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중권의 서양미술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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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스저널=정이신목사] 진중권의 서양미술사 » 진중권 지음/ 출판사: Humanist »
“현대미술, 어떤 징조나 징후 없이 갑자기생겨난 게 아니다.”
이집트의 장인들이 무명으로 남아 있는 데 반해, 그리스의 화가나 조각가들은 오늘날까지도 그 이름이 남아 있다. 왜 그럴까? 그것은 이미지의 제작 과정에서 예술가가 발휘하는 역할과 관련이 있다. 이집트의 조상(彫像)은 예로부터 전해지는 엄격한 표준에 따라 제작된 반면, 그리스의 조상에는 어느 정도 표현의 자유가 허용됐다. 한마디로 이집트 조상의 제작 방식이 ‘기술’에 속한다면, 그리스의 그것은 ‘예술’에 속한다. 때문에 그리스의 장인들은-비록 오늘날 예술가들이 누리는 지위에는 못 미쳤겠지만-후세까지 전해지는 명성을 누릴 수 있었던 것이다. – [책 내용 중에서]
미술관에 간 의학자ㆍ화학자ㆍ수학자ㆍ해부학자 등을 다룬 책이 있습니다. 시리즈로 발간했는데, 다 읽어도 좋고 내가 원하는 부분만 읽어도 되는 재미가 있습니다. 이 책도 마찬가지입니다. 총 네 권으로 고전예술, 모더니즘, 후기 모더니즘과 포스트모더니즘, 인상주의에 관한 게 있습니다. 인상주의에 관한 책을 맨 마지막에 썼는데, 처음에 출간한 고전예술과의 격차가 무려 10년입니다. 고전예술은 2008년, 인상주의는 2018년에 출간함으로써 저자가 쓰고자 했던 서양미술사를 완결했습니다. 그래서 네 권을 다 읽거나, 관심이 많은 시대를 골라서 읽으면 됩니다.
책을 읽으면서 주의해야 할 건, 서양미술사에 관한 진중권의 해석이 아니라 ‘진중권의 서양미술사’라는 것입니다. 당연하게 저자가 눈여겨봤던 작품과 미술사의 흐름이 등장합니다. 저자는 그가 골라낸 서양미술의 흐름을 통해 서양 예술사조의 흐름을 읽고, 서양인들이 사고가 어떻게 변화했는지 말합니다.
그런데 마지막으로 발간한 인상주의에 관한 책에서 저자가 말했듯이, 현대 서양인의 예술에 관한 생각은 하늘에서 갑자기 뚝 떨어진 게 아닙니다. 이건 다양한 역사적 사건을 통해 서로 이어지면서 융합을 통해 변화했습니다(발전한 게 아닙니다!). 따라서 현대의 서양사를 이해하려면, 고전시대부터 흘러온 그들의 생각을 책을 통해 미술사로 일별(一瞥)하는 것도 괜찮은 방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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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에서 눈여겨봤던 건 책 곳곳에 있는 도록(圖錄)입니다. 서양미술이 어떻게 변화했는지 전체적인 작품을 보는 게 제일 좋습니다. 그렇게 하면 서양의 고전예술과 난해하다는 현대미술, 그리고 인상주의의 차이점을 살펴볼 수 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이 책처럼 예술작품의 화보가 많이 실린 책은 남다른 의미가 있습니다. 서양의 고전 예술에서부터 현대미술로 흘러온 작품의 화보를 일목요연하게 볼 수 있기 때문입니다.
저자의 해석과 책에 등장하는 예술가들의 말을 빌리면, ‘예술은 변모하는 세계상을 그저 반영하기만 하는 거울’이 아닙니다. 예를 들어 조형 예술은 시각을 통한 예술로서 그것 나름대로 전제와 법칙을 갖고 있습니다. 이걸 무시하고 예술을 외부를 비추는 거울로만 이해하면, 가시적인 표상을 핵심으로 삼는 미술 고유의 영역을 읽어내지 못하게 됩니다. 이로 인해 그림이 말하는 메시지를 읽어내지 못한 채, 겉으로 드러난 크기의 웅장함이나 색채의 화려함에 갇힌 채, 예술작품의 표면만 쳐다보게 됩니다.
