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편 소망의 나무(욥 14: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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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송에세이=이요한 감독] 제1편 소망의 나무(욥 14:7-9) » 긴 겨울 뜨거운 바람 시리즈 1회 »
제1편 소망의 나무(욥 14:7-9)
나무는 소망이 있나니 찍힐지라도
다시 움이 나서 연한 가지가 끊기지 아니하며
그 뿌리가 땅에서 늙고
그 줄기가 흙에서 죽을지라도
물기운에 움이 돋고 가지가 발하여
새로 심은 것과 같거니와
(나무는 소망이 있나니)
나는 소나무를 좋아한다. 나의 PC 메인 창에는 소나무 그림이 깔려있다.
나의 블로그 닉네임도 소나무이다. 봄이 되면 소나무 순을 잘라 3일 동안 물에 담가 송진을 제거한 후 설탕에 재어 둔다. 그리고 일 년 이상 공을 들여 발효를 시켜 솔잎 청을 만든다. 여름엔 찬물에 타서 마시고 겨울엔 따뜻한 차로 즐기는데 그 한잔의 진한 솔잎 차향은 그 어떤 차(茶)에 견줄 수가 없다. 동의보감에서는 노화를 방지하고 활력을 증진 시키며 추위와 허기에 면역력까지 높여준다고 나와 있다니 그야말로 만병통치제가 아닌가!
이런 것이 전원주택에 사는 사소한 재미다.
50대 후반 남자들의 로망이 전원주택을 갖는 것이라고 한다. 그 나이가 되니 나도 그런 꿈을 꾸게 되었다.
몇 해 전 녹음실에서 말씀송 음악 작업을 한창 진행 중인데 카톡으로 사진 한 장이 왔다.
아내가 보낸 것이다.
뾰족뾰족 여러 개로 나 있는 서양식 지붕에 담을 대신하여 소나무가 둘러싼 2층 양옥이었다. 거의 스무 군데 이상의 집을 보러 다녔어도 이런 풍경의 집은 없었기에 심장이 벌렁거렸다. 노총각시절 아내를 처음 만났던 카페에서도, 그리고 산부인과 분만실에서 간호사의 품에 안겨나온 복숭앗빛 딸 아이를 봤을 때도 그랬다.
하나님께서 응답을 주시려나 보다.
소나무는 크게 조형 소나무와 내륙소나무로 나뉜다.
조형 소나무는 말 그대로 조형미를 살려 구불구불 자라게 하고 상부에는 밥(잎과 가지)이 풍성하여 정전(나무의 잎과 가지를 자르는 일) 등 고도의 관리를 한다.
그러나 내륙소나무는 농장이 아닌 자연의 숲속에서 자라는 나무다. 이 소나무는 생육 특성상 지고는 못 산다. 그래서 다른 나무들보다 더 높게 곧게 뻗어 오른다. 지붕보다 더 높게 태양을 향해 뻗어 올라가기 때문에 예로부터 내륙소나무는 건축자재로, 가구를 만드는 좋은 재료로 인기를 누려왔다.
어린 시절 마을 뒷동산에도 큰 소나무 두 그루가 서 있었다. 단옷날이나 추석이면 그곳에서 동네 아낙네들은 그네를 탔다. 정월 보름이면 지신밟기를 했는데 농악대가 모여 이 소나무 주변을 돌면서 신명 나는 판을 시작했다.
농악대의 재비들이 벙거지에 달린 상모를 이리저리 돌리면서 갖가지 재주를 부리던 모습을 보고 자란 나는 후에 한국 음악을 전공하게 된 계기가 되었다.
늘 보고 싶었던 그 뒷동산의 소나무를 다시 보게 된 것은 카톡 속 사진의 집으로 이사를 오던 날이었다. 아름다운 조형 소나무 숲 뒤에서 마치 배경처럼 위풍당당하게 서 있는 소나무 한 그루가 눈에 들어왔다. 내륙 소나무과 장송이었다.
티자 형식으로 곧게 자라다가 가지를 아래로 늘어뜨린 것을 보아서는 80년이 넘었다는 증거이고 그 둘레가 장정 두 사람이 손을 잡아야 하는 족히 200년은 돼 보이는 소나무였다.
그 뿌리 쪽을 보니 아뿔싸 이웃집 뒤 뜰에 서 있는 게 아닌가? 곧게 뻗어 오르다 그 집 지붕쪽으로 등을 굽기는 했으나 아무튼 이 소나무는 우리집 테라스에서는 좌측에, 앞집에서는 정원 쪽 중앙에, 자기 집에서는 뒤뜰 지붕 위에 서 있는 구조를 갖추며 세 가구 사이에 든든한 버팀목 같았다.
그런데 언제부턴가 앞집과 소나무집 사이에 작은 갈등이 벌어졌다. 앞집의 자두나무가 그 소나무집 쪽으로 가지를 뻗었고, 옥신각신 끝에 그 나누는 베임을 당했다.
한참의 시간이 지난 어느 날
벌목꾼들이 기웃거리더니 요란한 전기톱 소리가 났다.
그 소나무가 잘리고 있는 것이다. 그날의 충격을 어떻게 표현해야 할까?
친한 친구를 보낸 기분! 아니 추억을 강탈당하는 느낌!
아무리 말 못 하는 미물이지만 자기들보다 먼저 세상살이를 시작하고 새들의 보금자리가 되어주고, 맑은 공기를 뿜어주며 생사의 고락을 같이한 그저 푸르른 상록수를 저렇게 보내 버리다니…..
나무는 사라졌다. 그러나 나의 기억은 생생히 그 나무를 기억한다.
그리고 나는 이 지면을 통해 그 나무를 추억한다. 나무로 만든 종이 위에다.
소망의 나무는 욥기 14장 7~9절(개혁 한글)을 작곡했다.
나무는 물기운에 생기를 되찾는다. 우리는 말씀으로 생기를 되찾는다.
이 소망의 나무에 인생을 대입시켜본다.
비록 세상에서 찍힘을 당하고 땅에서 늙고 흙에서 죽을지라도, 말씀으로 움이 돋고 가지가 발하여 새로 심은 것과 같거니와…이 말씀송이 소망을 잃은 사람에게 용기를 주는 노래가 되기를 기도한다. 인생은 소망이 있나니.
<다음 호에 계속>
글 이요한 (작, 연출가)
이요한 감독- 100여 편의 말씀송을 작곡하여 GOOD-TV에 금주의 말씀 송(유튜브 검색)으로 발표. 연극 야곱, 뮤지컬 갈릴리로 가요 등 작, 연출.
제1회 사상과 문학상, 제1회 한국 문학 세상 작가상,
제9회 기독교 문화예술대상 연출상, 제10회 한국 기독 언론대상 특별상 등 다수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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