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새 총리 키어 스타머Keir Starm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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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션저널] 영국 새 총리 키어 스타머Keir Starmer » 민경수 선교사
키어 스타머Keir Starmer 는 누구이며, 국민의 바램은?
이번 총선에서 야당이었던 노동당(412)과 여당이었던 보수당(121)간의 차이는 앞도적 승리(landslide victory)를 이룬 노동당이 집권하며 새정부로 출범하게 되었다.그럼 이는 과연 누구의 몫이며 그 당수였던 지금의 총리 키어 스타머는 누구인지 짧게 알아보며, 한 국민으로서 바램과 함께 미래를 내다 보게 됩니다.
그렇다고해서 국민들이 그렇게 열광하며 기대하던 바램이라기 보다는 시기에 적절하게 불과 4년전에 당수직을 맡은 그는 자신의 능력이라기 보다 유럽 탈퇴 브랙시트와 코비드 – 19 시기를 지나오며 구 정부 보수당의 잘못된 처사들에 의한 하나의 심판론에 접한 때로 영국 땅에 이 시대적 부름에 줄을 잘 섰으며 이에 좋은 결과를 가져왔다라며 말하고 싶다.
이번 선거 결과를 보면서 국민들은 투표권을 던지며 기대감, 후회의 순간 및 때로는 축하를 받으며 기뻐할수도 있을 것이다. 아니면 기대감속에 이제 미래를 위한 정말 안도감을 느낄수도 있을 것인가 말이다. 적어도 이제 국민들 또는 뉴스 방송인들은 어느 누가 투표에서 뒤처져 있는지에 대해 조롱하며 떠들며 특히 옛 모종같은 이곳 공공 만남의 장소인 선술집(Pub)에서 대화들도 성숙한 모습으로의 이야기를 이루며 품격을 이룬 미래 지향적이며 생산적인 대화를 니누어야 될 것이다.

그럼 PM으로, 영국 새 총리 키어 스타머Keir Starmer 그는 누구인가? 위키 정보에 의하면 우리의 인격적인(personal)면에 관심으로 그는 무신론자라며 기록되어 있다. 이에 필자는 성경대로 – “어리석은 자는 그 마음에 이르길 하나님이 없다’ (시.14:1) – 함께 기도를 요합니다. 이처럼 그가 표현하고 있어 기독교인은 아니지만 채식주의자인 그와 그의 아내는 유대인(자유로운)입니다. 최근 여러 미디어 인터뷰에서 그는 특별 긴급 상황을 제외하고 금요일 밤에는 가족과 함께 시간을 보내며 안식일(유대교 Sabbath day)을 준수한다고 설명을 했으며, 이곳 기독교 ‘라디오 방송 프레미어’와의 대담에서는 기독교를 높이 평가하고 믿음으로서의 연대감을 존중한다고 했습니다.
삼가 나눌 수가 있다라면 필자가 금년도 18년째 사역하고 있는 Southwark Cathedral(써덕 교구의 마더 교회/거룩한 예배당/성당)로 또 기독교인 입장에서 본다라면 PM이 된 그는 태생부터 성장과정이 모두 싸우스워크(Southwark) 교구와 함께 여러 관계를 가지고 있기도 합니다. 그러나 예상대로, 그는 그의 아내와 함께 금요일 저녁, 토요일, 일요일 시간을 보낸다 하여 그를 “시간제” 총리라고 비난하는 그의 반대자들로부터 약간의 비판을 불러일으켰던 자로 불립니다. 그러나 이곳의 고위 바른 정치인들은 연중무휴로도 때로는 시간을 낭비하지 않는다는 것은 확실히 신용해 줄 수 있는 좋은 일입니다. 그것은 믿음의 사람으로 볼때에 성경적이지 않습니까?
