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7. 하나님을 인정하는 자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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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저널=정이신목사] 37. 하나님을 인정하는 자세 »
성경의 지혜 귀히 여기면, 하나님과 사람 앞에 귀히 여김 받아
<3:4>은 <3:3>까지 제시된 행동을 한 사람에게 주어지는 복입니다. 예수님의 말씀으로 목걸이를 하고 다니면서 성경의 지혜를 귀하게 여기면 하나님과 사람 앞에서 귀하게 여김을 받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 귀하게 여김을 받는다고 해서 이게 반드시 사람이 귀하게 여기는 것으로까지 연결되지 않습니다.
창조질서에 따르면 하나님이 귀하게 여기시는 것을 인간이 당연히 귀하게 여겨야 합니다. 그러나 일부 사람들은 하나님이 하신 선악 판단과 다른 길을 추구하면서 주님이 좋다고 하신 것을 부정합니다. 우리가 이런 사람을 만났을 때는 곧이어 하나님을 따를 것인지 그 사람의 판단을 따를 것인지를 결정해야 하는 일이 생깁니다. 그럴 때는 힘들더라도 하나님께 귀하게 여김을 받는 일을 선택해야 합니다. 그래야 뒤탈이 안 생깁니다.
사람이 하나님의 은혜를 받으면 주변에서 그를 무시하기 힘들게 됩니다. 하나님이 은혜를 주실 때는 그 은혜를 지킬 수 있는 수단까지도 같이 주시기에(에베소서 6:17) 섣불리 주님께 은혜를 받은 사람의 것을 훔쳐 갈 수 없습니다. 그런데 다른 사례가 있습니다.
인간이 주는 뇌물이 하나님이 주시는 은혜보다 먼저 도착할 때가 있습니다. 그래서 어떤 게 진짜인지 크리스천이 헷갈릴 때가 있습니다. 이처럼 둘을 분별하기 힘들 때는 둘을 모두 땡볕이나 들판에 그대로 놓아두면 됩니다.
하나님의 은혜는 땡볕과 들판 날씨까지 주관하시는 창조주가 주신 것이기에 아무리 그런 곳에 오래 둬도 변질이 되지 않고 오히려 싹을 틔워 더 많은 열매를 맺습니다. 그러나 인간이 준 뇌물은 그걸 준 이가 땡볕이나 들판의 기후를 바꿀 수 없는 존재기에 금방 상합니다. 하나님과 사람 모두에게 귀하게 여김을 받으면 좋겠지만, 그렇지 않을 때는 반드시 이 둘을 예수님이 주신 복음으로 분별하십시오.
하나님을 창조주로 인정하려면 주님이 앞서서 가시게 하는 게 중요합니다. 내가 먼저 가면서 예수님께 뒤따라오시라고 하는 것은 겸손이 아니라 교만입니다. ‘예수님이 힘드실 것 같아 제가 먼저 가서 일을 처리했습니다’란 말이 멋있는 말 같지만, 실제로는 어떤 사이비 교주가 했던 말입니다.
그 사이비 교주는 하나님이 자신을 통해 역사하고 계시는데, 자신이 한 일을 보고 주님이 ‘네가 내 마음을 속 시원하게 했다’라고 하시면서 ‘○○ 정부를 움직여 어떤 나라를 도우라고 하셨다’라고 했습니다.
우리가 주의해야 할 게 바로 이것입니다.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우리가 하나님을 앞서서 대신하는 때가 있습니다. 그러면 마음에 하나님의 말씀을 아무리 많이 담고 있어도 소용이 없습니다. 자신이 이미 하나님의 자리에 와 있기에, 주님의 자리와 인간의 자리를 바꿔치기했기에 그곳에서 성령님의 역사가 일어날 리 없습니다. 어떤 경우라도 인간의 자리와 하나님의 자리를 바꾸면 안 됩니다.
인류의 시조가 벌인 타락의 결과뿐만 아니라 과정을 잊으면 안 됩니다. 아담ㆍ하와가 왜 타락했습니까? 하나님의 자리에 자신들이 올라가 주님을 제쳐 두고 자신들의 의지로 무언가를 판단하고 싶어서 일을 저질렀습니다. 그게 <창세기>에 기록된 타락입니다.
그 결과가 좋았으면 다행일 텐데 오히려 하나님의 자리에 인간이 올라갔더니 온갖 문제만 생겼습니다. 하나님을 제쳐 두고 그 자리에까지 올라갔으면 무엇 하나 남기는 게 있어야 할 터인데, 오히려 주님이 그 자리에 계실 때보다 더 엉망이 됐습니다.
그래서 크리스천이 사탄과의 타협을 거부하는 것입니다. 인류 시조의 타락으로 뭔가 새로운 일이 일어났다면 아담ㆍ하와를 인간에게 새로운 자유를 준 인물로 추앙할 것입니다. 그러나 아담ㆍ하와의 타락으로 지난번에 이야기했던 ‘장수의 저주’가 나타났습니다.
아담ㆍ하와가 나름대로 머리를 써서 사탄과 결탁해 봤으나, 모두가 하나님의 피조물이었기에 창조주를 넘어설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늘 창조질서가 말하는 우선순위를 지켜야 합니다. 내가 성령님보다 먼저 가면 아무것도 이뤄지지 않는다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마음을 다해 하나님을 의뢰(依賴: 남에게 의지, 부탁하다)하라고 했습니다(3:5). 우리는 이미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이고,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고백한 사람들입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하는 게 하나님을 더 의뢰하는 것일까요?
먼저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은 하나님이 보이지 않는 분이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의뢰해야 하는데, 성경에 우리의 고민을 대변하는 사람이 여럿 있습니다. 이들도 우리와 마찬가지로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의뢰했습니다. 그러니 이들의 사례를 살펴보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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