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9. 늑대를 이기는 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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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저널=정이신목사] 29. 늑대를 이기는 양 »
성령님이 강림하셔야 하나님 말씀 따르는 길이 복된 길…
사람에게 성령님이 강림하셔야 하나님의 말씀을 따르는 길이 복된 길이라는 것을 알게 됩니다(2:9). 하나님의 말씀을 따르지 않는 사람들은 정의ㆍ공의ㆍ정직이 왜 복인지 알지 못합니다. 하나님 앞에 갈 수 있도록 하나님의 나라와 연결된 길이 복된 길입니다…
우리가 살아가면서 느끼는 흥미는 상대적입니다. 우리 안에 있는 죄의 유혹이 거머리보다 더 질기지만, 그게 상대적이기에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순간 죄의 흥미가 없어집니다. 죄가 주는 흥미보다 하나님이 주시는 말씀이 너무 재미있기에 세상 이야기가 시시한 게 됩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다고 해도 허점이 아주 많습니다. 하나님은 사탄이 우리가 지닌 허점을 공격하지 못하도록 막아주셔서 안전하게 해 주십니다. 또 세상에서 많은 것을 가지려다 하나님을 놓치지 않게 하시고, 오직 주님만을 알아 가게 하십니다. 하나님을 아는 게 세상의 모든 것을 가진 것이기에 주님은 이를 통해 세상의 모든 것을 가지게 하십니다.
그런데 이때 하나님이 한꺼번에 우리에게 주시면 우리가 감당하지 못하기에, 때마다 필요한 만큼만 주십니다. 인간에게 필요할 것이라고 미리 주시면 사람들이 ‘왜 이런 것을 주시느냐?’라고 오해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보시기에 필요한 만큼만 주십니다.
하나님은 공의롭게 사는 사람의 길을 보살펴 주십니다(2:8). 사람이 공의롭게 살아가려면 그 마음에 하나님의 말씀을 두고 밤낮으로 묵상하는 수밖에 없습니다(시편 1:2). 이렇게 하면 사람들에게 얽매이지 않습니다. 사람들은 서로의 이익을 위해 연대하고 패거리를 만듭니다. 덕분에 특권계층이 없는 사회가 인류 역사에 존재한 적이 없습니다. 하나님의 백성은 하나님의 나라를 확장하는 것을 삶의 최종 목표로 삼은 사람들이기에, 기득권을 유지하기 위한 패거리를 만들지 않습니다. 그러다 보니 종종 패거리를 만들어 기득권을 지키려는 사람들과 충돌합니다.
이때 우리 눈에 쉽게 이해되지 않는 일이 벌어집니다. 패거리가 있는 사람들이 패거리가 없는 하나님의 백성을 이기는 게 아니라 오히려 집니다. 즉 늑대가 양에게 지는 형국이 만들어집니다. 자연법칙에 따르면 양이 늑대에게 잡아먹히는 게 당연한 일이지만, 신앙의 세계에서는 양이 늑대를 이깁니다. 양에게는 목자가 있고 늑대에게는 목자가 없기에 이런 일이 벌어집니다.
하나님의 길로 접어든 사람은 성령님이 끝까지 인도하시기에 최종적인 승자는 양이 됩니다. 전반전에는 질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후반전으로 가면 양상이 달라집니다. 후반전에 동점을 만들고 마침내 연장전에서 이깁니다. 그러므로 양은 최종전에서 이겼더라도 자기 능력으로 이겼다고 교만에 빠지면 안 됩니다. 약육강식(弱肉强食)의 법칙이 지배하는 세계지만, 하나님의 나라가 선포하는 구원의 질서를 따랐기에 양이 늑대를 이긴 것입니다. 따라서 양의 승리는 자기 능력으로 인한 게 아니라 하나님이 주시는 은혜로 거둔 것입니다.
사람에게 성령님이 강림하셔야 하나님의 말씀을 따르는 길이 복된 길이라는 것을 알게 됩니다(2:9). 하나님의 말씀을 따르지 않는 사람들은 정의ㆍ공의ㆍ정직이 왜 복인지 알지 못합니다. 하나님 앞에 갈 수 있도록 하나님의 나라와 연결된 길이 복된 길입니다. 하나님 앞에 가지 못하도록 하는, 절벽으로 가는 길은 복된 길이 아닙니다.
복된 길은 자주 가는 게 좋지만, 절벽으로 연결된 길은 아예 가지 않는 게 좋습니다. 절벽을 직접 가서 보고 그 후에 안 좋은 길이라고 확인하고서 가지 않겠다고 고집을 피우는 것은, 용광로를 직접 눈으로 들여다본 후에 그게 위험하다고 확인하겠다는 만용과 같습니다. 용광로를 직접 눈으로 확인하면 화상만 입습니다. 화상을 입어서 눈이 멀어 버립니다. 굳이 만용을 부리면서까지 하나님이 허락하시지 않은 길의 폐해를 확인해 보려고 하지 마십시오.
기독교상담을 하면 가끔 이런 속내를 토로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저 사람은 온갖 죄를 다 저지르고 다녔지만, 회개했다고 말하면서 평안히 교회에 앉아 예배하고 있다. 나는 조그마한 죄에도 가슴을 쓸어내리며 살았다. 나이가 들어 보니 후회가 된다.’ 한마디로 자기도 저 사람처럼 이런 일 저런 일 다 해 보지 못했던 게 후회된다고 합니다.
또 다른 예로 배우자가 바람을 피워 이혼하게 됐는데, 정작 이혼의 원인을 제공한 그는 잘살고 자신은 경제적인 이유로 힘들게 산다고 그 이유를 묻는 사람도 있습니다. 이에 대해 답을 주는 말씀이 <2:9>입니다. 사람들은 주로 물질이 풍부해지는 것만을 복이라고 생각하지만, 성경은 달리 말합니다. 사람들은 정의ㆍ공의가 복이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정의ㆍ공의가 복이라고 하십니다. 우리의 삶이 이것으로 끝난다면 물질의 복만을 헤아리겠지만, 하나님 앞에 섰을 때 비로소 끝나는 것이기에 그렇게 생각하면 안 됩니다. 우리가 구원은 약속받았지만, 구원의 상급이나 구원의 색깔은 사람마다 다릅니다. 이것을 무시하고 물질적으로 잘 사는 것만을 복이라고 주장하면 안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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