이에 필자는 독자 기독교인들과 함께 그를 위해 우리에게 주어진 낭만적 선물된 신앙을 가지며 그 표현함의 삶을 지속적으로 곧 기도로 함께 하고 싶습니다. 이곳의 새로운 정부 노동당과 상관없이, 이와 같은 그는 영국을 또는세계를 위한 PM의 권위와 책임적 임무가 부여된 그의 인생 기회인 이 때에 주 예수를 따르는 자도 될 수 있다라는 마음이며, 우리 모든 사람들에게 지침이 될 수 있는 근본적인 진리의 원천이 되신 구세주이신 예수를 통한 인격자로의 삼위일체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는 일이겠습니다.
영국에는 각 학교에 목양적 돌봄을 위한 Pastoral Worker, 각 정부산하 기관을 위해 사역하는 Chaplain 및 국왕 개인이나 궁정에도 또는 비숍에게, 큰 교회/성당에, 경찰 및 소방관 기타 마케트, 극장가에도 Chaplain이 있다. 이는 저물어 가 버린 기독교의 영국을 아직도 기도하며 직장 일터 선교/돌봄에도 기독교의 저력이 숨어 있음을 알수가 있습니다. 여기에 한 체플린으로 이 나라를 위하며 기도하는 마음에 한 국민/시민권자로서 특히 기독교인으로 새 정부의 리더쉽에 감히 바라는 마음을 적어봅니다.
1. 그 말씀대로 해 아래 새로운 것은 없다라는 것입니다.
고국의 집권당 여당이든 다수의 야당이든 각 정당들의 삶을 타국에서도 지켜보며 우리 인간 본연의 모습을 보고 있다라는 것입니다. 이곳에서도 생물이다는 정치의 모습은 주요 정당들은 지난 10여년 동안 분명히 중도를 향해 이동했었다며 말할수도 있지만 이제 과거에 비해 주요 정당 간의 차이가 약간은 줄어 들었던 것은 분명합니다 하지만 전도서 1장의 말씀을 다시 상기하게 만듭니다.
The thing that hath been, it is that which shall be; and that which is done is that which shall be done: and there is no new thing under the sun. 이미 있던 것이 후에 다시 있겠고 이미 한 일을 후에 다시 할지라 해 아래는 새 것이 없나니, (Ecclesiastes 전. 1:9)
이 말씀은 우리가 포기하거나 냉담해진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리스도인으로서 우리의 기댈바 된다는 기초는 일시적인 정부의 성격이 아니라, 물론 대 주제이신 하나님의 확고부동함에 있다는 사실을 확신하게 되어야 합니다. 그러므로 국민들은 관찰자로 지키며 저들이 국민들을 저들 각 보직에 따라 잘 섬기고 있나 직시해야 될 것입니다.
2. 생물이다라는 정치의 삶에서는 인간은 항상 창조주를 바라보듯이 바른 신앙의 자리로 굳혀저야 합니다.
이에 사람의 인격과 바른 관계는 믿음으로 되어지기에 그 어떤 문제보다도 참 성품과 함께하는 바른 인격적인 성품의 문제로 나아가게 되는 것이지요.
이 시대는 더 높은 소명을 이해하는 기독교인 마치 윌리엄 윌버포스같은 믿음의 젊은이를 의회에 두는 것은 매우 중요합니다. 그들의 믿음, 성품, 그리고 (희망하는 대로) 그들의 진실성은 정치인으로의 삶에 긍정적인 변화를 가져올 수 있기 때문입니다. 때로는 저들의 특정 견해에 동의하지 않더라도 그들은 믿음의 담력으로 역사도 바꿀수가 있기 때문입니다. 특히, 전통적인 성경적 견해를 지닌 기독교인들은 무신론의 시대로 되고있는 사회의 이단자로 여겨지며 핍박까지 받게됨의 경우가 많아 극도로 외로움을 느낄 수 있다는 것입니다.
