기꺼이 복으로 여기며, 교회 공동체를 통해 내 것을 주장하지 않고 서로 나누며 삽니다. 그리고 우리는 이 속에서 하나님이 주신 구원 약속을 받습니다. 이 약속이 부활이고, 세상에서 망하는 게 복인 사람에게 하나님이 언약으로 주신 패자부활전입니다.
<2:1>에서 “아이들아”라는 표현은 <1:8>에서 말한 것과 같습니다. 이는 스승이 제자들을 부르는 말입니다. 이 호칭을 통해서 보면 말씀을 배우는 사람이 아직 자신을 어느 정도 드러낼 수 있을 정도의 인격이 형성되기 전이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주시는 지혜뿐만 아니라 세상의 처세술을 따라갈 수도 있었던 상태였습니다.
도자기를 만들 때는 흙이 굳어지기 전에 말랑말랑한 상태에서 도공이 원하는 모습을 만듭니다. 그런 뒤 유약을 바르고 불에 구워야 단단해집니다. 하나님의 지혜도 인간의 가치관이 굳어지기 전에 배우는 게 좋습니다. 시멘트가 굳기 전에 하나님의 발자국을 남겨 놔야지 다 굳은 후에는 흔적을 남기기 힘듭니다.
아동ㆍ청소년기에 하나님의 말씀을 들어두면 그게 한평생 지침이 돼 살아있습니다. 그래서 아동ㆍ청소년기에 하나님의 말씀을 듣게 하는 게 중요합니다. 아동ㆍ청소년기에 하나님의 말씀을 접해도 살면서 방황할 것이고, 그러면서 성경에 대해 의문도 제기할 것입니다.
그러나 믿음은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것에서부터 생기고, 이는 그리스도를 전하는 말씀에서 생겨납니다(로마서 10:17). 아동ㆍ청소년이 다 깨닫지 못해도 하나님의 말씀을 접하게 인도하는 것은 이 때문입니다. 우리의 아이들이 가진 가치관이 굳기 전에 복음의 씨앗을 뿌려두면 복음이 알아서 때에 따라 성령님의 은혜로 작동합니다.
“내 명령을 마음속 깊이 간직”하라고 했습니다(2:1). 마음은 하나님의 말씀을 담는 그릇이기에 여기에 하나님의 말씀을 담아 두라고 했습니다. 우리가 기억해야 할 것은 그릇으로 인해 그 사람의 가치가 달라지는 게 아니라, 그 안에 무엇을 담고 있는가에 따라 그릇의 가치가 달라진다는 것입니다.
마음에 세상의 처세술을 담고 있으면 세상에서 똑똑하고 재능 있는 사람이 됩니다. 그러나 마음에 하나님의 지혜를 담고 있으면 주님의 백성이 됩니다. 그런데 때로 사람들은 자신이 ‘금 그릇이냐, 은그릇이냐?’를 따집니다. 이는 <디모데후서 2:20∼21>을 잘못 이해한 것입니다.
성경에는 큰 집에 갖가지 그릇이 있지만, 제일 좋은 그릇은 주인에게 귀하게 쓰이는 그릇이라고 했습니다. 바울은 이 말씀을 전하면서 누구든지 자신을 깨끗하게 해 주인이 온갖 좋은 일에 귀하게 쓰는 그릇이 되라고 했고, 금수저나 금 그릇이 되라고 하지 않았습니다. 흙수저나 흙 그릇일지라도 주인이 금 그릇보다 더 귀하게 쓰면 됩니다. 바울의 권면에서 요건은 ‘주인이 그 그릇을 어떻게 쓰느냐?’입니다. 그릇의 종류를 따지는 것은 바울의 권면과 전혀 상관이 없습니다.
성경은 ‘마음이 영을 담는 그릇’이라고 합니다(에베소서 4:23). 그리고 불교와 달리 인간이 자신의 마음을 잡을 수 없다고 합니다. 성경은 인간이 자신의 마음을 잡으려면 그 마음에 반드시 하나님의 말씀이 들어가 있어야 한다고 합니다(시편 119:11). 마음이라는 그릇에 무엇을 담아 놓느냐에 따라 마음이 잡히는 것이지, 인간의 수도 생활만으로는 잡히지 않는다고 합니다.
따라서 중요한 것은 내 마음에 ‘어떤 것을 담아 두느냐?’입니다. 내 마음에 담아 놓은 게 영이신 하나님의 말씀이면 그때부터 나는 구원을 약속받은 주님의 백성이 되고, 처세술만 담아 놓으면 세상에만 속한 사람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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