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를 살리는 순교자의 피
Share This Article
[영성칼럼=Dr. Elijah Kim] 교회를 살리는 순교자의 피 »
우리 민족 가운데 순교자의 신앙이 우리 교회 살리는 것… 믿음가져
교부시대 뛰어난 변증가인 터툴리안이 이러한 말을 했습니다. “풀루레스 에피치무르 꾸오티앤스 메티무르 아 보비스: 세멘 에스트 쌍구이스 크리시타노룸 (Plures efficimur, quotiens metimur a vobis: semen est sanguis Christianorum.) 이 뜻은 “순교자의 피가 교회(기독교)의 씨앗이다(the blood of the martyrs is the seed of the Church)”입니다…
초대교회는 수많은 순교자를 낳았습니다. 기독교인이 된다는 것은 생명을 담보로 해야 했습니다. 지금도 북한과 아프가니스탄과 이란에서는 기독교인이 된다는 것, 세례를 받는 것은 옥에 갇히고, 가정은 찢김을 당하고, 아이들은 강제로 무슬림 가정에 입양되고, 모진 고문과 죽음까지도 각오해야 합니다. 너무나 편안하고 안락한 이 때에 우리가 부르짖는 부흥이나 선교의 완성은 놀라운 책략이나 전략과 정책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순교자의 믿음을 갖고 순교자의 삶을 사는 데서 옴을 믿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첫사랑을 잃어버린 에베소 교회에서 “네가 어디에서 떨어진 것을 빨리 깨달어 첫사랑을 회복하라”고 말씀하십니다. 나를 살리는 첫 걸음은 “회개”입니다. 더불어 회개는 다른 사람이 아닌 가장 작은 나로부터 시작되고 그 것으로부터 부흥도, 회복도, 그리고 다시 살리는 생명의 역사도 시작됩니다. 또한 회개는 말과 입술이 아니라 죄악을 끊어버리는 행위를 통해 이루어집니다.
바닷물의 염도가 3.1%에서 많아야 3.8%라고 합니다. 로마 제국에 복음이 전파된 지 백여년이 지나던 해인 2세기에, 수많은 순교자들이 양산되기 시작했습니다. 지금 대한민국에 22%에서 25%의 개신교인들이 있다고 합니다. 2021년 한국 갤럽 조사에 따르면 우리나라 개신교인은 17%로 불교의 16%보다는 낫다는 통계도 발표되었습니다.
물론 1990년대만 해도 25%의 개신교인이라고 모든 기독교 신문들이 떠들었던 것이 기억납니다. 분명히 허수가 있었을 것이고, 중복 통계와 과장이 있었을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개신교회 17%는 결코 적은 것이 아닙니다. 염도가 3%만 넘어도 바닷물은 결코 썩지 않습니다.
2세기와 3세기의 로마제국의 기독교 분포는 동로마 지역이 4% 그리고 서로마 지역 3%라는 유럽학계의 통계는 불변의 정설입니다. 그렇습니다. 기독교인이 3%내지 4%만 있어도 세상은 바뀝니다. 부패한 사회가 정화되고, 범죄율이 떨어집니다. 순교자의 신앙을 갖춘 기독교인이 있는 대한민국에는 믿음 때문에, 술집을 가지 않아 그 분들 때문에 술집이 하나 둘 씩 문을 닫는 일이 있어야 합니다. 웨일즈의 부흥 때에 실제로 그 일이 일어났습니다. 향락산업이 크리스챤 사장 때문에, 크리스챤 사원 때문에 오락과 음란과 음주가무의 고리를 끊는 역사가 있어야 합니다. 내가 있는 자리에 악에게 타협하지 않는 3%의 순교자의 신앙을 갖춘 자가 될 때 악의 고리가 끊어집니다. 내가 불이익을 당하고, 내가 믿음 때문에 소수자가 되고, 내가 갖고 있는 순교자의 믿음 때문에 부패의 고리가 끊어져야 합니다.