예를 들어 황금분할의 아름다움을 추구했던 고전미술과 달리 근대에 등장한 사실주의는 미술의 목표를 ‘진실’에서 찾았습니다. 그들은 동시대의 생활상을 세심하게 관찰하고 그들이 지닌 삶의 모습을 진실하게 그려내는 걸 목표로 삼았습니다. 그래서 현실의 추한 모습까지도 예술로 인정하고 받아들였습니다. 이로 인해 고대의 신들이나 이상적으로 미화된 영웅들의 모습이 사실주의자들의 작품에는 등장하지 않습니다. 또 서양의 고전미술이 객관적 대상을 그리려고 했다면, 인상주의는 ‘색은 곧 빛’이라는 인식으로 망막에 비친 주관적 인상을 표현했습니다. 그리고 상징주의는 가시적인 세계를 재현하려 했던 사실주의와 인상주의의 한계를 넘어선 후, 대상을 작가가 해석한 상징으로 표현했습니다. 이렇게 19세기의 여러 예술운동을 통해 20세기 현대미술이 등장하는 토대가 마련됐습니다.
“미술을 잘 모르는 사람이라도 19세기 이전의 고전미술과 20세기 이후의 현대미술을 한눈에 구별할 수 있다. 그만큼 고전미술과 현대미술은 시각적으로 큰 차이를 보인다. 하지만 현대미술이 어떤 징조나 징후도 없이 갑자기 생겨난 게 아니다.” 이게 저자가 10년의 격차를 두고 인상주의에 관한 책을 따로 쓴 이유입니다. 저자에 따르면 19세기 중엽부터 20세기에 이르는 50여 년 동안 현대미술이 준비됐다고 합니다. 이 시기에 사실주의, 인상주의, 신인상주의, 후기 인상주의, 상징주의 등의 여러 사조가 등장해, 고전미술의 이념이 해체됐고 현대미술의 정신이 발현하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예술과 철학은 서로 잇닿아 있기에, 서양 미술사조의 변화 과정을 동양철학에 있었던 미추(美醜) 논쟁과 비교해서 읽어도 쏠쏠한 맛을 느낄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기운생동(氣韻生動)은 기운이 충일(充溢)하다는 의미로, 중국 회화의 작풍(作風)에서 최고 이상으로 삼은 것입니다. 이 작풍을 인상주의자의 작품과 비교해 봤더니, ‘동서양에서 서로 다르게 살았던 인간들의 내면이, 실상은 비슷하거나 같은 것이었구나’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현대미술에서는 오브제가 중요한 역할을 하는데, 오브제는 영어의 object에 해당하는 프랑스어로, 라틴어 objectum(오브옉툼)에서 유래한 단어입니다. 어원적으로는 ‘앞으로 던져진 것’을 의미하는데, 처음에는 사물ㆍ객체ㆍ물체 등을 의미했으나, 다다나 초현실주의 등 전위예술운동에 의해 특수한 의미가 부여됐습니다.
이런 오브제의 등장에는 모든 예술이 그러하듯이 예술에 대한 철학적 탐색이 밑바탕에 깔려 있습니다. 그리고 이제는 오브제의 종류가 아주 다양해졌습니다. 이는 낯익다고 생각한 오브제를 낯설게 배치함으로써, 작가가 말하고자 하는 메시지에 의한 새로운 의미를 오브제에 부여한 것입니다. 현대 예술가는 그가 선택한 오브제에 이런 메시지를 부여해, 사람들의 굳은 감각을 일깨우는 일을 예술작품을 통해 수행합니다.
“비도덕성보다 더 나쁜 건, 오늘날 많은 예술가가 가진 불신에 가득 찬 상대주의와 희망의 상실”이라고 만하임 미술관장 하르틀라우프(G. F. Hartlaub)가 말했습니다. 그렇다면 고전미술과 현대미술 중에 어느 게 더 인간에게 희망을 줄까요?
아무 의미가 없는, 아주 어리석은 질문을 여러분에게 하는 이유는 간단합니다. 예술세계는 작가가 ‘홀로 아리랑’을 부르며 존재하는 영역이 아닙니다. 작가와 더불어 여러분의 삶이 지향하는 그곳이 예술가 말하고자 하는 세계입니다. 그러니 우리는 거기서 ‘생의 희망’을 발견해야 합니다. 이런 면에서 고전미술이나 난해한 현대미술이나 인간에게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일깨워주는 ‘고마운 죽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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