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 아름다운 관과 목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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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말씀이 주는 복이 세상의 복과 달라 시들지 않는다.
부모가 하나님의 말씀을 전해줘도 자식이 이를 받아들이지 않으면 허사가 됩니다. 그러니 하나님의 말씀이 가정에, 부모와 자식 사이에 차고 넘치도록 삶을 경영하십시오. 이게 <잠언>이 우리에게 주는 교훈…
[정이신 칼럼] 14. 아름다운 관과 목걸이 » <1:9>은 부모를 통해 전달되는 하나님의 말씀에 이런 가치가 있다는 뜻입니다. 머리에 쓰는 관과 목걸이는 중동에서 눈에 띄게 드러나는 장신구입니다. 장신구를 속옷 안에 넣거나 몸 안에 숨기고 다니는 사람은 없습니다. 반지를 낀 손가락을 감추려고 장갑을 껴 반지가 드러나지 않게 하거나, 귀에 건 귀걸이를 감추려고 얼굴을 덮는 모자를 쓰는 사람은 없습니다. 따라서 이 말씀은 부모를 통해 계승된 하나님의 말씀을 드러내놓고 자랑하란 뜻입니다.
텔레비전에 나왔던 광고에 자신의 집에 내려오는 가훈이 뭔지 자랑했던 게 있었습니다. ‘이것은 몇백 년째 내려오는 이 집안의 가훈입니다’란 내용이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가훈이 되지 못하고, 숨겨져 자손들에게 계승돼야 하는 사회라면 이미 끝장난 사회입니다. 그래서 <잠언>은 이걸 드러내놓고 자랑하라고 합니다.
<잠언>을 기록했던 시대에 머리에 관을 하고 목걸이를 차고 다닐 수 있었던 사람은 대부분 특수 계층….
현대의 우리는 돈만 있으면 아무나 액세서리를 합니다. 종류도 다양하고, 플라스틱으로 만들어 가격이 아주 저렴한 것도 있습니다. 그러나 <잠언>을 기록했던 시대에 머리에 관을 하고 목걸이를 차고 다닐 수 있었던 사람은 대부분 특수 계층이었습니다. 제사장이나 관료, 왕족 등만 이런 장신구를 할 수 있었습니다.
또 이런 장신구는 대개 금이나 보석으로 만들었기에 굉장히 비쌌습니다. 장신구만 그랬던 게 아니고 옷감과 옷의 색깔에도 계층 간 규제가 있었습니다. 그래서 돈이 있다 해도 특정 색깔로 만든 옷은 아무나 입을 수 없었고, 특정 디자인은 그렇게 디자인한 옷을 입을 수 있는 사람이 따로 정해져 있었습니다.
예를 들어 조선 시대에 용의 형상을 수놓은 옷을 입을 수 있는 사람은 왕과 세자뿐이었는데, 수놓은 용의 숫자도 정해져 있었습니다. 만약 이 둘 외에 다른 사람이 용의 형상을 수놓은 옷을 입으면 역적으로 몰려 처벌받았습니다. <잠언>이 구전되고, 이후 기록됐던 때도 이런 일이 있었습니다. 아무나 머리에 관을 쓰고 목걸이를 할 수 없었습니다. 따라서 <1:9>은 그 시대와 상황적 의미를 곁들어서 봐야 합니다.
물이 없으면 곧 시드는 꽃으로 머리에 쓰는 관을 만들거나, 썩어 없어지는 식물 줄기로 목걸이를 만들지 않습니다. 만약 이런 것으로 만든 관이나 목걸이를 걸고 다니면, 며칠 지나지 않아 썩어가는 식물에서 벌레가 나올 것입니다. 그러므로 <1:9>은 하나님의 말씀이 주는 복이 세상의 복과 달라 시들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이사야는 인간이 표출할 수 있는 최고의 아름다움도 자신에게 정해진 시간이 지나면 시드는 들의 꽃과 같다고 했습니다(이사야서 40:6). 세상에서 보상으로 주는 관과 목걸이를 찬 사람이 일시적으로 앞선 것처럼 보일지 모르지만, 최종적으로는 하나님의 말씀을 가진 사람이 이깁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말씀으로 관과 목걸이를 만들어야 합니다.
하나님이 인간을 만드실 때 주님을 찾지 않으면 살기 힘들게 만들어 놓으셨습니다. 그래서 사람에게는 세상의 것으로는 채워지지 않는 정교한 감정과 의지가 태생적으로 내재해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없으면 부모도 부모 노릇을 제대로 할 수 없고, 부모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제대로 듣지 못한 자식은 아름다운 관이나 목걸이를 걸 수 있을 만큼 성공하지 못하게 됩니다.
또 부모가 하나님의 말씀을 전해줘도 자식이 이를 받아들이지 않으면 허사가 됩니다. 그러니 하나님의 말씀이 가정에, 부모와 자식 사이에 차고 넘치도록 삶을 경영하십시오. 이게 <잠언>이 우리에게 주는 교훈입니다.
<1:10∼12>에서 “아들(히브리어: 벤)”은 인격적으로 가치관이 제대로 다듬어지지 않은 상태의 사람을 뜻합니다. 그들은 하나님을 믿으면서도 얼마든지 악한 사람의 꾐에 속아 넘어갈 수 있습니다. 이를 오늘날에 적용하면 모든 크리스천도 되고, 예수님을 믿고 따르지만 아직은 장성하지 않은 사람도 됩니다(히브리서 5:11∼14).
악한 사람이 숨어 있다가 사람을 꾄다고 했는데(1:11), 악한 사람이 숨어 있는 사회는 그나마 건강한 사회입니다. 오늘날은 악한 사람이 버젓이 고개를 들고 다니면서 사람을 속이거나 강탈합니다. 기독교가 아니면서 기독교라고 주장하며 위장한 채 포교하고, 그가 믿는 교주는 영생불사할 것이라고 거짓말하면서 사람을 속입니다.
이는 모두 제사장 전통을 벗어나는 일이었습니다. 제사장은 세습직이었기에 결혼하지 않은 제사장은 없었고, 여자가 제사장이 될 수도 없었습니다. 이 두 그룹이 두드러지게 활동했던 시기도 다릅니다. 구약성경에는 바빌로니아에 포로로 끌려가기 전까지 활동했던 선지자들의 메시지가 많이 나옵니다. 제사장들이 했던 말은 <에스라기, 느헤미야기>에 조금 나옵니다.
또 한편으로는 우리가 사는 사회가 주로 힘이 있는 사람이 지배하는 사회이기에, 거의 모든 사람이 이렇게 힘을 가진 사람이 돼 다른 사람을 지배하는 걸 목표로 삼습니다. 사람 안에 있는 욕망에 따라 좀 더 편안한 길을 걷기 원하는 사람은 일부러 이런 사람이 제시하는 길로 가기도 합니다.
사기꾼이 나쁜 사람이지만, 사기꾼의 꾐에 속는 사람도 자신 안에 사기꾼이 제시하는 미끼를 찾는 습성이 있다는 걸 알아야 합니다. 그것에 속는 것이기에 이걸 같이 경계해야 합니다.
글 정이신 목사/ 본지 칼럼니스트/ 아나돗 공동체 위임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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