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놀라운 축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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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성칼럼=Dr. Elijah Kim] 가장 놀라운 축복 »
촌음 다투며 하루를 초 분 단위로 달려 온 것 같은 연말연시
저는 작년 12월 초부터 1월 중순까지 필리핀과 한국을 다녀 왔습니다.
3주 정도 필리핀에, 3주 정도 한국에 머물렀습니다.
필리핀의 3주는 크리스마스와 송구영신 예배가 있었고, 수많은 사역지를 방문했고, 많은 사람들을 만났으며, 체육관 건축에 동참하였고, 재직 임명과 선교사 파송이 있었습니다. 촌음을 다투며 하루를 초 분 단위로 달려 온 것 같습니다..
한국에서는 영국에서 온 딸 가족과 함께 1 주일 보냈습니다. 매일 매일 즐겁고 또한 바쁜 시간이었으며 그 모든 일들은 우리 가족이 가질 수 있는 적어도 30여 년 가운데 매우 드물게 간직할 수 있는 추억의 한 자리를 차지했습니다. 딸의 가족이 영국으로 돌아간 뒤 나머지 2주는 반드시 해야 할 많은 사역을 했습니다.여러 곳에서 말씀을 나누었으며, 국민일보 인터뷰 및 기사 작성에도 많은 시간을 할애했습니다. 또한 그 바쁜 시간에도 매우 소중한 분들을 만났습니다.
똑같은 일을, 똑같은 글을 써도 필리핀에 있을 때에는 인터넷이 접속이 잘 되지 않는데 고비용에 저효율로 매우 고생합니다. 한국에만 오면 인터넷을 따로 설치하지 않아도 전철역에서 때론 전철 안에서도 접속이 됩니다. 고비용 중효율인 미국보다도, 고비용 저효율인 필리핀 보다도 무비용인데 최고 속도로 최고의 효율을 낼 수 있는 것이 나의 조국 대한민국입니다.
저는 많은 나라를 방문할 때 마다 느끼는 편리함과 불편함에 대해 생각하곤 합니다.
어떤 국가에 갈 때 그 국가에서만 누리고 받을 수 있는 편리함, 그리고 다른 나라에서는 보통이고 평범한 것이 그 나라만 가면 주는 불편함과 불합리함 입니다.
목회 36년, 선교사역 32년이 되었고 제가 방문한 국가들의 숫자도 늘어났습니다. 때론 제가 방문한 나라가 몇개나 되는지 세어 보아야 할 정도가 되었습니다. 최소한 140여개 국가 아니면 170여개 국가가 넘을 것입니다. 어떤 나라는 40회 이상 방문하기도 했고, 어떤 나라는 단 한번 방문한 나라도 있으며, 아예 살았던 나라도 한국, 필리핀, 영국, 그리고 이제는 미국 모두 4개 나라에 달합니다.
이렇게 수많은 나라를 다니다 보면 그 나라를 보는 관점이 여러가지로 달라집니다.
1. 선교적 관점에서
2. 역사적 관점에서
3. 종교적 관점에서
4. 정치적 관점에서
5. 경제적 관점에서
6. 문화적 관점에서
7. 영적인 면에서
8. 때론 관광의 차원에서
저는 제가 방문하는 나라들을 가능한 한 그 나라에 대한 총체적 관점에서 글을 남기곤 합니다. 이전의 자료나 타인의 글을 참조하는 것이 아니라 온전히 저의 직관과 영감 그리고 개인적 관점에서 글을 남기고자 했습니다. 돌이켜 보니 100여개 이상의 나라를 선교적, 역사적 그리고 성경적 관점에서 분석하고 정리한 저만의 글이 자료 속에 그대로 남아 있습니다. 사실 저의 소원은 지구상에 단 하나도 예외 없이 오로지 저의 직관에 의해 그 나라의 총체적 보고서를 작성하는 것이었습니다. 이제야 겨우 절반을 넘어섰습니다. 예전에 썼던 어떤 나라에 대한 글을 찾으려고 하면 얼마나 헤매는지 모릅니다. 저의 기억 속에는 해산하듯 쓴 기억이 분명한데 자료 목록에는 어디에 두었는지를 찾지 못하곤 합니다. 저 스스로 얼마나 바보스러운지 스스로 자책한 적이 한 두 번이 아닙니다.
때론 달리는 버스 안에서, 때론 공항이나 버스 터미널에서, 때론 매우 이른 새벽에, 때론 밤을 새며, 때론 세미나와 사역 등 고된 사역을 감당하는 중에 글을 썼습니다. 글을 쓰고 나면 다시금 읽을 시간도 없어서 그냥 글을 보내곤 했습니다.
지금도 제 가슴 속에 깊이 남는 글들은, 이디오피아, 이란, 브라질, 파라과이, 쿠바와 같은 나라들입니다. 결코 잊을 수 없는 감동은 때론 커피 숍 휴지 위에, 때론 주머니에서 잡히는 종이조각 위해 떠오르는 단상과 영감들을 남기곤 했습니다.
물론 글을 쓰다 보면 영감이 떠 오르는 경우도 있기에 불현듯 떠오른 영감이나 감동들을 기록해 놓지 않으면 아무리 노력해도 그것이 떠오르지 않을 때가 다반사입니다. 그나마 손에 쥘 수 있는 붓과 잡히는 종이 쪼가리가 있었다면 다행이었습니다.
저는 어떤 나라에 대하여 대하시로 그 나라를 표현하곤 합니다. 그런데 종이 조각에 써 내려간 대하시를 찾지 못해 다시는 그 시를 기억하진 못한 경우도 허다합니다.
