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적인 게으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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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저널=정이신 목사] 영적인 게으름 » 71회
스스로 좋아서 하는 부지런한 행동은 자유…
<잠언>이 크리스천에게 먼저 경계하라고 주의를 환기한 것은 게으름입니다. 게으름을 경계하기 위해 개미에게 배우라고 합니다. 개미같이 조그마한 곤충도 부지런히 자신에게 주어진 길을 가는데, 인간이 개미보다 못하면 안 됩니다…
개미가 우두머리ㆍ지휘관ㆍ통치자도 없이 이런 일을 한다는 것은, 인간이 부지런한 행동을 스스로 원해서 하는 게 제일 좋다는 뜻입니다. 누가 시켜서 부지런한 행동을 하게 되면 억압이 됩니다. 그러나 스스로 좋아서 하는 부지런한 행동은 자유입니다.
똑같이 성실하지만, 억압으로 인해 이런 행동을 하는 것과 본인 좋아서 한 것은 완전히 다릅니다. 공자(孔子)는 “어떤 사실을 아는 사람은 그걸 좋아하는 사람만 못하고, 좋아하는 사람은 즐기는 사람만 못하다(知之者不如好之者, 好之者不如樂之者)”라고 했습니다.
이 말을 두고 일차적으로 학문의 경지를 세 단계로 나누어 설명한 것이라고 해석합니다. 그러나 저는 이 말이 학문의 경지뿐만 아니라 모든 삶에 적용되는 것이라고 봅니다. 비진리도 아니고 진리가 좋아서 부지런히 행동하는데, 누가 그걸 막을 수 있겠습니까? 사탄이 아니고서는 진리가 좋아서 하는 행동을 막을 존재가 아무도 없습니다.
게으른 사람의 사고방식 중 하나는 누군가 자기를 대신해서 일해 주기를 바란다는 것입니다. 이는 정신적으로 병이 들어 있는 상태입니다. 자신의 삶을 다른 사람이 대신 살아 줄 수 없습니다. 자기가 해야 할 일은 자기가 해야 합니다. 자포자기하고 아무것도 하지 않으려는 사람은 게으름에 빠져 잠만 잡니다. 그러나 자신이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 아는 사람은 필요 이상으로 잠을 자지 않습니다.
또 게으름에 빠지면 공짜를 기대하게 됩니다. 빚이 있는데도 버는 것보다 쓰는 것을 줄이지 않으면 빚이 늘어나 부도가 나듯이, 자신이 해야 할 일을 하지 않고 게으름을 피우면서 하나님의 은혜를 바라면 신앙에 부도가 납니다. 신앙의 부도는 하나님에 대한 오해를 증식시킵니다. 자신이 해야 할 일을 하지 않고 기적이나 공짜를 기대하게 하면서, 하나님이 은혜를 베풀어 주시지 않았다고 서운해하게 만듭니다.
이런 의미에서 성경은 크리스천이 게으름 피우는 것을 죄라고 합니다. 게으른 것은 생활의 한 모습이지 죄가 아니라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성경은 단호하게 죄라고 합니다. 세상에서 말하는 덕목보다 성경이 더 강한 잣대를 크리스천에게 요구하는 이유는 사탄을 이겨낼 힘을 훈련하라고 권면하는 것입니다.
크리스천이 사이비ㆍ이단들보다 더 부지런하지 않으면 저들을 이길 수 없습니다. 사이비ㆍ이단들보다 성경공부를 더 안 하면서 어떻게 저곳에 빠진 사람을 끄집어낼 수 있습니까? 다른 종교인들도 성경을 읽습니다. 스님들이 성경을 가지고 이야기하기도 합니다. 그럼 목사들도 불경(佛經)까지 공부해서 이야기할 수 있어야 합니다. 불경이나 꾸란은 우상을 숭배하는 종교의 경전이니 공부하지 않아도 된다고 주장하는 사람치고 제대로 성경공부를 한 사람을 거의 못 봤습니다.
사탄이 크리스천을 어떻게 공략하는지, 저들이 쓰는 전략ㆍ전술이 뭔지 모르면 저들의 공격에 효과적으로 대응하기 힘듭니다. 코로나19바이러스 사태 때 모 사이비의 실체를 방송에서 드러냈지만, 성경적으로 그곳의 실체가 뭔지를 알아보겠다고 나섰던 교회와 목사는 많지 않습니다.
그동안 자신들이 모 사이비의 실체를 제대로 알지 못했으니, 이번 기회에 회개하는 마음으로 모 사이비의 실체를 성경으로 조명할 수 있는 실력을 갖춰서, 그곳에 빠진 불쌍한 영혼들을 구하겠다고 나선 교회와 목사가 몇이나 됩니까? ‘아, 저곳이 무서운 곳이구나’라고 탄식하면서도, 대부분 ‘왜 저런 곳에 빠졌을까’라고 고개만 갸우뚱거렸습니다. ‘우리는 그런 곳에 빠지지 않았으니 됐다’라고 그냥 넘어간 교회와 목사가 더 많습니다.
저는 이것을 ‘영적 게으름’이라고 봅니다. 게으름을 영적인 것과 육적인 것으로 구별하는 건 성경에 없지만, 여러분의 이해를 돕기 위해 이런 표현을 씁니다.
‘영적 게으름’이란 내가 말씀을 전해야 할 대상에 관한 연구를 게을리하는 것입니다. 그를 전도하려면 그가 가진 마음의 지도를 알아야 합니다. 이것을 알려면 그의 마음을 만든 요소가 무엇인지 공부해야 합니다. 그러나 이런 공부는 하지 않고 ‘원래 그런 사람은 기독교 신앙을 갖기 힘들어’라고 혼자 판단한 후, 그들에 관한 공부를 게을리합니다. 이것은 분명히 성경에서 권하지 않는 일입니다.
이슬람교를 연구하는 이유는 그들이 옳아서 하는 게 아닙니다. 아무리 그들이 잘못됐다고 해도 10억이 넘는 이슬람교도들이 하루아침에 크리스천으로 돌아오지 않습니다. 그런데도 거기를 연구하는 이유는 그들을 통해 우리가 크리스천으로서 책임져야 할 사회적 덕목에 게으르지 않게 반응하기 위해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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