혹자가 표현한 개신교의 설교단(Pulpit) 사역은 근대사에 가장 크며 효과적 역할을 했던 삶의 에이전트로 말했듯이, 우리 기독교인이 정치에 참여한다는 것은 때론 영광스러운 일이기도 한 것입니다. 우리 구주 예수는 국회의원은 아니었지만 확실히 정치가에 바른 도전을 주던 자였습니다. 그는 당국에도 크게 도전하고 불의에 적극적으로 맞서며 새로운 질서를 옹호했습니다. 그는 어느 정당에도 소속되지 않았지만 당대의 삶에 있어서 사회적, 정치적 문제에 끊임없이 바른 도전적 가르침을 했습니다. 우리도 사회악을 보면 그 분 의의 질서로 도전해야 될 것입니다.
3. 국민과 함께하는 삶의 윤택을 위한 저들의 정책 변경에는 시간이 걸리므로 인내가 필요하다.
실천적 삶의 인생에서 경험하듯이 정치에서, 사업에서, 심지어 종교적 삶에서도 우리는 변화가 가져올 영향을 특히 단기적으로 과대평가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우리에게 새 정부가 들어섰다고 해서 반드시 엄청난 변화가 즉각적으로 나타날 것을 기대함은 아니다라는 것이지요.
전쟁이 지속되고있는 지금의 시대에 안정된 민주주의 나라에 살고 있고 부패하지 않은 선거 과정을 갖고 있다는 것은 참으로 다행인 것 입니다. 민주주의는 필연적으로 단기적인 관점을 취하지만 여전히 이 세상이 가지고 있는 최고의 시스템입니다. 그러므로 성도의 견인을 믿음으로 바라며 인내하며 혹 곤고한 삶이 지속 될지라도 저 영원한 언약을 바라며 권세있는 자들을 위해 기도해야 할 것입니다.
4. 삶이 안정성을 가지며 결국은 바른 길로 인도함을 받기 위해 저들 삶의 변화가 필요합니다.
이번 선거가 발표된 지 7주를 돌이켜보면 보수당과 노동당이 끊임없이 제기한 화두는 ‘확실성’과 ‘변화’였습니다. 리시 수낙(Rishi Sunak)은 (그의 말로) 당시 노동당의 미지의 영역에 굴복하는 것이라며, 자신을 고수하는 것의 확실성을 강하게 그는 주장했습니다. 그리고 스타머(Starmer)는 그의 이름을 애칭하며 광풍을 ‘Stomer’몰고 오는 자라며 곧 14년간의 보수당 정부가 성과를 내지 못했다는 사실을 깨닫고 국민들에게 알리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그러면서 잇는 말에 ‘이제는 변화가 필요한 때입니다’라고 강하게 확신했습니다.
기독교 신앙에 따르면 우리는 그 마지막 유사의 전달 멧시지로는 둘 다 좋은 점을 가지고 있다라 하겠으나, 그 옛날 북아프리카 교회의 교부인 어거스틴은 한때 하나님을 “항상 오래되고 항상 새로운 분”이라고 불렀습니다. 안정성과 변화. 두 가지 측면 모두 사실입니다. 둘 다 중요합니다.
우리는 고대의 하나님의 확실성에 올바르게 초점을 맞춥니다. 그분은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히 동일”하시며 우리는 그분을 소중히 여깁니다. 그러나 아마도 우리는 때때로 새 일을 행하시려는 하나님의 창조적인 열망을 과소평가 할 수도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의 변함없는 임재와 아름다움은 시간을 초월하고 영원합니다. 그러나 그분께서는 당신에게 열려 있는 사람들을 언제나 새롭게 하시고, 우리가 사회를 움직이고 직접 참여하는 사람이 되도록 준비시켜 주십니다.
따라서 요한은 이렇게 표현합니다.
And he said unto me, It is done. I am Alpha and Omega, the beginning and the end. I will give unto him that is athirst of the fountain of the water of life freely. 또 내게 말씀하시되 이루었도다 나는 알파와 오메가요 처음(ἀρχὴ)과 나중(τέλος)이라 내가 생명수 샘물로 목마른 자에게 값 없이 주리니, (Revelation 계. 21:6) 아멘!
David Min @런던브릿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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