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사 편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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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스저널=정이신목사] 세계사 편력 » J. 네루 지음, 곽복희 남궁원 옮김/ 출판사: 일빛 »
정치인 자와할랄 네루이기 전에 인디라의 아빠로서 교육을 위해 쓴 책…
보통 사람들은 언제나 영웅일 수는 없다. 그들은 날마다 빵과 버터, 자식들 뒷바라지, 또는 먹고 살아갈 걱정 등 여러 가지 문제에 사로잡혀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일단 때가 무르익어 사람들이 커다란 목표를 세우고 거기에 확신을 갖게 되면 아무리 단순하고 평범한 사람이라도 영웅이 되며, 역사는 비로소 움직이기 시작해 커다란 전환기가 찾아온다. 그리고 그들 속에서 위대한 지도자가 나타나 모든 인민에게 활기를 불어넣어 큰일을 이루도록 이끄는 것이다. – [책 내용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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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가 책의 제목에서 밝힌 대로 ‘편력(glimpses)’입니다. 저자는 감옥에 갇혀 있었고, 그가 갇힌 이유도 인도의 독립을 위해 활동했기 때문입니다. 책은 이런 저자의 눈으로 세계사를 해석한 부분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그런데 내용이 길기에 일빛 출판사에서도 세 권으로 나눠 출간했습니다. 그러니 독자가 세 권을 다 읽을 필요는 없습니다. 독자가 주목하는 시대를 찾아 그곳을 집중해서 읽어도 됩니다. 책의 제목이 ‘편력’이기에, 독자도 발췌독을 통해 책을 편력하면 됩니다.
10여 년을 감옥에서 지내면서, 저자의 기억력만으로 역사에 관해 이런 글을 쓰기는 힘듭니다. 저자가 감옥에서 책을 차입 받았어도, 정치범이었기에 곧바로 책을 다시 내보내야 했습니다. 그래서 저자는 그가 책을 읽으면서 노트에 남긴 기록을 토대로 딸에게 이 편지를 썼습니다. 그러면서도 웰즈(Herbert. G. Wells)가 쓴《세계사 대계(Outline of History)》에서 많은 도움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저자가 참고로 봤다는 책에 관해서는 설명이 필요합니다. 웰즈는 영국의 소설가이자 문명비평가고, 당시 인도는 영국의 식민지였습니다. 이걸 우리나라의 상황에 대비해 보겠습니다. 항일독립운동가가 일제의 감옥에 갇힌 채, 일본 학자가 쓴 책을 참고로 해서, 그걸 한국인의 시각으로 재해석한 후, 딸에게 편지를 보냈습니다. 우리나라에서 세계사를 제대로 다룬 책이 없었지만, 딸에게 세계사를 가르쳐야 앞으로 우리나라의 미래를 기대할 수 있다는 생각에 이런 일을 했습니다. 그렇다면 여기서 중요한 건 저자가 가진 ‘역사에 대한 해석 능력’입니다.
제가 주목한 건 아빠로서 무남독녀의 교육을 위해 이 글을 쓴 의도입니다. 편지를 쓴 아빠는 ‘철저하게 인도인’이었습니다. 저자는 정치인 자와할랄 네루(Jawahalal Nehru)기 전에 인디라의 아빠로서, 그가 본 세계사의 흐름을 인도인의 시각으로 딸에게 알렸습니다. 그래서 책 곳곳에는 인도인의 시각으로 본 서구 문명에 대한 비판과 동양권의 여러 나라에 대한 우호적인 언급이 나옵니다.
저자가 시행했던 교육의 영향인지, 딸의 능력이 출중했었는지 인디라 간디(Indira Gandhi)는 인도의 총리가 됐습니다. 이어서 그녀의 아들도 인도의 총리를 역임했습니다. 인디라의 성(姓)이 네루에서 간디로 바뀐 건, 그녀가 페로제 간디(Froze Gandhi)와 결혼한 후 남편의 성을 따랐기 때문입니다. 페로제 간디는 마하트마 간디(Mahatma Gandhi)와 아무런 혈연관계가 없는데, 3대 총리를 배출한 이 가문은 역사의 평가에 따라 네루와 달리 총리를 역임한 엄마와 아들(라지브 간디ㆍRajiv Gandhi)이 모두 암살당했습니다.
네루가 이 글을 쓴 계기가 그러하듯이, 이 책은 감옥에 갇힌 아버지가 불안정한 교육 환경에 놓인 딸을 위해 다정하게 쓴 편지를 묶은 것입니다. 저자가 이 편지를 쓸 때는 이게 언제 어디서 책으로 출판될지 알 수 없었습니다. 저자의 표현에 따르면 이 글을 쓸 때 인도는 ‘기묘한 나라’였고, 인도의 앞날을 예측하기 어려웠습니다. 그러나 인도가 영국으로부터 독립했고, 네루가 인도의 총리가 됐기에 이 편지 묶음도 책으로 발간됐습니다.
저자가 책의 서문에 남긴 말을 고려했을 때, 이 책은《안네 프랑크의 일기》를 생각나게 합니다.《안네 프랑크의 일기》가 2차 세계대전 후 세대인 우리에게 준 메시지처럼, 그곳이 어디든지 인간이 그곳에서 정당하게 살아낸 생생한 삶의 기록은 후세들에게 역사의 교훈이 됩니다. 그리고 이런 교훈은 인간 사회에서 좋은 거목을 자라게 하는 토양이 되거나, 더 넓은 지평을 볼 수 있게 받쳐주는 디딤돌이 됩니다.
저자는 책에서 정보나 단순한 교양, 학업 성적을 위해서 역사를 알아야 하는 게 아니라고 했습니다. 올바르게 세상을 보고, 정의롭게 행동해야 하기에 역사를 제대로 알아야 한다고 했습니다. 이런 면에서는 신영복의 옥중 편지를 묶은《감옥으로부터의 사색》과 이 책이 연계되는 면이 있습니다. 정치적인 이유로 감옥에 있으면서도 올곧게 살았던 사람들이 남긴 성찰을 서로 비교해 보는 게, 이 책을 더 깊게 읽는 비결입니다.
내가 요구했던 게 정당하지만, 그걸로 인해 고난을 겪게 돼 영어(囹圄)의 몸이 됐을 때, 많은 사람이 그곳에서 바다와 수평선, 지평선을 더 잘 상상하는 기회를 얻게 됐다고 합니다. 자기의 뜻대로 되지 않아서 어딘가에 갇히게 됐을 때, 자기를 돌아보면서 하늘의 별빛을 더 잘 볼 수 있다고 합니다. 책에서도 저자가 봤던 별빛이 여러 곳에 나옵니다. 다만 이 별빛 중에 코리아(조선)에 관한 건 물음표가 생깁니다. 이 책이 편지고 책의 제목도 편력이기에 그걸 고려해서 읽어야 할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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