한국 교회는 물량과 양적 부흥이 필요한 것이 아니라 진정으로 삶이 바뀌고 회개로부터 온전히 헌신된 순교자의 신앙이 3%에서 4%가 필요합니다. 그러면 우리민족에게 기적이 일어날 것입니다.
단지 예수를 믿는 것만으로 목숨을 내 놓는 것이 아니라 옥에 갇히고, 매를 맞고, 기름 가마에 튀겨서 죽임을 당하고, 톱에 켜서 몸이 절반으로 잘려서 죽고, 광야와 사막에 유리 방황하며, 주리고 목마르며, 갈 곳이 없어서 무덤(카타콤)에서 몇 대를 걸쳐서 오직 믿음 때문에 살아 온 초대교회의 믿음의 사람들이 로마 제국 전체를 변화시키고 바꾸었습니다. 역사적 기록에 의하면 어떤 자녀 세대는 땅 위의 빛을 보질 못하고 지하에서 태어나 지하에서 죽은 경우도 즐비합니다.
이것은 히브리서 11장 33절에서 38절이 증거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믿음으로 나라들을 이기기도 하며 의를 행하기도 하며 약속을 받기도 하며 사자들의 입을 막기도 하며 불의 세력을 멸하기도 하며 칼날을 피하기도 하며 연약한 가운데서 강하게 되기도 하며 전쟁에 용감하게 되어 이방 사람들의 진을 물리치기도 하며 여자들은 자기의 죽은 자들을 부활로 받아들이기도 하며 또 어떤 이들은 더 좋은 부활을 얻고자 하여 심한 고문을 받되 구차히 풀려나기를 원하지 아니하였으며 또 어떤 이들은 조롱과 채찍질뿐 아니라 결박과 옥에 갇히는 시련도 받았으며 돌로 치는 것과 톱으로 켜는 것과 시험과 칼로 죽임을 당하고 양과 염소의 가죽을 입고 유리하여 궁핍과 환난과 학대를 받았으니(이런 사람은 세상이 감당하지 못하느니라) 그들이 광야와 산과 동굴과 토굴에 유리하였느니라”
저는 “이런 사람은 세상이 감당하지 못하느니라”라는 말씀에 많이 목놓아 울었습니다. 카타콤에서 참 많이 울었습니다. 세계를 살리는 것…우리 민족의 진정한 순교자 신앙인 3%가 필요할 때입니다.
저는 지중해 일대에 카타콤을 얼마나 많이 방문하고 조사했는지 모릅니다. 경우가 다르지만 몇 군데는 정말 잊혀지지 않는 곳이 있습니다. 가바도기아 영어로는 조금 센 카파토키아(Cappadocia)와 몰타의 카타콤입니다. “세대에 세대를 걸쳐 살았던 순교자의 삶은 세상의 안락함을 포기하기에 하늘의 기쁨을 얻는 것이구나!” 하는 큰 깨달음을 얻습니다.
저처럼 세계 170여 개국을 다니다 보면 일반인들이 볼 수 없는 진귀한 역사의 현장을 보는 경우가 많습니다. 초대 교회에만 순교자가 있는 것이 아니라 이란에도, 아프가니스탄에도 그리고 감격스럽게도 북한에도 있습니다. 이란은 지금 더 이상 감옥을 수용할 수 없어서 들어 온 기독교인들에 당신이 잠깐만 기독교인이라 아니라고 하면 풀어 주겠다고 해도 그들은 결코 타협하지 않습니다. 제가 다녀 본 나라 가운데 이란 만큼 진정한 믿음을 지키는 나라를 본적이 없습니다.
독재자 알렉산드르 루카센코가 있는 벨라루스는 유럽에서는 볼 수 없는 지상 최대의 복음주의 부흥이 일어나고 있는 나라입니다. 그런데 유럽에서 가장 혹독한 복음주의 탄압이 있는 나라가 또한 벨라루스입니다. 교회의 탄압과 핍박이 있는 곳에 가장 놀라운 부흥이 있습니다. 벨라루스 헌법에 러시아 정교회 그리스 정교회 그리고 천주교회만 인정하고 개신교회는 이단이라고 명시해서 핍박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유럽에서 가장 놀라운 부흥이 그곳에서 일어나고 있습니다. 한 번 믿게 된 분들은 감옥 가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음을 보았습니다.
