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혜를 거부했다가 실패한 인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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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저널=정이신 목사] 지혜를 거부했다가 실패한 인간 » 95회
지혜가 제시하는 길은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는 것 …
설계하시고 계획하신 대로 피조물들이 만들어질 때마다 하나님은 기뻐하셨고, 지혜도 같이 기뻐했습니다. 이때 하나님이 가장 기뻐하시면서 만드셨던 피조물이 인간입니다. 지혜는 하나님이 누리신 기쁨의 절정이 인간을 만드는 일이었고, 이때 지혜도 덩달아 이 일을 자신의 기쁨으로 삼았다고 했습니다(8:31)
창조 때 하나님은 다른 만물과 달리 인간에게 직접 생명의 기운을 불어넣으셨고, 그 뒤에는 인간과 대화까지 나누셨습니다. 사람에게 동물의 이름을 직접 짓게 해서 하나님의 창조 사역에 인간을 동참시켰고, 만드신 아담을 위해 직접 중매까지 섰습니다. 이는 하나님과 지혜가 인간을 상대자로 삼았다는 뜻입니다.
그런데 역설적이게도 지혜가 가장 비참한 실패를 경험한 사건이 인간 창조입니다. 창조 때 지혜가 기대했던 것과 달리 인간은 아름답게 살지 못하고 타락했습니다. 하나님의 지혜가 있는데도 인간은 스스로 주님의 자리에 오르고자 이것을 멀리하고 사탄과 결탁했습니다.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지 않은 채, 스스로 자신의 주인이 돼 보겠다고 주님의 뜻을 버렸습니다.
여기서 반전이 일어났습니다. 텔레비전 드라마나 영화에 나온 이야기처럼, 나를 배신하고 다른 사람을 찾아갔으면 더 잘 살아야 하는데 인간은 그러지 못하고 더 엉망으로 살았습니다. 하나님을 대신해서 주님의 자리로 올라갔는데, 실타래가 풀리지 않을 정도로 완전히 엉켜서 인간의 삶이 엉망이 돼 버렸습니다.
그러자 하나님이 지혜로 타락한 인간에게 믿음을 선물로 주셔서(에베소서 2:8) 구원의 길로 인도하셨습니다. 그래서 <잠언>에 등장한 지혜의 눈으로 보면 바울의 말씀처럼 인간이 믿음을 가지게 됐다고 자랑할 수 있는 게 아예 없습니다(에베소서 2:9).
지혜가 자신의 말을 들으라고 하면서, 자신이 제시하는 길을 따르는 사람이 복 있는 사람이라고 합니다(8:32). 지혜가 제시하는 길은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는 것입니다.
신약성경은 이 세상에 있는 많은 길 중에 특별히 믿음의 길을 따르라고 합니다. 그렇다면 신약성경에 제시된 믿음의 길은 <잠언>에 나온 지혜의 길이 새로운 옷을 입고 나타난 것입니다.
바울은 믿음이 예수님을 그리스도라고 전하는 하나님의 말씀에서 비롯된다고 합니다(로마서 10:17). 하나님의 말씀을 계속 들을 때 가만히 있는 것 같지만, 우리는 한 걸음씩 하나님을 향해 나아가게 됩니다. 세상을 향해 나아가는 것은 많이 간 것으로 보여도 측량해 보면 고작 몇 걸음 간 것인데, 인간이 많이 간 것으로 착각하고 있는 때도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향한 걸음은 소걸음처럼 천천히 가고 있는 것 같아도 나중에 보면 엄청납니다.
제가 고등학교 동기동창들을 만났을 때 이와 비슷한 일을 겪었습니다. 고등학교를 졸업한 지 벌써 40년이 다 돼 갑니다. 그러나 여전히 옛날 모습 그대로인 동기들이 있습니다. 사회에서 나름대로 성공했기에 한 단체의 장(長)을 이 된 사람이 꽤 있습니다.
그러나 이런 겉모습과 달리 발가벗고 만나는 동기생 카톡방에 올린 글은 완전히 옛날 10대 모습 그대로입니다. 얼마 전에 그 카톡방에서 조그마한 소동이 있었습니다. 고등학교 3학년 때 같은 반이었던 친구들만 있는 카톡방에 제가 쓴 칼럼을 올렸습니다.
이것을 보고 어떤 친구가 좋다는 반응을 보였습니다. 그랬더니 다른 친구가 저희 둘에게 정신병자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제가 ‘사람은 자신이 가진 눈으로 세상을 보는 것이니, 네가 그런 눈을 가진 모양이구나’라고 했습니다. 그랬더니 저희를 정신병자라고 했던 동기가 그 카톡방을 나가 버렸습니다.
그 친구는 고등학생 때도 크리스천을 정신병자라고 폄하했던 친구인데, 지금도 크리스천을 인정하지 않고 함부로 말을 하다가 카톡방을 나갔습니다. 그리고 이후로 누구도 그 친구를 다시 카톡방으로 초대하지 않고 있습니다.
고등학교 때야 기독교 신앙을 정신병으로 생각한다고 말할 수 있겠지만, 이제 그때 어울렸던 동기가 목사가 됐으면 자신과 다른 생각을 하는 사람이라고 하면서, 서로 인정해 주고 사는 모습을 보여야 합니다. 여전히 고등학생 때 모습만 가지고 동기들을 대하니, 그가 카톡방을 나간 후에 누구도 그를 다시 초대하지도 않았고, 그에 대해서 아무 말도 하지 않습니다.
반전은 그가 고등학교 3학년 때 저와 친하게 지냈던 사이였다는 것입니다. 그 지역에서 유지 소리를 들을 정도로 돈을 꽤 많이 벌었다고 들었는데,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무려 40년이 다 돼 가는 세월 동안 그 친구가 무엇을 향해 발걸음을 옮기며 살았는지 의문이 들었습니다.
돈은 많이 벌었지만, 고등학교 3학년 때 종교 이야기만 나오면 신경질적인 반응을 보였던 모습 그대로였습니다. 그가 지역 유지가 돼 세상을 향해 많이 걸었다고 생각했었는데, 여전히 고등학교 3학년 때 모습 그대로였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향한 발걸음에는 이런 면이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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