얼마전 컴퓨터 고장이 나서 많은 자료들이 유실되었습니다. 너무나 많은 자료들이 있기에 다 복구된 줄 알았는데 하나 하나 클릭해 보니 내용물들이 사라져 버린 것입니다. 얼마나 속상한지 모릅니다. 그러다가 문득 15년 전에, 10여년 전에, 또는 몇 년 전에 쓴 시를 발견하고는 다시금 읽어 봅니다. 이런 시들을 감상하다 보면 타인이 쓴 시처럼 읽기도 합니다. 대하 드라마를 써 내려 가듯 장구한 수천년의 역사를 시로 표현하여 가장 중요한 시기마다 포인트를 잡아 가슴을 저미듯, 때론 눈물 샘을 자극하듯 쓴 시구들이 마음을 마구 헤집고 들어올 때가 있습니다.
그래서 글은 다른 사람을 위해서가 아니라 먼저 자신에게 매우 유익하다는 생각을 해 봅니다.
제가 지난 주 금요일에 보스톤에 도착했습니다. 도착하는 날 눈발이 흩날리고 있었습니다. 자동차는 눈에 쌓인 채 외처로이 긴 여행에 지친 주인을 맞이했습니다. 냉기가 감도는 집엔 빈 냉장고와 오랫동안 외로움에 길들여져 있는 듯 했습니다.
그리고 어제는 눈이 얼마나 많이 내렸는지 모릅니다. 그동안 눈에 쌓이고 쌓여 얼음이 된 것을 겨우 녹였는데 또 다시 폭설이 내렸습니다. 저는 오늘 다시금 눈을 치웠습니다. 그리고 밀린 고지서를 처리하고, 소포를 보내고, 텅 빈 재정의 문제를 해결해야만 했습니다.
그리고 오랜만에 컴퓨터를 켜서 저의 추억을 반추하듯 글을 씁니다.
지금 쓰는 이 글이 몇 년 뒤에는 추억의 한 켠을 차지할 지 저는 모릅니다. 오늘 하루를 사는 이 순간 저의 기억, 저의 감정 그리고 저의 마음을 남겨두지 않는 다면 시간이 흐르면 이 모든 것들은 추억의 방에서도 찾을 수 없을 수도 있을 것입니다.
사랑 때문에
뒷마당에 뒹굴던 낙엽
황금 빛 찬란했건만
나의 마음 앗아간 늦가을 추억
먼지처럼 바스러졌네
혼절하듯 흔들어버린
첫사랑
그토록 아리따운 아내 처녀 적 사진 한 켠에
시리고 사무치도록
심장 자맥질 돕는
그 사랑의 고동소리
그 사랑으로
더 큰 사랑 딸이 태어나고
배가된 사랑 가슴으로 낳은 아들이며
온 우주를 가득 채우는 손자 사진에
올리사랑, 내리사랑, 배스름 사랑 잔치
사그랑 육신에도 자드락 나는 꽃나이
수많은 나라 가운데 어떤 나라에서는 불편한 것이 다른 나라에서는 일상이고, 또 어떤 나라에게는 특별한 것이 또 다른 나라에는 아무것도 아님을 자주 경험합니다.
우리가 매일 사용하는 전기, 수도, 도로, 인터넷, 편의점, 지하철 등은 우리나라에는 매우 보통이지만 자신 컨데 이러한 것은 세계 많은 나라 가운데 한 두 손가락 안에 드는 특권입니다. 그러나 150개가 넘는 나라들에게 이것들은 매우 특별한 것이 됩니다. 필리핀 저희 한 알의 밀알교회에서 카톡이 아예 열리지 않습니다. 구글이나 이메일은 열려도 카톡은 열리지 않습니다. 카톡이 열리려면 더 큰 인터넷 비용을 지불해야 합니다. 중국에서 구글이나 유투브가 열리지 않습니다. 이런 경우에 세계에 허다합니다. 지하철이 없는 나라가 지구촌 대부분의 나라들이며, 상하수도 없이 살아가는 나라가 상상 이상으로 많습니다. 전기가 아예 없거나 제한적이거나, 도로가 없거나, 심지어 물이 기름보다 귀한 곳도 많습니다. 목욕하는 물을 한 바가지로 해결해야 하는 나라도 있습니다. 그런데 이런 목욕조차도 할 수 없는 나라도 있습니다.
우리가 일상 속에서 소중한 것을 소중하게, 편리한 것을 특권으로, 보통인 것을 매우 특별한 것으로 깨닫는 것만으로도 우리는 큰 축복을 누리고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이 중에서도 가장 놀라운 것, 죄인을 위하여 이 땅에 오셔서 우리가 그 어떤 노력을 기울 긴 것도 없는데 거저 주시는 구원의 은총 아무리 강조하여도 이 세상에서 가장 감사해야 할 축복임을 기억해야 합니다.
“우리도 전에는 어리석은 자요 순종하지 아니한 자요 속은 자요 여러 가지 정욕과 행락에 종 노릇 한 자요 악독과 투기를 일삼은 자요 가증스러운 자요 피차 미워한 자였으나 우리 구주 하나님의 자비와 사람 사랑하심이 나타날 때에 우리를 구원하시되 우리가 행한 바 의로운 행위로 말미암지 아니하고 오직 그의 긍휼하심을 따라 중생의 씻음과 성령의 새롭게 하심으로 하셨나니 우리 구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그 성령을 풍성히 부어 주사 우리로 그의 은혜를 힘입어 의롭다 하심을 얻어 영생의 소망을 따라 상속자가 되게 하려 하심이라 (디도서 3:3-7)
보스톤에서 김종필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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