저는 우리 민족 가운데 이런 순교자의 신앙이 우리 교회를 살리는 것이라고 믿습니다.
교부시대 뛰어난 변증가인 터툴리안이 이러한 말을 했습니다. “풀루레스 에피치무르 꾸오티앤스 메티무르 아 보비스: 세멘 에스트 쌍구이스 크리시타노룸 (Plures efficimur, quotiens metimur a vobis: semen est sanguis Christianorum.) 이 뜻은 “순교자의 피가 교회(기독교)의 씨앗이다(the blood of the martyrs is the seed of the Church)”입니다.
평양에서 오신 이 목사님… 어머니 그리고 할머니가 모두 순교자의 후손이라고 했습니다. 평양에서 쫓겨날 때 어머니, 할머니의 입을 통해 “너를 위해 기도하고 있다”라고 말씀하셨다고 합니다. 그 애기를 들으면서 저는 온 몸에 전율이 왔습니다. 우리 민족을 살리는 순교자의 후손들이 북한에 있습니다. 남한과 미주 교회는 탈북민 목회자와 탈북민들을 도리어 섬겨야 합니다. 순교자의 후손들을 귀하게 여겨야 합니다.
저는 방금 전 한 분으로부터 다음과 같은 글을 받았습니다.
“아멘! 주님 앞에 엎드려 눈물로 회개 합니다. 남한은 물질적 축복과 믿음의 자유를 주셨으나 방종하고 타락하고 교만하고 우상을 섬기는 우를 범하였습니다. 내 자신이 썩어가는 것도 모른 채 타인을 조롱하고 업신여겼습니다. 북한정권에 대한 미움을 북한 주민들에게 까지 전가하였습니다. 김정은 일가에 대한 원망과 공포로 인해 더 이상 마주하기 싫은 존재로 여겼습니다. 그 속에 주님의 자녀가 있고 믿음의 용사들이 있는 것을 외면하였습니다. 우리의 죄를 용서하여 주시고, 그들을 위해 기도하며 도움을 그치지 않게 하여 주시옵소서. 분열된 이스라엘이 회개 하지 않아 결국은 다 망하고 말았던 성경의 가르침을 깨닫게 하여 주시옵소서.”
이곳 보스톤은 주일 저녁입니다. 저는 오늘 저의 신앙의 본보기인 주기철 목사님 그리고 손양원 목사님을 생각했습니다. 두 분다 순교자입니다.
민족과 조상이 범한 죄악을 깨닫고 자신의 대에 그 모든 죄를 끊는 역사를 이룬 다니엘의 기도를 묵상하였습니다. 우리에게 제일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돌아보게 됩니다. 행사나 축제나 프로그램이나 훈련이나 양육이 아닌 옷을 찢고 마음을 찢는 통렬한 회개가 가장 필요한 때인 것 같습니다.
회개없이 이루어지는 프로그램, 열정, 네트워크, 많은 노력들…단 한 발자국도 나아갈 수 없음을 봅니다.
저는 오늘 종일 회개하며 예레미야처럼 눈물과 애곡 즉 애가의 기도를 주께 드립니다.
주여 나의 죄를 용서하여 주옵소서!
민족의 배교와 안락함과 죄악됨을 용서하옵소서!
순교자의 신앙을 지킨 이들로 하여금 나를 그리고 우리를 부끄럽게 하사 주님께 대한 첫사랑을 회복하게 하옵소서
보스톤에서 김종필 목사 올림
◙ Now&Here©ucdigiN(유크digitalNEWS)의 모든 콘텐트(기사)는 저작권법으로 보호를 받고 있습니다. 무단 전재,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